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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영역에서 확장해오는 시도들 2024년 1월 27일(토)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크로스 콘체르트 프로젝트’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 음악 분야 선정작으로 “클래식과 재즈의 소통을 통해 새로운 음악을 제시”한다는 포부를 지닌 공연이다. 작곡가 오예승이 예술감독으로 기획 전반을 이끌었으며, 재즈 피아니스트 조윤성이 피아노 연주자 및 작곡가로 활약했다. 이외에도 콘트라베이스 전창민, 드럼 신동진, 일렉기타 오진원, 색소폰 신명섭이 재즈 앙상블로 무대 왼쪽에, 바이올린·비올라·첼로로 구성된 8명의 현악 앙상블이 무대 오른쪽에 배치되어 ‘재즈 vs 클래식’의 구도를 만들었다. 재즈 보컬리스트 박지우가 두 곡의 노래를 불렀고, 바이올리니스트 송정민이 독주자로 무대에 섰다. 전반적으로는 ..


세 명의 비평가가 바라본 하나의 무대 : 영구적으로 두고 계속해서 꺼내 읽어볼 가치가 있는, 입체적인 글로서의 공연비평 이민희, 이혜진 책임편집 ‘멜로스 연주와 비평’은 하나의 공연을 세 명의 필진이 동시에 관람하고, 이에 대한 3인 3색의 공연비평을 쓰는 프로젝트다. 필진은 각각 800자 내외의 ‘단평’을 작성하게 되는데, 이렇게 모인 세 개의 단평이 하나의 비평문을 구성한다. 이런 방식의 비평은 ‘단 하룻저녁의 음악회’에 대한 입체적인 평가 및 해석을 가능하게 하며, 클래식 공연 현장에 대한 다채로운 시각을 담아낼 수 있다. ‘멜로스 연주와 비평’은 음악학을 전공한 필진을 중심으로 구성된 비평 단체이다. 음악회에 대해 글을 쓰기를 원하는 필진들이 매달 초 모여 그 다음 달에 열리는 국내의 주요 공연에..


2022년 대한민국 음악계의 가장 주목할 만한 순간들 이민희, 이혜진 책임편집 ‘연주비평’은 국내에 양악이 소개된 이후로 지속적으로 존재해왔던 영역이다. 몇몇 영향력 있는 음악평론가들이 힘을 다해 저술했던 분야도 바로 ‘연주비평’이다. 월간지 등을 중심으로 그 해의 주목할 만한 공연과 연주자에 대한 평문이 출간되었고, 각계각층에서는 이를 통해 음악계의 흐름과 연주의 수준을 가늠했다. 하지만 2000년대를 넘어가면서 종이매체의 몰락과 함께 비평가 부재의 상황이 가속화되었고, 인터넷 공간의 자유로운 커뮤니티 문화와 더불어 음악회나 연주자에 대한 정보를 쉽게 구할 수 있게 되면서 ‘연주비평’이 점차 사라졌다. 비평의 양적인 축소와 함께 몇 가지 문제가 불거졌다. 첫째, 평론가들이 독립된 주체로 공연을 비평하는..


우리나라에 서양음악이 수용된 지 150여 년이 훌쩍 넘었고, 서양의 어법을 기반으로 ‘작곡’을 하게 된 것은 100여 년이 지났다. 본 저서 『북치는 소년: 박동욱의 삶과 음악』은 서구의 음악문화를 받아들여 자체적인 전통을 구축한 대한민국 양악계가 이제껏 논의하지 않았던 ‘타악기 연주자’의 삶과 예술세계에 대해 심층적인 조망을 시도한다. 현재까지의 양악사 연구는 음악 현장에 존재했던 ‘연주자’라는 음악의 실현자, 당시 음악을 듣던 ‘관객’, 해당 음악이 존재할 수 있도록 뒤에서 보좌하는 악단 및 앙상블 ‘시스템’ 등의 존재를 서술하지 않았거나, 완전히 지워버린다. 1970-1980년대에 굵직한 음악 페스티벌이 열렸고 거기에서 어떠한 작품이 발표되었는지에 대한 자료 정리는 진행된 바 있지만, 해당 연주회가..


신성아(1971- )는 추계예술대학교 작곡과를 졸업하고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 피바디음악원 컴퓨터음악작곡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미주리주립대학교 연극대학 사운드디자인 석사 및 음악대학 작곡전공 박사학위를 받은 작곡가 · 사운드아티스트다. 공연예술, 연극, 무용, 미디어, 영화·영상, 실험영화, 인스톨레이션, 다원예술 등의 분야에서 활동 중이며, 서울국제컴퓨터음악제, 서울단편영화제, 서울국제실험영화제, 광주비엔날레, 플로리다 일렉트로어쿠스틱 음악페스티벌, 산타페 국제전자음악페스티벌, 베를린 필름페스티벌 등에서 작품을 발표했다. 아시아컴퓨터음악 프로젝트의 프로그래머이자 공동창립자이고, 국제컴퓨터음악협회(ICMA)의 아시아/오세아니아 지부장을 역임했다. 전자음악 영역의 가장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경계선상의 작곡가이..


본 논문은 필립 글래스(Philip Glass, 1937-)와 스티브 라이히(Steve Reich, 1936-)의 녹음된 음반을 대상으로 하는 대중음악 속 샘플링(Sampling) 사례를 분석한다. 이 안에서 미니멀 음악은 첫째, 특유의 이산적 특성과 모듈성을 기반으로 하는 루프(Loop)로 활용되거나, 새로운 음악적 맥락에 배치되는 독특한 음향 도구가 된다. 둘째, 녹음된 미니멀 음악의 사운드적 특이성을 중요하게 다루는 방식으로 샘플링된다. 셋째, 라이히의 음악 중에서 ‘샘플링’이라 부를 수 있었던 작업들, 그리고 글래스가 대중음악을 차용해서 작곡했던 작업들이 다시 샘플링되고, 이 과정에서 원곡에 내재되었던 의미가 새로운 방식으로 재해석된다. 결과적으로 본 연구를 통해 미니멀 음악사조가 20세기 말 살..


무중력의 검은 배경 위로 매끈하게 드러난 지구의 곡선, 바로 그 옆을 느리게 유영하는 우주선. 다소 냉혹한 우주의 풍경에 천재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 를 결합시켰다. 그러자 눈앞의 암흑은 금새 아름다운 무언가로 탈바꿈했다. 영화 의 이 유명한 장면이 암시하는 것은 첫째, 왈츠란 우아한 느낌을 준다는 것, 둘째, 왈츠는 원을 그려 도는 운동을 암시한다는 것, 그리고 셋째, 무엇보다도 왈츠란 인간들 사이의 애정과 친교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음악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 음악이 암흑의 우주에 울려 퍼진 순간 그곳은 온기로 가득 찬 인간적인 무언가로 보였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춤곡 ‘왈츠’의 역사는 17세기 그리고 그보다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 형태 또한..


상징을 내세운 추상적인 흐름, 그러나 종착점은 너무도 구체적인 ‘한’과 ‘소녀상 2023년 11월 30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홍석원이 지휘하는 서곡이 연주되며 공연이 시작되었다. 마치 전체 극의 흐름을 복기하듯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선율을 비롯한 다양한 음향 짜임새가 차례로 등장했다. 사실 이번 프로덕션은 연출의 의도가 상당한 수준으로 반영되는 ‘레지테아터’임을 떠올려 볼 때, 충분한 길이를 갖는 서곡에 아무런 연출이 더해지지 않고 ‘막을 내린 채로’ 음악만 나오는 상황이 아이러니했다. 연출가 스테파노 포다는 전반적으로 미장센에 공을 들여 결벽증적으로 완결한 하나하나의 ‘장면’을 긴 호흡으로 만들어냈는데, 그의 작법이 작동하기에 짜임새의 교체가 잦은 서곡이 적절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막이 ..


글·이민희 음악학자 미에치스와프 바인베르크(Mieczysław Weinberg, 1919-1996)는 폴란드 출신의 러시아 작곡가로, 1919년 12월 8일 바르샤바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유명한 지휘자이자 바이올리니스트였고, 어머니는 극단의 배우였다. 이러한 환경은 후에 바인베르크가 오페라를 비롯한 극음악에 두각을 드러내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 바인베르크는 어려서부터 작곡을 시작했고 10살이 되던 해에는 아버지가 일하던 극장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곤 했다. 12살이 되던 해에는 바르샤바 음악원에 입학해 요제프 투르친스키((Jozef Turczinski)에게 피아노를 배우고 피아니스트로서 두각을 드러낸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바인베르크는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기 직전인 1939..


본 논문은 디지털 문화에서 등장한 특정 부류의 음악을 ‘디지털 미니멀 음악’(Digital Minimal Music)이라 명명하고 그 양상과 미학을 심층적으로 고찰하였다. 디지털 미니멀 음악은 1990년대 후반 디지털 문화 안에 나타난 새로운 유형의 미니멀 음악이다. 이 음악은 노이즈, 버그, 오작동으로 반복하는 기계의 소음, 전자적으로 합성되고 녹음된 음향 등으로 구성되며, 음악의 모든 파라미터가 최소한으로 제한된다. 디지털 미니멀 음악은 20세기 말 컴퓨터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음악창작 환경, 전문적인 음악제작 관습의 공유 및 개인화와 함께 나타났으며, 그래뉼라 합성, 필드레코딩, 즉흥연주 및 이에 대한 녹음, 소프트웨어 계발 등으로 만들어지는 전자음악의 한 종류다. 이 음악의 창작자들은 아방가르드..


본 논문은 독립된 음악창작 카테고리로서의 ‘소극장오페라’의 특성을 서사적, 음악적, 극적, 연출적, 그리고 관객의 체험적 층위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첫째, 소극장오페라는 ‘작은규모’의 무대를 위해 작곡된 오페라로, 1000석 이상 규모의 극장을 위해 작곡된 ‘그랜드오페라’와는 구분된다. 소극장오페라는 ‘프로시니엄 무대’가 아닌 독특한 형태의 무대와 객석 구조를 갖고 있으며, 공간의 협소함 때문에 실내악 편성이 반주를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주연성악가들의 숫자 및 전체 프로덕션 규모도 상대적으로 작다. 둘째, ‘소극장오페라’는 ‘작은 공간’에 모인 ‘소규모 관객’을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기존에 비판받던 ‘대극장’ 위주의 오페라와는 구분이 되는 소재 및 서사, 그리고 관점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기존 그랜드..


멜로스 연주와비평 이민희 음악평론가 2023년 하반기 리뷰 모음 원문출처: https://blog.naver.com/yeonju_critic 축소지향적인 연출이 주는 의외의 효과 2023년 8월 17일 2023 예술의전당 토월오페라 〈투란도트〉 /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대형오페라로 익숙한 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무대의 규모와 러닝타임을 줄인 채 공연됐다. 이런 기획은 몇몇 새로운 효과를 이끌어냈는데, 무엇보다도 음향적인 측면에서 격하면서도 자극적인 소리를 들려줬다. 아담한 홀에 60명 이상의 성악가 및 대편성 관현악이 소리를 냄으로써 사실상 터져버릴 것 같은 음향 한 가운데에 관객을 위치시키는 독특한 구도를 창출한 것이다. 때문에 소리의 밸런스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지만, 이런 울림이 극도의 현장..


멜로스 연주와비평 이민희 음악평론가 2023년 상반기 리뷰 모음 원문출처: https://blog.naver.com/yeonju_critic 테크닉 그 너머 2023년 2월 17일 다닐 트리포노프 피아노 리사이틀-대전 /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 피아니스트들은 음량, 음길이, 템포, 아티큘레이션 등의 정도를 조절하며 개성을 만들어낸다. 트리포노트는 여기에 하나 더, ‘건반을 누르는 깊이’를 섬세하게 차별화했다. 이를테면 차이콥스키의 안에서 그가 생각하기에 주변적이거나 브릿지처럼 지나가는 악장들은 최대한 얕게, 모음곡의 중심에 위치하는 중요한 악장에서는 릴렉스된 손끝이 피아노의 가장 깊숙한 곳을 타건했다. 그렇게 트리포노프는 개성 없어 보이는 짧은 악장마저도 ‘전체’의 음악을 구축하기 위한 필수적인 도구로 만..


멜로스 연주와 비평 이민희 음악평론가 2022년 리뷰 모음 원문출처: https://blog.naver.com/yeonju_critic 그날 오페라하우스를 꽉 채운 이들은 누구였을까? 2022년 5월 22일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라 보엠 /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아름다운 노래로 대중을 현혹하는 최고의 ‘대중 오페라’다. 특히 극 중 로돌프가 부르는 ‘그대의 찬 손’이나 무제타가 부르는 ‘내가 거리를 걸으면’ 등은 누구나 한번은 들어봤을 법한, 오페라 역사의 최고 히트송 중 하나다. 그래서인지 이날의 해설자는 의 청중을 극히 대중적인 여흥을 ‘가볍게’ 보러 온 이들로 여기는 듯했다. 이미 진행된 극의 줄거리를 요약해주고, 이후 진행될 상황을 미리 설명했기에, 잔뜩 졸다가 그저 ‘주..


온전히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여정 이 글은 정태봉의 음악 세계를 구성하는 일곱 가지의 층위를 추적하고자 한다. 각각의 층위는 엄격한 인과관계를 구축하거나 선형적인 흐름을 형성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 층위들은 하나의 음악이 작곡가 고유의 사회문화적 배경을 거쳐 특유의 사상과 미학으로 발전되고, 이를 바탕으로 고유한 음악 세계가 형성되는 여정을 살핀다. 이를 추적함으로써 작곡가가 그려내고자 했던 그만의 ‘온전히 새로운 세계’를 어렴풋이 엿볼 수 있을 것이다. 1. 전통들 정태봉은 그가 속한 사회문화적 포지션에 의해 두 종류의 전통과 마주해야 했다. 첫째는 그가 음악을 시작하고 나고 자란 모국의 제도권 서양음악 전통이고, 둘째는 유학 생활을 통해 노골적으로 대면해야 했던 서양 속 서양음악 전통이다. 이런 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