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각자의 영역에서 확장해오는 시도들 2024년 1월 27일(토)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크로스 콘체르트 프로젝트’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 음악 분야 선정작으로 “클래식과 재즈의 소통을 통해 새로운 음악을 제시”한다는 포부를 지닌 공연이다. 작곡가 오예승이 예술감독으로 기획 전반을 이끌었으며, 재즈 피아니스트 조윤성이 피아노 연주자 및 작곡가로 활약했다. 이외에도 콘트라베이스 전창민, 드럼 신동진, 일렉기타 오진원, 색소폰 신명섭이 재즈 앙상블로 무대 왼쪽에, 바이올린·비올라·첼로로 구성된 8명의 현악 앙상블이 무대 오른쪽에 배치되어 ‘재즈 vs 클래식’의 구도를 만들었다. 재즈 보컬리스트 박지우가 두 곡의 노래를 불렀고, 바이올리니스트 송정민이 독주자로 무대에 섰다. 전반적으로는 ..


상징을 내세운 추상적인 흐름, 그러나 종착점은 너무도 구체적인 ‘한’과 ‘소녀상 2023년 11월 30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홍석원이 지휘하는 서곡이 연주되며 공연이 시작되었다. 마치 전체 극의 흐름을 복기하듯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선율을 비롯한 다양한 음향 짜임새가 차례로 등장했다. 사실 이번 프로덕션은 연출의 의도가 상당한 수준으로 반영되는 ‘레지테아터’임을 떠올려 볼 때, 충분한 길이를 갖는 서곡에 아무런 연출이 더해지지 않고 ‘막을 내린 채로’ 음악만 나오는 상황이 아이러니했다. 연출가 스테파노 포다는 전반적으로 미장센에 공을 들여 결벽증적으로 완결한 하나하나의 ‘장면’을 긴 호흡으로 만들어냈는데, 그의 작법이 작동하기에 짜임새의 교체가 잦은 서곡이 적절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막이 ..


멜로스 연주와비평 이민희 음악평론가 2023년 하반기 리뷰 모음 원문출처: https://blog.naver.com/yeonju_critic 축소지향적인 연출이 주는 의외의 효과 2023년 8월 17일 2023 예술의전당 토월오페라 〈투란도트〉 /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대형오페라로 익숙한 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무대의 규모와 러닝타임을 줄인 채 공연됐다. 이런 기획은 몇몇 새로운 효과를 이끌어냈는데, 무엇보다도 음향적인 측면에서 격하면서도 자극적인 소리를 들려줬다. 아담한 홀에 60명 이상의 성악가 및 대편성 관현악이 소리를 냄으로써 사실상 터져버릴 것 같은 음향 한 가운데에 관객을 위치시키는 독특한 구도를 창출한 것이다. 때문에 소리의 밸런스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지만, 이런 울림이 극도의 현장..


멜로스 연주와비평 이민희 음악평론가 2023년 상반기 리뷰 모음 원문출처: https://blog.naver.com/yeonju_critic 테크닉 그 너머 2023년 2월 17일 다닐 트리포노프 피아노 리사이틀-대전 /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 피아니스트들은 음량, 음길이, 템포, 아티큘레이션 등의 정도를 조절하며 개성을 만들어낸다. 트리포노트는 여기에 하나 더, ‘건반을 누르는 깊이’를 섬세하게 차별화했다. 이를테면 차이콥스키의 안에서 그가 생각하기에 주변적이거나 브릿지처럼 지나가는 악장들은 최대한 얕게, 모음곡의 중심에 위치하는 중요한 악장에서는 릴렉스된 손끝이 피아노의 가장 깊숙한 곳을 타건했다. 그렇게 트리포노프는 개성 없어 보이는 짧은 악장마저도 ‘전체’의 음악을 구축하기 위한 필수적인 도구로 만..


멜로스 연주와 비평 이민희 음악평론가 2022년 리뷰 모음 원문출처: https://blog.naver.com/yeonju_critic 그날 오페라하우스를 꽉 채운 이들은 누구였을까? 2022년 5월 22일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라 보엠 /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아름다운 노래로 대중을 현혹하는 최고의 ‘대중 오페라’다. 특히 극 중 로돌프가 부르는 ‘그대의 찬 손’이나 무제타가 부르는 ‘내가 거리를 걸으면’ 등은 누구나 한번은 들어봤을 법한, 오페라 역사의 최고 히트송 중 하나다. 그래서인지 이날의 해설자는 의 청중을 극히 대중적인 여흥을 ‘가볍게’ 보러 온 이들로 여기는 듯했다. 이미 진행된 극의 줄거리를 요약해주고, 이후 진행될 상황을 미리 설명했기에, 잔뜩 졸다가 그저 ‘주..


벽 앞의 생, 그리고 생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이들 2023년 9월 6일-2024년 2월 25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작가 정연두의 ‘MMCA 현대차 시리즈 2023: 정연두 백년 여행기’ 전시가 진행되는 가운데 작품 중 하나인 (2023)에 영감을 받아 작곡된 4개의 창작곡이 2023년 10월 4일 및 10월 11일 이 설치된 부스 안에서 초연되었다. 관객을 만난 음악은 각각 비올라, 클라리넷, 첼로, 콘트라베이스 독주를 위한 것으로, 네 곡에 걸쳐 총 40여 분간 공연되었다. 비올라에서부터 콘트라베이스에 이르는 연주 순서는 악기의 음역이 점차 확장되는 느낌을 동반하며 공연 전체를 일관된 느낌으로 이끌었다. 분명 정연두 작가의 은 그 자체로 상당한 아우라를 지니고 있었다. 다만 그 앞에 비올리스트, 클라..


무대 위 추도의 시간 - 오페라 '순이삼촌' 그리고 한국 오페라의 어떤 속성에 관한 고민 은 오페라 특유의 힘으로 4·3사건에 대한 기억과 반성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작품이다. 제주도를 기점으로 모인 각 분야의 제작진과 무대 위 가수와 연기자,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수천의 관객이 모여 거대한 추도의 장을 만들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오페라의 서사는 4·3사건의 주인공을 ‘불특정 다수’에서 ‘특정한 개인’으로 전이시켰고, 개인의 구체적 형상은 소프라노가 부르는 ‘순이삼촌 광란의 아리아’로 실제화되었다. 모든 성취는 이 작품이 제작에서 공연에 이르기까지 수천의 인력을 필요로 하는 ‘오페라’라는 장르였기에 가능했다. 지역의 기억을 외부에 공표하는 도구로서의 오페라 은 제주4·3사건을 다룬 현기영의 동명 중편..


복합 미디어 작품 ‘Juxtaposition of Macro Cosmos’ 2022년 12월 16일(금) ~ 2022년 12월 17일(토) 국립극장 하늘극장 ‘Juxtaposition(병치)’는 작곡가 이현민이 시리즈로 선보이고 있는 ‘Macro Cosmos’의 다섯 번째 작품이다. 작곡가는 병치를 “두 가지 이상의 것을 한 곳에 나란히 두거나 설치하는” 것으로 보고 다양한 미디어를 동시에 제시했을 때 관객이 이를 ‘인식’하는 행위에 집중한다. 50분가량의 공연 전체가 하나의 음악으로서, 원형의 무대 위에는 스크린과 소량의 객석이 설치되었다. 비올리스트 라세원과 세 명의 무용수(최지원, 민경원, 전혜정)가 등장하며, 공간 전체를 활용하는 음향세팅과 조명이 특징적이다. 강렬한 연출로 진행되는 50분 동안의..


1877년 소리를 녹음하고 재생하는 기술이 처음으로 발명됐고 1898년에는 자기magnetic녹음을 활용한 테이프 녹음 기술이, 1927년에는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싱어》가 관객을 만났다. 구체음악Musique concrète이 1940년대에, 전자음악electronic music이 1950년대에 등장했으며, 최초의 랩톱 컴퓨터가 1981년 판매를 시작했다. 그렇다면 2021년은 소리를 기계로 매개하는 핵심적인 기술이 발달한지 150여년, 개인 컴퓨터를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게 된 지 40여년이 더 지난 먼 미래다. 전자음악은 그동안 무엇이 달라졌고, 어떤 것이 지속되고 있는가? 그 안에는 ‘새로운 무언가’가 여전히 있는가? 전자음악은 소리를 만들어내는 ‘기술’과 ‘매개방식’을 전면에 드러내기에, 20..


현대음악은 얼마나 먼가? 그리고 얼마나 또 가까운가? 2021년 11월 27일(토)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음렬주의’라는 말이 너무나 어려운 현대음악을 지칭하는 것 같아 지레 겁을 먹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화음챔버오케스트라가 마련한 ‘미래를 여는 12개의 음: 음렬주의’를 들으며 깨닫게 된 점은 그 반대다. 다양한 현대음악의 사조 중 의외로 명확한 음악적 외형을 갖고 있으며 청취가 수월한 것이 ‘음렬음악’이며, 그렇기에 음렬로 작곡된 몇몇 곡은 충분히 청취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 이날 연주됐던 스트라빈스키와 쇤베르크의 곡은 음고 및 선율을 ‘음렬’로 제한한 상태에서 리듬적인 면을 부각시켰으며, 리스트와 하우어 그리고 장지현의 곡은 음렬이 만들어내는 화성적 색채를 강조했다. 한편 메..


현대음악을 읽는 새로운 관점과 방식들 2021년 6월 29일(화)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작곡가 락헨만과 리게티는 ‘현대음악’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함께 서술되지만, 이 둘의 양식적 차이는 힙합과 그레고리안 성가 만큼이나 멀다. 또한 현대음악은 조성음악과 달리 청취의 즐거움이 한정적이며, 그 안에는 수십 가지의 미학과 작곡방식이 혼재한다. 따라서 ‘현대음악’과 가장 어울리는 단어로 ‘렉처’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화음챔버오케스트라가 2년에 걸쳐 시리즈로 진행하고 있는 ‘현대음악 렉처 콘서트’가 꾸준히 관객을 모으며 성황리에 진행 중인 이유 중 하나다 이날 공연된 렉처 콘서트 V의 주제는 ‘세상의 모든 소리: 소음과 음향’이었다. 특히 이날 공연은 총 7회에 걸쳐 진행될 렉처 콘서트 전체의 의의를 상기시..


음악으로 경험하는 순교의 길 2021년 11월 20일(토) ~ 2021년 11월 21일(일)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수많은 관객이 어두운 극장에 앉아 천주교인의 죽음을 숨죽여 바라보는 행위는 극히 제의적이다. 특히 일반적인 서사구조와는 다른 형태로 배열된 최양업 신부의 일대기, 그리고 바르바라를 비롯한 순교자의 박해사를 그린 줄거리는 관객에게 꽤 직접적으로 종교적인 층위의 감동을 준다. 해설자가 등장해 역사적인 배경이나 장면의 전환을 상세히 설명해준다는 점, 계단식 구조물 단 한 개가 장면마다 그 노출면을 달리하며 반복되는 배경이 된다는 점 역시 이 작품을 일반적인 오페라보다는 종교적인 오페라 내지는 오라토리오에 더 가깝게 만든다. 하지만 이 작품이 기존의 오페라와 다른 이유는 서사나 해설자의 존재, 연..


2021년 12월 13일 한남동 일신홀에서 박정은(1986~)의 두 번째 개인 작곡발표회가 열렸다. 독주에서 오중주까지 악기 편성이 다양했고, 총 다섯 곡 중 세 곡이 초연이었다. 각각의 곡마다 중점적으로 쓰인 주요 아이디어나 연주기법 등이 달랐지만, 몇몇 곡을 교차하며 나타나는 작곡가 특유의 음악 어법이 비교적 또렷했다. 특히 피아노 독주곡과 타악기 독주곡이 연주자의 비르투오소한 면모를 부각시킨다는 점에서 하나의 그룹으로 인식됐고, 삼중주는 음향이 회화적으로 전개된다는 점에서, 사중주와 오중주는 펄스를 중심으로 음향 블록이 나열된다는 점에서 또 다른 그룹으로 묶일 수 있었다. 이외에도 오래된 테크놀로지를 무대 위에 등장시킨다는 점, 일상적이면서도 재기발랄한 물건을 활용해 특수주법이나 프리페어드를 시도한..


분열된 자아를 가진 동시대인의 초상 2021년 11월 12일(금)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무대 위에 한 명이 등장해 극을 이끌어가는 ‘모노드라마’는 음악이나 시, 연극 등이 다채롭게 융합된 무대예술 안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런 유형의 작품 중 유명한 것으로 1930년 코메디 프랑세즈에서 초연된 장 콕토(Jean Cocteau)의 연극 (La Voix Humaine)를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한 여자가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에게 전화를 거는 내용으로, 신경질적이고도 복잡한 주인공의 마음이 그리움과 분노, 그리고 체념을 넘나들며 격렬하게 전개된다. 이 모노드라마에 풀랑크(F. Poulenc)가 1958년 음악을 붙인 모노오페라 는 콕토의 원작과 동일하게 진행하되, 단 한 명의 소프라노를 오..


지금, 여기의 새로운 음악경험 2021년 10월 28일(목)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2021 서울국제음악제는 코로나 19로 얼룩졌던 긴 시간을 지나, 이제는 다시 약동하고자 하는 음악계의 의지를 보여주는 듯 했다. 특히 ‘신비로운 놀이동산’이라는 타이틀로 열렸던 28일의 실내악 공연에서는 브람스(J. Brahms)와 드뷔시(C. Debussy)의 작품에 대한 재해석과 함께 남상봉 작곡가의 ‘플루트, 클라리넷, 바이올린, 첼로, 타악기, 피아노를 위한 기묘한 놀이공원’이 위촉‧초연되었다. 익숙한 곡에서는 참신한 경험을, 신작을 통해서는 동시대의 현실을 성찰하게 만든 레퍼토리로서, 지금‧여기에서 행해질 수 있는 새로운 음악경험을 관객에게 선사했다는 점에서 값진 시간이었다. 새롭게 다가온 브람스와 드뷔시 브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