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처 콘서트 시리즈 VII ‘미래를 여는 12개의 음: 음렬주의’ 리뷰

2023. 8. 24. 14:05

현대음악은 얼마나 먼가? 그리고 얼마나 또 가까운가?

2021년 11월 27일(토)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음렬주의’라는 말이 너무나 어려운 현대음악을 지칭하는 것 같아 지레 겁을 먹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화음챔버오케스트라가 마련한 ‘미래를 여는 12개의 음: 음렬주의’를 들으며 깨닫게 된 점은 그 반대다. 다양한 현대음악의 사조 중 의외로 명확한 음악적 외형을 갖고 있으며 청취가 수월한 것이 ‘음렬음악’이며, 그렇기에 음렬로 작곡된 몇몇 곡은 충분히 청취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

이날 연주됐던 스트라빈스키와 쇤베르크의 곡은 음고 및 선율을 ‘음렬’로 제한한 상태에서 리듬적인 면을 부각시켰으며, 리스트와 하우어 그리고 장지현의 곡은 음렬이 만들어내는 화성적 색채를 강조했다. 한편 메시앙의 작품은 제한된 음고를 사용하면서도 리듬적‧작곡기법적으로 흥미로운 작업을 보여줬는데, 결과적으로는 정지된 시간 위에서 생동하는 리듬과 고정된 화음으로 구성된, 예컨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비밥재즈와 유사한 정취를 느끼게 했다.

무엇보다도 음렬을 재료로 한 곡이 음악회 내내 그다지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이는 음악사 안에 화석처럼 굳어져 있던 다양한 악곡을 음악회장으로 끄집어내고 연주자의 숙련된 손길을 불어넣음으로써 가능했던 감상으로, 화음챔버오케스트라가 장장 7회에 걸쳐 진행했던 현대음악 렉처 콘서트 시리즈 전체의 효용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결정적 순간이었다.

리듬과 성부진행을 부각시키는 열두 개의 음

스트라빈스키(I. Stravinsky)의 <7중주>(Septet, 1952-53)는 명확한 리듬의 윤곽 및 리듬적 대위법이 인상적인 곡이었다. 푸가를 암시하는 주제선율이 그 선율의 머리 부분에 특징적인 리듬형을 포함하고 있었고, 이로 인해 모방점(point of imitation)은 물론 성부 진행이 돋보였던 점도 흥미로웠다. 또한 두 번째 악장은 ‘파사칼리아’ 그리고 세 번째 악장은 ‘지그’라는 부제가 붙어있었는데, 이처럼 춤 모음곡을 연상시키는 구성을 통해 ‘리듬’이라는 요소를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처럼 리듬, 또 리듬을 부각시키는 <7중주>가 음렬을 활용해서 작곡됐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아마도 스트라빈스키에게 있어 음렬이란 그의 리듬적 작법과 기타 형식적 아이디어를 뚜렷하게 보여주기 위한 배경 혹은 재료일 뿐으로, 오히려 음렬을 사용함으로써 곡 안에서 음고를 제외한 모든 요소가 강조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이러니하지만 이런 방식의 음렬 사용은 쇤베르크 이후 많은 작곡가들에게 일반화된 것으로, 열두 음을 전부 분리시키는데 목적을 둔다기보다는 음렬이라는 도구를 활용해 그 이외의 음악요소를 더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곡을 전개한다. 다만 이날 연주에서는 현악기와는 조금 다른 호흡으로 움직였던 관악기들, 특히 혼의 표현이 아쉬운 부분이 있었으며, 민첩하게 움직이는 다성부의 리듬이 모두 날카롭게 청취되지는 않았다.

쇤베르크(A. Schönberg)의 7개의 악기를 위한 <모음곡>(Suite for Septep Op.29, 1925) 역시 단지 음악의 재료를 음렬로 사용했다는 점보다는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이 리듬적 생동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특히 이날 공연에서는 <모음곡>의 3악장 ‘주제와 변주’ 그리고 4악장 ‘지그’가 연주됐는데, 두 악장 모두 반복되는 리듬이 특징적이었다. 다만 이날 연주에서 빠른 팔분음표의 나열을 다양한 악기의 앙상블로 명확하게 청취하는 것, 리듬적 드라이브를 느끼거나 미묘한 변박의 순간 등을 강렬하게 경험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화성의 색채를 음미하게 하는 열두 개의 음

리스트(F. Liszt)의 <파우스트 교향곡>(1854/57–61/80) 도입부에는 현악기 그리고 관악기로 연주하는 증3화음이 등장한다. 일반적으로 도, 미, 솔이 모여 부드러운 음색을 만든다면, 도, 미, 솔#이 함께 소리남으로써 조성음악에서는 듣기 힘든 낯선 울림을 들려준다. 이날 ‘음렬주의’를 논하는 렉처 콘서트 안에 리스트의 <파우스트 교향곡>이 포함된 것은 이러한 증3화음을 연이어 네 개를 모아 열두 반음을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도부터 시작하는 증3화음, 도#부터 시작하는 증3화음, 그리고 이런 식으로 레부터, 레#부터 증3화음을 쌓아올려 이것을 모두 모으면 열두 반음이 만들어진다.

다만 이날 청취한 <파우스트 교향곡>은 장3도 간격을 가진 선율을 수평으로 쭉 펼쳐 아주 느리게 들려주었기 때문에 음렬음악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느껴지지 않았다. 또한 ‘도’를 기준으로 듣기 싫은 울림을 내는 솔#이 종종 ‘라’를 거쳐 등장함으로써 증5도가 아닌 단6도와 같이 들리는 구간이 많았기에 전반적으로는 소리가 보다 부드럽게 청취됐다. 특히 이날 연주된 목관악기의 마지막 패시지는 ‘파미-레b도-라라b’로 하행하는 선율을 들려줬는데, 이는 온음계(diatonic scale)와는 전혀 다른 유형의 옥타토닉 음계다. 이는 이날 연주됐던 쇤베르크 보다는 오히려 스트라빈스키의 작품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 기존의 온음계나 반음계와는 구분되는 새로운 음계의 활용 방법을 ‘균등분할’ 안에서 제시한다.

결과적으로 리스트의 작품은 단6도인 듯 증3화음인 듯 애매모호한 흐름 안에서 아주 느린 화성리듬을 들려줬는데, 그래서인지 작품 전반은 안개에 쌓인 듯 어디로도 흐르지 않고 뿌옇게 정체된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이러한 인상은 이날 연주됐던 하우어(J. M. Hauer)의 <12음 유희>(Zwölftonspiel, 1957)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후기 낭만주의 음악의 예민하고도 날카로운 느낌과는 다른 뭉툭하면서도 애매모호한 뉘앙스를 갖는 화성이 긴 시간 지속됐고, 이런 가운데 3화음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쌓아올려진 음들이 만드는 수직적인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 이를 듣는 누군가는 우울하고 고독한, 그리고 멀미에 시달리는 듯한 알 수 없는 감정적 동요를 느낄 법했다.

이날 초연된 장지현의 화음프로젝트 Op. 218 <밤과 낮>(2021, 공모당선작 초연) 역시 음렬이 만들어내는 화성적 속성을 ‘밤’이나 ‘낮’과 같은 추상적인 개념을 형상화하는 음향적 재료로 사용했다. 이 작품도 시간적으로는 계속해서 정지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으며, 중간 중간 플루트, 첼로 등의 독주 패시지가 홀로 고군분투하는 가운데 현악기 투티가 풍성한 수직적 화성을 만들었다. 특히 독립적으로 청취되는 단선율은 온음계적인 선율 윤곽 및 4도 등을 들려줌으로써 우리가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음렬음악의 날카롭고 어두운 울림을 피해갔다. 다수의 악기가 등장하는 풍성한 음향과 목관악기 등이 독주자로 활약하는 단출한 음향이 교대로 등장한 탓에, 작품 전체는 ‘합주 그룹’과 ‘독주자 그룹’으로 구성된 콘체르토 그로소처럼 들리기도 했다. 또한 작품 안에 음렬이 등장한다 하더라도 짧은 프레이즈 단위로 음악이 자주 반복됐기에 ‘반복이 없이 늘 새로운 음이 등장하는’ 음렬음악에 대한 일반적인 인상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런 가운데 느리게 흘러나오는 음렬을 다수의 악기가 반주하는 듯한 부분도 눈에 띄었다.

이러한 흐름은 ‘밤과 낮’이라는 추상적 대상에 대한 음악적 상념을 독립된 여러 개의 음향으로 차례로 나열하는데 유용해 보였다. 하지만 조성적 구심점이나 거시적인 맥락에서의 클라이맥스가 희미했던 탓에, 작품은 어떠한 형상을 표현하며 나아간다기보다는 동일한 시간 안을 맴도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동시에 작곡가가 의도했던 화성을 통한 “긴장과 이완” 효과 역시 그다지 크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대신 분리된 장면을 전개하다가 중단하고, 또 전개하다가 중단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4도의 움직임을 포함한 채 한껏 장식을 덧붙여 등장하는 단선율은 전통음악 특유의 진행을 연상시키기도 했는데, 이런 모든 장치가 합해져 애매모호하면서도 그 너머를 알기 힘든, 안개가 낀 듯한 독특한 음향적 풍경을 그려냈다.

세련된 비밥재즈 같았던 메시앙

메시앙(O. Messiaen)은 <음가와 강세의 모드>(Mode de valeurs et d’intensites)에서 하나의 음을 구성하는 다양한 파라미터를 모두 분리해내고 그것에 단계를 부여했다. 마치 물체에 서려있는 특성을 현미경으로 살펴보고 그 피복을 하나하나 벗기는 것처럼, 음 하나를 구성하는 음의 세기, 지속시간, 음색 등 다양한 요소를 독립시킨 것이다. 다만 이 작품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분리된 파라미터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조합됐는데, 어떤 저음은 포르테로 스타카토를 동반하고, 또 어떤 고음은 여린 소리로 일정한 길이로 지속되는 식이다. 이 작품은 작곡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어 버린 쇤베르크의 음렬음악처럼 커다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으며, 그의 제자인 슈톡하우젠(K. Stockhausen) 등을 거치며 총음렬 음악의 기초가 되었다.

하지만 메시앙이 화두로 던졌던 파라미터의 분리는 이후 전자음악 등이 일반화된 바람에 극히 보편화된 음의 조작 방식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21세기에 청취하는 메시앙의 <음가와 강세의 모드>는 작곡당시에 주목을 받았던 ‘파라미터’에 대한 집중보다는 좀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가 있어 보였다. 이런 생각은 이날 연주자였던 피아니스트 윤혜성의 해석을 들으며 명확해졌는데, <음가와 강세의 모드>가 ‘이성적인 실험’이 아닌, 20세기 후반 유명한 재즈클럽에서 들을 법한 ‘비밥재즈’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특정한 음이 항상 동일한 길이의 강세 및 음색으로 등장한다는 점은 돌고 도는 형태의 무한한 시간에 갇힌, 그리고 단일한 화음의 거대한 울림 위에서 맴도는 재즈를 연상시켰다. 특히 윤혜성은 고음에서 등장하는 몇몇 음의 뭉치, 그리고 저음에서 반복하는 강한 타격 등을 일종의 음악적 모티브의 출현처럼 처리했고, 그것이 다시 나올 때마다 마치 기다려왔던 소리가 드디어 등장한 것과 같은 ‘기대’와 ‘충족’의 심리를 이끌어냈다. 무엇보다도 해당 작품을 기술적으로 막힘없이 ‘프레이징을 포함하여’ 완전하게 음악적으로 표현한 것은 청중이 재즈적 환상을 느끼는데 결정적이었다. 이 작품의 연주는 수많은 현대음악이 청취의 즐거움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며, 대중음악과 의외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심지어 그 둘이 ‘가깝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기억에 남는다. (글 이민희/음악평론가) 

2022년 1월, 2021 화음프로젝트 아카데미, 화음챔버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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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화음프로젝트 아카데미 : 현대음악 렉처콘서트 시리즈 Ⅶ] 미래를 여는 12개의 음: 음렬주의

[2021 화음프로젝트 아카데미 : 현대음악 렉처콘서트 시리즈 Ⅶ] 미래를 여는 12개의 음: 음렬주의 이민희 / 2022-01-19 / HIT : 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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