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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특정 계층이나 인종·성별의 ‘정체성’을 대변하는가? 정말로 서양의 클래식 음악은 스몰(C. Small)의 주장처럼 “중산층 시민 계층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찬미하는 제의”일까? 백인종(種)의 특별한 의식이 바로 ‘클래식 음악회’라는 스몰의 주장은, 현대식의 멋진 건물과 매끈한 로비를 갖춘 음악회장에 단 한명의 흑인 연주자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품게 만든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클래식 음악의 역사에서 흑인 연주자는 어디에 있었고 왜 그들은 보이지 않았는가? 흑인이 만들어내는 음악은 그들이 ’black’이었기 때문에 어떠한 부가적인 의미를 창출했는가? 그렇다면 지금 바로 여기, 아시아-서울의 한 콘서트홀에서 랜들 구스비의 연주를 바라보는 행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무대 위의 검은 연주자들..


작품세계 화려하고 강렬한 표면, 깊고 어스름한 내면 작곡가 박정은(1986-)의 작품은 강렬한 추동력을 가지고 화려하게 흐르는 독특한 사운드가 특징으로서, 현재 한국의 젊은 작곡가 중에서도 손꼽히는 아방가르드 음향의 직조자다. 이런 음악세계는 그녀가 좋아하는 바슐라르(G. Bachelard, 1884-1962)의 표현, 즉 “젊고 생기발랄한 처녀”처럼 에너지를 뿜어내는 살아서 질주하는 생명체를 연상시킨다. 따라서 그의 음악을 처음 접한 많은 이들은 강렬하고 화려한 총천연의 사운드에 압도당하는 경험을 한다. 다만 박정은의 음악세계는 아직 젊고 뜨거운 작곡가의 현재와 그 성향을 반영하고 있기에, 미래의 음악이 어떻게 변모할지는 짐작하기 어려우며, 그리고 여기까지 오는 작곡의 여정 또한 현재와 완전히 같지는 ..


플루트와 현악기를 위한 다섯 개의 에피그램Five Epigrams for Flute and Strings 윤혜리 Fl. Nicholas Kitchen Vn. 김다미 Vn. 이한나 Va. Yeesun Kim Vc. 에피그램은 인류가 남긴 가장 오래된 문학 장르 중 하나로, 돌에 새겨진 짧고 간결한 형태의 글귀를 의미한다. 로마시대 카툴루스(Catulle)와 마르티알리스(Martial)의 라틴어 시들이, 그리고 시대를 건너 프랑스의 볼테르(Voltaire)와 보를레르(Baudelaire)의 독특한 시들이 에피그램으로 불린다. 이 안에서 에피그램이란 촌철살인의 내용을 담고 있는 풍자적인 성격의, 그리고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무게감을 갖는 글귀로 간주되었으며, 압축적이며 명확한 구도를 띈, 특히 사람들에게 신선한..


스트라빈스키 I. Stravinsky (1882-1971) Symphonies of Wind Instruments (1947 Version) 은 스트라빈스키가 드뷔시를 추모하기 위해 작곡한 7개의 코랄 중 한 곡을 관악기 편성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이에 작곡가는 이 곡이 ‘동종의 악기들의 서로 다른 모임에서 이뤄지는, 짧은 연도(Litaniae)로 풀어가는 엄숙한 의식’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흥미로운 점은 작품 명에 등장하는 ‘교향곡’이라는 단어가 종래의 ‘교향곡 형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작품에서만큼은 ‘교향곡’이라는 단어가 그 본래의 어원, 즉 다양한 음향과 악기가 어울린다는, 즉 ‘같이 소리난다’는 뜻에 가깝다. 이 때문인지 음악학자 폴 그리피스는 “매우 다른 종류의 음악끼리 되..


은 총 3막으로 이뤄진 오페라다. 여동생 그레텔, 모래요정, 이슬요정은 소프라노, 그레텔의 오빠인 헨젤과 어머니는 메조소프라노, 마녀는 테너, 아버지는 바리톤 배역이며, 열네 명의 천사와 어린이들이 춤을 추고 합창을 한다. 오페라 안에는 일반적인 의미의 아리아와 레치타티보가 존재하지 않으며, 몇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모든 노래와 대사가 연결되어 흐른다. 이러한 음악적 구성은 바그너의 음악극을 연상시킨다. 후기 낭만주의의 관현악적 색채가 농후하며 다양한 동기의 복합적이고 발전적인 진행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 바그너의 음악에 비해 훨씬 더 부드럽고 조화로운 화음을 사용한다. 리듬이 단순하며 누구나 흥얼거려본 구전 동요를 등장시키는 것도 눈에 띈다. 특히 이런 선율들은 작품 전체의 음악적 뼈대를 구성하..


드뷔시 작품을 바라보는 쇤베르크의 시선 쇤베르크가 편곡한 드뷔시의 (Prélude à l'après-midi d'un faune, C. Debussy / A. Schoenberg) 1894년 지휘자 도레(Gustave Doret)와 플루티스트 베레레(Georges Barrère)의 연주로 드뷔시(Claude Debussy, 1862-1918)의 이 초연됐다. 이 작품은 상징주의 시인 말라르메의 시를 음악적으로 표현한다. 작품 안에는 음색이 화성 못지않은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며 대칭을 기초로 음계를 운용해 악명 높은 증4도를 아름답게 들려준다. 이후 유럽은 드뷔시 열병에 빠졌고 많은 작곡가들이 드뷔시 양식을 모방해 음화(音畫)를 그리고자 노력했다. 드뷔시의 인기는 1918년 비엔나에서 창립된 ‘사적인 음악..


쿠르탁 (György Kurtág, 1926-) 헝가리의 현대 음악 작곡가로는 첫 번째로 바르톡(Béla Bartók, 1881-1945)이 두 번째로는 리게티(György Ligeti, 1923-2006)가 떠오른다. 이들 앞에서 죄르지 쿠르탁(György Kurtág, 1926-)이라는 이름은 다소 낯설다. 하지만 쿠르탁은 냉전시대의 헝가리에 남아 긴 시간을 보내고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유일한 헝가리 작곡가다. 쿠르탁은 그의 조국에서 서구와 거리를 둔 채 홀로 작업했고 압축적이고 간결한 그만의 스타일을 발전시켰으며 전통에 기반을 둔 다양한 작업들을 행했다. 쿠르탁은 트란실베니아 지방에서 태어났으며 1946-55년까지 리스트 음악원(Franz Liszt Academy of Music)에서 수학하며 베..


스벤-다비드 샌드스트롬 (Sven-David Sandström) 현대음악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여전히 1908년 즈음에 머물러 있다. 쇤베르크가 현악 4중주 2번 마지막 악장에서 “나는 다른 혹성의 대기를 느낀다”는 문구를 등장시켰을 때다. 대중은 왜 현대음악 작곡가들이 듣기 어려운 곡을 계속해서 만드는지, 왜 현대음악은 사람을 감정적으로 끌어당기지 않는지 궁금해 한다. 설상가상으로, 현대음악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대중음악에 비해 점차 그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다. 어느 순간 대중이 바라보는 현대음악이란 복잡하고 난해한 특정 타입으로 ‘응고’되어 버린 것 같다. 그래서 작곡가 ‘샌드스트롬’(Sven-David Sanström b.1942)은 중요하다. 그는 대중이 가진 현대음악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융해..


30대 초반의 모차르트와 40대 초반의 강준일. 가장 열정적으로 작품을 쏟아내던 시기, 작곡가 최상의 창작력을 간직한 작품들이 오늘 음악회에서 함께 연주된다. 이를테면 1부에 연주될 《교향곡 41번 주피터》(1788)는 모차르트의 마지막 교향곡이면서 가장 최고의 곡으로, 이 시기의 모차르트는 그간의 모든 음악어법을 통합해 새로운 경지를 만들어냈다. 한편 2부에 연주될 강준일의 사물놀이를 위한 협주곡 《마당》(1983)은 작곡가가 대중적으로 데뷔한 곡임과 동시에 작곡가의 가능성과 미래를 보여준 곡이다. 강준일은 이 곡을 기점으로 수많은 후속작을 쏟아냈으며 이 곡은 그가 앞으로 행하게 될 ‘국악과 서양음악’ 융합의 기폭제가 되는 작품이다. 올 봄 작곡가 강준일은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오늘 음악회는 강준일의..


루드비히 판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 서곡 Die Geschöpfe des Prometheus Overture in C Major Op. 43 청년 베토벤에게 성공을 안겨준 발레곡 19세기 초 이탈리아 출신의 살바토레 비가노(Salvatore Viganò 1769-1821)는 후에 니진스키와 비견될 정도의 실력을 갖춘 최고의 무용수였다. 그는 1800년 마리아 테레지아 황후(Empress Maria Theresa)에 경의를 표하고자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전설에 기반을 둔 새로운 발레 시나리오를 만들게 된다. 그 당시 베토벤은 《7중주》(Op.20, 1800)를 마리아 테레지아 황후에게 헌정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 새로운 발레곡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