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누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

2015. 8. 9. 01:13

30대 초반의 모차르트와 40대 초반의 강준일. 가장 열정적으로 작품을 쏟아내던 시기, 작곡가 최상의 창작력을 간직한 작품들이 오늘 음악회에서 함께 연주된다. 이를테면 1부에 연주될 교향곡 41번 주피터(1788)는 모차르트의 마지막 교향곡이면서 가장 최고의 곡으로, 이 시기의 모차르트는 그간의 모든 음악어법을 통합해 새로운 경지를 만들어냈다. 한편 2부에 연주될 강준일의 사물놀이를 위한 협주곡 마당(1983)은 작곡가가 대중적으로 데뷔한 곡임과 동시에 작곡가의 가능성과 미래를 보여준 곡이다. 강준일은 이 곡을 기점으로 수많은 후속작을 쏟아냈으며 이 곡은 그가 앞으로 행하게 될 국악과 서양음악융합의 기폭제가 되는 작품이다.

올 봄 작곡가 강준일은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오늘 음악회는 강준일의 죽음 앞에 말년의 모차르트와 젊은 강준일이 교차하는 시간이다. 아마도 이 음악회는 강준일의 음악이 영원으로 향하는 여정 중 하나일 것이다. 모차르트의 음악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영원하듯, 강준일의 음악도 이와 같은 연주회를 통해 대중의 기억 속에 서서히 안착할 것이다.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많은 음악학자들은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의 말년을 비극적인 시기로 그린다. 모차르트는 말년에 금전적 어려움에 시달렸으며, 무리한 위촉 작업을 통해 건강을 해쳤다. 그즈음의 모차르트 음악은 반음계가 많으며, 동시대의 다른 작곡가에 비해 어려운 느낌을 준다. 모차르트 음악의 변화는 현재의 관점에서는 음악어법이 성숙해져 가는 과정으로 이해되지만, 모차르트 시대의 청중은 모차르트의 음악을 외면했다.

놀라운 것은 그의 후기 작품들이 말년의 개인적 고통과는 무관하게 완벽한 경지에 다다른 아름다움을 내보인다는 점이다. 아마도 모차르트가 구사하던 고전주의작곡어법이 작곡가의 개인적 감정이나 주관을 곡 안에 투영하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말년의 모차르트 음악 속 음표들은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움직이며 완전한 조화와 균형을 만들어나간다. 오늘 연주될 곡도 마찬가지다.

 

오페라 티토의 자비서곡 (La Clemenza Di Tito K.621 Overture, 1791)

오페라 티토의 자비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즉위한 레오폴트 2세의 대관식을 위해 위촉된 곡이다. 이 작품은 모차르트 36년 생의 마지막 해인 1791년 작곡됐고, 그가 죽기 전 가장 마지막에 착수한 오페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성공하지 못했다. 여황제는 이 작품을 두고 맛없는 독일요리’(una porcheria tedesca)에 비유했으며 대중들은 이 작품을 좋아하지 않았다. 메타스타지오(Pietro Metastasio, 1698~1782)가 오래 전에 만든 딱딱하고 틀에 박힌 스토리는 당대의 청중을 움직일 수 없었다. 오늘 연주될 오페라 서곡은 오페라 전체에서 유일하게 낡은 스토리의 영향력이 작용하지 않은 부분이다. 아마도 모차르트는 가사가 등장하지 않는 서곡을 쓰며 그의 원숙한 음악 어법을 그대로 드러내는 기쁨을 느꼈을 것이다.

 

교향곡 41번 주피터(Symphony No.41 “Jupiter” in C Major K.551, 1788)

교향곡 41번 주피터를 들은 모차르트의 동시대 청중들은 분명 이 작품을 난해하게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이 작품을 들으며 모차르트 최상의 테크닉들을 인지할 수 있다. 선율에 포함된 반음계는 이 음악을 무척 표현적으로 들리게 하며, 급작스럽게 바뀌거나 독특한 상태로 변하는 조성, 한 곡 안에 등장하는 다양한 성격의 주제에서는 모차르트 특유의 창조성이 엿보인다. 2악장에 등장하는 목관악기의 운용도 눈여겨 볼만하다. 4악장의 대위법은 모차르트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것으로 간주되며, 다른 그 어떤 작곡가에 의해서도 만들어질 수 없는 독창적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대위법의 극치는 곡이 마무리되는 최종 코다에서 발견된다. 후에 잘로몬(Johann Peter Salomon)은 이 곡에 주피터라는 부제를 붙였는데, 아마도 이 곡이 보여주는 고도의 작곡기업과 원숙미 그리고 아름다움을 신의 영역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의도였을 것이다.

 

강준일 (1944~2015)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작곡가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고민해보았을 법한 문제들이 있다. ‘국악과서양음악의 조화를 어떻게 행할 것인가? ‘국악의 세계화란 무엇을 말하는가? ‘한국 작곡가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등이다. 작곡가 강준일은 이 문제에 대해 생애 전반에 걸쳐 다양한 방법론을 시도했고 비슷한 문제를 고민하는 동시대 젊은 작곡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늘 전통음악의 미래와 동시대 한국 작곡가들이 나가야 할 방향을 고민했고 전통음악과 서양음악의 접목을 시도했다.

그가 행한 음악적 시도는 단순히 전통음악의 외면을 흉내 내는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특이하게도 젊은 시절에 국악계의 원로들과 일한 적이 있었고, 이 경험을 되살려 한국의 전통을 능숙하게 서양 어법과 함께 융합했다. 그의 활동은 미학적인 고민과 음악의 본질에 대한 탐구와도 이어져 있다. 이런 측면은 그가 제3세대 작곡 동인으로 활동했고 서울음악학회를 45년간 이끌었으며 한국민족음악인협회의 이사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객원교수로 활동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사물놀이를 위한 협주곡 마당(1983)

사물놀이를 위한 협주곡 마당1980년대에는 아직 낯설었던 국악기와 서양악기의 협연을 가시화하고, 이를 통해 국악 작곡의 나아갈 방향을 효과적으로 제시한 곡이다. 이후 난타등 타악기 위주의 국악기에 대한 재발견이 붐을 이뤘고, 이 작품은 국제적으로 널리 퍼진 사물놀이열풍을 뒷받침하는 대편성 레퍼토리로 자리 잡는다. 이 곡은 1983222일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범세대 연주회에서 김덕수 · 최종실 · 이광수 · 김용배로 이뤄진 4인의 사물놀이패와 함께 초연됐고, 그 이후 각종 예술제, 월드컵, 광복절, 국제 행사 등에서 널리 연주됐다. 초연 때부터 이 곡은 대중의 열광적인 호응을 이끌어 냈으며 1995108일 광복 50주년과 유엔 창설 50주년을 맞아 뉴욕 유엔본부 총회장에서 개최되었던 특별 연주회에서 그 영향력을 과시한 바 있다. 광복 70주년을 맞은 올해에도 이 곡은 어김없이 다양한 공식 행사에서 연주될 예정이다.

이 작품은 서양 고전 협주곡처럼 3악장 구조로 되어 있다. 1악장은 호남 농악의 변화무쌍한 리듬, 2악장은 농악과 민요선율, 3악장은 경상도 농악의 경쾌한 리듬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작품 안에는 사물놀이의 리듬을 오케스트라가 뒷받침하여 음향적으로 압도하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타악기 특유의 불협화를 오케스트라의 독특한 음향과 결합시키고 특색 있는 선율을 도출해 내는 부분, 타악기 앙상블의 연주가 꽤 길게 이어지고 이것을 오케스트라가 받아 클라이맥스를 완성하는 부분 등이 등장한다. 또한 사물놀이에서 두 대의 꽹과리가 소리를 주고받는 것을 모방하듯 사물놀이와 오케스트라가 주고받는 부분도 있다.

주목할 점은 사물놀이를 들을 때 느껴지는 리듬적 긴장감이, 전혀 다른 매체인 오케스트라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음향으로 구현되는 지점이다. ‘리듬만 존재하는 음악을 듣고 상상할 수 있는 화성이나 선율이란 무엇일까? 강준일은 사물놀이에 흐르는 힘의 움직임을 대편성의 오케스트라로 효과적으로 펼쳐 보인다. 곡에서는 1980년대 급부상했던 민족음악담론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이 느껴진다

 

<크누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 2015년 8월 18일 (2015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