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탁, 티엔수

2016. 8. 29. 20:08

쿠르탁 (György Kurtág, 1926-)

 

헝가리의 현대 음악 작곡가로는 첫 번째로 바르톡(Béla Bartók, 1881-1945)이 두 번째로는 리게티(György Ligeti, 1923-2006)가 떠오른다. 이들 앞에서 죄르지 쿠르탁(György Kurtág, 1926-)이라는 이름은 다소 낯설다. 하지만 쿠르탁은 냉전시대의 헝가리에 남아 긴 시간을 보내고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유일한 헝가리 작곡가다. 쿠르탁은 그의 조국에서 서구와 거리를 둔 채 홀로 작업했고 압축적이고 간결한 그만의 스타일을 발전시켰으며 전통에 기반을 둔 다양한 작업들을 행했다.

쿠르탁은 트란실베니아 지방에서 태어났으며 1946-55년까지 리스트 음악원(Franz Liszt Academy of Music)에서 수학하며 베레즈(Sándor Veress, 1907-1992)와 파르카스(Ferenc Farkas, 1905-2000)에게 작곡을 배웠다. 당시 헝가리는 정치적인 상황 때문에 동시대의 현대음악에 관한 정보를 얻기가 어려웠기에 쿠르탁은 이런 환경 안에서 바흐나 베토벤 등의 고전에 심취하게 된다. 헝가리 출신 작곡가인 바르톡의 영향도 많이 받게 되는데, 이 시기에 작곡한 <피아노 모음곡>(Suite for four-hand piano, 1950-1951)은 바르톡의 영향이 드러나는 대표적인 곡이다. 졸업 즈음에는 <한국 칸타타>(Koreanische kantate, 1952/53)<비올라 협주곡>(konzert fur bratsche und orchester, 1953/43) 등을 작곡한다. 특히 전자는 쿠르탁이 처해있던 사회문화적 배경을 잘 보여준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후에 그의 작품번호에서 제외되었다.

쿠르탁이 음악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과정에서 1957년 떠난 1년간의 파리유학은 상당히 중요하다. 쿠르탁은 파리음악원에서 미요(Darius Milhaud, 1892-1974)와 메시앙(Olivier Messiaen, 1908-1992)의 클래스에 참가하고 베베른(Anton von Webern, 1883-1945)의 음악을 접하며 동시대의 새로운 음악에 대한 갈증을 풀게 된다. 일련의 과정에서 헝가리에서부터 알고 지내던 리게티가 많은 도움을 준다. 리게티는 쿠르탁을 쾰른 서부독일방송국(WDR)의 전자음악 스튜디오에 방문하게 해주고 자신의 전자음악 작품 <아티큘레이션>(Artikulation, 1958)을 들려주었으며 슈톡하우젠(Karlheinz Stockhausen, 1928-2007)<그루펜>(Gruppen, 1957) 등을 접할 수 있게 해 준다. 또한 이 시기 만났던 헝가리 출신의 심리학자 마리안느 슈타인(Marianne Stein)도 쿠르탁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녀가 쿠르탁에게 했던 조언은 쿠르탁에 의해 음악 내적인 아이디어로 발전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1958년 부다페스트로 돌아온 쿠르탁은 <현악 4중주 1Op.1>(String Quartet No.1 op.1, 1959)을 작곡한다. 그는 이 곡에 작품번호 ‘1’을 부여하고 이 작품에서부터 그의 작곡 여정이 새롭게 시작함을 선포하게 된다. 이 곡 안에는 베베른과 바르톡의 영향이 두드러지는데 이런 특징은 앞으로 이어지는 그의 다양한 작업에서도 지속적으로 발견되는 것이다. 쿠르탁은 1963년까지 작은 규모의 기악 작품 4개를 작곡하고 이어지는 5년 동안은 소프라노와 피아노를 위한 콘체르토 <보르네밋사의 말>(The Sayings of P. Bornemisza op.7c, 19638)에 몰두한다. 이 작품은 쿠르탁의 음악세계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성악 작품 카테고리의 첫 작품이다. 쿠르탁은 이 즈음 바르톡 음악원의 음악코치로(1958-63), 1967년부터는 리스트 음악원에서 피아노와 앙상블 교수로 재직하며 작품 활동을 병행한다.

쿠르탁은 1970년대 중반 피아노를 위한 <놀이>(Játékok, 1973-2010)를 기점으로 보다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된다. 이 작품은 2010년까지 총 8권이 출판되었으며 바르톡의 <미크로코스모스>(Mikrokosmos, 1926-39)처럼 독자적인 수많은 악곡들로 구성된 상당한 규모의 작품집이다. 그는 <놀이>를 통해 다양한 작곡 테크닉과 역사적인 모델, 그리고 음향적인 가능성을 실험했으며 동시에 그의 주요한 작곡적 특징인 간결하고 응축된 음악 경향을 구체화시킨다. 이렇게 소규모 형식을 선호하는 경향은 <네 개의 카프리치오>(Four Capriccios op9, 1969-70)<24개의 안티폰>(24 Antiphonae for orchestra op.10, 19701) 등을 포함해 그의 작품 다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소프라노와 실내 앙상블을 위한 <트로우쏘바의 메시지>(Messages of the Late R. V. Troussova Op.17, 197680)는 쿠르탁을 국제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곡이다. 이 작품은 IRCAM의 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Ensemble Intercontemporain)에 의해 위촉되었으며 쿠르탁에게 파리 작곡가제전 최고상을 안겨주었다. 이 작품은 러시아의 시인 달로스(Rimma Dalos,1944-)의 시를 가사로 사용했는데, 쿠르탁은 이외에도 팔린츠키(János Pilinszky, 1921-1981), 탄도리(Dezső Tandori,1938-) 등의 시인의 시를 가사로 써서 다양한 성악작품을 작업했고, <카프카 단편>(Kafka-Fragmente op.24, 1985-6)과 같은 곡에서는 카프카의 텍스트를 이용한바 있다. 쿠르탁이 작곡한 다양한 인성 작품들은 언어가 가진 음악적인 표현을 극대화함으로써 드라마적인 느낌을 주곤 한다.

쿠르탁은 1974년부터 20년에 걸쳐 마쇼(Guillaume de Machaut, 1300?-1377), 랏소(Orlando di Lasso, 1532?-1594), 쉬츠(Heinrich Schütz, 1585-1672),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등의 작품을 피아노 연탄곡으로 편곡하기 시작한다. 이런 작업은 그가 피아노 작품 안에 모음곡인 <놀이>나 다양한 악기를 위한 신호, 놀이, 메시지”(Signs, Games, and Messages)와 같은 작품 안에 다양한 인물들에 대한 오마주를 작곡하는 것과 연결해 해석할 수 있다. 그는 음악의 전통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으며 오마주 등을 통해 과거 인물들의 영향에 대해 적극적으로 언급한다. 그리고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소나타나 푸가 등 전통적인 형식을 사용하기도 하며, 베베른이나 바르톡 등 대가의 아이디어나 작품의 구조를 자신의 작품에 인용하기도 한다. 이런 일련의 작업들은 그가 역사나 전통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보여준다. 후기 작품에 이르러서는 자신이 작곡한 작품을 자신의 새로운 작품에 다시 인용하는 모습도 자주 발견된다.

1980년대 중반 이후의 작품들은 이전에 비해 대규모 편성이 많다. 그 시작을 알리는 곡은 피아노와 실내 앙상블을 위한 <환타지 풍으로>(quasi una fantasia op27/1, 19878). 성악작품을 선호했던 쿠르탁은 이 작품에서부터 대규모 편성의 관현악 작품을 주로 작업하게 된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앙상블이 여러 개로 쪼개져 관객석 사이에 위치하며 이를 통해 공간적인 음향을 실험한다. 비슷한 시기에 작업한 기타독주와 관현악을 위한 <스테판의 묘비>(Grabstein für Stephan op.15c, 1989) 역시 공간이라는 테마를 중요하게 다룬다. 1989년 작곡된 세 번째 현악 4중주 <안드레에 체르반즈키를 추모하는 성무일도>(Officium Breve in Memoriam Andreae Szervánszky op.28, 19889)는 쿠르탁 특유의 음악 내적인 응축성이 돋보이는 수작이며, 사무엘 베케트의 시를 가사로 한 <사무엘 베케트: 단어는 무엇인가>(Samuel Beckett: What is the Word op. 30b, 1990-1991)<한 걸음 한 걸음 - 아무 곳에도>(pas à pas nulle partop.36, 19938), 그리고 휠덜린(Friederich Hölderlin, 1770-1843)과 첼란(Paul Celan, 1920-1970)의 시를 가사로 사용한 <휠덜린-성가>(Hölderlin-Gesänge op.35a, 1993-7)도 자주 거론되는 작품이다.

쿠르탁 부부는 1980년대 말부터 음악회를 열 때 음악회의 시작을 여는 곡으로 <놀이>4권에 수록된 우리는 꽃”(Flowers we are[embracing sound])을 연주하고, 음악회의 끝을 알리는 곡으로는 <놀이>3권에 수록된 파르카쉬에 대한 오마주 2”(Hommage à Farkas Ferenc 2)를 연주하곤 했다. 그리고 이 음악들 사이에는 <놀이>에 등장하는 다양한 곡들과 쿠르탁이 직접 편곡한 바흐 코랄 편곡 작품들을 집어넣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방식의 연주회 구성은 쿠르탁 음악의 독특한 특성 중 하나로, 보통 작곡된 프로그램’(composed program)이라 지칭된다. 이는 이미 있는 음악을 그날 저녁의 선곡이나 맥락에 맞춰 편성을 바꾸고 편곡하며, 순서를 조정해 연주하는 것이다.

이런 의도가 반영된 곡으로는 신호, 놀이, 메시지라는 제목을 가진 다양한 악기를 위한 시리즈들, <>(stele for orchester op.33, 1994), 그리고 <메시지>(Messages for orchester op.34, 1991-6) 등이 있다. 결국 쿠르탁은 짧은 악곡들을 연주자에게 재조합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음악을 어느 정도의 커다란 외형을 지닌 살아 있는대상으로 존재하게 만든다. 또한 쿠르탁이 만들어낸 많은 곡들은 그가 오마주로 소환한 수많은 인물들을 포함하고 있기에, 연주자가 구성해 낸 하룻저녁의 연주회는 오롯이 새로운 작업이면서, 동시에 먼 과거와 연결된다. 청자는 음악 안에 거하는 인용된 인물들을 통해 긴 시간을 뛰어넘으며 그 안에서 전통과 쿠르탁 사이의 거리를 가늠한다.

 

비올라 독주를 위한 <신호놀이메시지>Signs, Games, and Messages for viola solo, 1961-2005

비올라 독주를 위한 <신호, 놀이, 메시지>1961년부터 2005년까지 지속적으로 수정되며 끊임없이 그 외형을 바꾼 곡이다. 현재 이 작품은 2005년 버전으로 존재하며 24개의 짧은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단편은 서로 다른 제목과, 길이, 작곡년도를 갖고 있으며 완전히 분리된 개별적인 악상을 들려준다. 이를테면 카렌짜 지그”(The Carenza Jig)1분 남짓의 짤막한 곡이며, 1989, 1991, 1994, 1997년 네 차례에 걸쳐 작곡되었다. 반면 죄르지 쿠르를 추모하며”(György Kroó in memoriam)라는 단편은 1997년 작곡된 것이며 느리게 진행하는 온음표로만 구성된다.

음악학자 김벨(Gimbel)24개의 단편들 중 비교적 빠른 속도를 갖는 것들을 놀이, 사람들의 이름을 등장시키고 오마주하는 단편들을 메시지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오마주 단편에는 케이지’(John Cage, 1912-1992)처럼 낯익은 이들도 등장하지만 상당수의 인물들은 쿠르탁만 알고 있는 낯선 이들이다. 단편 중 몇몇은 대번에 헝가리를 연상시키는 음계나 리듬으로 되어 있으며, 연주자가 직접 텍스트를 노래하며 연주해야하는 롤랑 모저에 대한 오마주”(Homage to Roland Moser)처럼 독특한 연주법을 요하는 것도 있다. 단편들의 음악적 아이디어는 짧게 응축되어 있는데 이런 작품의 외형은 압축적인 작품을 자주 쓰는 쿠르탁의 경향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음악회에서 연주자는 24개로 이뤄진 단편 중 원하는 것을 선택해 음악회의 구성에 맞춰 배열하게 된다. 선택하는 단편의 개수는 자유로우며 각각의 단편이 통합되어 만들어내는 클라이맥스나 곡의 성격도 연주자의 아이디어에 따라 달라진다.  

 

유카 티엔수 (Jukka Tiensuu, 1948)

 

유카 티엔수는 카멜레온 같은 음악가다. 혹자는 그를 두고 만능 음악가그리고 핀란드 음악의 일급비밀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티엔수는 다양한 악기와 편성을 사용하는 다작의 작곡가이며, 후기 르네상스에서 현대음악에 이르는 상당한 범위의 레퍼토리를 다루는 하프시코드 연주자이다. 또한 그는 지휘자이며 피아니스트이고 기획자이다. 그는 헬싱키 비엔날레(Helsinki Biennale)의 감독을 역임했고 핀란드 비타사리 지방에서 열리는 음악의 시간축제(Festivals at Viitasaari)에 현대음악 부분을 설립하기도 했다. 이런 다양한 활동 덕분에 핀란드 현대 음악계에서 그의 영향력은 상당한 편이다.

티엔수는 핀란드, 독일, 프랑스. 미국 등지에서 작곡과 전자음악, 그리고 하프시코드와 지휘 등을 공부했다. 시벨리우스 아카데미와 줄리어드 음악학교, 그리고 프라이부룩 국립음대에서 하이니넨(Paavo Heininen, 1938-), 후버(Klaus Huber, 1924-), 퍼니호우(Brian Ferneyhough, 1943-)와 작곡을 공부했으며 IRCAM, MIT, 그리고 UCSD 등에서의 경험을 통해 전자음악에 대한 노하우를 갖게 되었다.

작곡가로서의 티엔수는 초기 작업에서부터 아방가르드를 지향했다. 티엔수가 작곡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1970년대에 그는 미분음정, 우연성, 열린 형식 혹은 변화하는 형식, 음렬음악, 전자음악, 컴퓨터를 이용한 작곡 등을 탐구했다. 이를테면 그의 첫 번째 작품인 <라르고>(Largo for string orchesta, 1971)는 관습적인 마디가 없는 새로운 기보를 실험하며 미분음의 가능성을 살핀다. 한편 <하프시코드 협주곡 엠>(M for harpsichord concerto, 1980)에서는 순정율로 조율되고 엠프로 증폭시킨 하프시코드가 등장한다. 이 작품의 독특한 점은 하프시코드 연주자가 바로크적인 관습으로 즉흥연주를 행하며 이 음악이 전반적으로는 전자음악적인 음향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클라리넷 협주곡 <푸로>(Puro for clarinet concerto, 1989)는 그의 작곡여정에서 터닝 포인트가 된 작품이다. 제목인 푸로는 핀란드어로 시내혹은 이탈리어로 순수한이라는 뜻을 갖는다. 이를 반영하듯 작품 안에는 고르게 흐르는 듯한 음향 짜임새와 맑은 느낌의 오케스트라 음색이 특징적이다. 주목할 만한 실내악으로는 미분음으로 조율한 하프시코드와 현악 4중주를 위한 <비소와 낡은 레이스>(Arsenic and Old Lace, 1990)가 있으며, 대편성 작품으로는 오케스트라와 샘플러를 위한 <알마 I, II, III>(Alma for orchestra and sampler, 1995-98)가 잘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알마 I: 히모’, ‘알마 II: 루모’, ‘알마 III: 소마로 구성된 교향적 3부작이다.

티엔수는 저는 콘서트 레퍼토리에 계속해서 곡을 추가해야 한다는 작곡가의 의식적인 의무로 곡을 작곡하지 않습니다. 우리 시대의 모든 개별적인 작품들을 그것이 생겨나야 할 특정한 이유를 갖고 있어야 해요.”라고 말한다. 이런 그의 발언은 그가 더 많은 작곡 스타일로 각기 새로운 작업을 시도하게 만든다. 실제로 그의 작업들에는 작품 전반에 걸쳐 발견되는 통일된 음악 스타일이나 선적인 발전모습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 이후의 티엔수는 스타일상으로 좀 더 연속적인 경향을 보여주며 모더니스트적인 엄격함이 누그러진 것으로 평가된다.

한편 티엔수 작품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전자음악의 사용이다. 그는 엠프설치, 미디, 라이브 일렉트로닉, 알고리즘의 디자인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자음악적 요소를 작품 안에 활용한다. IRCAM의 위촉으로 작곡된 <피는 피노키오?>(P=Pinocchio? for soprano voice, ensemble and computer, 1982)<네모>(Nemo for ensemble and electronics, 1997)가 대표적이다. 2000년대 이후 최근의 작품에서도 전자음악적인 조작을 가하거나 샘플러 등을 사용하는 작품이 자주 발견된다.

2000년대의 티엔수는 여전히 전통과 현대를 넘나들며 핀란드와 전세계를 무대로 다양한 편성으로 된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작곡하고 있다. 바로크 지휘에 대한 경험 덕분인지 바로크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이나 리코더, 혹은 비올라 다 감바를 위한 작품을 작곡하기도 하며, 생황이나 중국 오케스트라 같은 새로운 매체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아코디언이나 칸텔레(Kantele)같은 쉽게 보기 힘든 악기를 이용한 곡도 눈에 띈다.

 

<오드잡> Oddjob for cello and electronics, 1995

티엔수는 자신의 음악에 대해 설명하거나 프로그램 노트를 제공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는 음악을 음악 그대로 놔둔 채 음악이 스스로 말하기를, 그리고 청자가 음악을 직접 대면해서 무언가를 발견하기를 원한다. 작품의 작곡가로서 자신이 작품 앞에 나서는 것도 원치 않는다. 그가 붙인 작품의 제목들이 음악을 해석하는 지표가 된다 할지라도 대체로 티엔수가 붙인 제목들은 애매모호한 단어들로 이뤄진 경우가 많다. 이 또한 청자가 제목과 음악을 조합해 스스로 의미를 연상하게 하기 위함일 것이다.

오드잡이라는 제목은 누군가에게는 007 시리즈에 등장했던 기묘한 악당의 이름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만화책 시리즈의 제목으로 다가올 것이다. 설사 이 단어에 대해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다 할지라도 이상한 일이라는 의미는 그 자체로 독특한 인상을 준다. 이 작품이 어떻게 오드잡이라는 제목을 갖게 되었는지, 곡 전반에 흐르는 첼로의 음색이나 후반부의 촘촘한 음향덩어리가 오드잡과 어떤 연결고리를 갖고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작품은 주로 리버브와 딜레이라는 두 가지 테크놀로지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단순한 설정이지만 첼로 본연의 소리와 첼로에 실시간으로 덧씌워진 소리가 결합됨으로써 복합적인 화음과 리듬 그리고 꽤 촘촘한 짜임새를 만든다. 티엔수의 유명한 오케스트라 작품들은 섬세하고 고른 음향면을 가진 것들이 많다. 이 작품에서는 티엔수의 이런 음향적 특징이 작은 규모로 재현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스튜디오2021, (2016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