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젤과 그레텔>은 총 3막으로 이뤄진 오페라다. 여동생 그레텔, 모래요정, 이슬요정은 소프라노, 그레텔의 오빠인 헨젤과 어머니는 메조소프라노, 마녀는 테너, 아버지는 바리톤 배역이며, 열네 명의 천사와 어린이들이 춤을 추고 합창을 한다. 오페라 안에는 일반적인 의미의 아리아와 레치타티보가 존재하지 않으며, 몇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모든 노래와 대사가 연결되어 흐른다. 이러한 음악적 구성은 바그너의 음악극을 연상시킨다. 후기 낭만주의의 관현악적 색채가 농후하며 다양한 동기의 복합적이고 발전적인 진행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헨젤과 그레텔>은 바그너의 음악에 비해 훨씬 더 부드럽고 조화로운 화음을 사용한다. 리듬이 단순하며 누구나 흥얼거려본 구전 동요를 등장시키는 것도 눈에 띈다. 특히 이런 선율들은 작품 전체의 음악적 뼈대를 구성하며 빼어난 대위적 기법 및 유도동기 작법으로 얽혀져 있어 작품의 줄거리를 음악적으로 암시한다.

 

어디선가 들어본 아름다운 선율들

오페라는 시적인 서곡으로 시작한다. 서곡에는 오페라에 등장할 선율들이 삽입되어 있으며 작품 전체의 분위기와 맥락을 예고한다. 이어지는 1막 ‘빗자루 장수의 집’은 헨젤과 그레텔이 빗자루를 만들고 양말을 짜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레텔이 부르는 첫 번째 노래는 독일 구전동요 ‘수제, 예쁜 수제’에 가사를 붙인 것이다. 남매가 함께 춤을 추며 부르는 ‘오빠, 함께 춤추자’도 쉬운 리듬에 단순한 음계를 사용한다. 이런 노래들은 이후 등장하는 수많은 선율들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어 재등장하며 작품 전체의 유도동기로 활용된다. 이 동기들은 다소 복잡한 오케스트라 반주 가운데 등장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아이의 천진난만함과 밝은 성격을 묘사한다.

1막 후반에 아버지가 등장하며 부르는 노래 ‘랄라라라, 랄라라라’도 인상적인데, 이 노래는 가난한 이의 서글픔을 다소 유머러스하게 표현한다. 특히 아버지의 노래는 붓점을 포함한 단순한 리듬 그리고 순차적인 하행진행과 각이 진 도약진행을 포함하고 있다. 이런 구성은 아버지의 투박하고 낙천적인 성격을 묘사한다.

그레텔 및 아버지의 노래가 단순한 리듬과 평이한 음계를 사용하는 반면 어머니의 노래는 좀 더 반음계적이고 선율의 형태를 떠올리기 힘든 것이 대부분이다. 또한 어머니의 노래는 계속해서 흐르는 오케스트레이션의 복잡한 진행에 묻혀 있는 경우가 많다.

2막은 숲을 배경으로 하며 ‘마녀의 비행’이라 이름 붙은 전주곡으로 시작한다. 이 음악은 말러의 교향곡 및 다양한 음악에서 자주 등장하는 ‘Frère Jacques’ 선율을 섬세한 오케스트레이션으로 버무려 놓은 것이다. 이 선율은 1막 후반에도 잠깐 등장한 적이 있으며 이어지는 줄거리 안에서 ‘마녀의 비행’이라는 유도동기로서 여러 번 다시 활용된다. 반복해서 등장할 때에는 본래 장조였던 선율이 단조로 바뀌기도 하며 선율의 일부만 등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녀의 비행’ 후에 등장하는 음악은 평화로운 숲의 분위기를 그리며, 남매는 딸기를 따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어 잘 알려진 구전 동요 ‘숲속에 작은 사람이 서 있네’의 선율이 등장한다. 이 노래는 처음에는 구전 동요와 거의 유사하게 전개되지만, 점차 다양한 오케스트레이션과 섞여 계속해서 변형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은 딸기를 다 먹어버리고, 이즈음부터 오케스트라의 악기 편성이 점점 줄면서 음색이 옅어진다. 숲이 어두워진 것이다. 아이들은 문득 자신들이 길을 잃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음악 또한 미스터리한 분위기로 전환된다. 동시에 2막 초반에 등장했던 ‘마녀의 비행’ 동기가 다시 등장한다. 이 동기는 반복되고 겹쳐지며 점점 두려움에 휩싸이는 아이들의 심리를 묘사한다.

하지만 숲에 남겨진 아이들에게 모래요정이 찾아와 이들이 꿈을 꾸며 잠들 수 있게 해 준다. ‘모래요정의 노래’는 최소한의 반주와 함께 등장하며 음역의 고음부에서 전개된다. 목관악기가 대위적으로 선율을 받아주며 평화롭고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도 특징이다. 이 선율은 3막이 시작되어 이슬요정이 아이들을 깨울 때에도 동일하게 사용된다.

이제 아이들은 ‘저녁기도의 노래’를 부르며 잠들고 이들의 주변으로 천사가 내려온다. ‘저녁기도의 노래’는 헨델과 그레텔의 이중창으로 전개되며 호모포닉한 오케스트라 반주와 함께 온음계적인 선율 및 단순한 리듬을 갖고 있다. 이 곡은 오페라의 첫 서주에서부터 작품의 후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편성으로 여러 번 재등장하며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작곡가의 심상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이어 아이들의 주변에는 천사가 등장해 춤을 추는데 관객들은 이 장면을 지켜보며 이 오페라가 결국은 해피엔딩으로 향할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유도동기의 활용

앞서 나왔던 다양한 노래들은 기억하기 쉬운 뚜렷한 동기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다양한 인물을 묘사했던 노래 일부가 발췌되어 유도동기로 사용될 때 관객은 음악만으로도 극의 줄거리 진행을 상상할 수 있다. 유도동기로 사용되는 선율은 ‘수제, 예쁜 수제’를 비롯해 ‘저녁기도의 노래’, 그리고 2막의 전주곡 ‘마녀의 비행’ 등 다양하다. 특히 많은 인물이 모이고 사건이 전개되는 3막에서는 유도동기의 사용이 빈번하고 복합적이다.

3막을 여는 곡은 ‘과자로 만든 집’이라 이름 붙은 장대한 전주곡이다. 이 곡은 호른으로 연주하는 F-F-G-G-F-C음의 동기로 시작한다. 이는 ‘과자로 만든 집’ 유도동기로, 마녀 등장 장면 등 3막 전체에 걸쳐 여러 번 등장해 이야기 전개에 활용된다. 눈여겨 볼 것은 과자의 집 동기가 앞서 나왔던 모래요정의 선율과 유사하다는 점이다. 서로 다른 인물에 동일한 동기를 부여했지만 완전히 다른 캐릭터를 창조해낸 것이다.

이어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유도동기로 ‘마녀의 동기’가 있다. 이 동기는 마녀가 ‘내 이름은 로지나’라며 자신을 소개하는 장면에 뚜렷하게 나타난다. A-B-G-E-D로 구성된 동기는 다양한 선율에 섞여서, 혹은 오케스트라 내성의 일부로 원형 혹은 변형된 형태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마녀의 동기’는 마녀가 그레텔을 향해 노래할 때도 다양하게 활용된다. 뒤로 갈수록 앞에서보다 훨씬 더 변형이 심한 ‘마녀의 동기’를 발견할 수 있다. 마녀의 동기는 이따금씩 클라리넷과 바순, 호른 등의 관악기들에서 차례로 나타나며, 현악기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변형된 채 등장한다. 이런 동기의 활용은 마녀의 행동을 묘사할 뿐 아니라, 극 속에서 마녀가 아이들을 잡아먹으려는 의도로 다양한 말과 행위를 하는 것과 관련된다.

마침내 그레텔이 마녀를 오븐에 밀어 넣고 나면, 환희에 찬 분위기 가운데 ‘과자로 만든 집’ 유도동기를 비롯해 앞서 나왔던 다양한 선율을 조합한 음악이 흐른다. 서곡에서부터 들려오던 선율들, 뻐꾸기의 울음소리, ‘저녁기도의 노래’ 등이 사실은 승리를 암시하는 일종의 복선이었다는 것을 이 지점에서 짐작할 수 있다.

마녀가 과자로 구웠던 많은 아이들이 나타나 기쁨을 노래한 뒤, 아버지가 노래를 부르며 등장한다. 아버지의 노래는 1막에서 등장할 때와 동일한 선율로 시작해 다른 형태로 변형된다. 작품을 마무리하는 노래는 2막 및 서주를 포함해 다양한 장면에서 등장했던 ‘저녁기도의 노래’다. 앞서 이 노래는 두 남매의 이중창으로 불렸지만 마지막 장면에서는 무대 위에 등장한 모든 이와 함께 불리며 장대한 피날레를 장식한다.

 

바그너에 가려져 잊혀진 작곡가

훔퍼딩크는 대중에게는 사랑받았지만 음악사에서는 비중이 크지 않은 인물이다. 이 간극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헨젤과 그레텔>이 초연 당시 거뒀던 엄청난 성공의 양면성을 이해해야 한다. 작품이 초연되던 1893년, 유럽은 새로운 음악어법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고 많은 이들이 조성을 버리고 더 난해한 음향으로 나아갔다. 이 안에서 일종의 진보란 더 자극적인 음악과 텍스트로 대중과 거리를 두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훔퍼딩크는 반대의 방향을 택했다. 그는 민속적인 선율과 조화로운 화성을 적극 활용했다. 그리고 당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바그너의 유도동기 작법을 채택하여 친숙한 선율을 세련되게 엮어 청중을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결국 <헨젤과 그레텔>은 19세기 말에 작곡된 오페라들 중 유난히 자주 연주되는 레퍼토리가 되었다. 그리고 21세기까지 살아남아 ‘책’이 아닌 ‘대중’의 곁에 자리잡았다. 몇몇 음악들이 진보적인 음악사 서술 안에 촘촘히 배치될 때, 훔퍼딩크의 오페라는 매 연말 개최되는 수많은 음악제와 청소년의 공연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대표적인 가족오페라가 된 것이다. 19세기 말에 작곡된 그 어떤 오페라가 크리스마스의 기쁨을 노래하며 가족 단위의 음악회 관람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헨젤과 그레텔>의 미덕이며,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이 작품이 또다시 가족 관객과 마주할 수 있는 이유다.

 

<헨젤과 그레텔>, 국립오페라단, 2018년 10월 9~13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18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