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뷔시, 베르크, 베베른

2018. 4. 15. 23:38

드뷔시 작품을 바라보는 쇤베르크의 시선

쇤베르크가 편곡한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 전주곡>(Prélude à l'après-midi d'un faune, C. Debussy / A. Schoenberg)

1894년 지휘자 도레(Gustave Doret)와 플루티스트 베레레(Georges Barrère)의 연주로 드뷔시(Claude Debussy, 1862-1918)<목신의 오후 전주곡>이 초연됐다. 이 작품은 상징주의 시인 말라르메의 시를 음악적으로 표현한다. 작품 안에는 음색이 화성 못지않은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며 대칭을 기초로 음계를 운용해 악명 높은 증4도를 아름답게 들려준다. 이후 유럽은 드뷔시 열병에 빠졌고 많은 작곡가들이 드뷔시 양식을 모방해 음화(音畫)를 그리고자 노력했다.

드뷔시의 인기는 1918년 비엔나에서 창립된 사적인 음악연주 협회’(Verein für musikalische Privataufführungen)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 단체는 1890년 이후 작곡된 곡을 연주하는 현대음악 전문 연주단체로서 강도 높은 리허설을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주목할 점은 단체를 이끌었던 쇤베르크(Arnold Schonberg, 1874-1951)가 드뷔시 음악을 무척 좋아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단체와 친했던 피스크(Paul Pisk)는 이 단체의 별명이 레거-드뷔시-협회’(Reger-Debussy Verein)로 불릴 정도로 드뷔시 음악을 많이 연주했다고 회상한다. 단체의 짧은 역사 중에 무려 16개의 드뷔시 곡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적인 음악연주 협희의 네 번째 시즌에, 이들은 특별히 기획한 월례 음악회를 위해 다양한 오케스트라 곡을 실내악으로 편곡하게 된다. 그리고 이때 편곡한 작품 중 하나가 <목신의 오후 전주곡>이다. 이 음악은 단체의 1921년 후반기 연주를 위해 빠르면 192011, 늦으면 192110월에 11개 악기 편성으로 편곡되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음악회에서는 연주되지 않았다. 그해 겨울 단체가 해산했기 때문이다.

쇤베르크는 오케스트라 음악을 실내악으로 편곡하는 것에 대해 자신만의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를 조각상을 예로 들어 설명하곤 했다. “한 번에 조각품의 모든 면을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조각가는 조각을 할 때 모든 면을 비슷하게 공들여 작업합니다. 작곡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작곡가는 오케스트라 곡을 쓸 때 실제 연주시에는 잘 들리지 않는 모든 디테일한 부분을 전부 다 작업합니다.” 이어 그는 편곡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따라서 오케스트라 곡의] “피아노 편곡은 하나의 관점에서 조각상을 보는 것과 같은 모습을 해야 합니다.”

피아니스트 아스케나제(Stefan Askenase)의 편지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쇤베르크는 오케스트라레이션 같은 장식이 없을 때 그 작품을 더 잘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음악 안에 진정으로 포함된 음악적 특징을 더 잘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요.” 예컨대 쇤베르크가 편곡한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 전주곡>은 그가 좋아했던 드뷔시 조각을 하나의 시점에서 바라본 것으로서, 오케스트레이션이라는 화려한 표피 너머 단순한 무언가를 자신만의 시점으로 포착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가장 구조적인, 그리고 가장 서정적인

알반 베르크의 <아다지오>(Adagio for Violin, Clarinet and Piano (1923-5/1935)

쇤베르크는 세기 초 특출난 제자 두 명을 두었고 그 중 베르크(Alban Berg, 1885-1935)는 서정적인 곡을 쓰는, 그리고 조성에 미련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작곡가였다. 실제로 베르크의 음악은 반음계주의를 연상시키며 그는 슈트라우스와 말러의 열렬한 팬이었다. 하지만 달콤한 선율이나 화성과 별개로 베르크는 수비학(數祕學) 광이었고 고전적 형식의 숭배자였다. 베르크의 음악 안에는 특정한 형상이나 패턴이 등장하며 좌우 대칭 및 숫자가 자주 활용되곤 했다.

1925년 완성된 한 대의 피아노와 바이올린, 그리고 13개의 관악기를 위한 <실내협주곡>(Kammerkonzert)은 본래 쇤베르크의 50세 생일에 맞춰 초연하고자 했던 작품이다. 비록 이 계획이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작품 안에는 쇤베르크와 그의 두 명의 제자에 대한 몇몇 정보가 기입되어 있다. 악장의 개수, 함께 움직이는 악기군 등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1악장과 2악장의 마디수를 모두 더하면 3악장의 마디수가 된다. 특히 2악장 아다지오는 바이올린이 주도하는 느린 악장으로 베르크가 즐겨 사용한 수학적 원리가 유독 강하게 드러난다. 악장 내부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고 세 번째 부분은 첫 번째 부분의 전위다. 또한 아다지오악장의 전반부는 음렬의 원형으로, 후반부는 이 음렬의 역행렬을 이용해 작곡되었다.

음악학자 그리피스(Paul Griffiths)는 이 작품에 드러나는 수많은 장치들을 염두에 둔 듯 다음과 같은 언급을 한 적이 있다. “가령 이와 같은 음악의 게임이 베르크의 형식을 지탱했다 하더라도 그것들이 그의 풍부한 표현성을 제한했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들은 표현을 위해 필수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음악 안에 복잡한 장치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 곡에는 베르크의 후기 음렬작품에서 볼 수 있는 반음계적이고 강렬한 패시지들이 가득하다.

다만 <실내 협주곡>3악장을 전부 다 연주했을 경우 삽십분에서 사십오분 가량의 긴 시간이 걸린다. 때문에 이 곡을 음악회에서 자주 듣기는 어렵다. 베르크도 이를 의식해서인지 세 개의 악장 중 2악장 아다지오를 골라 바이올린, 클라리넷, 피아노 편성으로 편곡하게 된다. 삼중주 버전에서는 원곡에서 느껴지는 풍미나 긴 지속음 등이 다소 특이한 방식으로 굴절되어 있다. 작품의 시작부분은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원곡에서는 음향적 층을 만들어내는 목관악기의 화음과 트레몰로 등이 등장하지만 편곡버전에서는 이 모든 것이 피아노에 의해 연주된다. 또한 원곡에서 강조되었던 대칭 구조 역시 삼중주 버전에서는 약간 수정되어 있다.

삼중주 버전은 <실내협주곡>을 완성하고 난 후 10년이 지난 19352월 비엔나에서 초연되었다. 이 날은 베르크의 50살 생일이었다. 스승을 위해 만들었던 곡을 온전히 자기 자신을 위해 연주한 셈이다. 그러나 이 삼중주 버전은 베르크가 살아있을 때에는 출판되지 않았다.

 

침묵의 경계에 위치한 음렬 음악의 고전

안톤 베베른의 <교향곡 21>(Symphony In two movements, 1927-1928)

작곡가 베베른(Anton Webern, 1883-1945)에 대해 잘 모르는 이도 그가 작곡한 <교향곡 21>의 악보를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교향곡이라는 이름이 암시하는 빽빽한 화음과 화려한 선율대신 악보의 첫 장에는 빈 공간이 대부분이다. 툭툭 끊겨 등장하는 것이 인상적인, 마치 점을 찍은 듯 보이는 음표들은 음렬이라는 작품의 재료를 그대로 노출시킨다. 거대한 짜임새를 벗겨내 그 음향의 핵심 선율을 뽑아내야 했던 낭만주의 작품과 비교해 볼 때 이런 도입부는 가히 충격적이다.

많은 평론가와 음악학자들이 이런 비어있음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매클리스(Joseph Machlis)언어의 절대적 순수성에 대한 그의 욕구가 완전히 창의적인 그만의 방식으로 그를 이끌어 간, 베베른의 경력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라고 지적했으며, 로스(Alex Rose)는 철학자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의 글귀 발언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를 인용하며 베베른의 작품이 삶의 소음과 죽음의 정적 사이의 연옥에 매달려 있다고 이야기한다.

두 개의 악장으로 이뤄진 이 작품은 총 10분 정도의 길이를 가지며 첫 번째 악장은 카논 기법을 포함한 소나타 형식으로, 두 번째 악장은 주제와 7개의 변주 및 코다로 구성된다. 특히 첫 번째와 일곱 번째 변주는 이중 카논, 두 번째와 여섯 번째 변주는 삼중주, 세 번째와 다섯 번째 변주는 점묘주의적 효과를 전면에 배치하며, 네 번째 변주는 악장 내부의 전환점 역할을 한다. 예컨대 2악장의 변주들은 네 번째 변주를 중심으로 대칭이다. 그리고 다시 전체 악장을 지배하는 음악적 아이디어는 1악장 서두에 등장하는 음렬에 기인한다. 음악은 투명하고 면밀하게 통제되며 카논을 활용한 구조는 명료하다.

베베른은 음렬을 보다 작은 단위로 쪼개 운용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스스로 12개의 음이 아니라 “6개의 음이 주어진다. 그 뒤에 오는 것은...”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음렬을 설명했던 적이 있다. 또 다른 곡에서 그의 음렬은 단 4개의 음을, 그리고 또 다른 곡에서는 단 3개의 음을 기본으로 하며 이것들이 반복되어 12음으로 구성된 음렬을 만든다. 이런 방식은 음정의 가짓수를 제한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작품 내부의 화성적 통일성을 강화시킨다. 덧붙여 이렇게 구성된 음렬은 그가 즐겨 사용했던 모방적 짜임새나 전위 형태 등을 보다 잘 표현할 수 있게 해 준다. 악장 전체를 지배하는 일관성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는 것은 당연한 효과다.

따라서 그리피스(Paul Griffiths)가 지적했던 것처럼 베베른이 만들어내는 고도의 형식미는 꽃이나 광물 등 결정체의 완전한 형태를 흉내 내려는 욕망과 닮았다. 이는 단순히 그의 음악이 대칭과 기하학적 구조로 이루어졌으며 작은 단위의 반복이 큰 단위를 지배한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그의 음악 안에 작동하는 원리들이 청취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그것들이 정적과 침묵 위에 아름답게 서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튜디오2021 프로그램노트, (2018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