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특정 계층이나 인종·성별의 ‘정체성’을 대변하는가? 정말로 서양의 클래식 음악은 스몰(C. Small)의 주장처럼 “중산층 시민 계층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찬미하는 제의”일까? 백인종(種)의 특별한 의식이 바로 ‘클래식 음악회’라는 스몰의 주장은, 현대식의 멋진 건물과 매끈한 로비를 갖춘 음악회장에 단 한명의 흑인 연주자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품게 만든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클래식 음악의 역사에서 흑인 연주자는 어디에 있었고 왜 그들은 보이지 않았는가? 흑인이 만들어내는 음악은 그들이 ’black’이었기 때문에 어떠한 부가적인 의미를 창출했는가? 그렇다면 지금 바로 여기, 아시아-서울의 한 콘서트홀에서 랜들 구스비의 연주를 바라보는 행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무대 위의 검은 연주자들

클래식 음악 안에서 ‘흑인’이라고 지칭되는 음악가가 위치되는 가장 익숙한 방식은 주류 음악과 대립되는 지점에 놓이는 것이다. 이를테면 일반적인 클래식 음악이 보다 화성적인 면에 치중한다면 흑인의 음악은 리듬과 즉흥연주에 특화되어 있다든지, 클래식 음악이 고상하고 점잖다면, 흑인의 음악은 그 정서적인 면모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퍼포먼스 위주라든지 라는 식이다. 흑인들 역시 기존의 클래식 음악과 ‘다르다’고 인지될 수 있는 음악적 요소를 끈질기게 추구하며 소위 ‘백인의 음악’과 대립되는 특정 스타일을 정립시켰다. 이런 역사 안에서 ‘흑인성’이라는 것은 클래식 안에서 구분되는 별개의 카테고리가 되었으며, 더 나아가 클래식 음악 전체와 대립되는 ‘대중음악’ 안에서 적극적으로 발견되기에 이른다. 이 때문에 클래식 음악을 하는 흑인 음악가를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만 힙합이나 재즈 등의 특정 대중음악 안에서는 흑인 음악가라는 것이 오히려 당연해 보인다. 그리고 이는 ‘흑인의 레게’, ‘백인의 컨트리음악’과 같은 음악에 관한 본질주의적 주장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이미 18세기부터 조지 브리지타워(George Bridgetower, 1778-1860)와 같은 흑인 바이올리니스트가 활동했다는 사실은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1778년생인 브리지타워는 영국의 혼혈 바이올리니스트였으며, 베토벤이 그에게 바이올린 소나타 ‘크로이처’를 헌정하려고 했을 정도로 인상적인 음악활동을 보여줬다. 브리지타워 이외에도 수많은 흑인 성악가·작곡가·연주자·지휘자가 18세기 무렵부터 클래식 역사 전반에 걸쳐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성악가들 중에서는 세기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소프라노로 인정받는 불리는 제시 노만(Jessye Norman, 1945-2019)을 비롯하여 소프라노 카밀라 윌리엄스(Camilla Williams, 1919-2012), 레온타인 프라이스(Leontyne Price. 1927-), 마르타 아로요(Martina Arroyo, 1936-), 콘트랄토 마리안 앤더슨(Marian Anderson, 1897-1993), 테너 롤랜드 헤이즈(Roland Hayes. 1887-1977), 바리톤 로버트 맥퍼린(Robert McFerrin, 1921-2006) 등이 유수의 오페라 프로덕션에서 활동했다. 흑인 작곡가로는 이미 18세기 중반에 현악사중주와 교향곡, 협주곡을 작곡하며 ‘검은 모차르트’로 불렸던 슈발리에 드 생조르주(Chevalier de Saint-Georges, 1745-1799)를 필두로 플로렌스 프라이스(Florence Price, 1887-1953), 윌리엄 그랜트 스틸(William Grant Still, 1895-1978), 사무엘 콜리지 테일러(Samuel Coleridge-Taylor, 1875-1912), 마가렛 본드(Margaret Bonds, 1913-1972), 콜리지 테일러 퍼킨슨(Coleridge-Taylor Perkinson, 1932-) 등이 유명하다.

기악과 지휘 분야에서도 위대한 흑인 음악가의 이름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노예의 아들로 태어나 눈이 보이지 않았던 토마스 위긴스(Thomas “Blind Tom” Wiggins, 1849-1908)는 이미 10세에 유명한 피아니스트였다. 그 역시 다른 음악신동처럼 바흐와 베토벤, 그리고 자신이 작곡한 작품을 연주하며 북미를 순회했고, 피아노 편성의 살롱음악을 100여곡 이상 남겼다. 딘 딕슨(Dean Dixon, 1915-1976)은 16세이던 1941년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섬머 파크 콘서트를 지휘했으며 후에는 보스턴 심포니와 필라델피아 심포니의 포디움에 섰다. 헤이즐 스콧(Hazel Scott, 1920-1981)은 당대의 가장 유명한 피아니스트로 활동했으며 ‘헤이즐 스콧 쇼’라는 TV프로그램을 이끌며 당대 흑인들에게 방대한 영향을 미쳤다.

클래식 음악의 주요한 무대에서 활동한 이들에게 늘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첼리스트 도널드 화이트(Donald White, 1925-2005)는 1957년 흑인으로는 최초로 미국의 빅 파이브 오케스트라 중 하나인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단원이 되었고, 헨리 루이스(Henry Lewis, 1932-1996)는 16세의 나이에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첫 흑인 더블베이스 주자가 되었다. 오레곤 심포니를 25년 동안 이끈 지휘자 제임스 디프리스트(James DePriest, 1936-2013)는 클래식 음악 역사상 세계 유수의 무대에 선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지휘자였던 이베트 데버럭스(Yvette Devereaux, 1940-)는 피바디 콘서바토리에서 지휘자 학위를 취득한, 그리고 뉴욕필을 지휘한 최초의 흑인여성이다.

하지만 이들의 활동이 늘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첼리스트 화이트는 투어로 들른 앨라배마주 주 버밍엄에서 콘서트홀에 오르는 것을 제지당했다. 이제는 재즈음악의 거장으로 기억되는 피아니스트 니나 시몬(Nina Simone, 1933-2003)은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커티스 음악원 입학이 거부되었다. 1962-1977년까지 뉴욕필의 유일한 흑인이었던 바이올리니스트 샌포드 앨런(Sanford Allen, 1939-)은 “단순히 상징이 되는 것에 지쳤다”며 악단을 떠나기도 했다. 이제껏 언급한 흑인음악가 상당수는 미국인이며, 유럽에서 활동했던 이들은 혼혈 음악가가 대부분이었고 그 절대적인 숫자는 백인과의 인구수 비례로 보았을 때 지극히 적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일종의 아비투스(Habitus)로 음악을 접하게 되는 사회 환경 역시 유색인종의 클래식 음악계 진출을 어렵게 만들어왔다.

 

랜들 구스비, 역동적인 정체성 한가운데

20세기 후반에 들어 클래식 음악의 문화다양성을 강화하고 그 안에 팽배한 문화적 스테레오 타입을 극복하고자 ‘스핑크스’와 같은 비영리 단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1996년 설립된 스핑크스는 음악학교 학생들과 전문 음악인, 그리고 음악 청중 등 클래식 음악 문화 전반에서 흑인과 라틴계의 비중을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들은 소외된 지역의 청소년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악기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1998년부터는 흑인과 라틴계열의 현악기 전공 학생들이 경연할 수 있는 스핑크스 콩쿠르를 개최했다. 스핑크스는 현재 총 13개 영역에 이르는 전문적인 교육 과정과 지역사회 봉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흑인 및 라틴계열 작곡가에게 작품을 위촉하고 그들의 작품을 아카이빙 한다. 샌디에고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랜들 구스비(Randall Goosby, 1996-)도 바로 스핑크스 콩쿠르에서 13세에 최연소로 우승하며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다만 구스비의 이력이 전적으로 스핑크스에만 의지하는 것은 아니며, 그의 인종정체성은 앞서 언급한 흑인들과는 또 다른 결을 갖는다. 구스비의 아버지는 흑인이지만 어머니는 일본어를 제1언어로 썼던 재일교포 한국인이다. 무엇보다도 구스비가 바이올리니스트로 성장하게 된 데에는 헌신적인 어머니의 뒷바라지가 결정적이었다. 그렇게 7세에 바이올린을 시작한 구스비는 9살에 잭슨빌(Jacksonville) 심포니와 협연하며 데뷔했고, 14세에는 링컨 센터의 아비 피셔홀에서 열린 ‘Young People's Concert’에서 뉴욕필과 공연했으며 2018년에는 ‘Young Concert Artists International Auditions’에서 우승했다. 줄리어드 음대에서 이작 펄만(Itzhak Perlman)과 캐서린 조(Catherine Cho)를 사사힌 구스비는 현재 가장 촉망받는 젊은 바이올리니스트 중 하나다. 이미 2021년 데카 클래식에서 데뷔 음반 <뿌리>(Roots)를 발매했고, 월트디즈니홀 할리우드 볼에서 열린 두다멜과의 협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따라서 관객은 구스비를 앞에 두고 ‘흑인 음악가’라는 외형에만 천착할 것도, 줄리어드 음대 졸업생이라는 학력에만 집중할 것도, 더 나아가 이번 공연이 ‘어머니의 나라’에서의 무대라는 점에만 초점을 맞출 필요도 없다. 구스비는 유망한 젊은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다채로운 정체성이 교차하는 인물로 최근 행한 주요 연주와 데뷔 음반 안에서 ‘흑인 작곡가’의 곡에 집중하고 있다. 관객 역시 구스비의 음악 안에 흐르는 정체성의 파편들이 역동적이며 계속해서 새롭게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고 이를 음미하면 된다. 음악의 정체성이나 의미는 단순히 음악 ‘안에’ 담겨 있는 것이 아니며, 사람들이 음악을 ‘통해’ 서로 연결되는 과정에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구스비와 같은 새로운 심벌의 등장을 통해 클래식 음악 장르의 의미와 그 속성, 그리고 음악회장이 갖고 있는 사회문화적 상징을 다시금 자각하게 될 터. 이것이 바로 지금, 구스비가 무대 위에서 만들어내는 음악과 그 잠재력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글 이민희 음악평론가)

2023년 6월 22일, 랜들 구스비 바이올린 리사이들 프로그램북 中 "지금 바로, 우리가 랜들 구스비를 들어야 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