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음악의 세부적인 경계와 미학을 고민하며: SICMF 2021 리뷰

2023. 8. 24. 14:21

1877년 소리를 녹음하고 재생하는 기술이 처음으로 발명됐고 1898년에는 자기magnetic녹음을 활용한 테이프 녹음 기술이, 1927년에는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싱어》가 관객을 만났다. 구체음악Musique concrète이 1940년대에, 전자음악electronic music이 1950년대에 등장했으며, 최초의 랩톱 컴퓨터가 1981년 판매를 시작했다. 그렇다면 2021년은 소리를 기계로 매개하는 핵심적인 기술이 발달한지 150여년, 개인 컴퓨터를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게 된 지 40여년이 더 지난 먼 미래다. 전자음악은 그동안 무엇이 달라졌고, 어떤 것이 지속되고 있는가? 그 안에는 ‘새로운 무언가’가 여전히 있는가?

전자음악은 소리를 만들어내는 ‘기술’과 ‘매개방식’을 전면에 드러내기에, 2021년 10월 15-17일 서울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에서 개최된 서울 국제 컴퓨터 음악 페스티벌Seoul International Computer Music Festival의 서른 작품은 오디오비주얼 미디어아트, 테잎 음악, 악기와 일렉트로닉스, 실시간 일렉트로 어쿠스틱 음악으로 나눠지는 카테고리 안에서 기술의 본질과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도 몇몇 작품들은 21세기를 특징짓고 이 음악의 연대를 추정하도록 하는 시금석試金石 같은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으며, 또 다른 곡들은 그 안에 여전히 지속되는 기술의 고전적인 면모를 보여 주었다.

  

1. 보이는 음악: 오디오비주얼 미디어 아트

 

SICMF 2021의 무대에 오른 다양한 작품 중 미리 편집된 이미지와 사운드를 동영상 형태로 만든 것이 총 일곱 편이었다. 이 부류의 작업은 오디오비주얼 미디어 아트audio-visual media art라는 명칭으로 통용됐고, 흰색 배경을 갖는 무대 뒷벽에 이미지가 투사되는 가운데 음악과 함께 재생됐다. 관객들은 스피커에 둘러싸인 채 정면의 이미지를 응시했으며, 간혹 프레임 너머로 빛이 넘쳐 나와 무대 전체가 다양한 색으로 물들기도 했다.

오디오비주얼 작품 전부는 음악적 정보량이 적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어떤 측면으로는 다른 카테고리에 비해 음악적으로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작품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는데, 시각과 청각 두 영역의 정보를 동시에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음악을 ‘단순하게’ 만들어야하는지의 문제를 고민하게 했다. 그렇다면 관객은 8채널로 작업된 지극히 섬세한 음악과 이미지의 결합을 대면할 때면 쏟아지는 정보에 과부하가 걸리는 것일까? 오디오비주얼이라는 장르의 특성 상 국내에서 개최되는 또 다른 페스티벌 WESA와 어떤 방식으로 차별되는 지점을 강화할지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들었다.

오디오비주얼 작품 대부분은 음악 자체의 질감보다는 영상의 스타일이나 전개방식에 따라 작품의 카테고리나 인상이 결정됐다. 이를테면 한 부류의 작업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추상적인 시각 이미지를 출력한 것들로, 외부의 무언가를 재현하거나 복제하지 않는다. 또 다른 부류(조셉 데시아토, 신성아)는 카메라로 이미 존재하는 이미지를 녹화하고 재생하되, 이를 독특하게 다룸으로써 실재와 가상의 경계를 교묘히 넘나든다. 이와는 별개로 영상의 움직임이나 프레임의 전환 등 이미지 내부의 정보가 음악과 얼마나 ‘동시에’ 출현하는지에 따라서도 작품의 성격이 구분되었다. 한편 특정 부류의 작품은 사운드와 영상이 서로 결합했다거나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감각이 부재한 채, 처음부터 두 감각이 완전히 합치된 ‘시청각 오브제’로 존재하는 것 같았다(줄리아 레지니). 이처럼 다양한 카테고리 안에서 영상과 사운드는 독특한 관계를 형성했으며 다른 카테고리의 전자음악과는 완전히 다른, 순수한 시청각적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

1.1. 디지털 이미지와 결합된 소리

소리가 동반된 동영상 형태의 작업은 최근의 기술 발달 안에서 가장 흔한 형식이 되었으며, 이제 작곡가는 이미지와 소리를 합치는 것 뿐 아니라 데이터를 기반으로 시청각을 동시에 제어하고, 특정한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디지털 이미지를 손쉽게 만들어낸다. 이를 반영하듯 SICMF의 오디오비주얼 작업 다수는 작곡가가 데이터를 직접 조작해 출력해 낸 추상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었다. 특히 이런 작품 중 일부(마라 헬무스, 마사푸미 오다, 찰스 니콜스)는 이미지 안을 탐색하는 ‘시점’ 즉 프레임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사용함으로써 공간을 ‘탐색’하는 듯한 감각을 이끌어냈다. 따라서 이런 작품을 관람할 때에는 VR기계를 쓴 채 가상공간을 날아다니거나 걸어다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마라 헬무스Mara Helmuth의 《“열린 공간들Opening Spaces” for audio-visual media art)에는 우주와 같은 검은 배경 위에 3차원의 큐브로 구성된 가상공간이 등장한다. 이 기하학적 공간은 그 형체를 점진적으로 변화시키며, 시점을 움직여 이 투명한 얼개 구석구석을 탐색한다. 한편 고음역의 주파수 몇 개가 등장해 맥놀이를 만들고, 중음역대에도 몇 개의 주파수가 서서히 들렸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는데, 마치 오르간으로 연주되는 화음이 온전히 소리를 내었다가 특정 성부만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는 현상을 반복하는 것 같았다. 전반적으로는 여러 개의 주파수가 겹쳐진 채 지속됐으며, 풍경風磬 소리와 유사한 금속성의 단단하고 맑은 울림이 크로스페이드cross-fade로 전면에 등장했다가 다시 사라지곤 했다.

영상의 프레임은 이 공간을 떠다니는 것처럼 부드럽게 움직였고, 이미지와 소리의 흐름은 둘 다 뚜렷한 분절지점 없이 계속해서 다른 장면 및 소리로 연속적으로 전환됐다. 간혹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이미지와 소리가 병치될 때에는 특정 공간이 등장할 때 나는 효과음이나 공간 자체가 뿜어내는 사운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작품의 흐름에는 기승전결이 없었고, 소리와 영상 모두 초중반을 지나고부터는 유사한 흐름과 밀도를 반복해서 제시했다.

미생물이 들어있는 액체를 현미경으로 관찰했을 때 검은 배경에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밝은 색 부유물이 움직이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마사푸미 오다Masafumi Oda가 만든 《“Generating Scenic Beauty” for 2-ch audiovisual media art》의 이미지가 바로 그런 형태로, 검은 배경 위에 흰색 형체가 납작한 모습으로 산재한다. 이미지는 움직이기도 하고 점멸하기도 하지만 눈에 띄는 것은 이미지를 투사하는 ‘프레임’ 즉 시점이 계속해서 이동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관객이 바라보고 있는 네모난 프레임은 앞으로 계속 파고들어 시각적 대상 안으로 빨려들어 가기도, 가로와 세로로 이동하기도 한다. 작가는 이런 이미지를 “자동으로” 매개변수의 조합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이야기했는데, 이 때문에 이미지의 출현과 변화, 그리고 시점의 움직임 등이 사운드와 아무런 상관없이 진행되는 느낌을 준다. 즉 이 작품에는 추상 영상과 소리가 그 어떤 동시성synchronization도 형성하지 않은 채 거칠게 결합되어 있다.

다만 영상의 형태나 질감이 총 5분이 넘는 시간동안 유사한 모습을 유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음악 안에 활용된 특징적인 소리들, 이를테면 낮은 음고에서 파격을 하는 듯한 펀치 소리, 중음역대에서 여러 가지 피치를 불규칙하고 빠르게 들려줌으로써 누군가가 달각거리는 자판을 타자치는 것과 같은 소리, 그리고 고음역의 건조한 잡음 등이 곡 전체에 일관되게 나타난다. 때문에 이 작품은 영상과 소리 모두 짜임새가 변하지 않은 채 지속적으로 흐르는 인상을 준다. 따라서 관객의 일부는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영상과 소리에 집중하여, 그 결합의 양상을 또 다른 형태의 정보로 음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점의 변화가 특징적이었던 앞선 작품과 달리 한준성의 《“The Cell” for audiovisual media art》는 시점이 고정된 채로 진행된다. 작품의 초반에는 지구의 모습을 원거리에서 촬영한 듯 구형의 물질 안을 둥글게 회오리치는 푸른빛의 이미지가 특징적이다. 작곡가는 이 이미지가 “실제 촬영된 결과물을 후가공한 것으로 광물, 화학반응 등 다양한 실제 현상을 촬영”한 소스로부터 만들어졌다고 밝히고 있는데, 우주 속 지구 혹은 세포 한 개를 극단적으로 확대시켜 이를 소우주처럼 만든 형상 같았다. 한편 작곡가는 작품 속 사운드가 실제 존재했던 소리를 활용해 작업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본래 어떠한 형태의 소리를 녹음한 것인지를 귀로 듣고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음악은 점진적으로 그 소리의 형태와 질감을 변화시키되, 이미지와는 구체적인 접점을 형성하지 않았다. 단지 영상에 소리가 동반되었을 뿐, 영상을 독해하거나 소리를 독해할 때 각기 다른 감각이 도움을 주지는 않았다.

작품 중반부터는 추상적인 빛의 일렁임이 둥근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 경우 이미지의 등장과 사라짐에 맞추어 소리의 질감이 변화함으로써 얼마간의 시청각적 일치감을 만들어낸다. 이를테면 매끄러운 원형의 이미지가 나타날 때면 ‘정주’를 연상시키는 맑은 배음의 지속음이 등장해 화면과 보조를 맞추는 식이다. 다만 작품 전반적으로는 ‘시청각’이 아닌 ‘시각적 형상’에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찰스 니콜스Charles Nichols의 《“시간정원Time Garden: dawn replica” for 2-ch audio-visual media art》 역시 사운드 보다는 이미지가 특징적인 작품으로서, 작품 속 사운드의 전개 방식이 애매모호한 것과 별개로, 시각 이미지의 진행 방향은 명확했다. 즉 작품 초반에는 인간의 형상을 한 알 수 없는 생명체가 쭈그리고 앉아 손을 까딱거리고 고개를 흔들더니, 점점 다리를 펴고 하나 둘 일어선다. 그리고 팔 전체를 위로 들고 움직이며, 몸을 굽히고 펴는 동작을 반복한다. 이는 움직임의 궤적을 점차 확대해가는 프로세스로서, 작품 후반에 이르면 두 다리를 꼿꼿이 펴고 선 상태에서 팔을 뻗고 휘두르게 된다.

여기에 동반되는 소리는 두 개 혹은 세 개의 레이어를 중심으로 한다. 시각적 대상을 근거리에서 클로즈업할 때에는 고음역의 소리를 포함하는 사운드와 새소리를 연상시키는 사운드 레이어를 겹쳐서 들려주며, 대상을 원거리에서 비출 때에는 이런 소리 레이어 중 하나를 삭제한다. 이 경우 소리는 영상 안의 이미지와 어떠한 연관성도 형성하지 않으며, 그저 작품의 ‘시점 변화’ 만을 보조하는 도구가 된다. 따라서 “디지털 공간에서 인체와 기술을 혼합하여, 신체와 움직임을 복제하고 시뮬레이션”한 영상이 그 나름의 창의성과 독특함을 가진 것과는 별개로, 소리의 경우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인간의 퍼포먼스로만 구성된 컴퓨터 음악”을 들려주고자 했던 작곡가의 의도와 달리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그 출처를 인지하기는 어려웠으며, 음색적 새로움이나 특이성, 영상과 결합할 때의 효과 등도 감지되지 않았다.

1.2. 감각의 혼선이 주는 황홀함: 실재와 가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미지들

앞선 작업들이 온전히 새롭게 만들어낸 디지털 이미지를 기반으로 한 것에 비해, 조셉 데시아토와 신성아의 작업은 실재와 가상을 넘나드는 이미지가 특징적이었다. 이 경우 영상은 실제 대상을 촬영한 소스를 재료로 하지만, 작품 안에서 이를 명확하게 감지할 수는 없다. 특히 이런 작품 안에서 실재와 가상의 경계가 불분명하게 처리되고, 이 둘 사이의 인식전환이 이뤄지는 순간이 매혹적이었다. 한편, 두 작품 모두 글리치 이미지와 사운드를 효과적으로 사용한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글리치’란 사전적으로 보았을 때에는 “정보나 의미의 기대된 또는 관습적 흐름으로부터 […] 이탈된 것처럼 출현하는” 오류를 의미하되, 이를 예술 분야 안에서 쓸 때에는 단지 오류를 지칭하는 것을 넘어 이것을 미학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뜻한다. 현재 글리치는 시각예술과 사운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사용되는 테크닉이자 소재로, SICMF의 다른 작업 안에서도 글리치 사운드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었다.

조셉 데시아토Giuseppe Desiato의 《“Topos” for 2-ch audiovisual media art》는 “지구의 생성과정” 그리고 “지구의 영감을 받은 배경들”을 토대로 “새로운 상상의 장소의 탄생”을 표현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대자연’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를 등장시키고 여기에 자연에서 채집한 듯한 소리를 결합시켰다. 마치 주인 없는 행성의 표면을 흑백 카메라로 찍은 듯, 생경하고 낯선 대자연을 원거리에서 비추며 작품이 시작된다. 이어 둥근 형태의 알 수 없는 행성 혹은 광물로 이뤄진 어떤 물질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주는데, 그때마다 이런 이미지를 출력하는데 발생했을 법한 노이즈가 동반되며, 장면의 후면에는 앰비언스 사운드가 뒤따른다. 또한 거대한 규모의 폭포가 일렁이는 것 같은 이미지에는 파도를 연상시키는 묵직한 화이트노이즈가, 하나의 신scene이 또 다른 신으로 전환될 때에는 영상매체의 툴을 끄거나 교체하는데 들릴법한 전자기기의 노이즈 효과가 삽입됨으로써 이런 ‘프레임의 변화’를 강조한다. 디지털 전송이 원활하지 않아 생긴 것 같은 ‘먹통 이미지’에 글리치 사운드를 결합시킨 부분에서는 페스티벌의 진행 상 오류로 인해 노이즈가 생긴 것과 같은 느낌을 주었는데, 이런 애매모호한 감각의 혼선이 흥미로웠다.

어떤 지점에 이르러 이 작품은 영상 속 ‘대자연의 형상’ 뿐 아니라, 지금 관객이 눈으로 보고 있는 ‘영상 그 자체’도 생성되고 있다는 감각을 불러일으켰다. 이미지에 특이한 소리가 동반됨으로써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생경한’ 공간을 연상시키는 것은 물론, 이와 같은 시청각 결과물이 계속해서 글리치 형태로 나타남으로써 관객이 응시하고 있는 영상 자체도 지금 ‘막 생성되고 있다는’ 느낌을 만들어냈다. 생성에 대한 두 개의 레이어를 시청각 결합과 글리치로 구현한 셈이다. 다만 작품 전반적으로는 소리의 출현 방식이나 질감이 그다지 새롭지는 않았기에, 시각적으로 세련된 광고의 일부를 보는 것과 같은 인상을 주기도 했다.

신성아의 《“Sagul” for audio-visual media art》는 색의 팔레트를 수직으로 배치한 듯한 독특한 이미지로 시작한다. 푸른색 계열이 지배적이었던 세로선들은 이내 총천연색의 조합으로 바뀌고, 여기에 동반되는 중음역대의 글리치 사운드와 함께 점멸하기를 반복한다. 이 추상 이미지는 색의 조합을 시시각각 바꾸며 점멸속도를 변화시키기도 하고 그 형태를 좁게 또 넓게 변주해나간다. 그러는 가운데 이미지와 소리는 마치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서로 싱크synchronization를 맞춘다. 애초에 지지직거리는 글리치 사운드의 자잘한 진동에 이미지의 움직임이 결합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눈앞에 인지되는 이미지가 ‘가상’인지 ‘실재’인지, 혹은 디지털로만 조작된 ‘2차원 평면’인지 아니면 실제로 존재하는 ‘3차원 형상의 일부’인지 애매모호하다는 점이다. 즉 이 작품은 관객이 지금까지 보아오던 것이 컴퓨터 그래픽이 아니라 놀이공원에서 네온사인을 반짝이며 움직이던 놀이기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품겨 만드는 풀 샷full shot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때마다 직전에 인지했던 시청각적 감각은 다시 미확정의 상태가 된다.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상상됐던 미세한 글리치 사운드 역시 실제 기계의 오류로부터 온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이 역시 ‘출처 있는 소리’와 ‘출처 없는 소리’ 사이를 저울질하게 하며, 그 순간 작품 감상의 재미가 배가된다.

이런 방식으로 이미지와 소리는 경계를 계속해서 넘나드는데, 작품 전체에 대한 지속적이고 강렬한 시청각적 몰입을 한 상태라야만 이를 느낄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다만 이런 ‘실재’에 대한 인식이 작곡가가 이야기하는 제주도의 용암동굴이나 신화, 민담,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까지로는 구체화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찰나의 순간 추상에서 구체로 전이되는 감각은, 그 안에 작곡가가 담고 싶은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이 도사리고 있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1.3. 시청각 오브제로서의 오디오비주얼

줄리아 레지니Giulia Regini의 《“NeOnSound” for audio-visual media art》는 미니멀 미술가인 댄 플래빈Dan Flavin의 작품에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이다. 프레임을 가득 채우는 기하학적 이미지는 그 자체로 시각적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되, 이것은 형형색색으로 점멸하며 소리를 동반한다. 특히 이 작품은 SICMF에서 발표된 7편의 오디오비주얼 작품 중 시각적인 완성도가 가장 높았는데, 다른 작품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출력된 다소 거친 이미지를 연속적으로 제시했다면, 이 작품은 이미지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제작해 각 장면을 구성한 것 같았다. 사운드의 경우 다양한 주파수에서 길게 지속되었다가 사라지고, 간혹 지글거리는 듯한 짜임새로 등장했으며, 낡은 아날로그 TV에서 들어봤을 법한 순수한 화이트 노이즈 글리치를 들려주었다. 이런 가운데 소리를 통한 발전이나 전개, 기승전결의 감각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변화하는 이미지의 형태나 색, 그리고 빛의 움직임에 따라 각 장면의 인상이 결정되었기에, 사실상 소리의 진행은 부차적인 것으로 느껴졌다.

다만 이 작품은 영상과 이미지를 ‘결합’시켰다기보다는, 영상에 소리가 애초부터 동반되어 있었고, 이를 ‘시청각 형상’으로 화면 위에 옮긴 듯한 감각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작품 속 모든 이미지와 소리가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되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는데, 이를테면 1초에 20번 이상 울리는 짧은 소리는 ‘점멸하는’ 영상 위에 지지직거리는 노이즈 형태로 등장한다. 사실상 이런 방식으로 이미지가 소리를 스스로 생성해내는 것이라 상상되었으며, 시각과 청각이 질감이나 등장지점에 있어 서로 일치할 때는 물론이고 일치하지 않을 때에도 이 두 가지 감각이 연관되어 있다고 느껴졌다. 예컨대 이 작품은 ‘시청각 오브제audio-visual object’로 다가왔기에, 마치 미술관에 놓인 조각을 정지된 시간 안에서 감상하듯, 이미지의 형태, 소리의 높낮이 등을 ‘그 자체로’ 음미할 수 있었다.

 

2. 소리의 향연: 테잎 음악

 

SICMF에서 관객을 만난 테잎 음악Tape music은 총 11작품으로 2채널에서부터 8채널까지 다양한 형태였다. 음악이 재생될 때에는 공간 전체가 암전된 가운데 객석 앞 좌우에 놓인 스피커에만 조명이 켜졌는데, 이런 분위기는 마치 기계의 목소리를 듣는 것 같은 묘한 아우라를 뿜어냈다.

테잎 음악 전체는 영상과 결합된 작품이나 퍼포먼스적인 요소가 있던 타 카테고리에 비해 작품 자체의 복잡도가 높았고, 상대적으로 음향의 짜임새 전환이 잦았다. 특히 작품 가운데에서 특정한 음소재를 토대로 작업한 것들이 눈에 띄었다. 이를테면 자라 알리와 다비드 응우옌은 인성人聲을 재료로 삼아 작품을 전개했으며, 어쿠스틱 악기를 녹음하거나 풍경 소리 등 독특한 음향을 주요 소재로 삼은 작품도 있었다.

다만 음소재가 독특한 것과는 별개로, 작품을 전개시키는 방식에 있어 상당수의 작품이 비슷한 흐름을 보여준 것은 아이러니했다. 특히 짧은 길이의 샘플을 활용해서 긴 길이의 사운드로 만드는 경우, 가능한 다양한 기법이 활용됐고 서로 다른 형태의 짜임새를 계속해서 대조시키는 작업이 반복됐다. 반면 몇몇 작품들은 결과물인 ‘사운드 그 자체’가 음향적으로 일관된 톤을 띄고 있었는데, 소리를 조작하는 기법을 제한하거나 결과물로 도출될 사운드스케이프를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이를 구현한 것 같았다. 수없이 많은 음악이 어둠 속에서 울려 퍼졌기에, 오히려 음향 전체가 성격적이고 특징적이었던 이런 후자의 작업이 더 흥미롭게 다가왔다.

2.1. 인성을 활용한 작업들

자라 알리Zara Ali는 본인이 작곡한 4성부 합창음악을 녹음하고 이를 재료로 삼아 《“Red City” for 2-ch tape》를 만들었다. 작품 초반에는 원작의 합창 사운드가 뚜렷하게 제시되지만 다양한 변조를 통해 길이가 늘어나고 또 반복되며, 사운드가 여럿 겹쳐져 본래의 짜임새를 잃어버린다. 더 나아가 녹음된 샘플은 연속적인 주파수의 흐름으로 이뤄진 파열음이나 짧게 반복하는 노이즈처럼 변모되며, 작품이 중후반으로 넘어가면 성악 음악의 녹음에서 유래됐다는 일말의 단서만을 남긴 채 완전히 새로운 음향으로 전환된다. 따라서 이 작품은 ‘녹음된 인성’에 최대한의 조작을 가함으로써 사람의 목소리를 어떤 형태로까지 변형시킬 수 있는지를 실험했다는 느낌을 준다. 다만 하나의 소재를 변조시키고 짜임새를 계속해서 변화시켰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이 본래의 샘플과 큰 연관성이 없어 보였으며, 단지 활용 가능한 모든 기술을 차례로 나열한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자라 알리의 작품이 ‘녹음된 합창’을 토대로 작업된 덕분에 개별 선율이나 음정 등이 분리되지 않고 ‘음향 덩어리’로 다뤄졌던 것에 비해, 다비드 응우옌David Nguyen의 《“Adumbration” for 8-ch tape》은 사람의 말소리를 직접 녹음해 이를 재료로 삼았기에 보다 정교한 방식으로 ‘인성’을 탐색할 수 있었다. 특히 이 작품은 “발음하기 어려운 말들을 ‘밝혀내는’ 일련의 음악적인 희미한 해석”을 의도하는데, 단어를 ‘발음하는’ 현상 자체에 주목하고, 이를 음악적‧음색적으로 풀어낸다. 실제로 작품 안에는 다양한 단어들이 느리게 혹은 빠르게 반복적으로 제시되며, 하나의 소리조각이 다채롭게 변조된다. 따라서 마치 특정 단어의 발음하기를 열렬히 탐색하는 과학자가 된 것처럼, 해당 단어를 일상에서 접하는 것보다 훨씬 더 섬세하게 청취하고 그 사운드 자체에 대면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이 작품은 어쿠스틱 성악 앙상블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인성을 조합하는데 그 방식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이를테면 이 작품에서는 말소리를 드론drone처럼 낮게 지속시키거나, 딸꾹질에 걸린 것처럼 단어의 어미 부분만을 잘라 수없이 반복하거나, 특정 단어를 좌우로 급격하게 패닝Panning하는 등의 효과를 들려줬는데 이는 실제 성악가가 노래를 하는 실연에서는 구현할 수 없는 기술이다.

자라 알리나 다비드 응우옌의 작품 모두 성악음악의 특성 중 하나인 ‘텍스트를 통한 의미의 전달’ 기능을 소멸시키고, 이를 순수한 음향의 일종으로 다룬다. 심지어 단어를 또렷하게 발음하는 경우에도 발음을 구현하는 ‘행위’에 집중함으로써 그 의미를 사라지게 만든다. 다만 이런 작업들이 한국 관객에게는 여전히 ‘외국어’라는 기호로 다가오기에, 얼핏 등장하는 인지 가능한 단어나 문장의 의미가 이 언어의 실 사용자에 비해 그다지 명확하게 인식되지는 않았다. 단어의 파편을 토대로 음악이 진행되는 것과 별개로, 작품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전통적인 음악의 페달 포인트와 유사한 음향이 후면에 깔리며 곡의 ‘마무리’를 암시한다든가, 음소재의 나열을 멈추고 앞서 등장했던 요소를 다시 가져와 빠른 호흡으로 반복함으로써 일종의 ‘코다’와 같은 느낌을 만들어낸 것도 기억에 남는다. 이는 음악이 클라이맥스 이후에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마무리되어야 하는지를 지극히 고전적인 방식으로 전개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아마도 이 작품이 노이즈나 기악적 파편을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니라 ‘성악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었기에 이러한 방향으로 흐르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2. 소리를 조작하는 ‘테크닉’을 보여주는 작업들

전현석의 《“ANATOMY I” for tape》은 피아노라는 악기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소음들, 이를테면 탁탁 거리는 소리, 현을 튕기는 소리, 몸체를 때림으로써 울리는 소리 등을 음악적 재료로 활용한다. 녹음된 자잘한 소리들은 사실상 너무도 짧은 것이 대부분이기에 이것을 여러 개 이어붙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배치해 연속적으로 만들었으며, 이를 반복하고 또 시간적으로 길게 늘임으로써 전체 사운드를 구성했다. 이런 가운데 녹음한 샘플을 ‘날 것’으로 들을 수 있는지의 여부, 샘플에 조작을 가해 음정이 인지되거나 드론 형태로 변했는지의 여부 등에 따라 전반적인 섹션이 구분됐다. 즉 작품 초반에는 짧은 소리들이 정교하고 세밀하게 작업된 콜라주 같은 흐름을 만들었다면, 그 다음 섹션에서는 모든 소리가 연속적이고도 긴 호흡을 갖고 이어졌으며, 다시 건조하고도 파편적인 날것의 소리가 등장했다.

신예훈의 《“풍경 no.2” for 4-ch tape》은 맑은 울림을 내는 ‘풍경’ 소리를 녹음하고 이를 다양한 프로세스로 변조한다. 소리를 길게 늘여 또 다른 금속 악기 ‘정주’와 유사한 긴 잔향을 만들기도, 이런 소리를 여럿 겹쳐 놓아 독특한 질감을 갖는 사운드를 들려주기도 하는 식이다. 전반적으로는 긴 호흡을 갖는 드론 및 기타 음향 모티브가 점진적으로 등장하고 사라지는 진행을 반복했기에 섹션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으며, 계속해서 흘러가는 느낌을 주었다. 작곡가는 “다양하게 [...] 울려 퍼지는 풍경소리가 많은 복을 불러오기를 바라며 작곡하였다”고 언급했는데, 문득 풍경소리가 ‘온화한 소리’ 더 나아가 길흉화복과 연관되어 있는 ‘동양적인 문화’를 어떤 방식으로 기호화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래리 갭Larry Gaab의 《“Friction-Induced Rethink” for tape》은 타악기를 타격하는 소리 등 건조하고 날카로운 음소재를 다양한 방식으로 변조하고 조작한다. 짧은 소리 샘플을 이어 붙여 긴 흐름을 만든다는 점에서 다른 작품들과 유사한 무드를 보여주지만, 소리의 위치를 좌에서 우로, 또 가깝고 멀게 광狂적으로 조절함으로써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모든 소리들이 객석을 둘러싸고 회전하고 있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작곡가는 “다채로운 소리는 파도나 박자와 같이 움직”이며 “다양한 방향으로 원을 그린다”는 설명을 통해 본인의 작업 안에서 소리의 ‘움직임’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데, 실제로 이런 부분이 또렷하게 청취됐다. 타악기 앙상블로 연주하는 듯한 어쿠스틱한 소리를 들려주는 부분과, 전자적인 사운드가 주가 되는 부분이 번갈아 등장했는데 이 두 부류의 소리 색깔이 크게 차이가 났던 점도 기억에 남는다.

마테오 툰도Matteo Tundo의 《“FRANTUMI” for 4-ch tape》에서도 파편과 같이 날카로운 소리 조각이 좌우 스테레오를 넘어 풍부한 공간감을 형성하며 계속해서 움직였다. 특히 작품 안에는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건조한 소음들이 활용됐고, 전자적으로 합성된 배음이 맥박과 같은 진동을 내며 등장했다. 전반적으로는 파편적인 소리와 연속적인 소리, 녹음된 소리와 합성된 소리, 음정이나 배음을 느낄 수 있는 소리와 소음처럼 들리는 소리, 펄스가 있는 소리와 그렇지 않은 소리 등 서로 뚜렷하게 구분되는 음향들이 번갈아가며 섹션을 이뤘다. 그리고 곡 중반의 작은 클라이맥스를 향해 하나의 프로세스를 진행시켰으며 정점에 이르면 다른 유형의 음향으로 전환되기를 반복했다. 다만 다양한 소리 조각들이 다채로운 섹션을 만드는 것과 별개로 곡 전체를 관통하는 음악적 아이디어나 고유의 색깔이 애매모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스토퍼 푸베이Christopher Poovey의 《“Forged Effervescence” for 4-ch tape》은 디스토션 사운드 등 전자적으로 합성된 거친 질감의 소리를 중심으로 한다. 짧은 길이의 샘플이 부각되는 부분에서는 32비트 혹은 16비트의 잘게 쪼개지는 리듬을 딱딱한 금속에 대고 치는 듯한 소리를 만들어내기도 했으며, 금속 타악기가 다수 세팅된 드럼세트를 연주하는 듯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섹션도 인상적이었다. 녹음된 소리들은 변조된 소리와 융합되어 점점 복잡한 사운드를 만들었고, 다양한 방식으로 샘플을 변형시키며 보다 긴 호흡의 음향을 구성해 나갔다. 특히 어쿠스틱으로 연주하는 드럼에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동반된 것 같은 음향이 기억에 남는다.

니콜라 후모 프래테자니Nicola Fumo Frattegiani의 《“Polvere nera” for 2-ch tape》은 소리가 모여서 만드는 세계나 시간의 전개 방향이 애매모호했으며, 재료로 삼은 샘플의 근원이나 출처를 추측하기 어려웠던 작품이다. 어쿠스틱 악기의 녹음을 토대로 다양한 방식의 변조와 합성을 행했지만, 본래의 악기 소리는 이따금씩 등장했던 타악기를 제외하고는 확인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작품 전체는 대조되는 음향을 중심으로 여러 섹션을 전환시켰기에, 시간의 흐름에 따른 기승전결이나 음향의 상징성 등도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어떤 측면으로는 매 순간 절대적인 현존現存으로만 의미가 있는 극단적으로 추상적인 작업으로 다가왔다.

2.3. 소리로 ‘세계’를 만드는 작업들

에릭 데얼리Erik Deerly의 《“A Sense of Place” for 2-ch tape》는 본래 실험영화에 동반됐던 음악으로, 영상과 함께 작업된 음악의 ‘소리만을’ 듣는 경험을 제공한다. 이따금 틱 노이즈 혹은 볼륨의 왜곡으로 인한 정전기와 같은 노이즈가 계속해서 등장했는데 특정한 질감의 사운드를 구현하고자 일부러 의도한 것인지, 단지 음원을 다룰 때 오류가 생겨 만들어진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SICMF에서 들었던 모든 테잎 음악 가운데에서 샘플의 전자적 조작 방식이 손에 꼽힐 정도로 평이했고, 눈에 띄는 짜임새의 전환도 없었다. 자연의 소리를 녹음하고 그 위에 명상적인 분위기의 드론을 지속시킨 것, 몇 개의 드론과 특정 음고의 주파수를 결합시킨 것, 그리고 녹음된 자연의 소리 등이 번갈아가며 반복적으로 제시됐다. 작품 속 여백이 인상적이었으며, 다양한 샘플이 서로 겹쳐지면서 도입되고 서서히 사라지곤 했다. 작품 안에 판별하고 기억해야할 음악적 이벤트의 양이 극히 적었다는 점에서 SICMF에서 공연된 다른 테잎 음악과는 큰 차이가 있었으며, 순수음악이라기 보다는 상업적인 용도의 ‘명상음악’을 연상시켰다.

강중훈의 《“I Want My Ears Feel Sweet” for tape》은 독특한 음고와 주기를 갖는 맹꽁이의 집단적 울음소리를 녹음하고 이를 재료로 삼아 작품을 전개했다. 작품 안에는 플랜저Flanger 이펙터 효과가 적용된 것 같은 사운드가 위상을 서서히 이동시키듯 음향 전체를 전면으로 등장시켰다가 다시 후면으로 밀어내기를 반복했다. 또한 불협화음을 연주하는 전자오르간에 디스토션 이펙터를 건 것처럼, 화려한 전자음의 지속이 마치 글리산도 밸브를 올리거나 내리듯 다양한 음높이를 오가며 제시됐다. 동시에 이런 소리의 배경으로는 맹꽁이 소리를 변형시켜 만든 사운드가 빠르게 또 느리게, 그리고 음높이를 바꿔가며 등장했다. 특히 추상적인 소리의 반복이었던 것 같은 음향은 어느 순간 구체적인 대상의 재현, 즉 ‘맹꽁이 소리’나 자연의 소리로 들리기 시작했는데, 그 전환의 순간이 흥미로웠다. 마치 ‘인공’과 ‘자연’이 교차되거나 진짜였던 것과 가짜였던 것이 혼동되듯, 계속해서 듣고 있던 특정한 소리가 별안간 다르게 다가왔다. 그리고 이런 맹꽁이 소리는 어느 지점에 이르러 다시 소음과 유사한 것으로 인식되며 사라졌다. 전반적으로는 뚜렷한 성격을 갖는 단일 음소재와 제한된 변조기법을 통해 일관된 사운드를 구성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무엇보다도 맹공이로 가득 찬 새로운 ‘세계’를 엿본 듯한 느낌이 근사한 작품이었다.

 

3. 전자음향과 함께 연주하기: 악기와 일렉트로닉스

 

악기와 일렉트로닉스Electro-acoustic music with instruments 카테고리에는 어쿠스틱 악기 연주자가 무대에 오른 가운데 미리 녹음된 전자음향이 재생됐다. 이 부류의 음악들은 대게 악기와 테잎 음악의 대등한 이중주, 혹은 전자음향이 라이브 음악을 보조하는 구도로 상상되는데, 실제로 이와 같은 방식으로 구성된 작품이 여럿 있었다. 특히 후자는 독주 타악기 주자가 등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연주자는 리드미컬한 패시지를 다룬다기보다는 지극히 음향적인 측면에서 타악기를 두드리고 문지르며 사운드 자체를 만들어나갔다.

악기와 전자음향이 함께 어우러져 어쿠스틱 악기의 영역과 한계를 확장시킨 작품도 있었다. 2021 SICMF에서 발표된 이런 부류의 작업은 공교롭게도 각각 플루트(심채윤)와 색소폰(부다혜)을 활용하는 관악기 곡이었다. 아마도 인간의 숨결을 불어넣어 소리를 내고, 특정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유독 신체능력이 중요하기에, 여기에 테잎 음악으로 상징되는 테크놀로지를 접목시켜 인간의 한계를 확장시키는 모습이 유독 강렬하게 다가왔다.

한편 아직은 구현되지 않은 신기술을 인간 연주자가 퍼포먼스 하는 작품도 있었다. 이런 작업들은 전자음악을 다루는 페스티벌의 장르적 성격 보다는 ‘퍼포먼스’라는 형태로 제시되는 공연예술 전반의 속성을 더 강하게 드러냈다. 사실상 연주자가 특정한 방식으로 무언가를 무대 위에서 제시할 때, 관객들은 겉으로 드러난 ‘효과’만을 경이롭게 관람할 뿐 그것의 작동원리까지는 알지 못한다. 따라서 무대를 바라보며 21세기 더 나아가 22세기를 지배할 기술을 가늠해보는 일은 충분히 즐거웠으며, 어떤 측면으로는 기술로 뒤덮인 SICMF에 일종의 위트를 던지는 것 같았다.

3.1. 연주자와 대등한 주체로 선 전자음향

카일 쇼우Kyle Shaw의 《“탐부Tamboo” for tenor steel pan & electronics》는 SICMF에서 연주됐던 타악기와 전자음향의 조합 중에서 전자음향 파트가 가장 돋보이던 작품이었다. 기본적으로 타격attack과 사그라듦decay, 그리고 지속sustain과 사라짐release으로 이어지는 소리의 흐름 가운데 각기 다른 단계에 연주자와 전자음향이 번갈아 개입하는 모습이 명확했다. 이를테면 연주자가 타격을 가하면 지속 부분에 전자음향이 등장하거나, 그 소리가 사라지는 부분에 전자음향의 역할이 극대화되는 식이다. 특히 연주자가 무대 앞 하나의 ‘지점’에 서서 소리를 만들어냈다면, 여기에 결합되는 전자음향은 다양한 방향에서 울림으로써 음원의 멀고 가까움은 물론 소리의 움직임을 다양한 방향에서 표현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소리의 공간감이 인간 연주자와 구분되는 전자음향 특유의 아우라를 만들어냈다. 이는 실제 연주자의 소리가 전자음향을 압도했던 다른 작품과 비교되는 부분이었다. 또한 무대에서 연주된 타악기 ‘테너 스틸 팬tenor steel pan’은 어느 정도의 음정을 갖되, 그 질감이 다소 단조롭고 잔향은 빈약하다. 반대로 이에 결합된 전자음향은 연속적이며 넓은 스펙트럼의 사운드를 갖고 있었기에, 무대 위 타악기 소리와 대조를 이루고 단출한 타악기의 울림을 확장시켰다. 이 지점에서 관객은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광대한 소리의 흐름을 체험하며 전자음향과 연주자가 함께 만들어낸 마법 같은 시간을 음미할 수 있었다.

전자음악과 피아노의 2중주처럼 보였던 오세린의 《“Figuration” for piano & electronics》는 전통적인 방식의 피아노 연주 기법을 활용하되 음악적 ‘스타일’이 다른 열 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SICMF에서는 그 중 네 악장이 연주되었는데, 3악장에서는 고전-낭만주의 피아노 소품을 연상시키는 피아노 연주와 드론 위주의 연속적인 전자음향이 어우러졌으며, 이어 연주된 악장에서는 프리페어드 피아노로 만들어낸 듯한 독특한 음색의 메트릭한 모티브가 전자음향으로 제시되었고, 여기에 피아니스트가 유사한 주법으로 구성된 패시지를 연주했다. 이 경우 피아노와 전자음향은 음색적 차이를 유지하되 사실상 대등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이어지는 악장에서는 고전-낭만시대 풍의 파토스로 가득 찬 프레이즈가 주크박스를 틀어 놓은 것처럼 차례로 등장했는데, 여기에 피아니스트가 대응해 연주를 이어갔다.

마지막 악장에서는 전자적으로 음색이 변형된 피아노 소리가 전자음향으로 먼저 제시되고 이를 받아 피아니스트가 연주를 하고 다시 전자음향이 등장하는 식으로 작품이 진행됐다. 이 경우 전자음향으로 제시되는 피아노 파트는 특정 패시지를 ‘인간이 연주할 수 없는 경지로’ 극히 빠르게 제시한다든가, 너무나 많은 음들을 가벼운 필치로 쏟아내어 ‘기계의 연주’라는 느낌을 만들어냈다. 이런 방식으로 피아노 음악 ‘스타일’의 다양한 유형을 실험하는 작품 의도 안에서 ‘기계의 연주 스타일’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었다. 다만 다양하게 제시됐던 패시지들이 음계의 반복이나 관습적인 프레이즈의 병렬적인 제시에 머물렀기에 음악 자체는 단조로운 느낌을 주었다.

3.2. 중심으로서의 연주자와 보조로서의 전자음향

SICMF의 몇몇 작품은 실연이 만들어내는 음향의 정교함이 워낙 크게 다가온 나머지, 이에 동반된 전자음향의 비중이나 그 역할이 상대적으로 축소되어 보이는 경우가 있었다. 이런 작품 안에서 전자음향은 단지 ‘전자적인 소리’를 낸다는 음향적 속성만을 갖고 있었을 뿐, 그 이외의 매체적 특이성이나 기술을 돋보이게 할 만한 참신한 아이디어 등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이는 20세기 초반 전자음향이 처음 등장했을 때 부각되었을 어쿠스틱 악기와는 다른 음향적 특이성이 21세기의 작품 안에서도 여전히 강조되는 모습으로 볼 수 있다.

비브라폰 연주와 함께 미리 녹음된 테잎 음악을 재생했던 마라 헬무스Mara Helmuth의 《“Onsen: Hot Springs” for vibraphone & electronics》는 전자음향의 역할과 존재론을 고민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비브라폰을 연주하는 연주자의 퍼포먼스와 아우라가 워낙 컸기에, 여기에 동반되는 테잎 음악은 음향적으로나 음악적으로 다소 빈약한 것으로 인식됐으며, 이 작품 안에서 굳이 ‘비브라폰과 전자음향’이라는 구도를 선택한 이유가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아마도 두 명의 타악기 주자가 무대에 올라 비브라폰 한 대와 또 다른 유형의 타악기를 연주했으면 더 효과적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으며, 전자음악 파트가 음향적 측면에 집중하고 있는지, 아니면 리듬적‧짜임새적으로 실연악기와 특정한 맥락을 구성하고자 한 건지도 애매모호했다. 작곡가는 “2018년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캠퍼스에서 만들어진 여러 메탈 조각의 오디오 샘플에서 영감을 받았”고 특히 “풍부한 음색과 함께 리드믹한 이 사운드는 전자음악 파트를 위해 샘플들에 적용된 DSP로 생성되었다”고 언급한 바 있는데, 이 의도대로라면 전자적으로 구성된 ‘음향’ 그 자체가 중요하게 다뤄진 셈이다. 하지만 비브라폰 연주자가 말렛을 다루는 방식, 타격이 만드는 그루브, 미세하게 강약을 조절하는 테크닉 등이 워낙 섬세한 사운드를 생성했기에, 전자음향 속 음색의 다양성이나 특이성은 실제 무대 위에서 그만큼의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유정은 《“벌들이 잠에서 깨어날 때Wenn Bienen aufwachen; When bees wake up” for percussion and tape》에서 “자연적인 소리들이 전자적으로 들렸던” 경험을 언급하며 “자연적인 것과 전자적인 것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여러 지점들”에 대한 고민을 작품 안에 풀어냈다. 하지만 쇠나 나무, 종이를 비롯한 다채로운 울림체를 각기 다른 말렛과 주법으로 다룸으로써 생성해 낸 라이브 사운드의 풍부함은, 전자음향과 그 정도를 견주기 힘들 정도였다. 즉 이 작품 안에서도 전자음향은 어쿠스틱 음향과 대조되거나 대등하게 인식되지 않았으며, 가끔 밀물처럼 들어왔다 다시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마는 부수적인 형태로 청취됐다. 더군다나 무대에 선 타악기 주자는 ‘퍼포머’로서의 존재감과 아우라를 뿜어냈기에, 기술에 의지해 유령처럼 떠도는 전자음향은 그 음향의 정교함 뿐 아니라 존재감의 측면에서도 실연주자가 만들어내는 울림에 이르지 못했다.

3.3. 전자음향을 통한 어쿠스틱 악기의 확장

부다혜의 《“Solitude première” for tenor saxophone and electronics》에서는 테너 색소폰 주자가 다채로운 주법으로 악기 고유의 특색을 드러내는 모티브를 연주하면, 전자음향은 이런 소리를 증폭하거나 길게 늘이고, 앞서 나온 소리를 변조해서 다시 들려주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시킨다. 마치 연주자가 멋들어지게 한 곡조를 뽑으면, 그 뒤로 수많은 그림자와 잔향이 남아 이 연주를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것처럼 음악이 진행됐다. 이 지점에서 전자음향의 역할은 어쿠스틱 악기의 확장이라는 맥락에서 설명된다. 특히 지속음 위주의 전자음향이 색소폰 소리와 결합할 때면, 사람의 숨소리로 연주되는 관악기의 본질적인 발현방식이 기술로 인해 극도로 증강되는 느낌을 주었다.

심채윤의 《“Shattered Mirror” for Flute and electronics》에서는 플루트 소리를 변형시킨 음향에서부터 키클릭key click 사운드를 비롯한 분절적이고도 짧은 음가의 수많은 소리가 전자적으로 제시됨으로써 그 자체로 아날로그 플루트와는 구분되는 독특한 성부를 구성한다. 특히 전자음향은 플루트 연주자와 대등한 무게감을 갖고 대조되며, 동시에 연주자의 소리를 반영하고 확장한다. 무엇보다도 아날로그 플루트의 다양한 프레이즈들이 전자음향과 긴장감 있게 맞물렸는데, 각이 진 듯 도약이 많고 날카로운 뉘앙스를 갖는 주요 선율모티브가 인상적이었다. 다만 음악의 전개 방식이나 클라이맥스의 설정, 성부의 구성 등이 지극히 전통적인 악곡의 흐름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다.

3.4. 아직은 구현되지 않은 기술을 퍼포먼스하기

아직은 구현되지 않은 극히 복잡한 테크놀로지를 인간 연주자의 퍼포먼스를 통해 무대 위에 불러 낸 작품들이 있었다. ‘인공지능’의 자동연주나 ‘보이지 않는 악기’ 등 고도의 기술을 관객이 체험할 수 있게 하되, 이런 기술은 실제로는 사용되지 않았다. 사실상 무대 위에 오른 모든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관객에게 환상의 세계를 제시하고자 하는 욕망이 잠재되어 있는 바, 이런 속성을 인간 연주자가 기술을 중심에 두고 부각시킨 작업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전자음악’이라는 장르가 내포하고 있는 테크노유토피아니즘Technological utopianism적인 특성을 미래의 기술을 퍼포먼스하며 보여줬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남상봉의 《“IAIAI” for piano & electronics》는 바이엘F. Beyer의 연습곡에서 들어봤음직한 단순한 모티브를 피아니스트가 반복하며 시작한다. 차츰 여기에 음이 부가되고, 어느 시점을 지나면 극히 단조롭던 처음의 모티브는 점차 복잡해져 바르톡B. Bartok의 미크로코스모스Mikrokosmos를 연상시키는 음향 덩어리로 변모한다. 기법적으로는 미니멀 음악minimal music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선법 위주의 음소재, 점진적으로 음과 성부를 추가해나가 짜임새가 두터워지는 부가적 프로세스, 단순한 모티브를 계속해서 반복하는 구조 등이 사용됐다. 결국 작품 중반에 이르면 음정들 간의 반복과 대조, 역행 등이 두드러진 가운데 8분음표의 펄스를 유지하는 음악이 구현되는데, 이런 과정 안에서 특정한 패턴의 반복적인 모티브가 전자음향을 통해 피아노 연주와 맞물려 재생된다.

이 경우 전자음향의 모티브는 “인공지능이 스스로 피아니스트의 입력 값을 토대로” 자신의 연주 지점과 음고를 설정하여 등장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인공지능 기술을 실제로 구현한 것은 아니지만, 인공지능이 실연을 학습하고 이를 토대로 작품 안에 성부를 추가해 나가는 광경을 ‘작곡가가’ 대신 상상해 집어넣은 것이다. 그렇게 전자음향은 연주자가 직전에 들려준 적이 있는 프레이즈를 일종의 화성적 배경으로 통합시켜 넣음으로써 ‘인간’과 ‘인공지능’이 합주를 하는 듯한 느낌을 만들어낸다.

조아 페드로 올리베이라João Pedro Oliveira의 《“Kontrol” for 1 performer & electronics》는 전자음향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타악기 연주자 문지승이 등장해 ‘가상의’ 타악기를 연주한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것은 실제 무대 위의 타악기 주자는 ‘안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화려한 팔 동작과 몸짓을 보여주지만, 연주자가 ‘타격’함으로써 소리를 내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사실 관객의 입장에서는 타악기 연주자의 손목 스냅이나 말렛의 머리 부분의 움직임이 전자음향과 정확히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연주자의 몸이나 말렛에 센서가 부착되어 있거나, 보이지 않는 악기가 신호를 입력 받는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장치는 없었고, 모든 퍼포먼스는 연주자가 전자음향 속 타격점을 전부 암기한 상태에서 이를 몸짓으로 연기하는 것이었다. 즉 연주자는 말렛만을 들고 나와 이것을 ‘허공에’ 휘두르며 타악기를 연주하는 퍼포먼스를 하되, 이런 동작이 너무도 실제와 같아 관객들은 무대 위에 구현되어있을 ‘미지의 기술’을 상상하게 된다. 전자음향은 드럼세트의 소리나 울림이 거의 없는 타악기 혹은 금속 타악기 소리 등을 이펙터로 변형해서 들려준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팔을 휘두를 때 나는 효과음을 제외하면 특정한 악기의 연주모습을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이었다. 즉 무대에 울려 퍼진 대부분의 전자음향은 그 소리의 발현방식과 출처를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유형으로 구성되었다. 이 지점에서 상상 속의 신기술이 구현하고 있는 음악이 100년 전에도 익숙하게 들었던 드럼세트 연주나 스네어 드럼의 연타, 익숙한 박자 등에 한정되어야만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로 전에 본적 없는 기법과 소리를 낸다면 이것이 ‘타악기 연주’라는 속성조차 잃어버리게 될 테니, ‘익숙한 관습’을 가지고 ‘새로운 기술’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4. 라이브란 무엇인가?: 실시간 일렉트로 어쿠스틱 음악

 

SICMF에서 관객을 만난 마지막 카테고리는 실시간 일렉트로 어쿠스틱 음악Live electro-acoustic music으로서, 무대 위에서 생성되는 소리나 동작을 센서를 통해 프로그램으로 보낸 후, 실시간으로 그 반응을 출력하여 전체 무대를 구성한다. 기술적으로 품이 가장 많이 들고, 현장의 상황에 따라 결과물의 질이 달라질 수 있는 독특한 카테고리로서 총 네 편의 작품이 관객을 만났다.

이 부류의 작업은 각기 다른 작업형태를 보여줬기에, 이에 따르는 미학적 관점이나 고민들도 천차만별이었다. 그럼에도 네 작품 모두 ‘라이브 퍼포먼스란 무엇인가?’를 숙고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각각의 작품은 ‘라이브 일렉트로닉스’라는 매개를 그 자체로 의미화하거나(유태선), 파편적인 요소를 ‘퍼포먼스’라는 장 안에 펼쳐놓거나(장동인), 문자 그대로 ‘라이브 클럽’에 온 것과 같은 무드를 만들어냈다(데쟈). 더 나아가 현전성現前性의 조건인 ‘복제 불가능성’과 ‘재생 불가능성’을 다시 고민하게 했다(임승혁). 모든 작품의 결이 달랐지만, 테잎 음악이나 오디오비주얼 작업에 비해 유독 관객의 강한 집중력을 이끌어 낸 순간이 많았으며, 무대 자체가 흥미로운 형태로 구성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4.1. 퍼포먼스를 통한 비구체적 재현의 아이러니

장동인의 《“이곳을 통하여HIERDURCH; Through here” for live-electronics》는 전통예술에서 가져온 모티브를 활용했다는 점과 두 명의 여성연주자를 통해 퍼포먼스적인 측면을 작품 안에 포함시켰다는 점이 눈에 띄는 작품이었다. 무대 오른편에는 다양한 타악기를 조작하기 위한 테이블이 설치됐는데, 그 위에는 동양적인 패턴이 그려진 테이블보가 덮여 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 앞에 앉은 연주자는 유리 보울에 물을 떨어뜨리거나 정주 등을 활용해 소리를 만들어냈고, 이런 음향이 미리 제작된 유사한 질감의 전자음향과 섞여 전체 사운드를 구성했다. 한편 무대 중앙에는 남색 한복을 입고 맨발로 무대를 거니는 두 명의 여성 연주자가 있었다. 이들은 움직임의 입력 값을 받아들이는 센서를 손에 장착하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부채 혹은 팔을 흔들며 무대 위를 돌아다니면 거친 바람소리가 전자적으로 생성됐다. 작곡가는 부채를 휘두르는 손짓이나 기타 동작으로 가시화되는 ‘움직임’을 판소리의 구성요소 중 하나인 ‘발림’으로 보았고, 이 움직임을 전자음향으로 전환시켰다.

작품 초중반에 등장하는 가장 중요한 음향 중 하나로 연주자가 부는 전통악기 ‘훗’이 있었다. 오카리나와 유사한 방식으로 소리를 내는 악기로, 연주자가 소리낸 음고가 실시간으로 변형되고 이것이 본래의 소리와 결합되어 복잡한 파형을 갖는 것으로 청취됐다. 이외에도 윈드차임, 바람 소리, 풍경이 바람에 흩날리는 소리 등이 전자음향으로 생성되어 사운드의 후면을 채웠다. 한편, 작품이 중반 이상을 넘어가면서부터 노래인 듯 읊조림인 듯 그 뜻을 알 수 없는 연주자의 속삭임이 전자적으로 증폭되어 수없이 많은 소리의 레이어를 만들어냈다. 동시에 무대의 조명이 어두워지고 붉은 빛을 내는 연꽃 오브제가 점멸하기 시작했다. 이 지점에 이르면 이런 모든 시각적‧청각적 요소들은 한데 어우러져 묘한 무속적巫俗的 분위기와 공간감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런 ‘무속적’이라는 인식을 통해 작품 속 ‘심청이’가 위로를 받는 매커니즘이 이해된다.

예컨대 이 작품은 판소리 ‘심청가’를 모티브로 하고 있으며, “비극적 사건들을 겪어낸 그녀가 인간세상으로 돌아가기 전 어머니를 만나 위로를 얻는 것”을 표현하는데, 이런 의도가 일종의 디지털 굿을 통해 심청의 한풀이를 도와주는 것 같은 퍼포먼스로 구현된다. 주목할 것은 이 작품이 모호한 재현방식을 택했으며 대상을 비구체적으로 표현한 탓에 이러한 한풀이의 ‘뉘앙스’만을 파편적으로 제시한다는 점이다. 이 안에서 모든 음향과 오브제는 결국 ‘위로’라는 관념을 구성하기 위한 요소들일 뿐 무언가 구체적인 의미를 전달하기에는 애매모호한 상태다. 즉 작품 안에 등장하는 수많은 소리들이나 무대 위에 한복을 차려입은 두 명의 여성연주자, 부채를 비롯한 동양풍 소품들은 모두 합해져 ‘동양풍 무드’ 만을 뭉뚱그릴 뿐 ‘심청가’를 떠올리게 하는 맥락이나 텍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여기에는 아이러니가 있다. 이와 같은 비구체성은 이 작품이 ‘동양적 모티브’를 거칠게 나열해 그 ‘분위기’만을 착취하는 오리엔탈리즘적인 혐의를 부가한다. 하지만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재현’을 행하게 되면 이 작품은 정말로 ‘창작’ 씻김굿을 연행하는 것 이외의 어떠한 돌파구가 존재할 수 있을까?

4.2. 복제‧재생의 순환과 라이브니스

임승혁의 《“짧아짐 V” for violin & live audio-visual media》는 독주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를 하면 그 소리가 프로그램을 거쳐 변형된 채 실연과 동시에 재생되며, 무대 뒤로는 연주자를 녹화한 영상이 실시간으로 상연된다. 작품 안에 등장하는 전자음악적 조작은 딜레이Delay를 중심으로 하는데, 한 명의 연주자가 낸 소리는 딜레이를 거쳐 시차를 두고 재생되되 뒤따르는 소리의 출현 간격, 음향의 변조 여부, 연이어 등장하는 성부의 개수 등이 변형되어 풍부한 음향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바이올린 실연과 그 뒤를 따르는 음향의 관계는 주선율과 그 성부의 모방으로 청취되거나, 대조적인 모티브의 겹침으로, 더 나아가 돌림노래와 같은 폴리포니 사운드로 인지된다. 또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무대 왼편에 서 있다면, 딜레이를 거친 소리는 오른편에서 들려오거나 객석의 구석에서부터 소리나는 것과 같은 공간적 효과를 만들어낸다.

한편 이 작품에서는 관객이 작품 속 선율의 변형이나 반복, 성부의 구성, 짜임새의 레이어 등을 투명하게 청취할 수 있는데, 이와 같은 ‘청취 가능한 구조audible structure’는 연주자의 신체, 무대 뒤에 투사되는 이미지, 실연되는 소리, 전자적으로 조작된 소리 등 무대를 이루는 네 가지 요소를 명확하게 인식함으로써 가능해진다. 이를테면 연주자는 스피카토, 강한 비브라토, 콜 레그뇨 바투토col legno battuto, 브릿지 위에서 소리내기 등 음향적‧시각적으로 뚜렷하게 구분되는 연주 방식을 여럿 번갈아가며 들려준다. 그리고 이러한 기법은 시차와 그 잔향을 다채롭게 설정한 딜레이 효과와 결합된다. 예컨대 무대 위의 바이올리니스트는 현을 두드리고 있지만 실제 관객의 귀에는 현을 강하게 긋는 소리가 겹쳐 들리는데, 이는 ‘현재 연주되는 소리’와 ‘직전에 연주됐던 소리’를 명확히 구분하게 한다. 또한 고음역대에 미세한 노이즈를 삽입하거나 잔향을 덧입히는 등 그 음정이나 기법을 분간할 수 있는 수준에서 음향을 변조했기에, 앞서 나왔던 바이올린의 모티브를 기억하고 그것의 변형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이 주로 사용하고 있는 ‘딜레이’라는 기술에 관한 것이다. 사실상 딜레이는 소리를 순간적으로 ‘저장’하고 이것을 다시 ‘재생’하는 기술로, “공연의 유일한 생명은 현재”에 있으며, “공연은 저장되고, 녹화되고, 기록될 수 없으며, 반복적인 재현representations of representations의 순환 체계에 참여할 수 없다”고 정의되는 공연예술의 현전성liveness에 완전히 배치된다. 이런 상황에서 소리의 순간적인 저장과 복제에 둘러싸인 바이올리니스트의 ‘라이브 무대’는, 그 자체로 ‘라이브니스’를 만들어내는 것인지 아니면 복제와 재생의 순환 안에서 라이브니스를 ‘퍼포먼스’하는 것인지, 라이브니스를 ‘전복’시키는 것인지에 대한 애매모호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어디까지가 ‘실연’이고 어디부터가 ‘녹화된 것’인가라는 질문을 넘어, 어디까지가 ‘실재’이고 어디부터 ‘가상’인지, 그리고 우리에게 쏟아져 들어오는 수많은 시청각 정보의 홍수 중 ‘실시간’이라는 속성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4.3. 그리고 남은 이야기

유태선의 《“Reflections of the Ego” for clarinet and live electronics》는 마치 클라리넷으로 하모니카를 불 듯 한 번에 여러 음고를 동시에 소리내는 멀티포닉 사운드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토록 다채로운 소리를 정말 한 명의 연주자가 만들어내는지 궁금해지려는 찰나, 무대 위 사운드가 프로그램을 거쳐 나온 자잘한 트레몰로 혹은 비브라토와 함께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실연과 밀착되어 등장하는 이런 실시간 조작은 연주자와 전자음향을 2중주와 같은 형태로 보이게 만든다기보다는, 연주자를 중심에 둔 채 그의 소리를 기묘한 방식으로 증폭하며 마법 같은 잠재력을 가진 것으로 만든다. 실연의 표현 가능성을 보좌하는 방식으로 ‘라이브 일렉트로닉’이 활용되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작곡가가 의도했던 ‘내안內眼’이라는 작품의 아이디어가 설득력을 갖는다.

‘내안’은 빛이 없는 곳에서는 눈 안쪽에서 스스로 빛이 쏟아져 나온다는 개념으로, 기대하고 예상했던 개체의 능력을 뛰어넘는 감각을 의미한다. 즉 이 작품에서는 ‘내안’이라는 아이디어가 ‘악기와 라이브 일렉트로닉스’라는 악기와 기술의 결합방식으로 의미화되고 있으며, 이런 맥락에서 클라리넷 연주자의 행위와 그에 뒤따르는 소리 형태의 다변화를 이해할 수 있다. 클라리넷의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감각이 전자음향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다만,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어쿠스틱 악기의 확장’을 보여준 작품이 ‘악기와 일렉트로닉스’ 파트에 여럿 있었던 것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객석에 앉은 관객의 입장에서 ‘실시간 조작’이라는 기술적 난해함 없이도 유사한 감상이 가능하다고 가정했을 때, 고도의 기술을 이용해 소리를 실시간으로 조작하면서 얻게 되는 퍼포먼스적‧음악적 이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고민해 봐야할 것 같았다.

데쟈(원성준)의 《“Short & Long & Short” for modular synthesizer》는 대중음악과 맞닿아 있는 작품으로, 작곡가이자 퍼포머가 무대에 직접 올라 모듈러 신디사이저를 조작하며 즉흥연주를 행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작품 초반에는 극히 건조한 짧은 길이의 비트를 등장시키고 그 위에 사운드의 레이어를 쌓아가면서 점진적으로 음향과 리듬이 복잡해지는 프로세스를 보여줬고, 어느 지점에 이르러서는 여태까지 쌓아올린 레이어를 삭제하고 다시 기초적인 리듬에서부터 또 다른 프로세스를 시작했다. 여러 차례 소리를 쌓고 또 허물면서 음악 전체는 메타적인 클라이맥스로 진행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럼에도 리듬의 복잡성이나 음향의 새로움 등이 더 이상 과격해지지는 않았기에 중후반에는 곡 초반에 느껴졌던 기대감이 다소 감소하는 느낌도 들었다. 또한 이 작품은 SICMF에서 발표된 다른 작품과는 음악적 결이 달랐기에, 페스티벌 전체가 지향하는 음악적 스타일이나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2021 SICMF에서 발표된 작품 중 메트릭한 짜임새의 음악, 특히 또렷한 비트를 가진 음악은 전무했기에, 이 작품은 음악회의 분위기를 환기시켰고 서늘한 어둠 속에 앉아 실험실의 과학자처럼 앞을 응시하던 ‘엘리트 청중’에게 어느 정도의 숨 쉴 틈을 만들어주었다. 음악회에 온 청중에게 감상의 순수한 재미를 더하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이와 같은 측면은 간과해서는 안 될 사항으로, SICMF가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하는 냉혹한 분위기를 추구한다 할지라도 결국 페스티벌을 찾아온 이들에게 그들의 발걸음에 보답하는 음악회의 ‘즐거움’을 안겨주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글을 마치며

 

본 글은 SICMF에서 발표된 서른 작품을 매체에 따라 총 네 가지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각 부류에 속한 작품들이 갖고 있는 음악적 특성과 미학을 고찰하였다. 보다 구체적으로 첫째, 오디오비주얼 미디어아트는 테잎 음악에 비해 비교적 음악적 정보량이 적었으며, 이미지의 형태에 따라 작품 전체의 성격이 규정되었다. 그 중 글리치 기법을 이용하여 가상과 실재를 넘나드는 감각을 만들어낸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둘째, 테잎 음악의 경우 짧은 샘플로 긴 흐름을 만드는 작업, 인성 등 독특한 음소재를 활용하여 작품 전체를 구성한 작업이 많았다. 특히 상당수의 작곡가들이 샘플을 화려하게 조작하며 고도의 기술을 보여줬지만 결과적으로는 유사한 흐름을 갖는 작품을 만들어 낸 경우가 많았다. 오히려 단일한 음색을 기반으로 샘플의 변형 방식을 제한한 경우가 더 흥미로웠다. 셋째, 악기와 일렉트로닉스는 악기와 전자음향이 서로 대등한 이중주를 이루거나 악기의 보조로 전자음향이 사용되는 것을 넘어 다양한 구도를 보여줬다. 특히 어쿠스틱 악기의 영역과 한계를 전자음향이 확장하거나, 아직은 구현되지 않은 기술을 인간 연주자가 퍼포먼스 하는 작품이 눈에 띄었다. 넷째, 실시간 일렉트로 어쿠스틱 음악 카테고리에서는 ‘퍼포먼스’에 대한 다양한 미학적 논의를 숙고해볼 수 있었다. 특히 파편적인 재료를 ‘퍼포먼스’라는 장 안에 펼쳐놓은 작품, 복제 및 재생기술을 활용하면서 현장의 ‘라이브니스’를 보여준 작품이 기억에 남았다.

이처럼 3일에 걸쳐 열린 2021 SICMF는 국내에서 자주 개최되는 작곡 동인 위주의 음악회나 전형적인 아카데미 기반의 현대음악제와는 달리 동시대 전자음악의 흐름을 다각도에서 보여주는 동시에, 해당 음악을 작곡하는 전세계적인 추세를 조망할 수 있게 해 주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덧붙여 이 페스티벌이 여러 해에 걸쳐 작품 공모 카테고리를 조금씩 수정한다든가, 매해 프로그램의 구성방식을 변주하는 점도 긍정적으로 보인다. 관객의 반응과 매체의 발전 양상을 미세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런 모든 측면은 SICMF가 단지 허울뿐인 페스티벌이 아니라 작업자와 연구자, 관객 그리고 동시대의 기술 및 환경과 꾸준히 공진화共進化하는 격렬한 장임을 증명한다. 다양한 연구자들과 작곡가들이 SICMF를 통해 사유를 확장하고 동시대의 기술과 매체, 그리고 기술의 고전적인 면모를 체험해야 하는 이유다.

 

2021. 12. 28. "전자음악의 세부적인 경계와 미학을 고민하며 - SICMF 2021 리뷰", 「에밀레」 19: 93-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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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음악의 세부적인 경계와 미학을 고민하며: SICMF 2021 리뷰 | DBpia

이민희 | 에밀레 | 20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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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전자음악의 세부적인 경계와 미학을 고민하며 SICMF 2021 리뷰 (학술지).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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