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스 연주와비평 이민희 음악평론가 2023년 하반기 리뷰 모음
원문출처: https://blog.naver.com/yeonju_critic

 

축소지향적인 연출이 주는 의외의 효과
2023년 8월 17일 2023 예술의전당 토월오페라 〈투란도트〉 /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대형오페라로 익숙한 <투란도트>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무대의 규모와 러닝타임을 줄인 채 공연됐다. 이런 기획은 몇몇 새로운 효과를 이끌어냈는데, 무엇보다도 음향적인 측면에서 격하면서도 자극적인 소리를 들려줬다. 아담한 홀에 60명 이상의 성악가 및 대편성 관현악이 소리를 냄으로써 사실상 터져버릴 것 같은 음향 한 가운데에 관객을 위치시키는 독특한 구도를 창출한 것이다. 때문에 소리의 밸런스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지만, 이런 울림이 극도의 현장성을 이끌어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마치 록 콘서트의 거대한 스피커 앞에 선 것처럼, 이날 1층 객석에 있던 이들은 소리 자체의 물리적인 힘에 압도되어 ‘극장’이라는 공간에 자신이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생히 인식할 수 있었다. 한편, 짧아진 러닝타임 안에서 ‘모리화’ 선율에 기반한 음악들 그리고 ‘공주는 잠못 이루고’를 비롯한 몇몇 대표적인 아리아를 중심으로 극이 흘러갔다. 이는 ‘아는 아리아’와 ‘들었던 선율’이 계속해서 흐르는 구도를 만들었고, 투란도트를 처음 본 관객도 쉽게 극을 이해하고 음악에 빠져들 수 있게 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날 공연에서 <투란도트>의 본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되던 것들, 이를테면 특유의 오리엔탈리즘에 기반한 세팅이나 배역 명칭, 우스꽝스러운 중국풍 분위기 묘사 등이 딱히 가시화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천천히 곱씹을 때에 유독 부각되는 이런 논쟁적인 텍스트가 축소지향의 무대와 러닝타임 안에서 강조되지 않은 채 사족처럼 흘러가버린 것이다. 아이러니하지만, 이 또한 이번 <투란도트> 프로덕션의 의외의 장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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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인 호응을 이끈 성공적인 프로덕션 [2023 예술의전당 토월오페라 〈투란도트〉] 리뷰

2023년 8월 15-20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관객을 만난 [2023 예술의전당 토월오페라 <투란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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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코르티잔이 삭제된 <라 트라비아타>를 바라보며
2023년 9월 21일 국립오페라단 <라 트라비아타> /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라 트라비아타>의 주인공 비올레타는 고위층 남성을 상대하는 ‘코르티잔’, 즉 고급 매춘부이다. 21세기의 관객에게는 불편하고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배경이다. 그런데 연출가 부사르는 이 ‘코르티잔’ 설정을 삭제하고 여주인공 비올레타를 성악가로 등장시킨다. 연습실에서 리허설을 끝낸 비올레타와 그녀의 주위를 맴도는 알프레도. 다소 낯설지만 오히려 이런 구도가 남녀 주인공의 감정선을 극대화시켰다. 김효종 테너의 단호한 미성은 매력적인 여성에게 끌리는 수줍은 모습으로, 박소영 소프라노의 격정적인 음색은 능숙하고 자신만만한 성격으로 해석되어 두 남녀의 ‘첫 시작’을 노골적으로 그리는 듯 했다. 

다만 2막에서 제르몽이 등장해 ‘알프레도와 헤어져 달라’고 설득하기 시작하면서 오페라의 서사는 우리가 잘 아는 일반적인 세팅으로 복귀한다. 때문에 긴 통바지에 히피펌을 하고 무대 위에 있는 비올레타의 외형과 그녀의 노래가사 사이에 간극이 생긴다. 플로라의 파티장에서는 형광색 드레스를 입은 남자가 등장하는 등 21세기적인 젠더리스/드래그퀸 스타일의 초현실적 환각파티를 보여준다. 여성 무희로 채워지는 고전적인 프로덕션을 비튼 셈이다. 더 나아가 극 전반에 걸쳐 제르몽과 비올레타의 듀엣이 강조된다는 점, 비올레타의 분신인 어린 소녀가 무대에 서성인다는 점, 비올레타가 죽음의 순간에 이 소녀와 손을 잡고 ‘홀로’ 죽음을 맞이한다는 점 등은 이 오페라를 ‘남녀’의 사랑이야기라기 보다는 비올레타 1인 중심의 극으로 보이게 했다. 연출을 통해 낡은 극을 새롭게, 그리고 프리마돈나의 역량과 존재감을 극대화시킨 것이다.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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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올레타가 바지를 입으면 벌어지는 일들 [국립오페라단 <라 트라비아타>] 리뷰

국립오페라단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2023년 9월 21-25일에 관객을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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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을 위한 높이​
2023년 10월 26일 2023 예술의전당 오페라 〈노르마〉 /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연출가 알렉스 오예는 <노르마> 안에 숨겨진 ‘높이’와 ‘아래로의’ 움직임을 교묘하게 담아냈다. 1막 초반에 등장하는 ‘정결한 여신이여’ 아리아는 그녀를 드루이드족의 신성한 사제로 ‘저 높은 곳’에 위치시키며, 그녀를 무대 한켠에 설치된 높은 계단 위에서 노래하게 만든다. 하지만 노르마는 애인의 배신, 상간녀와의 삼자대면, 자녀살해 욕구를 경험하며, 이어 연인을 심문하고 결국은 아버지에게 살해당한다. 특히 자녀를 죽이고자 하는 욕구를 드러낸 노르마가 바닥이 아래로 꺼지는 독특한 무대 연출을 통해 사라지는 점도 흥미롭다. 이런 가운데 무대 뒤편에 설치된 3,500개의 다소 공포스러운 십자가 조형물은 ‘위로 뻗은 형상’으로 다가오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 십자가에 매달린 시체의 모습이 ‘바닥으로 쳐박히는’ 죽음의 이미지를 동시에 담는다. 전쟁을 언급하는 이들이 바닥을 기어다니는 모습, 비정상적으로 위로 뻗은 모자를 쓴 사제들, 바닥에 완전히 누워 제사를 지내는 신도들의 모습도 이러한 ‘높이’와 ‘아래로의’ 역학관계를 보여준다. 결국 노르마는 최대한의 낙차를 위해 그토록 높은 곳까지 끌려올라갔던 것이다. 

덧붙여 다소 불쾌한 느낌마저 주었던 십자가와 현대적 군복을 입었던 조연들의 모습이 최근 국제 정세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전쟁이나 살육 그 자체를 비판하는 것처럼 다가오기도 했다. 성악가들의 경우 폴리오네 역을 맡았던 조르다노는 악인이라기엔 극 초반 힘이 너무 부족했으며, 노르마 여지원은 정작 가장 집중했어야 할 ‘정결한 여신이여’에서 '계단 위'에서의 가창이 힘겨워 보였다. 또한 아달지사 역을 맡은 이에르볼리노와 음색과 표현력이 너무도 유사한 나머지 상당한 분량의 소프라노 이중창이 그다지 매혹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모든 성악가들이 섬세한 강약 조절을 동반한 채 극히 어려운 벨리니의 선율을 능숙하게 표현해냈다는 점은 만족스러웠다.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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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아쉬웠지만, 클래식의 기품과 전통을 보여준 [2023 예술의전당 오페라 〈노르마〉] 리뷰

2023년 10월 26-29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벨리니 작곡의 낭만주의 오페라 <노르마>가 로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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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을 내세운 추상적인 흐름, 그러나 종착점은 너무도 구체적인 ‘한’과 ‘소녀상’
2023년 11월 30일 국립오페라단 <나부코> /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연출자 포다는 미니멀한 연출로 무대 위의 모든 서브 텍스트를 제거하고, 성악가의 기량을 극단적으로 노출시켰으며, 극 내면에 있는 ‘부녀관계’를 끄집어냄으로써 인간 사이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이 극 전체를 지배하게 했다. 이 안에서 임세경과 양준모의 실력은 압도적이었다. 다만 그렇게 내달리던 극은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에 이르러 노선을 바꾸며 의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주와 함께 무대 천장에서 ‘평화의 소녀상’을 본뜬 조형물이 수십 개 내려왔고, 그 옆에는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 보이는 살아있는 소녀들이 서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뒤로는 거대한 크기의 ‘한’이라는 글자가 나타났다. 아마도 <나부코>가 애초에 가지고 있었던 민족적 의식이나 유대인의 슬픔을 일제강점기 시대를 겪은 한국인의 ‘한’과 일맥상통한다고 해석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연출은 소녀상이라는 조형이 담고 있는 복합적이고도 깊숙한 문화적 함의를 극단적으로 얄팍하게 차용한 예이면서, ‘한’이라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개념이 ‘글자 한’이라는 상(象)에 의해 소환될 것이라고 믿는 문화 외부인의 착각이다. 외국인 연출가의 시선에서는 ‘소녀상’과 ‘글자 한’ 역시 모호하고 추상적인 이미지이기에, 전반적으로 상징을 중심으로 하는 미니멀한 극 전체의 흐름이 일관된 호흡을 형성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객석에 있었던 한국인도 그랬을까? 관객 중 일부는 추상적으로 진행되던 극이 ‘소녀상’과 ‘글자 한’에 이르러 ‘구체적이고도 노골적인’ 형상에 충돌하는 것을 느끼며, 그 순간 감동 대신 연출가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확인할 뿐이었다.

별점: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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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된 유프라테스 강가, 더해진 ‘소녀상’과 ‘한(恨)’ [국립오페라단 〈나부코〉] 리뷰

2023년 11월 30일-12월 3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국립오페라단의 <나부코>가 무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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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중지추의 실력을 보여준 파파게노 전병권
2023년 12월 8일 국립오페라단〈마술피리〉 - 세종시 / 세종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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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오페라를 표방하며 연출된 이번 <마술피리>는 지극히 경제적으로 최대의 효율을 추구했다. 몇몇 성악가들은 무대 경험이 부족해보였고 지휘도 아쉬운 부분이 많았지만, 기성 성악가가 압도적인 실력으로 균형을 잡아주었다. 무대연출 또한 초호화의 세트를 꾸미기보다는 영상을 가미하고, 최소한의 소품 및 배경을 등장시키되 다양한 장면을 끊임없이 제시했다. 또한 객석 사이로 파파게노 등이 돌아다니는 것은 물론, 발코니 석에 합창단을 배치하는 등 전통적인 프로시니엄 무대 구성에 변주를 꾀했다. ‘어린이 3명’이 극 전체를 이끌어가는 구조,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관객호응 유도 등은 전막 오페라 관람이 쉽지 않을 어린이 관객을 배려하는 장치였다. 

작품 내내 가장 뛰어난 기량을 선보인 것은 파파게노 전병권이었다. 초반의 몇몇 아리아에서는 아직 긴장이 덜 풀린 듯 했으나, 극이 진행될수록 안정적인 연기와 노래를 선보였다. 상당량의 연기와 애드리브 그리고 긴 동선을 능숙하게 소화했으며, 사실상 극 전체의 흐름을 주도하며 이 작품이 ‘국립오페라단’ 제작이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자라스트로 역의 박의현과 모노스타토스 역의 강도호도 완성도 높은 무대를 보여주었다. 소프라노 박누리는 성량과 발성 등 기본기와 음악성이 뛰어났고 파파게노와의 이중창 ‘사랑을 느끼는 남자는’ 및 아리아 ‘아, 나는 느끼네’가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연기는 조금 더 다듬을 필요가 있어 보였다. 다만 밤의 여왕은 불안정한 호흡과 장악력의 부족으로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별개로 밤의 여왕과 시녀들의 의상이 거의 유사했던 탓에, 주연이 비교적 덜 부각됐던 점도 지적하고 싶다.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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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적인 연출과 낭중지추의 성악가들 [국립오페라단〈마술피리〉 - 세종시] 리뷰

2023년 12월 8-9일 세종특별자치시 세종예술의전당에서 국립오페라단의 <마술피리>가 관객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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