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스 연주와 비평 이민희 음악평론가 2022년 리뷰 모음
원문출처: https://blog.naver.com/yeonju_critic

 

그날 오페라하우스를 꽉 채운 이들은 누구였을까?
2022년 5월 22일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라 보엠 /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라 보엠>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아름다운 노래로 대중을 현혹하는 최고의 ‘대중 오페라’다. 특히 극 중 로돌프가 부르는 ‘그대의 찬 손’이나 무제타가 부르는 ‘내가 거리를 걸으면’ 등은 누구나 한번은 들어봤을 법한, 오페라 역사의 최고 히트송 중 하나다. 그래서인지 이날의 해설자는 <라 보엠>의 청중을 극히 대중적인 여흥을 ‘가볍게’ 보러 온 이들로 여기는 듯했다. 이미 진행된 극의 줄거리를 요약해주고, 이후 진행될 상황을 미리 설명했기에, 잔뜩 졸다가 그저 ‘주요 아리아’에만 눈을 떠도 크게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연출 역시 새로움 보다는 고전적인 재현에 방점을 두었다. 이를테면 1막의 다락방이나 3막의 무대는 시각적으로 훌륭했고 극 중 인물의 동선을 표현하기에도 효과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1막에서는 무대의 구조 상 성악가가 너무 깊숙하게 자리 잡은 나머지 오케스트라와의 음향 조화가 아쉬웠고, 객석 구석까지 성악가의 목소리가 뚫고 나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막에서는 주연배우들 이외에도 어림잡아 서른 명 가까이 되는 어린이 합창단과 찬조출연처럼 보이는 엑스트라들이 한꺼번에 등장했다. 이는 서사를 위한 것이었다기보다는 공연 자체를 즐기고자 하는 ‘오페라단과 관계자’의 개입으로 보였다. 이 때문에 미장센이 깨져 보였고 정작 중요한 주·조연들의 연기가 다소 가리기도 했다. 종합예술로서의 오페라를 세련되게 제시하기보다는 아름다운 노래로 이루어진 2시간의 ‘축제’를 꾸린 듯했다. 

하지만 객석에는 또 다른 부류의 청중도 존재한다. 아마도 20만원에 달하는 공연 티켓의 유료 관객이었을 이들은, <라 보엠>을 ‘고전 예술’로 더 나아가 단지 히트송 메들리가 아닌 ‘젊음’이나 ‘찰나의 시간성’을 다루는 작품으로 사유하고자 했을 것이다. 오페라를 오로지 음악으로만 이해하고 싶어했던 이들에게, 이날의 공연은 너무도 가볍게 다뤄지고 쉽게 연출된, 그리고 떠먹여주는 해설로 그 음악의 진가를 가려버린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너 김재민의 청아한 음색과 극히 섬세한 연기, 무제타 역 이경진의 완벽한 캐릭터 소화와 압도하는 에너지, ‘낡은 외투여’를 부름으로써 젊은이의 추도를 한편의 예술로 승화시킨 꼴리네 역 김일훈의 노래는 이 공연이 여전히 ‘아리아’으로 인해 ‘예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아리아가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오페라의 이중적인 면모를 다시 한 번 확인한 셈이다.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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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로서의 오페라, 혹은 대중을 현혹하는 오락물로서의 오페라 [2022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제13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작곡가 푸치니(G. Puccini)의 가장 인기 있는 오페라 중 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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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 또 반복
2022년 4월 24일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 <로미오 대 줄리엣> /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남자주인공이 무대에 올라 ‘몇 번을 말해’라고 외치며 그의 부인에게 불만을 노래한다. 이 오프닝 아리아는 극 전체의 성격을 축약하고 있는데, 하나의 선율이나 가사를 계속해서 반복하되 그 안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다소 빈약하다는 점이다. 남자는 5분 넘게 불만을 토로하고 있지만, 도대체 ‘어떤 사건’이 그를 불만스럽게 했는지, 그의 아내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이어 그의 아내가 등장해 남자에 대해 불만을 늘어놓지만 그녀 역시 ‘몇 번을 말해’라는 가사를 반복해 부를 뿐이다. 관객이 듣게 되는 첫 번째 정보는 이런 노래들이 모두 끝난 후, 두 배우의 대사 안에서 등장한다. 남자는 야맹증을 갖고 있으며 이 때문에 과거에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을 포기하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부부에게는 각자의 애인이 있다는 것 등.

이 작품은 여러 가지 층위의 반복을 사용한다. 우선 노래 안의 반복이다. 각 아리아와 이중창들을 동일한 가사와 선율을 계속해서 반복한다. 동시에 ‘남자’와 ‘여자’로 이분화된 극의 서사 안에서, 남자의 노래는 ‘여자에 의해’ 계속해서 다시 불린다. 더 나아가 극 전체는 ‘남자의 입장’을 먼저 제시하고 이어 동일한 상황에 대한 ‘여자의 입장’을 반복해 보여주는 식이다. 연출자는 이 구조를 ‘데칼코마니’라는 개념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작품을 지배하는 ‘반복’, 혹은 ‘데칼코마니’ 형식이 오페라의 주제의식과 시간성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는가? 언뜻 보면 두 명의 화자가 동등하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는 어린아이의 강박적인 반복 혹은 기이하고 긴 시간의 병행처럼 다가왔다.

역설적이게도, 이 오페라가 가장 드라마틱했던 순간은 이런 반복구조가 허물어지고, 이들의 이야기가 ‘하나의 서사’로 합치되는 지점이었다. 특히 극중극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가 극대화된 ‘무덤 씬’에서는 셰익스피어가 그려내고자 했던 ‘순간의 사랑과 긴 이별’이라는 소재가 오페라 전체로 확장됐으며, 그제서 두 주인공은 얽히고설키며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냈다. 예컨대 극 전체를 가득 메웠던 반복과 나열, 재진술은 지극히 형식적인 층위로 분리되어 있었을 뿐, 실제 극의 진행에는 도움을 주지 못했다. 소프라노 오효진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관객이 초중반에 집중할 수 없었던 이유다.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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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말 여자의 말,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 [로미오 대 줄리엣] 리뷰

비교적 작은 규모의 극장에서 번안 오페라, 창작 오페라 등을 활발히 소개해온 ‘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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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다가온 사계절의 아름다움
2022년 7월 10일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의 막스 리히터 스페셜 /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라모의 <레 보레아드> 모음곡에서는 오보에, 호른, 타악기 등의 패시지가 많이 부각됨에도 이것들이 매끄럽게 연주되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한편 현악기 앙상블이 전면에 드러나 있었던 2악장은 아름다운 선율과 규칙적인 악구의 반복을 통해, 이 악단의 장점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보여주었다. 예컨대 리히터의 <햇빛의 자연 속에서>에서도 효과적으로 드러난 ‘정제된 현악 사운드’는, 비록 이날의 라모와 하이든을 연주하기에는 다소 두텁고 무거워 보였지만 대중을 위한 클래식 음악회가 요구하는 ‘낭만주의 풍의 호소력’을 갖고 있었다. 영화에서 자주 듣던 <햇빛의 자연 속에서>를 숙련된 연주자의 해석으로 현장에서 듣는 경험은, 단지 pp에서 mf까지의 점진적인 음량 변화를 듣는 것 이상의 감동을 선사했다. ​

<비발디의 사계 리콤포즈드>에서 독주자 김다미는 깔끔하고도 고전적인 사운드로 작품 전체를 보다 클래식하고 차분한 느낌으로 이끌었다. 혹자는 이를 두고 낭만주의적이고 좀 더 거센 톤을 가졌던 반주 악단과의 ‘톤의 불일치’라고 느꼈으리라. 하지만 특유의 ‘비어있음’을 기반으로 연주자의 역량을 전면으로 밀어붙이는 미니멀 음악의 속성에 비추어보았을 때, 김다미가 <비발디의 사계 리콤포즈드>를 본인의 스타일로 차분히 표현해 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의외로 <비발디의 사계 리콤포즈드>의 전체 사운드에서 거슬렸던 것은 하프시코드였다. 이 악기가 현대적인 편곡 안에서 주로 음색적인 측면만을 보강하게 되었을 때, 이를 섬세하게 통제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였다. 하프의 음색도 특이했는데, 마치 드론(Drone)처럼 크게 울리는 사운드가, 악단 전체의 소리를 지극히 ‘21세기적’으로 전환시키는 지점이 흥미로웠다. 

전반적으로 <비발디의 사계 리콤포즈드>의 초반부에서는 섹션 하나하나가 생동감 있게 존재했으며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었고, 무엇보다도 긴장감이 유지되었다. 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이런 힘이 떨어져 그저 힘겹게 그 다음 섹션을 이어붙이는 느낌이었다. 예컨대 아드리엘 김의 지휘는 <비발디의 사계 리콤포즈드> 초반에는 비발디와는 구별되는, 새로운 아름다움을 가진 ‘사계’를 창출해냈다. 하지만 후반부에는 비발디의 모티브만을 조각조각 나열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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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디가 좋아했을까?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의 막스 리히터 스페셜]

오케스트라 디 오리지널의 ‘막스 리히터 스페셜’ 연주회가 7월 10일 예술의전당 IBK홀에서 열렸다.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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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격차가 불러온 의외의 캐릭터들
2022년 3월 15일 2022 세아이운형문화재단 음악회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콘서트홀에서 펼쳐진 이번 오페라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점 중 하나는 가수들마다 연기의 농도가 달랐으며, 이 때문에 톱니바퀴처럼 얽혀있는 주인공들의 광기어린 감정선이 때로는 짙게 그리고 때로는 너무도 옅게 다가왔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극의 초반에는 귀신을 보는 루치아가 ‘고요한 어둠에 싸인 밤’을 열창하는데, 이 장면에서 무대 위에는 루치아를 제외하고 또 다른 인물인 알리사가 등장해 있다. 하지만 알리사는 그저 무대 위에 서 있기만 할 뿐 시선이나 손짓은 자신의 차례를 한 없이 기다리는 오케스트라의 악기처럼 갈 곳을 잃은 듯 보였다. 심지어 루치아와 그녀의 연인 에드가르도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달콤한 시간을 보내는 중에도 이들은 ‘죽을 만큼 열렬한’ 연인처럼 보이지는 않았는데, 아마도 이날 일부 가수들은 이 무대를 ‘오페라’가 아닌 ‘콘서트’에 더 가까운 것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시선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고, 상대방의 노래가사에 섬세하게 반응하며 손과 몸 연기를 행하는 것은 엔리코 역의 강형규가 유일했다. 

배역마다 달랐던 연기의 ‘농도’는 단지 이 작품을 ‘콘서트홀을 위한 오페라’와 ‘오페라하우스를 위한 오페라’로 나누는 것이 아니었다. 연기의 격차는 자연스럽게 각 가수들의 목소리 톤과 결합해 특유의 ‘캐릭터’를 상상하게끔 했는데, 루치아는 표현이 부족하고 소심한, 자기주장이 뚜렷하지 않은 소녀와 같은 모습으로, 에드가르도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다가 갑자기 폭발하는 성격으로, 엔리코는 시종일관 너무나 과도한 감정을 드러내는 인물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캐릭터 구도 아래에서 관객들은 루치아 커플보다 오히려 ‘오빠’의 감정에 더 강렬하게 몰입하기도 했으며, 루치아가 선택하는 비극적 결말이 ‘낭만주의 서사’임을 감안하더라도 잘 설득되지 않는 지점이 있었다. 때문에 제니 하우저가 부른 ‘광란의 아리아’는 온몸으로 쏟아내는 ‘루치아’의 비극이라기보다는, 아름다운 아리아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가수’의 열연으로 다가왔다. 긴 아리아 내내 단 하나의 이미지를 긴 샷으로 투사한 무대 뒤편의 영상 또한 작품의 이해에 도움을 주지는 않았다. 실성했다가 웃고, 사랑하는 이를 떠올리며 행복해하다가 죽음을 느끼는 루치아의 극단을 넘나드는 감정, 그 극도의 다채로움이 모두 뭉뚱그려진 채 단지 ‘20분간 지속되는 음향’처럼 들리는데 일조했기 때문이다. 

별점: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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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홀에서 다시 태어난 루치아의 광란, [2022 세아이운형문화재단 음악회 람메르무어의 루치

문화예술을 사랑했던 고(故) 이운형 세아그룹 회장의 뜻을 기려 창립된 세아이운형문화재단은 다양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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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했던, 하지만 그 너머 역시 기대하게 했던 연주
2022년 6월 5일 블래져 목관앙상블 정기연주회 /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단찌의 <목관오중주>에서는 프레이즈를 비교적 잘게 잘라 표현한 플루트와 좀 더 긴 프레이즈를 들려주되 깔끔한 해석을 드러낸 오보에의 대조가 인상 깊었다. 다만 부분적으로는 플루트가 표현하고자 하는 프레이징이나 리듬처리가 다른 악기의 호흡이 잘 맞지 않아 보이는 부분도 있었으며, 2악장이나 4악장의 선율 패시지에서는 플루트의 호흡이 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놀드의 <목관오중주를 위한 세 개의 오두막집>은 ‘쏟아져 내림’이나 ‘지글거림’ 등 1악장에 등장했던 독특한 무드의 음향층이 흥미로웠다. 악보에는 셋잇단음표 등의 지극히 단순한 표기만 있었을 테지만, 연주자들이 이를 실제 호흡을 통해 입체적이고도 매혹적인 소리로 재탄생시키던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드뷔시의 <작은 모음곡>에서는 그간 잘 드러나지 않았던 클라리넷의 소리가 좀 더 부각되었고, 앞선 곡에 비해 호른의 프레이즈가 보다 매끄럽게 흘렀다. 1부의 끝이어서 그랬는지 훨씬 안정된 호흡을 들려주었기에, 객석에서도 편안히 감상할 수 있었다. 

비교적 빠른 템포로 해석한 리게티 <6개의 바가텔>의 1악장과 4악장은 앙상블의 리듬감과 음악성을 과시하기에 충분했다. 다만 낭만시대나 고전시대의 작품과는 다른, 작품 특유의 ‘동등한 성부의 폴리포니’를 제대로 표현했는지는 의문이 든다. 유니즌, 여러 성부가 동일한 리듬으로 민첩하게 움직이는 부분, 짧은 선율을 퍼즐 맞추듯 주고받아야 하는 섹션 등에서는 유독 악기마다 미묘하게 다른 호흡이 전체 사운드의 깔끔한 결합을 방해했다. 3악장에서 플루트의 아르페지오 반주가 너무 큰 나머지, 나머지 악기의 선율부 음색이 제대로 들리지 않은 점도 아쉬웠다. ​

블래져 앙상블의 힌데미트는 유머러스하면서도 낭만적이었고, 동시에 차분한 무드도 가지고 있었다. 각 악장마다의 변화무쌍한 음악적 아이디어가 섬세하게 표현되었으며, 여러 악기를 오가는 숨 가쁜 선율 프레이즈가 능숙하게 처리되었다. 이들의 연주 안에서 힌데미트는 단지 ‘20세기 작곡가’라는 아리송한 명칭 대신, 지적인 동시에 ‘아름다움’을 갖고 있는 매력적인 작곡가로 다가왔다. 특히 비교적 단순한 짜임새 안에서 느리게 움직이던 3악장이나 5악장은 이날 연주회 전체의 백미로 꼽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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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가장 완벽한 목관앙상블이 보고 싶다면 [블래져 목관앙상블 정기연주회]

2022년 6월 5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블래져 목관앙상블 정기연주회가 열렸다. 제7회 아트실비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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