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오페라단 <나부코> 리뷰

2023. 12. 20. 13:46

상징을 내세운 추상적인 흐름, 그러나 종착점은 너무도 구체적인 ‘한’과 ‘소녀상

2023년 11월 30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홍석원이 지휘하는 서곡이 연주되며 공연이 시작되었다. 마치 전체 극의 흐름을 복기하듯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선율을 비롯한 다양한 음향 짜임새가 차례로 등장했다. 사실 이번 프로덕션은 연출의 의도가 상당한 수준으로 반영되는 ‘레지테아터’임을 떠올려 볼 때, 충분한 길이를 갖는 서곡에 아무런 연출이 더해지지 않고 ‘막을 내린 채로’ 음악만 나오는 상황이 아이러니했다. 연출가 스테파노 포다는 전반적으로 미장센에 공을 들여 결벽증적으로 완결한 하나하나의 ‘장면’을 긴 호흡으로 만들어냈는데, 그의 작법이 작동하기에 짜임새의 교체가 잦은 서곡이 적절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

막이 오른 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하얀색 도포를 어깨에서 발끝까지 걸친 수십 명의 군중이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주인공인지 조연인지, 백성인지 왕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었고, 머리조차 흰색 스프레이를 뿌려 동일하게 뒤로 넘긴 모습이었다. 이들이 합창을 시작하자 무대 위에는 ‘유대인’, ‘나부코 왕’, ‘포로’, ‘제사장’ 등 수없이 많은 배역과 배경 등에 얽힌 서브텍스트가 갈 곳을 잃고 부유했다. 애초에 의상과 분장, 배경이 제공했을 정보를 모두 제거했기에, 무대 위에는 연출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장기판의 말’과 같은 흰색 점만이, 그리고 비워진 공간 안에 연출자에 의해 ‘자의적으로’ 삽입된 상징적인 조형물만이 존재했다. 초연 이후 150년간 <나부코>를 봐온 이탈리아의 관객이라면 이와 같은 설정에도 모든 정보와 배경이 지겹게 연상되었겠지만, 한국의 관객도 과연 그랬을까? 레지테아터의 일부는, 작품에 필요한 부가적인 정보를 프로그램북을 통해 ‘읽는 것’이 은연중의 규칙일까?

다만, 이처럼 전반적으로 ‘미니멀한’ 형태로 의상, 분장, 배경을 꾸렸기에 극은 총 3가지의 독특한 지점을 만들어냈다. 첫째, 모든 시각적 요소를 연출이 통제한 상태에서 극히 아름다운 미장센을 얻었다. 두 딸이 왕좌를 놓고 다투고, 이어 나부코 왕이 등장해 왕관을 거머쥐는 순간, 그리고 그 이후에 벼락을 맞는 장면까지. 올화이트의 군중과 올레드의 군중이 좌우에 배치되었다. 이들은 마치 ‘현대무용’을 하듯 인간 탑을 쌓고 또 이것을 뭉그러뜨리며, 그리고 마치 짐승이나 미생물 같은 몸의 움직임으로 마스게임을 하듯 기묘하게 꿈틀댔다. 이외에도 다양한 장면 안에서는 엄격하게 제한된 색, 최소화한 무대 배경 등을 통해 오직 연출가가 머릿속에서 완전하게 떠올린 ‘특정장면’ 만을 구현했다. 누군가는 이러한 미장센에 희열을 느꼈으리라.

둘째, <나부코>의 표면적인 줄거리는 성경 속 핍박받던 유대인의 이야기다. 그런데 이 극에서는 미니멀한 연출 덕분에 정치적 상황이나 성경적 텍스트보다는 이들의 감정적인 얽힘, 즉 ‘부녀관계’만이 극대화됐다. 사실상 <나부코>의 후면에는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첫째 딸과 아버지가 정작 사랑하는 둘째 딸이라는 구도가 본래 강하게 존재했던 터. 이날 나부코를 처음 본 관객이라면 이 작품을 부녀사이의 사랑과 콤플렉스를 다룬 극으로 이해했을지도 모를 정도로 이 지점이 강하게 다가왔다. 이와 같은 요소가 <나부코>의 전체 서사를 떠받치는 중요한 것임은 분명하나, 이것이 유독 도드라지는 재현방식은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셋째, 나부코 역을 맡은 양준모와 아비가일레 역을 맡은 임세경의 노래와 연기가 지극히 두드러졌다. 연출이 <나부코> 전체를 감싸던 배경을 비롯한 서브텍스트들을 모두 삭제해버린 상황이었기 때문에, 성악가들은 마치 ‘절대음악 콘서트’에서 노래하듯, 오로지 그 자신의 노래로만 관객을 설득시켜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본래 극단의 상황에 놓이면 그 진가가 오롯이 노출되는 법, 양준모와 임세경은 기존의 오페라에서보다 훨씬 더 강렬하게 그 기량을 노골적으로 표출했다. 특히 양준모의 진가는 극 후반부로 갈수록 확연해졌는데, 왕으로 군림하다가 벼락을 맞고, 감옥에 투옥되는 일련의 과정 안에서 정신력과 고통이 극대화되는 모습이 또렷하게 보였다. 한편 임세경은 그 음색의 처리나 섬세한 동작 등을 다루는 면에 있어서 아비가일레라는 인물의 복합적이고도 이중적인 감정을 완벽하게 구현했다. 아마도 오페라글라스로 공연을 관람한 관객은 임세경이 손끝을 미세하게 떨며 끌어오르는 분노를 표현하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예컨대 연출자 포다는 미니멀한 연출로 무대 위의 모든 서브텍스트를 제거하고, 성악가의 기량을 극단적으로 노출시켰으며, 극 내면에 있는 ‘부녀관계’를 끄집어냄으로써 인간 사이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이 극 전체를 지배하게 했다. 이 안에서 임세경과 양준모의 기량은 압도적이었다. 다만 그렇게 내달리던 극은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에 이르러 노선을 바꾸며 의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주와 함께 무대 천장에서 ‘평화의 소녀상’을 본뜬 조형물이 수십 개 내려왔고, 그 옆에는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 보이는 살아있는 소녀들이 얼굴에 회칠을 하고 서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뒤로는 거대한 크기의 ‘한’이라는 글자가 나타났다. 아마도 <나부코>가 애초에 가지고 있었던 민족적 의식이나 유대인의 슬픔을 일제강점기 시대를 겪은 한국인의 ‘한’과 일맥상통한다고 해석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연출은 소녀상이라는 조형이 담고 있는 복합적이고도 깊숙한 문화적 함의를 극단적으로 얄팍하게 차용한 예이면서, ‘한’이라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개념이 ‘글자 한’이라는 상(象)에 의해 소환될 것이라고 믿는 문화 외부인의 착각이다. 외국인 연출가의 시선에서는 ‘소녀상’과 ‘글자 한’ 역시 모호하고 추상적인 이미지이기에, 전반적으로 상징을 중심으로 하는 미니멀한 극 전체의 흐름이 일관된 호흡을 형성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객석에 있었던 한국인도 그랬을까? 관객 중 일부는 추상적으로 진행되던 극이 ‘소녀상’과 ‘글자 한’에 이르러 ‘구체적이고도 노골적인’ 형상에 충돌하는 것을 느끼며, 그 순간 감동 대신 연출가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확인할 뿐이었다.

 

이민희 음악평론가, "상징을 내세운 추상적인 흐름, 그러나 종착점은 너무도 구체적인 ‘한’과 ‘소녀상’" [국립오페라단 <나부코>] 리뷰, 멜로스 연주와 비평 이달의 긴 비평. 
https://blog.naver.com/yeonju_critic/223283111571

 

상징을 내세운 추상적인 흐름, 그러나 종착점은 너무도 구체적인 ‘한’과 ‘소녀상’ [국립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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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오페라단 나부코 中 1막 무대 장면 (출처: 국립오페라단 공식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