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디지털 문화에서 등장한 특정 부류의 음악을 ‘디지털 미니멀 음악’(Digital Minimal Music)이라 명명하고 그 양상과 미학을 심층적으로 고찰하였다.


디지털 미니멀 음악은 1990년대 후반 디지털 문화 안에 나타난 새로운 유형의 미니멀 음악이다. 이 음악은 노이즈, 버그, 오작동으로 반복하는 기계의 소음, 전자적으로 합성되고 녹음된 음향 등으로 구성되며, 음악의 모든 파라미터가 최소한으로 제한된다.


디지털 미니멀 음악은 20세기 말 컴퓨터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음악창작 환경, 전문적인 음악제작 관습의 공유 및 개인화와 함께 나타났으며, 그래뉼라 합성, 필드레코딩, 즉흥연주 및 이에 대한 녹음, 소프트웨어 계발 등으로 만들어지는 전자음악의 한 종류다. 이 음악의 창작자들은 아방가르드 전자음악가로 볼 수 있지만, 대중음악의 하위 장르인 IDM 분야의 작곡가, 사운드아티스트 등 클래식 음악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정체성을 갖는다.


디지털 미니멀 음악은 닷마이크로사운드(.microsound.org)의 전신인 메일링 리스트, 그리고 몇몇 평론가와 음악학자의 논의 안에서 마이크로사운드(microsound), 글리치(glitch), 로워케이스(lowercase) 등의 통합되지 않은 명칭으로 1990년대 후반 처음으로 가시화됐으며, 밴드캠프(bandcamp) 등의 음원판매 플랫폼을 통해 청자를 만났다. 다만 한 명의 음악가가 디지털 미니멀 음악만을 작곡하지는 않으며, 료지 이케다(Ryoji Ikeda, b.1966), 미카 바이니오(Mika Vainio, 1963∼2017), 테일러 듀프리(Taylor Deupree, b.1971) 야수나오 토네(Yasunao Tone, b.1935), 리차드 카르티에(Richard Chartier, b.1971) 등이 음반사 밀 플라토(Mille Plateaux), 트랑트 와조(Trente Oiseaux), 12k, 라인(LINE), 사코(Sähkö), 레스터-뮤직(raster-music), 메고(mego), 터치(touch) 등에서 1990년대 말∼2000년대에 발매한 몇몇 음악을 디지털 미니멀 음악으로 명명할 수 있다.


디지털 미니멀 음악을 구별짓는 가장 대표적인 속성은 극단적으로 최소화된 음악적 외형이다. 디지털 미니멀 음악은 음색에 관한 데이터가 존재하지 않는 순수한 정현파이거나, 1초 보다 짧은 길이거나, 긴 시간 안에 ‘티틱’거리는 짧은 노이즈만을 최소한의 밀도로 등장시킨다.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알아차리기 쉽지 않은 작은 소리의 지속음, 작곡가의 의도가 존재하지 않는 ‘오작동으로서의 반복’을 사용한다. 이런 다양한 양상은 음량·음길이·음의 밀도 등 음악적 파라미터에 대한 탐구가 디지털 환경을 기반으로 보다 미세하게 작업될 수 있었기에 가능해진 것이다. 기계의 오작동이 만들어내는 소리, 컴퓨터의 오류음, 짜임새 변화 없이 지속되는 백색 소음 등을 활용하는 것 역시 디지털이라는 환경을 반영한다.


이와 같은 디지털 미니멀 음악은 ‘비재현’(non-representation), ‘청각적 사물성’(sonic objecthood), ‘기계를 소환하는 반복’(repetition that evokes a machine), ‘침묵’(silence)이라는 미학적 속성을 갖고 있다. 이를 통해 이 음악이 ‘미니멀하다’는 언어적 의미를 외형적으로 충족시킬 뿐 아니라, 1960∼1990년대의 아날로그 미니멀 음악을 계승하고, 더 나아가 미술에서의 미니멀리즘 논의를 관통할 수 있게 된다. 다만 모든 디지털 미니멀 음악이 이런 네 가지의 미학을 한꺼번에 충족시키지는 않으며, 이를 교차하며 공유한다.


비재현의 미학은 음악 안에 ‘재현의 주체(사람)’와 ‘재현의 대상(사물이나 현상 따위)’이 소멸되고, 의미를 형성하는데 필요한 기표/기의 구조 및 그 어떤 유형의 텍스트도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생성된다. 비재현성은 디지털 미니멀 음악 상당수에서 나타난다.


디지털 미니멀 음악의 ‘청각적 사물성’은 과거 미니멀 미술의 ‘사물성’ 논의를 음악에 적용시킨 것이다.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소리의 유용성이 사라졌을 때, 소프트웨어가 만들어낸 단일한 프로세스가 그 자체로 음악이 될 때, 실제로는 그 형체가 존재하지 않는 ‘디지털’이라는 개념이 소리로 현현(顯現)할 때, 디지털 미니멀 음악이 ‘청각적 사물성’을 갖게 된다.


‘기계를 소환하는 반복’은 ‘오작동으로서의 반복’을 특징으로 하는 디지털 미니멀 음악이 드러내는 미학이다. 이 경우 디지털 미니멀 음악은 디지털의 작동 방식 및 본질을 폭로하며, 매체의 투명성 안에 숨겨져 있던 불완전함을 소리로 가청화한다. 동시에 ‘강박적인 반복’과 ‘음악적인 반복’ 사이를 넘나들며 ‘청취의 즐거움’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오작동으로 반복하는 디지털 미니멀 음악이 다소 듣기 힘들다 할지라도, 이 소리는 청취의 즐거움을 주는 구간으로 손쉽게 전환된다. 음악 요소의 제한, 형태의 단순성, 반복이 결합함으로써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턴을 가진 아름다운 청각적 오브제를 만들기 때문이다.


‘침묵’의 미학은 극히 작은 볼륨, 간헐적으로 등장하는 짧은 음소재, 고요하게 계속되는 지속음, 변화가 부재한 짜임새를 가진 소리에서 생성된다. 청자는 이런 음악을 들으며 ‘비어있는 공간’을 상상할 수 있으며, 이것을 소리·이미지·정보로 가득 찬 디지털 환경과 대조시킴으로써 ‘침묵’을 경험할 수 있다. 특히 청자는 음악 안에 흐르는 작은 소리의 등장과 소멸, 음량의 변화 등을 집중해서 능동적으로 청취해야 하며, 이를 통해 미세한 변화를 거대한 움직임으로 인식할 수 있다. 이는 디지털 환경 안에 청자의 의지와 집중도에 따라 구성되는 ‘상상의 풍경’을 만드는 것으로서, 동시대의 미디어 환경에서 도피할 수 있는 새로운 안식처를 구현하는 것이다.


주목할 것은 디지털 미니멀 음악이 위와 같은 특유의 양상과 미학을 통해 1960∼1990년대에 발전했던 아날로그 미니멀 음악을 다양한 방식으로 계승한다는 점이다. 디지털 미니멀 음악은 음악적 파라미터를 최소한으로만 사용한다는 측면에서 초기 미니멀 음악과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만들어 낸다. 또한 ‘오작동으로서의 반복’을 특징으로 하는 디지털 미니멀 음악은 ‘펄스 미니멀 음악’(pulse-based minimal music)과, ‘침묵’의 미학을 드러내는 디지털 미니멀 음악은 ‘드론 미니멀 음악’(drone-based minimal music)과 유사하다. 더 나아가 침묵의 미학 속 ‘집중된 청취’는 작곡가 스티브 라이히(Steve Reich)가 발표했던 글 ‘점진적인 과정으로서의 음악’(Music as a gradual process, 1969)에서 보여줬던 특유의 청취 방식 및 미학과 연관되어 있다.


반면 초기 미니멀 음악은 1960년대 미국, 더 나아가 뉴욕 다운타운을 중심으로 발전했으며 유럽의 음악 전통 및 복잡한 음악 등에 대립함으로써 정체성 및 정치성을 발전시켰다. 하지만 디지털 미니멀 음악에는 이와 같은 사회문화적인 속성과 정치성이 부재하다. 디지털 미니멀 음악에는 오프라인 거점이 존재하지 않으며, 이들이 투쟁하고 대립해야할 선배 작곡가가 없다.


따라서 디지털 미니멀 음악은 초기 미니멀 음악이 갖고 있었던 극도로 단순한 음악적 외형, 특유의 청취 방식, 미학은 계승하지만, 사회문화적 속성과 정치적 특성은 누락함으로써 보다 더 추상적인 ‘소리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기술의 도움으로 도달하게 된 순수한 소리의 생성, 기계에 매개된 작곡 방식을 통해 한층 더 강화된 작곡가의 최소개입, 음악적 데이터를 시각화함으로써 다루게 된 음량이나 길이에 관한 새로운 최소성의 영역을 통해, ‘진정으로 미니멀한 음악’이라는 명제에 비로소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디지털 미니멀 음악은 ‘청각적 사물성’을 드러냄으로써 과거의 미니멀 음악에 비해 한층 더 미니멀 미술과 강력한 연결고리를 형성한다. 아날로그 미니멀 음악과 미술의 연관성은 음악 안에 드러나는 패턴의 반복 등 미술 외형의 피상적인 면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디지털 미니멀 음악의 ‘청각적 사물성’은 이 음악을 ‘컴퓨터 노이즈’나 ‘사이렌 소리’와 구분할 수 없게 만든다. 이는 미니멀 미술이 그 추상성을 극단적으로 강화하기 위해, 그 어떤 형태나 표현도 거부한 나머지, 결국 ‘나무토막’이 되어버린 상황을 연상시킨다.


따라서 ‘음악’은 디지털 미니멀 음악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 영역의 극단까지 밀려 올라갔으며, “이것이 정말 음악이 맞을까?”, “이 소리를 어째서 음악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맞닿게 되었다. 과거 미니멀 미술이 1960년대에 접속했던 추상과 모더니즘의 ‘진정한 끝’에 다다르게 된 것이다. 이 끝은 과거 아날로그 공간 속 미니멀 음악이 당도했다고 잘못 상상됐던 곳으로서, 소리로 존재하는 기계들이 누구의 의지와도 상관없이 강박적으로 움직이는, 기이하고 고요한 풍경을 하고 있다.


동시에 디지털 미니멀 음악은 디지털이라는 낯선 장() 안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수없이 많은 음악의 지극히 순수한 ‘시작’으로 존재한다. 디지털 미니멀 음악이 들려주는 소리는 아직 조합되지 않은 소리 오브제이며, 음악 문법과 기표/기의를 갖추지 않은 날것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미니멀 음악이 도달하지 못했던 세계의 끝이자 시작을, 디지털 미니멀 음악이 ‘디지털 문화’라는 새로운 세계의 시작점에서 그 어떤 의미의 전달자로도 기능하지 않은 채, 언어를 배제하고 사물이 된 소리 그 자체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2021.02.21. 디지털 미니멀 음악(Digital Minimal Music)의 양상과 미학 연구: 세계의 끝, 그리고 새로운 세계의 시작점에 선 음악,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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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지 이케다 작품의 음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