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신성아 [비평과 해석사이] 시리즈 중

2024. 4. 11. 14:26

신성아(1971- )는 추계예술대학교 작곡과를 졸업하고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 피바디음악원 컴퓨터음악작곡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미주리주립대학교 연극대학 사운드디자인 석사 및 음악대학 작곡전공 박사학위를 받은 작곡가 · 사운드아티스트다. 공연예술, 연극, 무용, 미디어, 영화·영상, 실험영화, 인스톨레이션, 다원예술 등의 분야에서 활동 중이며, 서울국제컴퓨터음악제, 서울단편영화제, 서울국제실험영화제, 광주비엔날레, 플로리다 일렉트로어쿠스틱 음악페스티벌, 산타페 국제전자음악페스티벌, 베를린 필름페스티벌 등에서 작품을 발표했다. 아시아컴퓨터음악 프로젝트의 프로그래머이자 공동창립자이고, 국제컴퓨터음악협회(ICMA)의 아시아/오세아니아 지부장을 역임했다. 전자음악 영역의 가장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경계선상의 작곡가이며, 현재 계명대학교 음악공연예술대학 작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경계선상의 작곡가

 

신성아는 자신의 작업을 전자음악, 공연예술, 어쿠스틱음악, 그 외(영화음악, 오디오씨어터, 사운드인스톨레이션 등)로 구분한다. 특히 전자음악 분야에서는 오디오비주얼 작품이 월등히 많으며, 몇몇 라이브 일렉트로닉 작품 및 테이프 음악을 발표했다. 신성아는 “기술과 결합된 컴퓨터음악과 다양한 매체들이 결합되는 공연예술작업을 중심으로 작업하다 보니 실제로 공연되고 공간 안에서 들리는 소리를 만드는 작품들을 중심으로” 한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따라서 신성아의 작업은 자연스레 “움직임, 대사, 영상/영화, 이미지, 텍스트, 사운드 등 다양한 음악적, 음악외적 요소들과 결합”되어 나타나는데, 이는 그의 작업이 경계선상에 위치함을 의미한다. 대표작으로는 2007년부터 계속해오고 있는 오디오비주얼 프로젝트 ‘The Black Thin Line’이 있 으며, 실험영화와 전자음악을 위한 〈안과 밖〉(2010), 실험영화의 사운드디자인 작업인 〈사냥의 밤〉(2018), 〈몸과 마음〉(2016) 등이 있다.

작품의 궤적에 따라 음악의 특성이 바뀌어왔지만, 최근 신성아의 작업은 오디오비주얼의 ‘물질성’을 드러내며, 소리 그 자체로 힘이 있는 ‘글리치’와 같은 특정 형태의 사운드를 자유자재로 활용한다. 무엇보다도 특정 음악적 소재만을 제한적으로 다루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오디오비주얼의 물질성

신성아의 최근 작업 상당수는 실험영화 작업자 장은주의 작업과 동시에 발전하고 진행되었다. 따라서 장은주의 특성 중 하나인 ‘구조영화적 물질성’이 신성아의 작업에까지 이어져 있는 것은 자연스러우며, 그중에서도 ‘오디오비주얼’이라는 매체가 가진 고유의 속성과 추상성이 신성아의 작품 안에서 유독 도드라진다. 더 나아가 신성아가 사운드의 질감을 전체적인 톤을 유지한 상태에서 섬세하게 다루는 것 또한 이런 시각작업자와의 공동작업의 결과로 보인다. 특히 이런 측면은 신성아의 작업과 ‘미니멀 아트’를 연결시키는데, 사운드의 ‘물질성’을 중요시한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관람자의 몰입과 체험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신성아가 위와 같은 다양한 속성을 구현하기 위해 실질적으로 사용하는 소리가 ‘글리치’(glitch)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 글리치는 시각예술과 사운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사용되는 테크닉이자 소재다. 특히 신성아의 작품에서는 ‘글리치’가 실재와 가상, 추상과 구체의 사이에 놓인 요소로 등장하며, 비주얼적 요소와 결합되어 그 소리의 질감이 극대화되는 방식으로 다가온다.

 

음악적 요소의 제한

일반적으로 전자음악 작곡가들은 가능한 다채로운 음악적 조작을 하나의 테이프 음악 안에서 펼친다. 반면 신성아는 극단적으로 제한된 방식으로 샘플을 조작하며, 결과적으로는 소리의 사운드스케이프가 하나의 톤으로 정돈되어 있다. 예컨대 대부분의 전자음악적 조작이 그 테크닉을 전면에 드러내고, 소음들을 배열해 그것을 ‘건축적으로’, 일견 음악적으로 통제하는 것에 비해, 신성아의 작품 속 소리들은 보다 소리 그 자체의 ‘오브제’에 가까우며, 음고 등의 요소를 명확하게 인지 가능한 상태에서, 그 자체의 물리적 속성을 음미하게 한다.

이를테면 작품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가 ‘노이즈’일 경우, 마치 화면 속 기기의 조작이나 오류로 인해서 ‘자연스럽게’ 소리나는 것과 같은 형태로 청취된다. 물론 이런 노이즈들이 모두 자연스럽게 얻어진 것은 아니지만, 관객들이 그와 같은 감상을 느끼도록 조절되어 있다. 이 소리들은 인위적인 음의 세계나 구성적 체계를 만들지 않는다.

주목할 점은 이런 날것의 소리들이 ‘실재와 가상’을 넘나드는 이미지와 결합한다는 점이다. 이 경우 영상은 실제 대상을 촬영한 소스를 재료로 하지만, 작품 안에서 이를 명확하게 감지할 수는 없다. 특히 이런 작품 안에서 실재와 가상의 경계가 불분명하게 처리되고, 이 둘 사이의 인식전환이 이뤄지는 순간이 굉장히 매혹적이다.

이런 속성은 관람자의 인식을 중요하게 다루는 것이기도 하며, 이 지점이 작품 안의 클라이맥스 혹은 마무리로 채택된다. 이와 같은 과정은 대조적으로 드러나거나 형식적 분절을 이루지는 않되, ‘점진적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 안에서의 ‘변화’의 파악은, 관객의 집중과 독특한 청취를 전제로 한다.

 

 

오디오비주얼 미디어아트를 위한 〈사굴〉 (Sagul for audio-visual media art, 2021)

 

오브제로서의 시청각이 이야기를 건네는 순간

오디오비주얼 미디어아트를 위한 〈사굴〉은 2021년 10월 15일 플랫폼엘 컨템포퍼리 아트센터 플랫폼 라이브에서 열린 서울국제컴퓨터음악제에서 초연된 작품이다. “꿈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이 작품은 “화산섬인 제주도의 지형적인 특성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용암동굴”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전설, 신화, 민담의 배경”을 기저에 두고 작업되었다. 작곡가는 이 작품이 “구술된 기억, 사건, 기록들을 영상과 음악, 사운드로 재구성해내어 문서기록으로 대체할 수 없는 또 다른 감각들을 연결”해 만드는 것이라 주장한다. 결국 이런 진술은 현상으로서의 이미지와 사운드를 관객에게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작품의 세팅은 실험영화 전통에서 면밀히 탐구되어 오던 매체성과 물질성, 그리고 현상 그 자체에 대한 집중을 21 세기의 테크놀로지와 함께 새로운 방식으로 재출현시키는 양상으로 표현된다.

〈사굴〉은 색의 팔레트를 수직으로 배치한 듯한 독특한 이미지로 시작한다. 푸른색 계열이 지배적이었던 세로선들은 이내 총천연색의 조합으로 바뀌고, 여기에 동반되는 중음역대의 글리치 사운드와 함께 점멸하기를 반복한다. 이 추상 이미지는 색의 조합을 시시각각 바꾸며 점멸속도를 변화시키기도 하고 그 형태를 좁게 또 넓게 변주해나간다. 한편, 〈사굴〉의 화려한 이미지와 함께 가장 먼저 등장하는 소리는 “short wave form” 단파가 몇 개 겹쳐진 아주 단순한 재료로서 D음이 중심인 이 소리를 기본으로 주변음으로서의 노이즈를 입히며 소리가 구성된다. 작품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전반부에서는 ”발전이라고 할 수 없는, 전개 정도의 사운드 소개”가 반복적으로 제시된다. 사운드는 작품 전체에 걸쳐 그 성격과 소재가 철저히 제한되며, 이런 제한된 요소에서 끄집어 낼 수 있는 합성(synthesis)의 모든 방법이 시도된다.

오디오비주얼이라는 형태 안에서 해당 이미지가 ‘어떤 방식으로’ 영상과 싱크를 맞추고 있는지, 작곡가나 영상작업자가 설정했던 규칙이 무엇인지를 애써 고민할 필요는 없다. 신성아는 다양한 작업을 통해 이미지가 선행된 상태에서 음악이 결합하는 경우, 혹은 그 반대의 경우를 다년간 탐구해왔고, 그 안에서 관습적으로 발견되는 ‘음악과 이미지의 병행’, ‘음악과 이미지의 대위법’, ‘어쿠스마틱’(acousmatique), 하드싱크, 소프트싱크와 같은 기존 영상음악의 문법을 두루 실험한 바 있다. 그리고 현재 진행되는 작업 안에서는 이런 것을 뛰어넘어, 관객이 해당 오디오비주얼에 몰입한 상태에서 그것이 어떻게 보이는지 스스로 확인하고 ‘새로운 결합 상태’를 경험하길 바란다. 예컨대 〈사굴〉에 넘실대는 핑크빛 이미지들은 음악에 선행된 것이기도, 후행된 것이기도 하며, 그것의 결합방식은 작곡가가 아니라 ‘관객’이 스스로 인지하는 순간 확정된다.

결국 ‘제주’ 혹은 ‘화산섬’ 등을 비롯한 신성아가 설정한 ‘주관적인’ 혹은 ‘개인적인’ 키워드들은, 차갑고 물질 그 자체로만 가득 차 있는 기하학적인 오디비주얼과 함께 ‘의미’와 ‘추상’ 사이를 넘나든다. 이 안에서 소리와 이미지는 마치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서로 싱크를 맞추는 것처럼 보이기도, 지지직거리는 글리치 사운드의 자잘한 진동이 이미지의 움직임에 따른 여파로 동반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주목할 점은 눈앞에 인지되는 이미지 역시 ‘가상’인지 ‘실재’인지, 혹은 디지털로만 조작된 ‘2차원 평면’인지 아니면 실제로 존재하는 ‘3차원 형상의 일부’인지 애매모호하다는 점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 작품은 관객이 지금까지 보아오던 이미지가 컴퓨터 그래픽이 아니라 ‘놀이공원에서 네온사인’을 반짝이며 움직이던 놀이기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품게 만드는 풀 샷(full shot)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직전에 인지했던 시청각적 환영은 다시 미확정의 상태가 된다. 미세한 글리치 사운드 역시 실제 기계의 오류로부터 온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관객은 ‘출처 있는 소리’와 ‘출처 없는 소리’ 사이를 저울질한다.

이런 방식으로 이미지와 소리는 경계를 계속해서 넘나드는데, 작품 전체에 대한 지속적이고 강렬한 시청각적 몰입을 한 상태라야만 이를 느낄 수 있다. 물론 이런 ‘실재’에 대한 인식이 작곡가가 이야기하는 제주도의 용암동굴이나 신화, 민담,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까지로는 구체화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찰나의 순간 ‘추상에서 구체’로 전이되는 감각은, 그 안에 작곡가가 담 고 싶었던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이 도사리고 있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작곡가 신성아와의 대화
2022년 2월 18일 오후 2시 계명대학교 연구실

 

이민희: 선생님의 작품 궤적 안에서 연극음악, 오디오비주얼, 실험영화 등 ‘혼합매체’가 굉장히 중요해 보입니다.

- 신성아: 컴퓨터음악 작곡으로 석사를 받았기 때문에, 전통적인 컴퓨터음악의 역사와 방법론 에 대하여 학습하였고 전통적이고 아카데믹한 전자음악 작업도 좋아합니다. 다만, 그것에 한 정된 작업을 하는 것에서 조금 더 확장된 방법으로 오디오비주얼 작업을 시작한 측면이 큽니다. 물론 미학적으로 이미지로까지 청각적인 요소들을 확장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업 초기에는 MAX/MSP, Jitter 등을 통하여 실시간 이미지프로세싱 작업도 병행하였는데, 오히려 이 작업은 지속적으로 하지는 못했고 간혹 작업의 성격에 따라 사용하는 정도였습니다. 이 경우 프로세싱의 정도가 헤비해지는 것에 무의식적인 반감이 있었고, 프로세싱을 통해 이러한 반감을 넘는 정도까지 기술적인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기도 하였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청각예술가가 이미지 분야를 넘어가는 것에 대한 반감을 조금은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그러한 까닭에 작곡가가 청각적인 이벤트를 컨트롤한다고 한다면, 이미지의 영역에서는 원하는 작업자를 만나지 못하거나, 작곡가 스스로 전문적인 이미지 분야의 전문가가 되지 못하는 경우, 오디오비주얼 작업은 크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원하는 작업자를 만나지 못했다면, 이미지 분야에 전문가 수준이 되어 이 분야를 작업하거나, 아니면 작업을 포기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이민희: 한 명의 작업자(장은주)와 계속해서 작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든가, 반대로 서로의 영역에 대해 터치를 하지 않는 등, 공동작업자와의 작업 진행방식이 궁금합니다. 특히 결과물의 최종선택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요?

- 신성아: 장은주와는 15년 정도 작업해 오고 있고, 작업물도 상당히 많습니다. 초기에는 여러 명의 작업자들과 작업의 성격에 따라 다르게 작업하기도 하였는데, 현재는 그러지는 않습니다. 장은주 감독과의 작업방식은 철저히 개인적이고 예술적이고 어느 정도는 이기적입니다. ‘작 업의 시작’이 내가 주도하는 작업이라면 모든 것들은 내가 원하는 예술적 선택으로 진행됩니다. 하지만, 이미지 작업 자체에 터치를 하지는 않고, 사운드를 작업해서 전달하면 이후에 이 미지 작업이 진행되는 방식입니다. 이는 이미지가 우선시되어 사운드 작업이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장은주 감독도 사운드를 수없이 반복해 들어보고 스스로 상상력을 확장하며 작업을 진행합니다. 구체적인 작업 방식은 사운드에 따라서 필요한 대로 이미지를 촬영하거나, 프로세싱하거나, 혹은 핸드프린팅을 활용하는 등 다양하게 이뤄집니다.

반대로 실험영화 작업이라면 이미지 작업이 철저하게 우선시됩니다. 초기 작업에서는 물론 텍스트 분석이 우선되지만, 일단 이미지가 생성된 이후 음악이 작곡됩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음악과 사운드에 대한 자율성은 100퍼센트 보장됩니다. 볼륨 컨트롤 같은 기본적인 에러 정도만 코멘트 받는 정도이고 음악적 선택은 모두 나에게 맡겨집니다. 이미지를 제외한 전체 디렉팅의 경우는 내가 더 많은 경험과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체 믹싱도 기술적인 면에서는 내가 마무리합니다.

 

이민희: 오디오비주얼 작업의 진행과정을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 신성아: 작업 초기와 비교하여 현재의 경우 작업 자체는 훨씬 치열하되, 고민하는 과정의 시간이 더 길어졌습니다. 다만, 하고 싶지 않은 작업은 하고 싶지 않고, 하기 싫은 절차는 걷어내는 과정을 오랫동안 해온 까닭에 현재는 불필요한 과정은 거의 없습니다.

사운드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도 기술적으로 많은 것들을 고려하지 않고, 만들고 싶은 사운드에 따라서 결정합니다. 샘플이 필요한 경우는 대부분 모두 스스로 샘플하되, 샘플로 해결되지 않는 사운드는 스스로 만듭니다. MAX/ MSP, CSound, SuperCollider 등등 사용할 수 있는 모든 툴들을 사용하고, 컨트롤러로 사용하지 않는 경우라면 원하는 정도의 사운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이때 중요한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마치 전통 작곡에서 모티브와 같겠지요. 이러한 몇몇의 중요한 사운드 작업이 해 결되고 나면 형식 등을 구축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수월합니다.

사운드 디자인을 전공해서 기본적인 엔지니어링은 컨트롤 가능하고, 다른 사람의 인력이나 장비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작업하는 환경을 구축하고자 오랜 시간 준비한 탓에, 현재는 특별하게 아쉬운 점은 없고. 지속적으로 공부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기본적인 작업은 개인작업실에서 진행합니다. 현재 사용하는 가장 중요한 장비는 스피커와 서브우퍼, 최신식으로 업데이트된 컴퓨터와 전문적인 오디오 인터페이스, 녹음장비 정도입니다.

실험적인 작업의 방식이나 전제는 작업하는 과정에서 결정하는 것이지, 실험 자체가 목적이 되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술적인 실험이 우선이 되되, 방법적인 것은 a가 되든 b가 되든 자유롭게 진행됩니다. 따라서 비주얼이 선행되고 음악이 작업되든, 혹은 그 반대가 되든 크게 상관이 없어요.

 

이민희: 기존의 클래식 작곡가가 등장하지 않는 다양한 언더그라운드 예술씬(서울국제실험영화제, 프린지페스티벌 등) 등을 다양하게 섭렵하고 계십니다. 이 분야의 관객은 선생님의 작업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요? 그 반응이 아카데믹 한 청중의 반응과 차이가 있을까요?

- 신성아: 관객들은 생각보다 열려있는 대상이고, 작업자가 어떠한 것을 가르치거나 특정하 게 받아들여 달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이미 관객들은 충분히 잘 느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 히려, 전통적인 연주회에서는 이미지에 대한 질문들이 많고, 영화제에서는 사운드에 대한 질문이 많습니다. 언더그라운드 예술씬을 좋아한 것은 여러 의미에서의 자유로움 때문이었고, 아카데믹한 연주회를 지속적으로 하는 것은 교육자와 예술가를 병행하고자 하는 개인적인 열망 때문이었습니다.

 

이민희: 소재나 기법으로서 ‘글리치’에 대해서 어떤 입장이신지요? 음악 안에서 실질적으로 중요하다고 느끼는 요소나 가치가 있습니까?

- 신성아: 물론 제가 원하는 작업에 따라 툴이나 소리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초기에 MAX/Msp나 라이브일렉톤 등을 쓰다가 최근에는 사용하지 않은 지가 조금 되었습니다. 이런 툴들은 제 게 있어서는 초기에는 엄청나게 새로운 사운드를 제시했는데, 지금은 그 원하는 이상의 미학적인 레벨이 나오지 않다고 느껴지고, 어떤 측면에서는 이 툴이 이 정도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해요.

개인적인 취향으로 소재의 선택에 있어서 원시 적이고 원초적인 사운드, 아날로그 질감의 사운드를 선호합니다. 디지털 사운드에 매료되어 프로세싱으로만 깔끔하게 작업한 곡도 있지만, 현재는 오류에 가까운 잡음, 노이즈를 선호합니다. 그리고 작업을 시작해서 진행하다 보면, 소재가 중요한지 아닌지 잊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특히, 요즘은 무엇이 중요한지, 잊어버리고 무의식적으로 작업하는 경우가 종종 존재합니다. 아마도 작업자들은 이해하실 텐데, 설명으로 이해시켜 드리기는 애매한 부분입니다. 음악이 스스로 음악을 만든다는 것 같은 것. 이는 작업의 시작에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다만, 제 작업이 다른 작업자들의 음악과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제가 투사하는 ‘공간감’, 특히 제가 다양한 ‘공간’을 경험하고 이것이 반영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적으로 작 곡가들이 많은 공간을 경험하기가 힘들어요. 하지만 공간을 경험하는 횟수가 많아지고, 체감이 훨씬 디테일해지면 실제 스튜디오 작업 할 때 무의식적으로 반영이 됩니다. 제가 현재 1980년대의 소리풍경을 갖는 극도로 조용한 제 주도의 농가주택에 살고 있기도 하고, 그리고 대학시절 미국의 콘필드에서 엑스파일에 나올 법한 어마어마한 규모의 핵발전소의 진동에서 또 다른 종류의 사운드를 경험한 영향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 이민희 음악평론가, "신성아, 오디오비주얼 미디어아트를 위한 〈사굴〉", 『전자음악: 인식과 소통의 감感』, 서울: 모노폴리, 2022.10.22. 

작곡가 신성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