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필립 글래스(Philip Glass, 1937-)와 스티브 라이히(Steve Reich, 1936-)의 녹음된 음반을 대상으로 하는 대중음악 속 샘플링(Sampling) 사례를 분석한다. 이 안에서 미니멀 음악은 첫째, 특유의 이산적 특성과 모듈성을 기반으로 하는 루프(Loop)로 활용되거나, 새로운 음악적 맥락에 배치되는 독특한 음향 도구가 된다. 둘째, 녹음된 미니멀 음악의 사운드적 특이성을 중요하게 다루는 방식으로 샘플링된다. 셋째, 라이히의 음악 중에서 ‘샘플링’이라 부를 수 있었던 작업들, 그리고 글래스가 대중음악을 차용해서 작곡했던 작업들이 다시 샘플링되고, 이 과정에서 원곡에 내재되었던 의미가 새로운 방식으로 재해석된다. 결과적으로 본 연구를 통해 미니멀 음악사조가 20세기 말 살아있는 음악실체로서 다양한 영역의 청자를 만나 왔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미니멀 음악을 재료로 한 대중음악가의 재창작이 결국 아카데미에서 행하는 것에 비해 훨씬 더 입체적이고 창조적인 해석 작업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더 나아가 글래스와 라이히의 몇몇 작품은 샘플링 관습을 거침으로써 이 음악의 특성과 미니멀 음악의 속성을 다시 고민하게 한다.

이미지 출처 https://samplified.us/blogs/news/music-samp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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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히가 1990년대 초 런던에 콘서트를 하러 갔을 때 그를 인터뷰했던 한 매거진은 “오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당시 라이히는 ‘오브’가 무엇인지 몰랐지만 영국의 인터뷰어들은 라이히에게 오브가 무엇인지 알아야 된다며 오브의 시디를 건네주었다. 이후에도 라이히는 종종 “엉클이 당신의 음악을 샘플링 했어요!”와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이처럼 미니멀 음악의 확산과 함께 광범위하게 이뤄진 미니멀 음악의 샘플링은 첫째, ‘미니멀 음악’이라는 20세기 말 현대음악의 한 사조가 ‘동시대 문화’, 더 정확하게는 변화한 미디어 환경 안에서 극히 활발하게 전유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히 미니멀 음악이 여타 다른 20세기의 현대음악과는 달리 ‘DJ문화’ 등으로 구체화되는 ‘대중음악’ 영역에 이 음악의 팬층을 보유하고 있었고, 녹음의 형태로 더 많은 영역의 청자를 만나왔음을 입증한다.

둘째, 미니멀 음악의 샘플링은 본질적으로는 이 음악 특유의 이산적 특성이나 모듈성, 더 나아가 선율이 부재한 짜임새나 연속적이고도 점진적인 진행 및 반복 등을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대중음악가들은 미니멀 음악을 원곡의 모듈 그대로 샘플링하는 것에서부터, 완전히 창조적인 방식으로 재조합하는 방식까지를 선보였다. 이는 미니멀 음악이 본래의 음악적 특성으로 인해 보다 수월하게 샘플링 문화 안에 포섭된 것은 사실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창작자들의 예민한 감식력과 아이디어로 인해 새로운 형태로 대중음악의 일부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샘플링이라는 도구를 토대로 하는 일부 대중음악가의 해석 작업이 아카데미에서 행해지는 미니멀 음악에 대한 분석이나 해석 보다 훨씬 더 입체적이고 창조적일 가능성을 암시한다.

셋째, 미니멀 음악의 샘플링 중 일부는 애초에 이 음악이 고유한 특질로 내세우던 테이프 음악 속 반복이나 대중음악을 차용해왔던 과거를 비튼다. 사실상 클래식 현대음악 속 샘플링 작업으로도 볼 수 있는 라이히의 테이프 음악이 대중음악가에 의해 다시 샘플링을 통해 전복됨으로써, 그 원곡의 의의를 다시 고민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글래스가 자주 행하던 대중음악을 차용한 작곡은, 샘플링 문화 안에서 순환하면서 ‘고급’ 클래식 음악과 ‘낮은’ 대중음악이라는 위계를 잃어버리고 순수한 음향 단편으로 떠돈다. 이 역시 특정 음악이 샘플링이라는 도구를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되는 사례다.

이처럼 글래스와 라이히의 음악을 중심으로 하는 미니멀 음악의 샘플링에 관한 분석은 기존의 미니멀 음악 연구에서 잘 다뤄지지 않았던 주제이지만, 이들의 음악에 대한 대중문화 속에서의 전유 및 재해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20세기 말 가장 강력한 음악 사조였던 미니멀 음악에 대한 새로운 계()의 반응인 동시에, 실제로 이 음악이 얼마나 직접적으로 대중문화와 가까웠는지를 알게 한다. 무엇보다도 이런 모든 상황은 미니멀 음악이 음악사 속 박제된 관념으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20세기 말 음악실체로서 생명력을 갖고 있었음을 증명한다.

 

2024.03.10. "미니멀 음악의 샘플링에 관한 연구: 필립 글래스와 스티브 라이히의 작품을 중심으로", 『한국예술연구』 43: 163-185. (KCI등재) [게재확정 2024.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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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 음악의 샘플링에 관한 연구 - 필립 글래스와 스티브 라이히의 작품을 중심으로 | DBpia

이민희 | 한국예술연구 | 202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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