왈츠의 모든 것

2024. 4. 11. 10:17

무중력의 검은 배경 위로 매끈하게 드러난 지구의 곡선, 바로 그 옆을 느리게 유영하는 우주선. 다소 냉혹한 우주의 풍경에 천재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결합시켰다. 그러자 눈앞의 암흑은 금새 아름다운 무언가로 탈바꿈했다.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이 유명한 장면이 암시하는 것은 첫째, 왈츠란 우아한 느낌을 준다는 것, 둘째, 왈츠는 원을 그려 도는 운동을 암시한다는 것, 그리고 셋째, 무엇보다도 왈츠란 인간들 사이의 애정과 친교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음악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 음악이 암흑의 우주에 울려 퍼진 순간 그곳은 온기로 가득 찬 인간적인 무언가로 보였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춤곡 ‘왈츠’의 역사는 17세기 그리고 그보다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 형태 또한 슈트라우스 2세로 대표되는 비엔나 스타일 왈츠에서부터 쇼팽을 떠올리게 하는 ‘성격소품’으로서의 왈츠까지 다양하다. 긴 시간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즐겨 사랑한 음악일수록 그 형태가 여럿으로 변모한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왈츠의 다양한 모습이나 매체를 넘나드는 외형 변화는 당연해 보인다. 그럼에도 이 음악이 거의 모든 사람이 가장 익숙하게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유명한 춤이라는 점, 그리고 수백 년에 걸쳐 음악문화의 한 가운데에서 특정한 형태로 계속해서 존재해 왔다는 점은 명백하다.

이미지 출처 https://sfdh.us/encyclopedia/history_of_the_waltz.html

 

느린 춤곡에서 시민계급의 새로운 유행으로

왈츠는 4분의 3박자의 춤곡으로 영미권에서는 왈츠(waltz), 독일에서는 발저(Waltzer), 이탈리아에서는 발제로(Valzero), 프랑스에서는 발스(Valse) 등으로 지칭된다. 다양한 나라의 언어로 불리고 있는 만큼 ‘왈츠’의 기원이 어디에 있는지도 의견이 분분하다. 첫 번째 의견은 독일어인 ‘waltzer’에서 이 춤의 시작을 추측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단어는 라틴어의 ‘volvere’에 해당하는 것으로 ‘구르다’ 혹은 ‘회전하다’라는 뜻을 갖는다. 때문에 ‘왈츠’는 처음에는 ‘도는’ 행위를 포함하는 다양한 춤을 광범위하게 지칭하다가,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 특정한 독일 춤으로 그 범위가 좁혀졌다. 두 번째 의견은 그 기원을 프랑스의 프로방스 지방으로 보는 것이다. 이 지역에 존재했던 볼타(Voltar)라는 춤이 16세기에 독일로 넘어가 발저(Waltzer)가 됐으며, 이후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했다는 주장이다. 한편, 세 번째 주장은 음악과 춤으로서의 왈츠가 독일과 오스트리아 지방의 컨트리댄스 및 랜들러(Ländler)를 느슨하게 지칭하며 발전되어 나왔다는 견해다.

기원이 어떻든 간에, 왈츠가 그 생성 초기에 독일을 중심으로 17세기에 광범위하게 발전하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며, 18세기 즈음에 이르러 음악가의 작품 목록이나 가수의 기록 등에서 ‘왈츠’라는 표기가 늘어난다. 다만 그때까지만 해도 왈츠의 특징이 명확하게 인지되지는 않을 때였기 때문에 많은 작곡가들이 작품에 명시한 왈츠라는 음악이 매번 동일한 특징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이를테면 1766년 영국인 가수의 기록 안에 남겨진 ‘왈츠’란 미뉴에트나 랜들러에 가까운 음악이었고, 하이든이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속 ‘왈츠 악장’(Mouvement de Walze)은 실제로 미뉴에트에 가깝다. 모차르트가 작곡한 〈독일 춤곡〉(K. 605), 그리고 베토벤이 작곡한 <안톤 디아벨리의 왈츠에 의한 33개의 변주곡> 역시 19세기에 정형화된 일반적인 왈츠와는 거리가 있다.

18세기 말이 되자 새로운 사회 분위기와 함께 ‘왈츠’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여전히 왈츠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느린 랜들러에 가까운 스타일이었지만, 왕족과 귀족 위주의 사회가 새롭게 시민계급으로 개편되는 과정과 함께 그 특유의 간결하고 단순한 스타일로 서민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이다. 일부는 ‘서로 껴안고 추는 춤’이 육체적 타락을 불러일으킨다고 걱정했지만, 시민계급은 점점 더 이 춤에 빠져들었다. 특히 오스트리아 지방은 개방된 사회 분위기를 갖고 있었고, 귀족과 시민계급 사이의 사회적 갈등을 봉합하고자 했던 요제프 2세에 의해 왈츠가 권장되었다. 그렇게 수천의 남녀가 성대한 무도회에 등장해 왈츠를 추기 시작했고, 실제로 1792년에 발간된 한 잡지는 “지금 왈츠가 유행이여서 사람들은 다른 무용들은 거들떠보지 않고 오로지 왈츠만을 추고 싶어한다”며 이때의 분위기를 묘사한다.

 

왈츠의 대 전성시대

18세기 말 왈츠의 인기를 급류로 바꾸어 ‘대 왈츠 시대’로 만든 것은 1814-1815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열렸던 ‘빈 회의’이다. 19세기를 여는 이 국제회의는 당시 유럽 서부를 지배하던 혁명사상에 대처하기 위한 자리였으나, 결과적으로는 전 유럽에 왈츠의 붐을 몰고 왔다. 회의를 주재한 오스트리아의 메테르니히는 회의 기간 내내 호화로운 연회와 무도회를 열었고 이 자리에 왈츠가 늘 동반됐기 때문이다. 사실상 혁명에 비판적이었던 이들은 사람들이 즐거운 분위기에서 춤추고 즐기며 현실의 문제를 외면하길 원했고, 정치적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수단으로 왈츠를 장려했다. 예컨대 ‘왕정복고’를 향한 열망 아래에서 비엔나의 모든 시민은 수없이 늘어난 무도회장을 손쉽게 방문할 수 있었다. 동시에 산업구조의 변화로 인해 이제 사람들에게는 ‘여가’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이들은 생업에서 얻은 스트레스를 풀 방도가 필요했고, 바로 왈츠가 이 지점을 파고든다.

많은 이들이 왈츠를 원함에 따라 다수의 작곡가가 왈츠를 작곡하기 시작했다. 특히 작곡가 베버(C. M. v. Weber, 1786-1826), 라네르(J. Lanner, 1801-1844), 요한 슈트라우스 1세(J. Strauss, 1804-1849)가 선두적인 역할을 했다. 이들은 연주회를 위한 왈츠 작곡의 표준을 만들었는데, 이때부터 왈츠란 다섯 곡으로 이뤄진 ‘모음곡’의 형식을 갖추고, 앞에는 도입부 뒤쪽에는 코다가 붙게 되었다. 모음곡 안에 등장하는 왈츠 각각은 대부분 A-B-A 구조로 이뤄졌으며 처음의 A와 B는 반복한다. 이 부류의 잘 알려진 작품으로 베버의 1819년작 <무도회의 권유>를 빼놓을 수 없다. 베버의 작품은 특유의 왈츠 형식을 구사하는 동시에 표제적인 줄거리를 사용해 큰 인기를 얻었다. 왈츠의 왕 요한 슈트라우스 2세(1825-1899) 역시 아버지 시대에 정립한 표준에 따라 왈츠를 작곡했다. 다만 2세의 작품은 보다 다채로운 악기편성과 섬세한 화성진행을 능숙하게 활용한다. 또한 세 박자 중에서 두 번째 박자를 살짝 앞으로 당겨 연주하는 방식, 왈츠에 2박자의 폴카나 행진곡 등을 교묘하게 결합시키는 방식을 통해 왈츠가 단조로운 ‘쿵짝짝’의 연속에서 벗어나도록 했다. 그렇게 우리가 기억하는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1867)가 작곡되어 널리 연주되기에 이른다.

Johann Strauss, Berliner Philharmoniker, Herbert von Karajan – An Der Schönen Blauen Donau (Deutsche Grammophon 400 026-2, 1983)

이미지 출처 https://sfdh.us/encyclopedia/history_of_the_waltz.html

피아노 음악으로서의 왈츠

비엔나 작곡가들에 의해 활발히 작곡된 왈츠가 실제로 무도회에서 춤을 추기 위한 춤 반주였다면, 사람들은 점점 이 음악을 가정에서도 듣길 원했다. 많은 이들이 거실에 피아노라는 악기를 들여놓았고, 출판업계는 이들을 위한 ‘가정음악’을 맹렬히 공급했다. 이런 분위기 가운데 왈츠는 폴카나 폴로네즈, 마주르카 등 다양한 춤곡과 함께 가정음악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이 때문에 ‘작은 대가들’로 불렸던 슈타이벨트(Daniel Steibelt), 모셸레스(I. Moscheles) 등의 작곡가들은 피아노용 왈츠를 꾸준히 작곡했다. 슈베르트 역시 여흥용 왈츠를 썼는데, <36개의 왈츠>(D. 365)와 같은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한편 브람스는 <왈츠>(Op. 39, No. 15)를 비롯하여 두 대의 피아노와 성악 4중창을 위한 <왈츠에 붙인 사랑의 노래>(Op. 52) 등을 작곡했다. 브람스의 레퍼토리는 작곡가 특유의 토속적이고 서민적인 느낌과 왈츠라는 장르를 결합시켰다는 점이 특이하다.

가정용으로 작곡된 비교적 난이도가 낮은 실용적 왈츠와 달리, 난이도가 상당한 연주회용 왈츠도 존재한다. 이런 음악들은 19세기를 풍미한 다수의 작곡가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쇼팽의 <화려한 대왈츠>를 비롯하여, 슈만과 리스트 역시 ‘왈츠’라는 이름의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슈만은 20개의 곡으로 구성된 <카니발>(Op. 9) 안에 ‘우아한 왈츠’ 및 ‘발스 알르망드’라는 악장을 등장시킨다. 한편 리스트의 <메피스토 왈츠>는 왈츠가 보여줄 수 있는 테크닉의 극단을 제시하며, 라벨은 1911년 <우아하고 감상적인 왈츠> 그리고 1919년 <라 발스>를 통해 왈츠를 새로운 방식으로 재해석한다. 특히 <라 발스>는 안무가 디아길레프가 “왈츠가 아니라 왈츠를 표현한 그림에 가깝다”는 평을 했을 정도로 혁신적이다.

이제 <라 발스>까지 진화한 왈츠는 비엔나의 사교계와 당대의 왕정복고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왈츠에 맞추어 춤을 추는 것은 불가능해졌고 대신 왈츠라고 이름 붙인 음악이 품고 있었던 활력과 생동감, 계속해서 돌고 도는 에너지가 피아노의 기교와 만나 새로운 경지에서 해석되기에 이른 것이다.

Didier Castell-Jacomin - Schubert: Waltzes and Ecossaises (Naxos 8.574165, 2023)
Brahms, Schubert, The Marlboro Music Festival – Liebeslieder Walzer, Op. 52 / The Shepherd On The Rock, Op. 129  (Columbia Masterworks MS 6236, 2016)
Martha Argerich – The Collection 4: Complete Philips Recordings (Decca 478 2746, 2011)

 

관현악 작품으로서의 왈츠

20세기로 향하는 길목, 점차 ‘비엔나 왈츠’와는 구분되는 또 다른 형태의 왈츠가 생겨난다. 이미 19세기에 ‘프렌치 왈츠’가 그리고 좀 더 느린 속도에서 춤을 추는 미국의 ‘보스턴’이 큰 인기를 끌었으며, 이것들은 각기 다른 구성과 빠르기를 가진다. 특히 보스턴은 다시 유럽으로 흘러들어 ‘영국 왈츠’로 불리며 왈츠의 또 다른 전형이 되었다. 동시에 왈츠는 이제 관현악으로 범위를 넓혀 작곡되기 시작했다. 이미 비엔나에서 수많은 무명 작곡가들이 무도회장을 위한 관현악 왈츠를 작곡했고, 앞서 언급했던 라벨의 작품을 비롯한 다양한 피아노 왈츠가 관현악 편성으로도 관객을 만나왔던 터, 이외에도 관현악 모음곡이나 교향곡에 ‘왈츠’라고 이름 붙은 악장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표제교향곡의 경우 특정 악장이 왈츠를 기반으로 작곡되기도 했는데,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1830)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의 2악장은 ‘무도회’라는 표제가 붙어 있으며 이를 반영하듯 악장 전체가 왈츠 리듬이 지배적인 ‘무도회장의 풍경’을 그린다.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5번>(1888)은 3악장에 ‘왈츠’를 삽입했다. 격정적이고 강렬한 다른 악장에 비해 3악장은 현악기의 피치카토와 그 위에 얹힌 아름다운 선율을 토대로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말러의 <교향곡 9번> 2악장에도 왈츠가 등장한다. 다만 <교향곡 9번>의 경우 여러 가지 춤곡이 나열되고 뒤섞여 나오는 까닭에,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형태의 반복되는 박자의 편안한 흐름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벨리우스의 교향시 <슬픈 왈츠>(Op. 44, 1903)는 본래 연극의 부수음악으로 작곡되었던 것으로, 죽음을 앞둔 병자가 격렬한 왈츠를 추는 장면을 그린다. 왈츠에서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우아하거나 고상한 분위기 대신 ‘죽음’이라는 테마를 전면에 내세우고, 음악 전체를 아이러니하고 드라마틱하게 표현한다. 특히 몸을 일으키기도 힘든 병든 여인이 기이한 에너지의 왈츠를 추다가 갑자기 중단한다는 서사는 죽기 직전의 광기를 ‘왈츠’에 담는다. 이 작품은 시벨리우스의 가장 유명한 곡 중 하나로 그의 뛰어난 관현악법과 세련된 선율작법을 보여준다.

Myung-Whun Chung, Seoul Philharmonic Orchestra – Mahler Symphony No.9 (Deutsche Grammophon 481 110-9, 2014)
San Francisco Symphony, Michael Tilson Thomas, Yuja Wang – Masterpieces In Miniature (SFS Media SFS 0060, 2014)

 

오페라, 그리고 영화에 포함된 왈츠

21세기가 된 오늘날, 대중이 완전한 형태의 ‘왈츠’를 가장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놀랍게도 그것은 ‘오페라’라고 하는 더 큰 음악 장르 안에서다. 수없이 많은 음악이 나열되는 오페라는 그 안에 특정 시대를 재현하거나 분위기를 창출하기 위해 왈츠처럼 견고한 형식이 존재하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음악을 자주 가져다 쓴다.

이 부류의 시발점은 사실 오페라 ‘안에’ 왈츠를 집어넣은 작품이라기보다는, 오페라 ‘그 자체’가 왈츠인 <박쥐>다. 이 작품은 슈트라우스 2세가 1874년 작곡했으며, 가볍고 단순한 구조로 된 ‘오페라타’ 형식이다. <박쥐>는 슈트라우스가 개최한 왈츠 음악회의 한쪽 구석에서 성악가들이 노래를 부르는 것이 연상될 정도로 극 전체가 왈츠로 가득 차 있다. 누군가는 왈츠만 등장하는 이 오페라가 지루하지 않겠느냐고 걱정하겠지만, 오히려 왈츠만 계속해서 연주되던 음악회장에 ‘오페라적인 요소’를 더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 중 하나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는 1909년 작곡한 <장미의 기사>에 왈츠를 포함시켰다. <장미의 기사>는 슈트라우스가 1903년이나 1906년에 작곡했던 <살로메>나 <엘렉트라>와 달리 급작스럽게 온건한 스타일로 선회한 작품으로서, 오스트리아 귀족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희곡이다. 20세기 초에 누구보다도 조성의 붕괴와 불협화를 추구했던 그였기에 <장미의 기사>에서 보여준 조성주의로의 복귀는 모두를 당황시켰고, 이러한 과거로의 지향성이 ‘왈츠’라는 형식에 극명하게 드러난다. 후에 <장미의 기사>는 주요 음악이 발췌되어 관현악 모음곡으로도 자주 연주되는데 그 안에도 ‘왈츠’가 배치되었다.

<장미의 기사><박쥐>에서 활용된 왈츠가 춤이 일상이었던 특정 사회를 탁월하게 묘사해낸다면, 보다 현대에 작곡된 몇몇 오페라는 왈츠를 보다 복합적인 맥락에서 등장시킨다. 2비인악파로 불리며 표현주의 음악의 명곡을 쏟아냈던 베르크(A. Berg)의 오페라 <보체크>(1917-1922)는 뷔히너(Buchner)의 대본을 바탕으로 사회고발적이고 비극적인 사랑이야기에 왈츠를 결합시켰다. 극에는 주인공 마리가 술집에서 춤을 추는 등 다양한 장면에서 왈츠가 등장하되 이 음악은 마냥 낭만적이지 않다. 이외에도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르슈카>(1911)<병사 이야기>(1918) 등 다양한 작품 안에 등장하는 왈츠는 그 자체로 특정 장면의 정서를 전달하거나, 인물의 특성을 나타내는 역할을 맡게 된다.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오페라, 더 나아가 영화와 뮤지컬 등에 왈츠가 심심찮게 사용된다. 이런 왈츠들은 보통빠르기의 3박자와 미끄러지는 듯한 프레이즈, 그리고 신랄하거나 유쾌한 분위기를 갖는 매끄러운 선율을 갖는다. 가장 사랑받는 왈츠 중 하나인 쇼스타코비치의 <재즈모음곡 제2번 중 ‘왈츠’>는 연주회의 앙코르곡으로 자주 연주될 뿐 아니라 수없이 많은 영화의 사운드트랙으로 활용되었고, 이와 유사한 왈츠가 영화음악용으로 끊임없이 작곡됐다. 한국인이 가장 익숙하게 떠올리는 영화음악 중 하나인 <올드 보이>(2003)의 ‘미도 테마’ 역시 ‘왈츠’라는 음악에 각인된 특정한 문화적 기호를 담고 있으며 동시에 쇼스타코비치의 왈츠를 연상시킨다. 17세기에서 시작되어 19세기를 거쳐 21세기에 이른 ‘왈츠’는 여전히 다양한 매체를 통해 특유의 리듬과 성격과 형태를 드러낸 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Richard Strauss, Mariss Jansons, Anja Harteros, Symphonieorchester Des Bayerischen Rundfunks – Rosenkavalier-Suite · Till Eulenspiegel · Vier Letzte Lieder (BR-Klassik 900707, 2009)
Berg - Walter Berry, Isabel Strauss, Fritz Uhl, Carl Doench, Orchestre & Chœr De L'Opera, Paris, Pierre Boulez – Wozzeck (Sony Classical 88697446192, 2009)

 

글 음악학자 이민희
"COLUMN 왈츠에 숨겨진 역사," 월간 객석, 2024년 1월호. 
https://auditorium.kr/2024/01/%ec%83%88%ed%95%b4%eb%a5%bc-%ec%97%ac%eb%8a%94-%ec%9d%8c%ec%95%85-%ec%99%88%ec%b8%a0%ec%97%90-%ea%b4%80%ed%95%9c-%eb%aa%a8%eb%93%a0-%ea%b2%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