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봉의 음악세계를 구성하는 일곱 가지 층위 이해하기 [작곡가 정태봉 음악 연구] 중
온전히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여정
이 글은 정태봉의 음악 세계를 구성하는 일곱 가지의 층위를 추적하고자 한다. 각각의 층위는 엄격한 인과관계를 구축하거나 선형적인 흐름을 형성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 층위들은 하나의 음악이 작곡가 고유의 사회문화적 배경을 거쳐 특유의 사상과 미학으로 발전되고, 이를 바탕으로 고유한 음악 세계가 형성되는 여정을 살핀다. 이를 추적함으로써 작곡가가 그려내고자 했던 그만의 ‘온전히 새로운 세계’를 어렴풋이 엿볼 수 있을 것이다.
1. 전통들
정태봉은 그가 속한 사회문화적 포지션에 의해 두 종류의 전통과 마주해야 했다. 첫째는 그가 음악을 시작하고 나고 자란 모국의 제도권 서양음악 전통이고, 둘째는 유학 생활을 통해 노골적으로 대면해야 했던 서양 속 서양음악 전통이다. 이런 분리된 전통은 음악학습장의 공간적 분리였음과 동시에, 각각의 전통에 대한 작곡가 자신의 태도를 치열하게 고민하게 만든 환경이다. 이런 구도는 제도권 내에서 학습했고 여전히 ‘서구 음악’이라는 거대한 신(scene) 가운데 활동한 비서구 작곡가들에게 자주 발견된다. 그리고 적어도, 정태봉 나이 또래의 한국 현대음악 작곡가들은 이런 환경 앞에서 누구보다도 더 많이 이런 환경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해왔다.
정태봉이 학창시절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스승으로 꼽는 것은 백병동 작곡가다. 백병동 작곡가는 당시 대학생이었던 정태봉의 작품을 듣고 “네 안에 뭔가 있는 것 같다.”라는 말을 건넨다. 정태봉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 언급은 정태봉이 자신감을 갖고 ‘작곡가’로서의 길을 정진해나갈 수 있는 큰 힘이 되었다. 또한 정태봉은 작곡가 강석희에게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한다. 그러나 백병동이나 강석희의 음악은 정태봉의 음악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갖지는 않으며, 정태봉과 백병동 그리고 강석희를 같은 사조나 악파로 분류할 수도 없다. 다만 정태봉에게 백병동이나 강석희는 ‘이전 세대’의 무척 모범적인 작곡가의 하나로 비춰졌을 것이며 이 안에서 선배 작곡가들이 갖고 있었던 음악에 대한 일종의 ‘모더니즘’적인 태도를 은연중에 이어 받았으리라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한편 정태봉은 서울대 재학시절 작곡가 정회갑의 제자였으며 독일로 유학 간 이후에는 작곡가 슈파링어(Mathias Spahlinger, 1944-)의 제자가 된다. 그러나 정태봉은 이 두 명의 스승에게서 직접적인 음악적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정회갑을 두고는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할 수 있도록 상당한 자유를 준’ 스승으로 설명하며, 슈파링어의 경우에는 ‘스승 대 제자’보다는 ‘작곡가 대 작곡가’의 관계로 남길 원했다고 회상한다. 특히 정태봉은 슈파링어와의 레슨시간에 직접적인 작품 레슨보다는 다양한 동양 철학에 대해 토론하고 이야기를 나눴다는 점을 자주 언급한다.
이와 같은 사실을 토대로 정태봉이 그를 둘러싼 두 개의 전통과 맺은 관계를 추측해 볼 수 있다. 정태봉은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바로 윗세대 작곡가인 ‘백병동’이나 ‘강석희’를 일종의 모델로 생각하고 작곡가의 길로 들어섰을 것이다. 이 경우 정태봉은 기성세대의 전통을 이어가는 자로서, 그가 속한 제도 안에서 자신의 선배를 뒤따른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독일의 슈파링어 앞에서는 ‘대응하는 자’ 혹은 그와 ‘다른 자’로서의 작곡가가 되었다. 정태봉은 ‘독일인’ 작곡가 슈파링어와 공부하며 서양 속 타자로서의 ‘동양’ 그리고 ‘한국인’ 정체성을 구축했고, 이 안에서 그의 음악은 ‘독일’ 그리고 ‘슈파링어’라는 서양 전통과 ‘차이’를 만들어내는 지점에서 구체화된다.
흥미로운 것은 정태봉이 작곡 활동 중반까지는 이런 두 개의 전통을 뚜렷하게 인식하고 ‘이분법적인 관점’으로 동서양을 바라보았다면 어느 순간에 이르러서는 이런 구도 전체를 더 폭넓은 맥락에서 조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는 ‘제3세대 작곡동인’ 활동 등으로 가시화됐던 동서양이라는 표층적 이분법에서 물러나 이 전체를 조망하는 더 넓은 카테고리로 고개를 돌림으로써 이뤄진다. 그는 ‘플라톤’이나 ‘공자’ 그리고 ‘바흐’ 등의 인물과 자신의 관계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고 ‘두 개의 전통’이라는 판을 좀 더 멀리서 바라보게 된다. 플라톤, 공자, 바흐는 한국의 제도권 전통이나 서구의 현대 클래식 전통 모두와 큰 관련이 없다. 대신 이 모든 상황을 관조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이런 더 큰 전통 아래에서는 정태봉도, 바흐도, 그리고 슈파링어도 음악에 대해 고민하는 단일한 더 큰 흐름에 묶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결국 정태봉이 대면했던 동시대의 두 개의 전통과 ‘플라톤’으로 대표되는 아주 오래된 전통은, 그가 제도권 내에서 작곡가로 활동하며 동서양의 다양한 시공간에 편재한 종교와 철학을 바탕으로 자신의 사상 및 미학 경향을 구축할 수 있게 하는 토대가 된다. 정태봉이 두 개의 전통 사이에서 길을 잃거나 관습적인 포지션을 취하지 않고, 또 다른 관점을 발견하고 이 모두를 통합함으로써 그의 목소리를 낼 고유의 노선을 세팅하게 된 것이다.
2. 청중을 만나는 방식
정태봉이 이제까지 가장 많이 작업한 음악 장르는 가곡과 실내악이다. 특히 실내악은 정태봉의 음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각기 다양한 편성으로 구성되고 모두 ‘표제’를 갖는다. 한편 정태봉 스스로 가장 애착이 가는 카테고리로 언급하는 것은 가곡이다. 가곡은 정태봉이 작곡가가 되기 이전부터 써왔던 장르이며, 작곡 활동 초기부터 현재까지 실내악과 함께 꾸준히 작곡되는 장르다. 특히 실내악으로 분류된 몇몇 곡들은 가사가 있는 성악곡의 형태를 갖고 있는데 이런 작업들까지 가곡으로 분류하게 되면 가곡의 비중은 더 커진다.
한편 정태봉 음악 안에서 눈에 띄는 또 다른 장르는 교향시다. 특히 정태봉의 교향시는 1985년에 작곡한 <현석회상>을 제외하고 모두 한국의 자연과 역사를 제목으로 삼고 있다. 이를 테면 그가 작업한 교향시의 제목은 단군, 고구려 등의 제목 혹은 백두대간, 남강, 남해, 영산강, 한강 등으로, 현재까지 작업된 9곡의 교향시 중 총 8곡은 그 표제의 성격으로 인해 일종의 ‘연작 교향시’로 보이기도 한다. 이런 표제의 소재적 통일성은 ‘개천’, ‘동해’, ‘독도’라는 제목을 갖는 세 편의 국악 관현악곡에서도 동일하게 드러나는 현상이다.
합창곡도 꽤 많은 수를 차지한다. 합창곡 중 90년대 이전에 작곡된 것은 주로 개인적으로 작업되었고 기독교적인 배경을 갖는 성가인 반면, 2000년대 이후의 작업은 위촉 합창곡이 많다. 특히 음악학자 지형주는 위촉 합창곡 대부분이 실제 연주를 염두에 두고 작곡되는 장르라고 지적하며 합창곡이야말로 작곡가 특유의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음악기법을 발견할 수 있는 장르로 볼 수도 있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 정태봉은 다른 작품들과 다르게 위촉 합창곡에서는 자신의 음악 색깔이 많이 드러나지 않는 것으로 설명하곤 한다. 이런 모습은 지형주의 지적처럼 기존의 다른 곡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작업된 ‘합창곡’ 안에서 정태봉의 ‘힘을 뺀’ 작곡어법을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정태봉이 주력했던 음악장르에 대한 조망은 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며 활발한 활동을 한 대한민국 기성 현대음악 작곡가의 작업이 주로 어떤 장르를 통해 청중을 만나는지를 보여준다. 우선 가곡이나 실내악들은 주로 소규모로 이뤄지는 현대음악 연주회에서 가장 유연하게 작동할 수 있는 장르일 것이다. 현대음악의 특성 상 자신의 음악을 꾸준히 발표하기 위해서는 소규모 편성이 가장 유리하며, 연주단체나 동인을 중심으로 하는 위촉과 초연 활동이 실내악 규모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은 정태봉이 가곡이나 실내악과 같은 장르를 많이 쓸 수 있었던 정황을 잘 설명해준다.
한편 교향시라는 장르는 위촉으로 행해지는 대규모 오케스트라 작곡이라는 점에서 기성작곡가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작곡기회로 볼 수 있다. 특히 교향시는 실내악보다 한층 더 복합적인 악기법과 작곡기법을 보여줄 수 있고 다양한 시도해 볼 수 있는 반면, 연주나 청취 그 자체의 기회가 그리 많지는 않다. 반면, 정태봉의 ‘합창곡’들은 그의 작곡 이력 중 ‘실용 음악’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는 것들로서 동시대 현대음악 기성작곡가가 현대음악 안에만 머물지 않고 다양한 층위의 작업을 병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실내악과 교향악을 중심으로 하는 정태봉의 작품 활동은 제도권 내의 작곡가들이 겪는 작품의 위촉과 창작, 연주 방식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관찰할 수 있게 해 준다. 하지만 정태봉이 집중한 장르들은 정태봉 음악 성향을 무척 보수적으로 보이게 하는 측면도 있는데, 이런 측면은 정태봉 음악의 혁신성이나 진보성을 살피기 위해서는 ‘편성’이나 ‘장르’ 그 자체에 국한되기 보다는 작품 내부로 더 많이 파고들어 가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3. 오선지를 매개로 하는 수도의 길
정태봉은 대부분 작품 위촉과 함께 작곡을 시작한다. 위촉으로 작곡이 시작된다는 것은 작품을 쓸 때 가장 먼저 고려되는 사항이 ‘편성’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작곡가가 밝힌 그 다음 단계는 작품의 ‘제목’을 정하는 것이다. 이는 현재까지 발표된 정태봉의 기악곡 전부가 ‘제목’을 갖는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비슷한 맥락에서 성악곡을 작업하는 경우에는 주어진 시의 텍스트나 제목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작곡의 첫 과정이 될 것이다.
그 다음 절차는 본격적인 작곡에 앞서 음악 속 파라메터나 화성적ㆍ리듬적ㆍ선율적 요소 등을 다양하게 구상하는 것이다. 정태봉은 이 단계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한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정태봉은 <백두대간> 작업을 할 때 위촉 후 첫 6개월 동안 다양한 음악 요소들을 구상하는데 시간을 보냈고 이 단계를 충분히 겪은 후 1개월에 걸쳐 직접 오선지에 음악을 기보해 작곡했다고 밝힌바 있다.
작곡 과정이 피날레나 미디 등의 테크놀로지에 기반한 매개 없이 오직 오선지를 바탕으로 이뤄진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런 방식은 작곡가가 전통적인 매체를 바탕으로 자신의 음악적 아이디어를 무척 고전적인 방식으로 실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오선지’라는 매체를 아주 오래전부터 수많은 작곡가들이 해왔던 방식과 동일한 방식으로 대면하는 태도다.
다만 이렇게 오선지를 앞에 두고 보내는 정태봉의 긴 시간들이 일종의 ‘수행’ 혹은 ‘수도’와 연결되고 이런 시간이 ‘작곡하기’ 그 자체를 강조하게 되는 측면은 흥미롭다. 그는 자신의 작곡하기를 ‘오선지를 우주선 삼아 우주를 여행’하는 과정으로 비유한다. 이는 작곡가가 긴 시간에 걸쳐 작품을 구상하고, 그 안에 사상이나 이념 · 가치 등을 개념화해 녹여내는 작업 그 자체에 즐거움을 느끼는 것으로 해석 할 수 있다.
정태봉은 악보 앞에 앉아 선대의 작곡가들이 해왔던 사유의 전통에 접속하며 이 전통적인 매체를 토대로 더 멀리 나아가기를 애쓴다. 이는 ‘오선지’를 앞에 두고 행하는 지적인 유희임과 동시에 시공간적 경계를 가볍게 뛰어넘어 더 큰 전통과 자신을 연결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런 작곡 방식이 정태봉 특유의 사상과 미학을 성숙시키는 좋은 환경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논란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4. 중용으로 조망하는 다양한 종교와 철학
정태봉 음악의 ‘사상적 토대’는 그가 즐겨 설명하는 철학 사상이나 종교적 개념 등을 지칭한다. 이것들은 음악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순수하게 작곡가 개인의 정신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이런 사상들은 음악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거나 일대일로 대입되는 것이 불가능하다. 정태봉 역시 그가 언급하는 다양한 사상들을 음악으로 직접 표현하려 하지 않는다.
정태봉이 다양한 종교에서 기인한 사상이나 개념을 동시에 언급하는 것도 눈에 띈다. 다만 정태봉이 스스로 밝히듯 기독교, 불교, 도교 등 다양한 종교 중 본인이 따르는 종교는 ‘기독교’ 한 가지다. 기독교는 정태봉이 학창시절 처음으로 음악을 접할 때부터 많은 영향을 주었고, 나이가 들어서는 꼭 교회 음악을 쓰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그의 음악세계에 큰 영역을 차지한다. 반면 도교, 유교, 불교 등의 개념은 정태봉에게 있어서는 일종의 ‘이론’의 한 범주로만 통용된다.
따라서 정태봉이 즐겨 언급하는 사상이나 개념들은 공자나 노자, 장자에서부터 예수, 석가모니와 같은 대상으로 손쉽게 활용한다. 그는 음악 분야에 한정되지 않는 다양한 철학자와 사상가들을 다채롭게 인용하고 숙고한다. 이를테면 그는 많은 영향을 받은 철학적 사상을 언급해달라는 음악학자 오희숙의 요청에 “시에서 좋은 것을 좋아하고 나쁜 것을 싫어하는 정서가 일어나고, 예에서 예의범절을 세우고, 악에서 조화를 이룬다.”는 논어의 글귀를, 제자를 지도할 때에는 주자(朱子)의 ‘권학시’(勸學詩) 일부를 소개한다. 정태봉이 늘 언급하는 사상가 혹은 사상들이 ‘아도르노’ 혹은 ‘막스’처럼 동시대적이라기보다는 ‘예수’ 혹은 ‘공자’처럼 지극히 이론화된 먼 과거를 짚어 내려간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다양한 사상들은 하나의 관념으로 통합되지 않으며 서로 다른 맥락을 드러낸다. 대신 이런 사상과 이론을 다루는 정태봉의 태도에는 어떤 ‘일관된 방식’이 발견된다. 정태봉은 지극히 다양한 텍스트를 수합해 이를 ‘작곡가의 태도’ 혹은 ‘음악가의 태도’, 더 나아가서는 ‘음악의 의미’라는 관점에서 다시 독해해낸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정태봉이 즐겨 언급하는 키워드 ‘중용’의 힘이 드러난다. ‘중용’은 앞서 언급한 다양한 이론과 사상 그리고 넓은 시공간에 퍼져 있어 각기 다른 맥락과 함의를 갖는 개념들을 정렬하고 통합하는 도구다. 그는 ‘중용’이라는 키워드 아래 다양한 사상이나 이론을 ‘상대적인 가치’로 조율하고 이 모든 것을 공존시킨다. 그리고 ‘중용’ 안에서 다양한 이론은 그 텍스트적 격차나 불균질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상적 토대’라는 커다란 장 안에서 조화를 이룬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정태봉이 다양한 이론을 자신의 관점에서 정리하고 체계화하는 방식은 단순히 ‘이론적 영역’에 그치지 않으며 ‘음악 미학’으로 확대된다. ‘중용’이라는 맥락 위에 다양한 이론을 배열했던 방식으로, 음악에 대한 관점이나 시선을 개념화시키는 방식을 발명하게 된 것이다.
다만, 정태봉이 언급하는 다양한 이론과 사상, 종교적 토대와 그의 음악 미학이 한꺼번에 뭉뚱그려져 그의 음악 전체를 너무도 사변적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정태봉 음악을 구축하는 논의가 꽤 명확하게 ‘사상적 토대’와 ‘음악미학’으로 분리되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탓이다. 그의 ‘사상적 토대’가 주로 그가 관심있는 다양한 가치에 관한 것이라면, 그의 ‘음악미학’은 특히 이런 사상을 음악 안에서 개념화해 운용하는 프레임에 가깝다.
5. 중용에서 영성으로 그리고 품격으로
음악미학이란 오희숙의 지적처럼 무엇보다도 ‘음악(音樂)이 무엇인지’ 그리고 음악이 주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美)에 관한 것이다. 정태봉은 이런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이성과 감성의 절묘한 조화’, ‘중용/영성/품격’ 등의 개념을 음악에 적용시킨다. 이런 키워드들은 그가 심취했던 다양한 사상이 ‘음악 실제’ 안에서 작동 가능함을 증명하는 도구다. 이런 개념들은 그의 음악 안에서 본래의 사전적ㆍ철학적 의미를 어느 정도 유지한 채 다소 새로운 방식으로 전유된다.
정태봉은 ‘아름다운 음악’ 혹은 ‘이상적인 음악’을 판별하는 첫째 조건으로 ‘이성과 감성의 절묘한 조화’를 꼽는다. 좋은 음악에서는 ‘이성’과 ‘감성’이라는 서로 다른 속성이 조화를 이루되, 서로 과하지 않고 ‘중용’을 이루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다양한 속성이 중용의 경지에서 조화를 이룰 때에만 ‘영성’이 나타난다고 보았다. 그가 이야기하는 ‘영성’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종교적 개념이라기보다는 보편적인 의미의 ‘정신성’(Spiritualität)에 가까우며, 이를 좀 더 많이 통용되는 개념으로 대체한다면 ‘아우라’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이 ‘영성’이라는 개념은 ‘품격’이라는 개념으로 전이되는데, 이때 ‘품격’은 음악의 아우라나 정신성이 만들어내는 일종의 ‘깊이’와 같은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정태봉에 의하면 음악적 아름다움이 구성되기 위해서는 ‘이성’과 ‘감성’이 중용의 경지에서 조화를 이루고 이런 가운데에서 ‘영성’이 생성되어야 하며, 이 ‘영성’을 통해 작품에 ‘품격’이 드러나야 한다. 이런 개념 중 일부가 불완전하거나 부재하면 이 음악은 ‘아름다움’ 혹은 ‘좋은 음악’의 범주에서 멀어진다. 다만,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다양한 음악들은 실로 다채로운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 안에는 감정적인 면에만 치우친 음악이나 이성적인 면에만 치우친 음악이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각 작품마다 ‘영성’의 유무에 차이가 있고, 장르마다 ‘이성’ 혹은 ‘감성’ 한쪽에만 치우친 음악이 있다. 다만 이런 음악들은 정태봉의 기준에서는 ‘품격을 잃어버린’ 음악이다. 이런 음악들은 그가 생각하는 음악적 이상향과는 거리가 멀다.
정태봉이 언급하는 미적 조건을 충족시키는 음악의 대표적인 예로 ‘바흐’를 꼽을 수 있다. 그는 한 음악 월간지에서 ‘바흐와의 가상대화’라는 글을 연재하고 후에 책으로 펴낼 정도로 바흐에 각별한 애정을 보인다. 또한 자신이 영향을 받은 작곡가로 주저없이 ‘바흐’를 꼽고 그가 자신의 음악적 모델이라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는 바흐를 ‘모든 것을 다 가진 절묘한 조화’를 보이는 작곡가, 자신이 이야기하는 음악적 가치를 보여주는 작곡가라 평가한다. 실제로 바흐 음악 안에서 발견되는 ‘지적인 면’과 ‘감성적인 면’의 조화는 정태봉이 주장하는 ‘이성과 감성의 조화’에 관한 좋은 예로 보이며, 바흐 음악 속 정신성 혹은 아우라 그리고 이를 통해 느껴지는 바흐 음악의 ‘깊이’는 그가 이야기하는 영성과 품격을 발견하기에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음악의 가치나 아름다움에 대한 논의가 실제 ‘소리’와 연결되지 않는다면 이는 공허한 울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정태봉의 음악이 갖는 독특한 측면이 드러난다. 정태봉은 ‘중용’이라는 개념을 음악 구조를 디자인하는데 사용함으로써, 음과 음이 조합되는 복합적인 짜임새 그 자체를 미학적 개념과 병치시킨다. 이런 독특한 관점은 무엇보다도 그가 고안한 새로운 화음구조와 리듬적 특징을 살펴봄으로써 이해할 수 있다.
6. 새로운 화음구조와 리듬적 특징
정태봉은 본인의 고유한 화성어법을 만들고 이를 활용해 음악을 만드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정태봉의 제자인 유영지의 분석에 의하면 그가 고안한 ‘정태봉 화음’은 내성에 두 개의 중심음을 설정하고 상하 대칭으로 구성된다. 이렇게 구성된 화음은 ‘삼위일체론’ 혹은 ‘삼재론’의 개념을 적용해 성부, 성자, 성령, 또는 천, 지, 인이라는 방식으로 추상적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정태봉의 작품은 각각의 장르마다, 혹은 표제의 사용 유무에 따라 작품의 음향적 색채가 비교적 다채로운 편이다. 다양한 작품 중 상당히 뚜렷하게 ‘정태봉 화성’이 드러나는 곡이 있는가 하면, 정태봉 화성이 부분적으로만 나타나는 작품이 있다. 민요를 인용한 몇몇 작품에서는 민요 원곡의 선율이 그대로 등장하는 동시에 따로 구성한 화성층이 뚜렷하게 다른 색채로 얽혀 있는 모습도 발견되며, 간혹 화성적 요소가 단순히 음향을 직조하는 일종의 기법으로서만 활용되고 곡 안에 사용된 ‘표제’를 우위에 둔 채 작업한 듯한 모습도 보인다.
또한 정태봉 화음은 유영지의 지적대로 ‘중심음의 음정 설정에 따라’ 꽤 부드러운 화성적 울림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며, 작곡가의 의도에 따라 중심음을 이동시킬 수도 있다. 더 나아가 화성어법의 얼개를 유지한 채 내성에 변화를 줌으로써 음향 자체의 ‘강한 불협화’와 ‘약한 불협화’를 구분해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즉 정태봉 화음은 지극히 이론적이고 철학적인 개념으로 설명되지만, 실제 그 화음의 운용에 있어서는 상당히 융퉁성있게 사용될 수 있는 측면이 존재한다.
한편 정태봉 음악의 리듬적 측면은 직관적으로 감지되는 몇몇 특징을 보인다. 정태봉 음악의 리듬은 타악기를 사용한 작품 안에서 빠르고 지속적인 펄스를 만들어내며, 연타를 사용한 짜임새가 많이 등장한다. 이런 짜임새는 어느 정도 진행하다가 ‘정지’하고 다시 ‘진행’하기를 반복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동일한 화음을 동일한 음가로 연타하는 제스쳐들은 정태봉의 음악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동력의 한 종류로 보인다. 실제로 몇몇 작품의 ‘클라이맥스’라 언급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앞으로 밀어붙이는’ 리듬의 역할이 상당하다. 하지만 이와 같이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리듬적 특징들 역시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을 수치화해 이것을 음가로 환원해 정교하게 구성한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정태봉의 화성과 리듬 어법은 고유의 운용방식이나 이론적인 구성방식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음악 전체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해치지는 않으며 음악의 표제에 따라, 혹은 인용되는 민요들과 어울려 다채로운 음향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앞서 언급했듯 정태봉 음악 중에서는 그가 설명하는 화성어법으로 보다 더 명확히 설명할 수 있는 작품과 비교적 자유롭게 작곡된 곡이 공존하며, 음향적으로도 불협화적인 측면이 강조된 작품과 비교적 부드러운 음향적 울림을 갖는 곡이 동시에 존재한다. 이런 대비는 한 작품 안에서도 수시로 일어날 때가 많다. 특히 리듬적 측면의 경우에는 하나의 작품 안에서 혹은 섹션 안에서도 서로 다른 양상으로 대비되어 나타난다.
이런 이론적 적용의 유연함은 정태봉 음악을 ‘삼재론’ 혹은 ‘삼위일체론’ 등을 토대로 분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요소들이 모여 전반적인 곡의 흐름과 진행을 만들어내는 거시적인 맥락의 진행도 중요하게 살펴야 함을 보여준다. 정태봉이 자주 설명하는 ‘정태봉 화음’은 분명히 중요한 개념이지만, 정태봉 스스로 이 화음 개념 안에 함몰되지는 않으며 다양한 요소와 배합해 자유롭게 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미시적인 화음 그 자체의 구성을 뛰어넘어 거시적으로 그리는 진행이나 관념은 주로 ‘표제’ 혹은 ‘인용’이라는 개념과 맞물려 있다. 따라서 정태봉이 ‘표제’를 통해서 그리고 ‘인용’으로 무슨 소재를 다루는지를 살펴봄으로써 그의 작품이 드러내고자 하는 구체적인 ‘대상’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7. 그의 음악이 지칭하는 대상들
정태봉이 음악을 통해 드러내 이야기하고자 하는 대상은 제목에 사용된 ‘표제’, 그리고 작품 안에 등장하는 기존 노래의 ‘인용’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특히 이 두 가지는 음악 외적인 대상이나 관념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들로, 작곡 과정은 물론 작품의 청취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정태봉의 모든 기악 작품은 예외 없이 ‘표제’를 갖고 있다. 그리고 정태봉 작곡의 ‘표제’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한국의 자연과 역사다. 이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장르는 교향시와 국악 관현악이다. 이외에도 독주곡 ‘숭례문’이나 실내악 ‘남산 위의 저 소나무’, ‘광개토대왕’ 등도 유사한 맥락의 표제로 볼 수 있다. 한편 ‘소리ㅅ길’ 시리즈나 ‘정야사’ 등 본인이 몰두하고 있는 사상이나 이론을 토대로 한 표제도 등장하며, ‘학무’나 ‘진혼’ 등 작품의 성격에 따른 표제도 눈에 띈다.
정태봉 작품 속 표제들은 표제의 구체적인 묘사를 지양하고, 대상의 본질적인 원관념에 해당하는 모호한 이미지나 개념을 연상토록 유도된다. 이런 구도를 위해 정태봉의 표제들은 구체적인 형상을 갖는 단어보다는 보편적이고 확정될 수 없는 추상적인 단어로 구성된다. 또한 표제가 구체적인 ‘대상’을 지시하고 있더라도 이것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이 ‘구체성’은 제거된다. 이를테면 정태봉의 ‘숭례문’은 숭례문의 표면적 묘사라기보다는 숭례문이 의미하는 ‘예’(禮)라는 추상적 개념에 음악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정태봉의 연작 실내악곡의 제목인 ‘소리ㅅ길’ 역시 하나의 의미를 확정할 수 없는 단어다. 이때 표제가 지칭하는 대상과 음악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정태봉의 표제에 대한 관점은 19세기 작곡가들이 즐겨 작곡했던 교향시의 표제를 떠올리게 한다. 표제가 무언가를 지시할 때에는 그 단어의 단순한 외형적 묘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음악으로만 표현할 수 있는 혹은 음악으로만 포착할 수 있는 대상의 본질을 드러내고 이를 통해 음악 고유의 힘과 표현력을 과시하는 것이다.
한편 정태봉이 사용하는 음악적 ‘인용’들은 표제의 사용 방식과 달리 무척 노골적으로 그 음향의 출처나 기원을 떠올리게 한다. 예를 들어 <도라지, 아리랑 두 주제에 의한 이중 변주곡>에는 누구나 뚜렷하게 인식할 수 있는 서로 다른 지방의 민요가 대위법적으로 섞여 등장한다. 이런 민요들은 음악 내적 요소로 통합되 음향 안에 녹아있다기보다는 그 자체로 온전히 구별되어 특정한 개념이나 정서를 지시하게 된다.
이처럼 정태봉이 누구나 식별할 수 있는 온전한 ‘민요’를 작품에 등장시키는 것은 오희숙의 지적대로 ‘다른 작곡가들의 민요 사용과 구별되는’ 지점이다. 대부분의 작곡가들은 민요를 인용할 때 그 형체를 알아들을 수 없게 분해하거나, 작곡의 구조적 토대로 사용하거나, 혹은 이를 완전히 서양 기법과 융화시켜 쓰곤 하기 때문이다. 이는 정태봉이 스스로 언급했듯 정태봉의 젊은 시절 작곡관과도 차이가 벌어지는 부분이다.
이런 구도 안에서 정태봉 작품 속 ‘표제’와 ‘인용’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표제를 사용할 때에는 표제에 대한 노골적인 묘사를 되도록 피하고 ‘보편적인 맥락에서’ 그려내고자 한 반면, 민요 인용에 있어서는 이를 노골적으로 사용하고 누구나 작품 안에서 이 민요들을 식별 할 수 있다. 물론 두 가지 접근이 공존하는 작품도 있다. <경복궁>에서는 ‘경복궁’이라는 표제 아래 경복궁을 추상적으로 그려내되, 동시에 ‘경복궁 타령’을 인용한다. 이 음악 안에는 두 가지의 음악 외적인 요소가 서로 다른 결을 가지고 음악 외적인 대상을 지시하고 있다.
그렇게, 온전히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여정
작곡가가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해야한다는 이야기는 흔하다. 20세기에 들어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자신만의 세계라는 것은 음악을 둘러싼 어떤 단계까지를 지칭하는 것일까.
보통 작곡가가 만들어 낸 자신만의 세계는 작품의 내적 층위인 작곡기법 만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자신만의 세계는 어떤 작곡기법을 만들어냈는지부터, 그 기법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대상을 포착하는 시선이 어떤지, 그리고 그 시선이 어떤 관점에서 기인했는지 등 끊임없이 확장될 수 있다. 아마도 이 실타래의 초반에서 멈춘 작곡가라면 새로운 작곡 기법을 만들되 미학적 측면이나 곡을 대하는 태도는 여느 작곡가와 유사할 것이며, 이 실타래의 중반까지 고민한 작곡가라면 새로운 작곡 기법과 이를 뒷받침하는 새로운 미학을 고민하되, 이 미학의 기반이 되는 사상은 몸에 밴 관습적인 것을 은연중에 활용할 것이다.
여기서 정태봉과 다른 작곡가와의 차이가 벌어진다. 정태봉은 자신이 처한 고유의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출발해, 새로운 작곡 기법과 이 기법으로 다루고자 하는 분명한 대상, 그리고 그 대상을 포착하는 자신만의 미학, 그리고 이런 미학을 가능하게 하는 독특한 이론적 배경을 뚜렷하게 정립했다. 즉 정태봉은 긴 시간에 걸쳐 하나의 음악이 존재하기까지의 다양한 층위를 세밀히 검토하고 이를 여러 각도에서 통제했다. 그리고 그가 젊은 시절부터 행해왔던 이런 활동은 그의 나이가 일흔을 바라보는 현재 차츰 완전한 얼개를 구성해 작곡가만의 ‘온전히 새로운 세계’를 드러내고 있다.
작곡의 기법이나 스타일에 관한 지난한 논의들은 20세기 내내 음악 ‘표면’에 집중해왔고, 그 논쟁의 일부는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새로움이란 ‘음악 표면’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음악을 그 표면에서 해방시킬 때 이뤄질 수 있다. 정태봉의 음악은 그가 자주 인용하는 공자의 글귀처럼 어떤 ‘태도’를 지칭하기도 하고, 고유한 사상의 일부 혹은 사고의 ‘과정’ 더 나아가 ‘사고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정태봉의 음악은 철학이 되고 수도(修道)가 되며, 작곡가 자신의 새로운 세계를 구성하는 과정이 된다.
이렇게 음악 안에 작곡가 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은 지극히 새로운 것이면서, 동시에 아주 오래 된 것이다. 물론 이 전통은 20세기에 불어 닥친 서구 모더니즘의 흐름에 속한다기보다는, 동양의 고전으로, 더 깊게는 음악의 본질에 대해 고민했던 많은 이들의 사고 안으로 파고들어가는 것이다. 정태봉의 음악이 서양과 동양 모두를 품고 있으며 일반적인 민족주의를 띄지 않고 그러면서도 ‘혼’(魂)과 같은 한국적인 키워드를 지속적으로 녹여낼 수 있는 이유다.
글 이민희 음악평론가, “오롯이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과정: 정태봉의 음악세계를 구성하는 일곱 가지 층위 이해하기”, 『한국을 노래하는 세계의 작곡가: 작곡가 정태봉 음악 연구』, 파주: 음악세계, 2017.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