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이야기, 여섯 갈래 음악

2018. 9. 9. 23:42

2018 실내악작곡제전 II 프리뷰

 

유사한 편성의 곡이 예닐곱 개 등장하는 음악회에 앉아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단일한 잣대를 상상하고 음악을 듣게 된다. 이를테면 “어느 곡이 가장 복잡한지” 혹은 “어느 곡이 가장 최신의 기법을 쓰는지” 쫒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수년째 열리는 실내악작곡제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실내악작곡제전은 다양한 시공간에서 초연된 각기 다른 작품을 한데 모은 음악회라는 사실이다.

5월 9일 연주될 실내악작곡제전 II의 첫 곡은 원로 작곡가 나운영의 1942년 동경제국음대 졸업작품이며 이어지는 곡은 ‘작곡21’, ‘음악과 영상 창작집단NOW’, ‘한국악회’, ‘창악회’, ‘21세기악회’ 등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진 작곡 동인(同人)의 결과물이다. 이들은 각기 다른 지방에 본거지를 두고 있으며 작품을 초연하는 방식과 지향하는 바가 미세하게나마 모두 다르다. 예컨대 실내악작곡제전에서 연주되는 작품들은 ‘실내악 편성’이라는 외형을 제외하면 완전히 별개의 미학과 사상을 갖는다.

따라서 관객들은 이런 ‘불균질한 전체’를 즐기기 위해 수없이 많은 잣대와 관점을 반복해서 재설정해야 한다. 이를테면 5월 9일 연주될 작품은 총 일곱 곡이며, 그 중 여섯이 ‘역사’, ‘사람의 나이’, ‘추상’이라는 세 개의 카테고리로 설명될 수 있다. 그리고 하나의 카테고리는 다시 둘로 쪼개지며, 이 둘이 이야기의 양 극단에 놓임으로써 서로 다른 개성을 드러낸다.

 

역사를 상기시키는 음악 혹은 역사 그 자체인 음악

5월 9일 박성원의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위한 <도라지타령 환상곡>이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연주된다 할지라도, 이 음악이 2015년 한일국교수립정상화 50주년을 기념해 일본에서 초연되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2015년 내내 한국의 많은 음악가들이 일본을 찾았고, 이곡 역시 그해 2월 다카야마에서 열렸던 한일문화교류 음악회를 위해 위촉되었다.

당시 이 작품을 들었던 이들은 일본인 및 타지에서 고국의 음악을 듣는 한국인이었을 터, 이 작품 안에 인용된 ‘도라지타령’은 이런 독특한 환경 안에서 상당한 의미를 갖게 된다. 즉 우리가 일상적으로 듣는 그리고 민족주의현대음악에서 자주 인용하는 ‘도라지타령’은, 일본과 한국의 역사적 관계를 엮어내는 훌륭한 도구로 활용되었을 것이다. 관객들은 이 선율을 토대로 다양한 감정 변화를 느끼며 이 음악이 상기시키는 역사나 전통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다.

한편, 나운영의 현악4중주 1번 <로맨틱>은 그 자체로 한국 음악사의 역사적인 순간을 담고 있다. ‘선토착화 후현대화’(先土着化 後現代化)로 널리 알려진 나운영(1922-1993)은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했던 작곡가다. 그래서인지 <로맨틱> 안에는 서양음악사의 유수한 작곡기법이 등장하며 관객들은 이 음악을 들으며 바흐, 슈만, 베토벤, 쇤베르크 그리고 어느 지점에 이르러서는 드뷔시를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영향들’ 너머로 이 모든 기법을 포용하고 능숙하게 조작하는 ‘젊은 작곡가’가 더 크게 보이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1악장에는 대위법과 푸가를 연상시키는 패시지가 나타나되 이것들은 반음계, 후기낭만주의 화성 더 나아가서는 무조선율과 결합되어 있다. 또한 1악장을 비롯해 각 악장에 붙은 “Romantic - Episode - Burlesque” 등의 표제도 이 음악을 전형성에서 탈피시킨다. 이렇게 곡 안에는 전통과 현재, 서양과 동양 사이에서 고민하는 영민한 작곡가가 포착되며, 이 광경은 그 자체로 20세기 초 한국이 겪었던 서양음악수용사를 상징한다.

실내악작곡제전은 2018년 5월 9일 연주에서부터 나운영의 작품을 매번 한 곡씩 연주할 예정이며 <로맨틱>은 이 시리즈의 시작이다. 이 작품은 1942년 작곡된 것으로 그의 가장 오래된 작품 중 하나다.

 

나이가 다른 두 사람

이번 연주회에는 나이가 다른 두 사람의 모습을 표현하는 듯한 작품이 있는데 김명순의 피아노트리오를 위한 <3개의 어린이 연습곡> 그리고 김수혜의 베이스 클라리넷을 위한 <레크 레카>다. 이 두 작품은 각각 ‘어린이’와 ‘묵상하는 자’를 그린다.

김수혜의 <3개의 어린이 연습곡>은 “세 개의 작은 소품”으로 구성되며 “1명의 초급과정 어린이와 2명의 전문 연주자가 함께 앙상블을 이루어 [...] 어린이들이 자연스럽게 [현대화성 및 어법을] 익힐 수 있도록” 한 곡이다. 이 때문인지 작품 안에는 다양한 종류의 불협화음이 등장한다.

관객은 이 작품을 청취하며 작곡가가 상상한 어린이가 어떤 성격인지 가늠하며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어린이가 있고 이들은 놀랄 만큼 다양해, 자폐적 성향을 가지기도 혹은 어른을 능가하는 재능을 보이기도 한다. 만약 이 작품의 어린이가 현대음악을 익히고 있다면 이 어린이는 어른의 말에 순순히 따르는가? 두 명의 어른과 앙상블을 맞추는 어린이의 성격은 어떠한가? 적어도 본 필자에게는 작품 속 아이의 모습이 김수혜의 <레크 레카> 속 인물과 사뭇 대조적으로 보이는 지점이 있었다.

김수혜 작품의 제목에 등장하는 ‘레크 레카’란 “네 자신에게로 가라, 네 자신을 위하여 가라, 또는 스스로에게 진실하라”는 히브리어다. 그리고 이런 외치는 듯한 제목, 베이스 클라리넷의 솔로 및 즉흥연주 그리고 작곡가가 언급한 ‘묵상하기’라는 요소가 결합한다. 이런 무드는 음악 전체를 통해 삶을 관조하는 한 명의 ‘인간’을 떠올리게 만든다. 작품은 계속해서 ‘나의 이야기’를 ‘나의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나’는 삶의 다양한 과정을 겪고 이제는 성숙해진 평범한 이들 중 하나일 것이며 앞서 소개한 ‘어린이’와 지극히 대조되는 나이든 누군가의 모습이기도 할 것이다.

 

두 추상

박지수의 플롯, 클라리넷,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비브라폰을 위한 <번짐>과 최창석의 현악4중주를 위한 <조각들 I>은 유독 음악 그 스스로 추상(抽象)으로 남고자 하는 작품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음악의 제목에 텍스트가 사용된다 할지라도 그 쓰임은 다른 음악과 대조적이다. 이를테면 박지수의 작품명에 등장하는 ‘번짐’은 작품을 설명하는 표제의 일종이지만 그 의미가 ‘소리의 움직임’ 자체를 지칭함으로써 여전히 이 음악을 추상의 영역에 남겨 놓는다.

박지수의 음악에는 소리의 생성과 소멸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파형이 섬세한 필치로 기록되어 있다. 이 안에서 청취의 즐거움은 소리를 인지하고 난 직후, 이 소리를 지각하기 전에 생성된다. 덧붙여 기민한 관객이라면 이 음악 안에서 하나의 타격을 길게 늘인 듯한 독특한 시간성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최창석의 <조각들 I>도 추상의 세계를 다루지만 박지수의 음악과는 사뭇 다르다. 최창석의 작품 안에는 수없이 분화된 음향 재료들이 일정한 논리와 맥락에 따라 배열되어 있다. 박지수의 작업이 오브제에 가깝다면, 최창석의 작업은 오브제를 엮어 만든 구조 그 자체다. 특히 최창석의 경우 자신만의 음악문법 및 논리적 맥락을 만들기 위해 ‘수’()가 가진 독특한 체계를 활용했다. 소리와 수를 연결하는 것은 음악에서 ‘텍스트’ 혹은 ‘의미’를 제거하려는 이들, 그리고 음악의 추상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인기 있는 방법론이다. 이 곡에서는 ‘피보나치수열’이 활용되며, 음향덩어리의 변화와 흐름이 ‘수학의 차원분열’이라는 개념으로 지칭된다.

 

그래서 세 가지 이야기, 여섯 갈래 음악

실내악작곡제전의 음악들은 양식적인 층위에서뿐만 아니라 재료를 다루는 미학과 가치체계, 그리고 음악의 역할과 관점에 있어 지극히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이것들이 모여 불균질한 전체, 예컨대 소우주(小宇宙)의 연속을 만들어낸다.

무엇보다도 이 음악회에서 지극히 다양한 음악세계를 감지할 수 있다는 점은 무척이나 긍정적인 현상이다. 엇비슷해 보이는 동인들, 획일적인 아젠다에 갇혀 있는 듯 보였던 한국현대음악계가, 실제로는 서로 다른 종의 집합이며 이들이 모여 창작음악계를 구성하고 있었다고 유추하게끔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쪼개지고 또 쪼개지는 이 불균질함의 향연 안에서 관객 누군가는 기꺼이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음악춘추」, 273호, 2018년 5월, (2018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