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제1회 화음오작교아카데미 리뷰

2018. 2. 18. 06:05

음악이 탄생하는 긴 여정 중 어딘가

 

서초동에 위치한 화음챔버오케스트라의 연습실이 연초부터 북적였다. 화음챔버오케스트라는 2018년 ‘화음오작교아카데미’를 신설했고, 이를 위해 세 명의 젊은 작곡가 김신, 이설민, 김재덕, 이들의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자와 지휘자, 그리고 화음 전속작곡가 백영은, 배동진 및 평론가 송주호, 서주원, 이민희가 모인 참이었다. 연주자들은 4일에 걸쳐 젊은 작곡가의 곡을 리허설하고 녹음했으며 많은 이가 이 과정을 지켜봤다. 매 리허설마다 음악의 색깔이 미묘하게 달라졌기에 마지막 날 녹음된 음원은 시시각각 변하는 음악의 다채로운 면면 중 단 한 순간을 포착하게 되었다.

모든 음악은 작곡가의 아이디어가 악보로, 그리고 악보가 연주자의 해석을 거쳐 여러 번 리허설되고 청취되는 ‘음악되기’의 긴 여정을 거친다. 이 리뷰 역시 하나의 음악이 탄생하는 연속적인 과정의 일부로서, 몇 번의 리허설 참관과 녹음 이후의 반복 청취 그 어느 즈음에 위치한다. 특히 필자가 리허설에 참여하며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각각의 곡이 가진 개성만큼이나 그 악보가 음악으로 구현되는 방식이 서로 달라지는 지점이었다. 세 작곡가는 서로 다른 방식을 통해 악보를 소리로 변환하고 있었다.

 

<동천찬가>(冬天讚歌, Ode to the Winter Sky, 2017, 김신)는 세 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곡으로 각기 다른 장소에서 느낀 겨울을 묘사한다. 김신은 이 작품을 ‘겨울하늘에 대한 찬가’로 소개하면서 작품의 각 악장이 유럽 여행 중 들렀던 폴란드 크라쿠프, 리투아니아 빌니우스, 에스토니아 타르투의 겨울을 표현한다고 이야기한다. 작곡가는 “본디 겨울이라는 계절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내가 보고 느낀 겨울 하늘에 대한 감상을 곡으로 남겨놓고자”(프로그램 노트 ) 이 작품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소탈하고 힘 있는 작곡동기는 작품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작품 안에는 다양한 음 재료나 기법이 그대로 노출되거나 나열되지 않으며 작곡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풍경이나 인상을 표현하기 ‘위해’ 활용된다. 따라서 비교적 복잡한 리듬과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웠던 특수주법들은 몇 번의 리허설을 거치면서 음향의 심층으로 사라져버리고, 대신 ‘소리만 남아’ 겨울의 풍경을 기록한다. 예컨대 악보 위에 빼곡하게 적힌 현대주법과 복잡한 리듬은, 그 난해한 첫인상과는 달리 청아하고 운치있는 소리를 낸다.

작곡가의 프로그램 노트에는 시간의 흐름이나 기승전결에 관한 언급이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곡이 길어지게 되면 내가 당시에 느낀 감상 이외의 요소가 필요 이상으로 덧붙여 질듯하여 짧은 세 악장의 악곡의 모음으로”(프로그램 노트 ) 곡을 구상했다고 적고 있다. 즉 이 작품에는 시간의 흐름이 부재하다. 각 악장은 마치 한 장의 스냅사진처럼 지극히 짧은 순간의 감정을 음향으로 표현한다. 악장 끝에 위치한 특정 화음을 향해 느리지만 한 호흡으로 진행한다는 점, 한 악장 내부에 등장하는 음이 제한적이고 악장 전체가 음향적 페달포인트에 휩싸여 있다는 점, 그리고 각 악장의 구조가 단순하다는 점이 스냅사진과 같은 느낌을 강화한다. 악장 안에는 대조나 스토리텔링 같은 장치보다는 몇몇 음악적 제스처로 구성된 특정 무드가 지배적이라는 점도 지적될 수 있다.

다만 작곡가가 언급한 폴란드,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라는 개별성보다는 전체 악장의 테마인 ‘겨울’의 느낌이 세 악장 내내 유지되는 느낌이었다. 이를테면 작곡가는 2악장을 ‘더 날카로운 겨울’로 묘사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비슷한 기법이 다른 악장에서도 쓰인 탓에 이 악장의 독자적인 무드를 감지하기는 어려웠다. 따라서 3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이 곡을 차례로 듣고 있노라면 동일한 액자에 담긴 세 장의 겨울풍경 스냅사진을 보는 듯했다.

 

<널버스>(Nervous, 2017, 이설민)는 악보가 주는 인상과 리허설 과정에서 청취한 음향 그리고 최종적으로 녹음된 음원 사이의 거리감이 상당한 곡이었다. 작곡가 이설민은 프로그램 노트에서 곡의 클라이맥스가 후반부에 위치하며 C음이 중요하게 쓰이고, 제목으로 삼은 ‘널버스’처럼 긴장되는 상황을 그렸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현대적인 주법의 사용을 피하고 ‘점차적으로 발전해나가는 곡의 전개’에 중점을 두었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프로그램 노트는 악보 자체와 비교해서 동어반복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악보를 충실하게 묘사한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이 프로그램 노트가 바로 악보 그 자체에 적혀 있는 요소들만을 충실히 서술한다는 점이다. 이는 이 곡이 연주 및 녹음될 때에 연주자의 해석에 따라 지극히 다른 스타일의 음악으로 구현될 가능성을 암시한다.

연주자들은 악보에 그려진 음 이외에 그 어떤 아티큘레이션도 추가하지 않은 채 첫 번째 리허설을 시도했다. 이 리허설은 어쿠스틱 앙상블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생경한 소리를 냈다. 그리고 첫 리허설의 후반부에 이르러 강한 다이나믹이 등장하고 별도의 아티큘레이션을 추가할 수 없을 정도로 음의 밀도 및 강도가 높아지자, 작곡가가 애초에 디자인했던 음악의 구조 및 클라이맥스가 청취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클라이맥스에 이르는 과정이 작곡가가 의도했던 ‘점진적인 진행’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후 이어진 리허설에서는 연주자들의 해석이 적극적으로 추가되어 음악의 호흡이 조금씩 달라지게 되었다.

연주자들의 손에는 낭만주의 음악을 연상시키는 아티큘레이션 및 표현 방식이 배어 있었고 이것들은 악보 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물론 연주자들의 몸에 밴 표현방식을 곡에 전부 반영해야 하는 건 아니다. 이런 표현을 비틀거나, 거부하거나, 혹은 전복하는 것은 전적으로 작곡가의 자유다. 다만 작곡가는 자신의 곡이 악보 단계에서 완료된 것이 아닌 이상, 이 음악을 연주함으로써 어떤 부분이 부가되고 어떤 부분이 강조될 것이라 예측하는지 조금 더 치밀하게 고민해야 한다. 연주자는 바로 이 간극에 파고들어 악보와는 완전히 다른 음악을 들려줄 것이기 때문이다.

최종 녹음된 버전 안에는 작곡가가 디자인했던 음악 구조와 연주자들의 호흡이 적절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특히 작곡가가 의도했던 ‘점진적인 프로세스’는 곡 전반에 걸쳐 형성되었다기보다는 곡 최후반부에 이르러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에만 전개된 것으로 보였다. 곡을 듣는 내내 음악이 ‘흐른다’는 느낌보다는 특정한 밀도의 긴장감 안에 ‘정지하고 있다’는 느낌이 지배적이었다. 작곡가가 곡 초반에 발생시킨 ‘널버스’한 감정이 특정 화음 및 프레이즈 안에 얼어붙은 채, 마지막 섹션의 급작스러운 해결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음들의 세포>(Die Sellen der Töne, 2018, 김재덕)는 아카데미에서 연주됐던 세 곡 중 리허설 난이도가 가장 높았던 작품이다. 특수주법으로 구성된 음향들이 와글와글 엉켜있는 독특한 음향의 연속, 이것이 곡의 주는 첫 인상이었다. 특히 작품 안에는 일종의 폴리포니 구조와 호모포니 구조가 번갈아 등장해 서로 다른 인상을 주며 전개됐다.

섹션 A 그리고 B의 일부는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로 구성된 세 대의 현악기가 서로 다른 리듬과 제스처로 움직이는 음향을 들려줬다. 이 경우 세 대의 악기가 각기 다른 프레이즈에 제각기 몰두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얼개 안에서 전경이나 후경, 혹은 더 두드러지는 성부는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음이나 프레이즈의 출현빈도가 리듬적으로 일정하게 유지되어, 음향 내부의 밀도가 고르다는 인상을 주기도 했다. 한편 섹션 B, D 등에서 청취된 호모포니 구조는 뚜렷한 모티브를 반복해 들려줌으로써 이 요소의 발전 및 변형을 기대하게 했다. 그러나 이런 모티브들은 몇 번의 반복 후 갑작스럽게 중단(Pause)되곤 했다.

흥미로웠던 점은 작품에 등장한 다양한 기법 및 음향덩어리가 그 스스로 생명력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외부의 누군가에 의해 그 장소에 놓인 오브제(objet)와 같은 인상을 주었던 점이다. 마치 초기의 전자음악이 그렇듯, 작곡가가 펼쳐놓은 시간적 팔레트 위에 다양한 소리들이 수평-수직적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이런 구성 안에서 개별 프레이즈는 그 자체로는 의미를 형성하지 않으며 또 다른 층위에서 구성된 더 큰 계획의 일부가 된다.

따라서 리허설 도중 불거진 연주의 어려움은 단지 테크닉의 문제였다기보다는, 연주자가 자신이 만드는 음향 조각이 정확히 어떤 맥락에 놓이는지 알지 못하는 데서 오는 답답함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런 구도 안에서 연주자는 눈앞의 테크닉을 구현하는 데에만 집중해야 한다. 반면 이런 연주자들과는 상반된 작곡가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수동적인 연주자와 달리, 수많은 음향 덩어리를 통제하고 총괄하는, 지극히 이성적인 모습을 한 작곡가가 거기에 있었다.

 

며칠간 진행되었던 리허설은 하나의 음악이 탄생하는 과정이면서, 한 명의 작곡가가 탄생하는 더 긴 여정의 일부이기도 하다. 김신 작곡가는 일종의 ‘지시적 악보’를 음향적 실체로 구현했으며, 이설민 작곡가는 악보와 리허설 그리고 녹음의 간극을 뚜렷하게 보여주었고 김재덕 작곡가는 악보를 매개로 하는 작곡가와 연주자의 위계를 드러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생성된 음악은 젊은 작곡가의 각기 다른 개성이 반영된 상이한 결과물로 남았다. 작곡가 한명 한명의 개성이 느껴질 때마다 모두가 모여 있던 리허설 현장은 먼 미래에서 회상한 과거의 한 장면 같았다. 음악의 탄생을 청취하는 것은 작곡가의 탄생을 목도하는 것과 같았기에, 이들의 음악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악보화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꽤나 즐거운 경험이었다. 

 

'오작교아카데미', 화음챔버오케스트라, (20180224)

사진출처: 화음페이스북 www.facebook.com/photo.php?fbid=946655475496857&set=pb.100004572398541.-2207520000..&type=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