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마제국이 멸망하면서 그리고 비잔틴제국이 등장하면서 중세가 시작됐다. 특히 기독교를 기반으로 하는 안정적인 생활이 이어지면서 곳곳에 있는 수도원과 성당을 중심으로 중세 문화가 꽃을 피웠다. 그렇게 8세기 말 최초의 단성성가 모음집 <토나리움>(Tonarium)이, 10세기에는 원시적인 형태의 종교극이, 11세기 이후에는 라틴어 가사를 갖는 단성 노래가 널리 불리게 된다.

중세는 기독교문화가 절정을 이뤘던 시기다. 따라서 중세 음악은 당대의 기독교 신앙과 건축 및 예배 안에서만 온전히 이해될 수 있다. 이를 달리 말하면 21세기 서울에 살고 있는 우리가 중세 음악을 과거에 향유되던 방식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우리는 베네딕트 수도회의 수도자가 아니며, 이 음악을 들으며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는 새로운 방식으로 중세 음악에 다가가야 하며, 나름의 방식으로 중세음악을 해석해내야 한다.

에스토니아 작곡가 페르트(Arvo Pärt, 1935-)는 동시대의 가장 탁월한 중세음악 해석자 중 하나다. 그는 ‘그레고리안 성가’라 불리는 중세의 대표적인 음악을 듣고 그 영향을 적극적으로 자신의 작품에 반영했다. 그가 사용한 방법은 자신의 음악 안에 그레고리안 성가와 유사한 선율을 작곡해 넣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의 <테 데움>(1984) 도입부는 20세기에 작곡된 것인지 아니면 중세시대에 작곡된 것인지 혼란을 주기도 한다. 이는 그가 작곡한 <미제레레>(1989/1992)에서도 마찬가지다. 화성이나 음악의 전개방식은 페르트 고유의 것이지만 이따금씩 등장하는 ‘선율’만큼은 그레고리안 성가를 꼭 닮았다.

 

[영상 1] <테데움>https://www.youtube.com/watch?v=n5ghhmWrubY&t=721s

 

[영상 2] <미제레레>https://youtu.be/tW0ZbFkXM0E

 

페르트는 중세음악을 연상시키는 선율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음악 안에 ‘신성한 느낌’을 만들어낸다. 천 년 전 존재했던 그레고리안 성가 특유의 선율형이 페르트의 음악 안에 되살아나, 그 형태에 담긴 성스러운 느낌을 페르트 음악에 부여한다.

중세 음악과 유사한 선율을 작곡하는 것이 아니라 좀 다른 방식으로도 중세음악에 대한 현대인의 반응을 드러낼 수 있다. 페르트의 <거울 속의 거울>은 중세음악의 특징 중 하나인 ‘비어있음’을 형상화한다. 물론 중세의 단성음악은 그 자체로는 비어있는 음악이 아니다. 중세음악은 늘 예배의 일부로서 성당의 울림과 함께 충만한 형태로 존재했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중세음악이 연주되던 건축물의 특성 및 예배라는 맥락을 배제한 채 이 음악을 감상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현대인들에게 중세음악이란 단출한 음의 조합으로만 구성된 ‘비어있는 무언가’로 인지된다.

 

[영상 3] <거울속의 거울>https://www.youtube.com/watch?v=zB8Qd_YfUqE


흥미롭게도 <거울 속의 거울>은 20세기의 수많은 영화에 삽입된 인기 사운드트랙이 되었다. 중세의 수도원에서 예배와 함께 울리던 음악이 그 형태를 바꾸어 20세기의 수많은 상업 영화를 종횡무진 누비게 된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영화들 속 <거울 속의 거울>은 긴 시간의 흐름과 명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탁월한 도구로 활용된다.

페르트가 중세 음악을 자신의 작품에 반영하기 시작할 무렵 유럽의 음악계가 너무도 복잡하고 난해한 음악에 몰두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지적할 수 있다. 이런 분위기 안에서 페르트가 사용했던 중세적 자원은 그 재료만으로도 당대의 음악과 구별되는 새로운 것이었다. 많은 이들이 페르트가 꺼내든 중세적 자원과 그 안에 담긴 독특한 시간성 그리고 고요함에 매료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영상 4] <주여 평화를 주소서> https://www.youtube.com/watch?v=YOpa5Ec3i4s

 

하지만 페르트의 음악이 중세 음악의 복제는 아니다. 모든 음악이 예배의 일환이었던 중세와 달리 페르트에게 있어 종교란 특정 종파에 국한되지 않는 보편적인 영성에 가깝다. 그런 맥락에서 러시아 정교회를 신앙으로 삼았던 페르트가 상당한 분량의 가톨릭 종교음악을 만들었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즉 그의 <주여 평화를 주소서>는 가톨릭 음악으로서 의미를 갖는다기보다는 모든 인간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종교에 대한 갈망을 건드린다. 이는 예배 음악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페르트의 음악이 21세기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참고자료

Steven Wayne Gehring, Religion and Spirituality in Late 20th Century Music: Arvo Pärt, Jonathan Harvey, and John Coltrane

Peter Kwasniewski, Arvo Pärt on Gregorian Chant (https://www.catholiceducation.org/en/culture/music/arvo-paert-on-gregorian-chant.html)

민은기, 오지희 외 옮김, 그라우트의 서양음악사제7(), 이앤비플러스, 2007

웹진 [그라모프], (2018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