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학자 김희선의 시도

2017. 6. 12. 20:29

커뮤니티로 되돌아간 전통음악

 

한규설 대감가라 불리는 오래된 한옥이 있다. 이 한옥은 본래 1890년 청계천 하류 장통교 부근에 세워졌으며 1980년 정릉동 국민대 안으로 옮겨져 ‘명원 민속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백년의 역사를 지닌 이 한옥은 조선시대 상류층이 생활하던 저택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솟을대문을 지나면 중문과 사랑채, 안방, 대청이 이어지고, 부엌, 찬방, 별채, 사당 및 다양한 마당이 있으며 저택 안쪽에는 정자와 연못이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이곳에서는 ‘풍류나누기’라는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한창이다. ‘풍류나누기’는 <햇차다회>라는 차 시음회, <명인시리즈>라는 전통음악 공연, 그리고 춘계 및 추계공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 중 단연 중심이 되는 프로그램은 <명인시리즈>다. 음악학자 김희선은 2013년부터 <명인시리즈>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다. 김희선은 <명인시리즈>를 두고 “‘한옥’ 그리고 과거 선비들의 ‘풍류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고택 음악회”라 소개한다. 그녀는 이 공연이 “과거 양반가의 풍경을 단순히 재현하고 체험하는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시민문화로 발현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명인시리즈>는 한옥의 가장 큰 공간인 안채와 대청마루에서 진행된다. 적으면 삼십 명 많게는 백여 명의 관객이 연주자 주위에 둘러앉아 연주를 듣는다. 공연 전에는 연주자와 청중이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공연 중간에도 음악에 대한 간단한 해설이 곁들여진다. 음악 사이사이에도 연주자와 청중이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며, 공연이 마무리되면 청중 및 연주자는 연못 옆 정자로 자리를 옮긴다. 그리고 여기에서 차를 마시며 대화를 이어간다.

<명인시리즈>에 참석한 청중의 반응은 남다르다. 연주자와 청중이 밀착된 공간에 있어서인지 청중은 이 공연에 상당한 호감을 보인다. 지역사회에서도 이 공연은 이미 유명세를 탄지 오래다. 공연에 대한 호평은 연주자 쪽에서도 마찬가지다. 김희선은 공연에 참가한 한 연주자가 “어느 누구보다도 연주자가 행복한 연주회”라 한 말을 기억한다. 고택에서의 공연이 연주자와 청중 모두에게 충만한 경험을 선사한 것이다.

김희선은 “전통공연이 서구식 프로시니엄 무대에서 향유의 맥락을 잃고 공연예술화”됐으며, 이런 가운데 “전통 풍류문화가 잊혀졌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이 고택음악회는 “소박하지만 풍요로웠던 풍류문화를 되새기는 기회”다. 여기에서 그녀가 이야기하는 풍류 문화란 이 고택에서 치러졌을 대감가의 대소사를 계승하며, 가깝게는 1982년부터 진행된 다도 강좌, 그리고 2003년부터 큰 호응을 얻은 인문학 강좌 및 전통예술 공연 시리즈를 이어간다. 또한 이 고택에서는 최근 들어 대학 및 시민사회가 함께하는 다양한 인문강좌가 성행이다. 고택음악회의 ‘풍류’란 음악과 어우러지는 대화를 비롯해, 이 공간에서 지속되어 온 다양한 인문학적 활동과의 관계맺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20세기 내내 전통음악 공연은 서구화 및 대형화를 지향해왔다. 그리고 이것은 어느 순간 강박적인 무언가가 되었다. 하지만 김희선은 <명인시리즈>에서 작은 공연, 친숙한 공연이 환기되고 음악이 다시 삶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이 안에서 김희선은 큰 공연의 강박에서 벗어나 작게 마련한 공연에서 21세기 전통음악 공연의 나아갈 길을 발견했다고 고백한다. 그녀는 비로소 명인시리즈를 진행하면서 이제껏 국악이 큰 무대, 억지스러운 흥의 유도와 같은 것에 시달렸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명인시리즈>에는 음악이 음악 그대로의 감동으로 소박하게 사람들 사이에 존재한다. 이렇게 소박하게 다가간 국악은 연주자와 관객 그리고 예술감독이자 기획자인 김희선룰 포함한 모든 이에게 대단한 감동과 행복을 준다. 그녀는 이런 감동이 ‘국악’이기에 가능한 것이라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런 작은 공연이 20세기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21세기의 국악의 나아갈 모습, 그리고 새로운 흐름이 될 수 있겠다고 전망한다. 이런 김희선의 아이디어는 국악의 가치와 본질에 대한 본질적인 재고에 가깝다.

그녀가 이 공연을 이끌며 고민하는 또 다른 지점은 “전통음악이 시민사회와 어떤 방식으로 대화할 수 있는가?”, “전통예술의 사회적 기능은 무엇인가?”, “대학의 엘리트 교육이 배출하는 전통음악인은 어떤 방식으로 ‘시민사회’와 함께 할 수 있는가?”와 같은 것들이다. 그녀는 전통음악이 ‘생산자’를 중심으로 하는 예술일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문제의식들은 이 음악회가 지향하는 바를 뚜렷하게 드러낸다. 김희선은 이 음악회가 시민사회 안에서 건강한 생명력을 유지하며 자생적인 음악활동, 즉 ‘커뮤니티 음악’의 형태로 발전하길 원한다.

‘커뮤니티 음악’이란 최근에 재조명되는 개념으로, 과거에 성행했던 전통적 음악연행에서 유사한 형태를 찾을 수 있다. 예컨대 풍물이나 두레패와 같은 음악활동은 공동체적 성격을 갖는 ‘마을’의 활동이었고, 이런 연행 안에서 음악이란 시민사회 안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었다. 하지만 이런 전통적 음악연행은 근대화를 거치며 본래의 성격을 잃고 공연 예술화되었다. 전통음악은 공연장의 무대 및 상아탑에 갇혀 시민사회와 분리되었고, 생산자를 중심으로 작동하며, 미적 의미에만 천착하는 모습으로 변화한 것이다.

하지만 최근 다양한 종류의 ‘커뮤니티 음악’이 다시 활성화되는 추세다. 성남문화재단의 <사랑방 문화 클럽>은 정부의 문화정책으로 지원되는 커뮤니티 음악의 대표적 예이며, <성미산 마을>은 지역성에 기반을 둔 자발적인 공동체 예술이다. 강원도 원주시 손곡리의 <광대패 모두골> 그리고 인천의 <인천놀이마당>처럼 지역의 상주예술단체나 연주자를 중심으로 하는 활동도 있다.(김희선, 커뮤니티음악의 한국적 전개, 『이화음악논집』, 2012) 이런 활동들은 과거 전통음악의 특징이었던 공동체적 음악연행을 ‘커뮤니티 음악’이라는 새로운 흐름 안에서 계승한다.

김희선 역시 <명인시리즈>가 과거 전통음악의 연행 맥락을 동시대에 되살리는, 일종의 ‘커뮤니티 음악’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하지만 그녀는 <명인시리즈>의 연주자 및 청중이 이 음악회를 여전히 ‘공연’ 프레임에 가두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모습은 그녀가 지적한 이 음악회의 한계다. 그러나 이 음악회가 계속된다면, 지역주민과 연주자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형태를 갖추게 될지 모른다. 그런 날이 온다면 이 한옥은 아주 오래된 과거임과 동시에 전통 음악이 나아가야 할 미래를 담는 공간이 될 것이다.

김희선은 우리 시대의 예술이야말로 인문학적 사유와 실천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우리시대의 공연예술이야말로 성숙한 시민사회에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택에서의 전통음악 공연은 분명 이런 고민에 대한 실험이자 성찰이다. 특히 이 공간이 대학 안에 위치해 있고 이 공간을 거점으로 다양한 학문분야와 많은 사람들이 연결고리를 형성한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백 년도 더 된 대감의 저택에서 대학과 시민사회, 그리고 예술과 인문학이 교차하는 찰나를 목격하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서울대 음대 소식지 『울림』, 2017년 가을호 (2017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