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22일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소프라노 나탈리 드세이(Natalie Dessay)의 내한공연에서는 시작 전부터 이상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세월호 사고 때문이었다. 일부 관객들은 ‘이렇게 큰일이 났는데’ 음악 듣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했다. 연주자도 당황한 모습이었다. 가수 드세이는 막이 오르자마자 애도의 말을 건넸고, 본 공연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준비해 온 애가 <그대는 나의 안식, D.776>(Du dist die ruh)을 불렀다. 관객들은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연주회의 ‘애가’는 관객들 그리고 연주자가 음악회를 진행하기 위한 최소한의 ‘면죄부’였다. 굳이 화려한 댄스음악이 아니더라도 세월호 이후 ‘노래 부르기’ 더 나아가 ‘음악하기’는 더없이 죄송하고 송구스러운 것이었다.

 

침묵 속에 갇힌 음악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후 각계각층에 다양한 일이 있었다. 음악계에서는 ‘뷰민라 취소 사태’로 대표되는 다양한 공연 예술프로그램의 올스톱이 단연 화두였다. 일각에서는 이런 때야말로 음악의 사회참여적인 발언이 절실하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작곡가들이 사회참여적인 노래를 만드는 것과는 별개로, 사고 직후 유가족과 대중들은 ‘세월호를 떠올리게 하는 음악’을 받아들일 여력이 없었던 것 같다. ‘추모곡’으로 작곡된 몇몇 노래들 중 실제 영향력을 발휘하는 곡은 전무하며, 슬픈 텍스트로 범벅된 그 노래들을 일부러 클릭해서 들을만한 용기가 있는 사람도 별로 없다.

그렇지만 분노할 때 또는 슬플 때, 그 마음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극복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인간은 호모무지쿠스 즉 노래하는 동물이며, 생로병사에는 언제나 음악이 함께였다. 오래전부터 우애의 노래, 기쁨의 노래, 위로의 노래, 지식의 노래, 종교의 노래, 사랑의 노래가 존재했고, 이 노래들은 911 · 홀로코스트 · 히로시마 이후에도 쏟아져 나왔다. 굳이 아도르노의 선언까지 갈 필요도 없다. 생각해보자. ‘사람’은 음악을 통해 아픔을 기억하고 치유해왔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하다. 가장 힘든 사건을 겪고 있는 지금, 우리 사회의 음악은 왠지 ‘침묵’ 중인 것 같지 않은가? 왜 우리의 음악은 사회적 아픔을 노래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움추러드는 것일까? 세월호 이후 우리 주변에서 흔히 감지되는 ‘사회적 분노’에 대해 음악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는가? 아마도 대다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직까지는…. 사실 음악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고.

 

왜 아무도 노래 부르지 않는가, 세월호 침몰 이후에

사실, 세월호 이후 음악이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세월호 이후 석 달 남짓했던 시간은 분노를 ‘해소’하기에도 ‘위로’하기에도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우리는 모두 지난 몇 달 동안 심리학에서 말하는 ‘충격을 받은 직후의 상태’였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침묵 속으로 얼어버리는 시간…. 진도의 유가족들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종교인들이 내는 ‘유사 음악 형태’인 목탁 소리조차 듣기 힘들어했다. 6월 20일 천도재薦度齋)가 열린 절에서도 음악은 숨죽인 형태로 있었다. 큰 규모의 행사에 으레 등장할법한 국악오케스트라 대신 지전춤과 화평이 ‘몸짓’과 ‘말’을 중심으로 공연되었다. 우선 유가족들 스스로 종교적인 제의에 수반되는 최소한의 악(樂)조차 부담스러워 하는 시점에, 음악계 모두가 움추러들 수 밖에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대중음악’이 소비 지향적이며 피로를 동반하는 미디어를 그 모체로 삼는다는 점도 음악이 침묵하게 된 원인일 수 있다. 미디어가 콘텐츠를 살포하고 대중의 공감을 얻는 방식은 무자비하고 자극적이다. 세월호 사건을 다루는 방송을 통해 거의 매일같이 상처받아왔던 많은 사람이, 그 대중 매체의 본질에 기반을 두고 여기저기 퍼져나가는 음악으로 위로받을 수 있을까? 게다가 ‘자본주의’와 뗄 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대중음악은 그 태생적 한계 때문에 여러 가지 의혹의 눈초리를 받는다. ‘사건을 빌미로 뜨려는 것 아냐?’ 또는 ‘슬픈 일이 터졌는데 돈을 벌 생각이나 하다니 쯧쯧….’과 같은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사실 더 큰 문제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동시대의 거의 유일한 음악 형태가 ‘대중음악’이라는 점 그 자체이다. 구술되던 민요들, 세대와 성별에 따라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목적으로 불리던 일상의 노래들은 자본을 좇는 비슷비슷한 형태의 ‘대중음악’으로 단일화되었다. 이제 이 대중음악이 특정 방식의 애도에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그냥 침묵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한편 일부 언론은 그나마 인지도가 있는 추모곡 작곡가 윤민석의 <얘들아 올라가자>와 가수 임형주의 <천 개의 바람이 되어>에 대해 비상식적인 발언을 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가진 본질적인 문제점을 드러낸다.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추모곡으로 발표된 윤민석의 곡은 그에 대한 어떠한 음악적 이해도 없이 ‘정치색’에 관한 논쟁으로 덧칠되어 있다. 사고의 책임 주체가 분명하지 않다는 점을 이유로 참사의 책임을 묻고 언급하면 유가족에게조차 ‘빨갱이’ 딱지가 붙는 상황에서, 어느 누가 이 사태에 대해 이야기하고 슬퍼할 수 있을까? 한술 더 떠서 언론은 임형주 곡의 원작자가 일본인이라는 것을 확대 재생산해서 불필요한 논쟁을 이끈다. 즉 ‘빨갱이와 친일파’라는 구도 속에 음악이 질식되는 상황이다.

또한, 우리는 박정희 시대에 “명랑하고 씩씩한” 음악을 강조하고 이와 반대되는 “센티멘털리즘, 처연함, 애상적 감정과 정서”를 가진 음악을 “절멸해야 할 것”으로 여겼던 경험이 있다. 이런 기억은 우리가 슬픈 사건에 대해 음악으로 언급하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거부하게 만들었을 수 있다. 불과 지금으로부터 몇십 년 전, “실연, 비련, 비극, 고독, 불행”을 다루는 노래들은 문제곡이며 퇴폐곡이었다. 한이 서린 음악들은 서민들의 삶과 비극을 이야기하고 그들에게 위안을 준다. 하지만 이 노래들은 “생산적인 건설의욕을 고취”시키지 못하고 “노래의 의무를 방기한 채 우울하다거나 슬프다거나 애절하다거나 하는 감정을 자극”하는 것으로 여겨졌고 더 나아가서는 “반국가적, 반사회적인 행위”로 치부되었다.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임을 위한 행진곡> 논쟁도 넓은 맥락에서는 아픔을 기억하는 노래를 억지로 중단시키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그렇게 우리는 언젠가부터 ‘슬픔’을 노래 부르는데 주저해왔다. 대신 희망찬 노래를 부르는 것, 이를테면 월드컵이 열리는 광화문에서 기쁘게 소리치고 노래 부르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왔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아픔을 떠올리고 상처를 노래하는 것은 두려워한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침묵 상태로 있어서는 안 된다. 대중은 ‘음악’ 즉 공동의 발언을 통해 사회적 분노를 드러내고 자신을 스스로 치유하며, 보듬을 기회를 가져야 한다. 사회 언저리에 부유하는 다양한 형태의 분노가 가시화되지 않고 계속 떠다니는 것, 그것들이 해소되지 않고 축적되는 것은 모두에게 불행이다.

 

이제는 노래가 불려야 할 시간

막연한 ‘침묵’ 속에 갇혔던 사고 직후는 이제 ‘기억해달라’는 이야기를 건네는 시점으로 바뀌었다. 유가족들은 ‘가장 두려운 것이 잊혀지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으며, 미디어와 대중들은 세월호 이야기를 조금 ‘덜’ 하기 시작했다. 하나둘 리본들이 소각되고 있다. 유형의 물질은 시간이 지나면 때가 타고 바랜다. 만약 사고 1주년을 기리고, 3년 상을 치르고 10주기를 기억하려면 음악이 필요하다. 음악은 천으로 만든 리본보다는 좀 더 오랫동안 사람들 곁에 머물 수 있다. 이제는 노래가 불려야 할 시간이다.

작곡가들은 그들의 기민한 감수성으로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공동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풀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리고 이 음악이 연주되고 회자되는 현장은 대중의 신념과 가치들이 충돌하고 갈등을 화해하는 과정이다. 음악 공연은 일종의 ‘제의’이며 음악은 공동체 전체를 대변하는 ‘발언자’이다. 동시에 이것을 듣는 ‘청자’들은 음악과 공연 속에 함축된 삶과 현실을 마주할 수 있다. 따라서 세월호의 이야기를 담은 음악회나 음악은 사회적 씻김굿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이 사태가 응축시켜 온 분노를 상쇄시키고 더 나아가서는 이 사건을 기억하는 것에 대한 모범적인 답을 제시할 수 있다.

진도 바닷가, 스님의 목탁소리에서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낀 적이 있는가? 이런 감정은 사실 목탁소리라는 ‘음악’이 해안가를 하나의 음향으로 감싸고 그 안에 쉴 공간을 만들어서일지도 모른다. 모든 음악이 대중가요일 필요는 없다. 심심한 곡조의 뉴에이지나, 클래식이나, 민중가요나, 동요나 하찮은 미디음악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음악’이라는 형태가 이 사건에 대해 다른 어떤 행위들보다 훨씬 매끄럽게 할 수 있는 일들이 분명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 언급들은 비극의 시대를 바라보는 음악지상주의자의 ‘환상’이 아니다. 대신 음악의 주술적인 힘에 기대어 상처를 보듬고 싶은 ‘멀리서’ 참사를 바라보는 이의 소망에 가깝다.

 

1) 이승길. “민트페이퍼 ‘뷰민라 취소, 소송 임할 것’ 법적대응 시사.” 마이데일리: 2014.05.29.; ‘뷰민라’는 ‘봄 음악페스티벌 뷰티풀 민트 라이프 2014’의 약자이다. ‘뷰민라’는 2014년 4월 26일부터 개최될 예정이었지만, 하루 전 날인 지난 4월 25일 공연장 대관 측인 고양문화재단의 일방적인 통보로 취소 결정이 내려졌다. 관계자에 따르면 출연진 섭외는 물론이고, 공연장 세팅까지 완료된 상황에서 고양문화재단 측은 일방적으로 “세월호 참사로 인해 공연이 취소됐다”는 내용의 공지를 게재했다.

2) 서정민갑. “세월호 침몰 사고, 음악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컬쳐투데이: 2014.04.22.

3) 대니얼 J. 레비틴 저. 장호연 옮김. 『호모 무지쿠스』 마티: 2009.

4) 저승으로 가는 노잣돈을 챙겨주는 의식.

5) 가사가 들리도록 공연되는 염불의 한 종류이다. 이날은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이라는 부모의 크고 깊은 은혜를 보답하는 경전이 공연되었다. 사고를 당한 아이들 입장에서 부모에 대한 감사함과 미안함을 말하기 위함이었다.

6) 권오연. “세월호 희생자 모두 가슴에 묻겠습니다.” 법보신문: 2014.05.20.

7) 홍성준. “세월호 추모곡 쓴 작곡가, 알고 보니 김일성 찬양가를?” 블루투데이: 2014.05.14.; 전경웅. “퍽킹 USA 작곡가 세월호 추모곡으로 다시 등장?!” 뉴스파인더: 2014.05.17.

8) 박은하. “심층기획 - 한국사회의 민낯 ‘세월호’, 구하지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것…아무도 못 믿겠다.” 경향신문: 2015.05.14.

9) 강석봉. “임형주 노래, ‘세월호 추모곡’ 자격없어… 임형주 일본 작곡가에 지불되는 저작권료, 기부할 것.”경향신문: 2014.04.28.

10) 민은기 외 저. 『독재자의 노래』, 한울: 2012, 267.

11) 위의 글, 267-268.

12) 세월호 유족 대변인. “저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잊혀지는 것.” 경향신문: 2014.05.25.

13) 최슬기. “구미시민단체, 구미시, 세월호 ‘노란리본’ 무단철거·소각 진상규명하고 사과하라.” 경향신문: 2014.06.22.; 오윤주. “세월호 추모 펼침막·리본 소각한 음성군.” 한겨레: 2014.06.16.

14) 소중한. “월드컵·올림픽 지나도 세월호 3년상 치릅니다.” 오마이뉴스: 2014.06.21.

15) 주성혜. 『음악학』 루덴스: 2008, 140-141. 터너(Victor W. Turner)의 글 재인용.

 

「플랫폼」, 통권 46호,  2014년 7, 8월 (2014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