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 음악의 정의와 변천

2016. 8. 18. 18:23

미니멀리즘 음악은 의도적으로 리듬이나 선율, 화성 등을 단순화시킨 작곡의 한 스타일을 말한다. 이 음악은 ‘최소한의 요소로 만들어진 음악’이라 부를 수 있으며, 그 이름을 빌려 온 미니멀리즘 미술과의 연관성을 통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다. 보통 미니멀리즘 미술은 장식적인 것이 빠져있고 기하학적인 점이 강조되며 표현적인 테크닉이 회피된 것이라 묘사되는데 이는 미니멀리즘 음악을 설명하는 말로도 설득력이 있다.

미니멀리즘 음악은 몇몇 ‘미니멀리즘 음악의 테크닉’을 사용하는 음악으로도 정의할 수 있다. 이를테면 미니멀리즘 음악은 반복을 자주 활용하며 화성적으로 정체되어 있는 음악이다. 또한 이 음악은 저음 지속음(drone)이나 지속적인 비트 혹은 맥박처럼 일정한 리듬으로 흐르는 펄스(pulse)를 갖는다. 점진적인 과정(gradual process)을 통해 음향을 구축하며, 최초 청취 시에 이 음악의 작동방식을 알아챌 수 있다는 점(audible structure)도 특징적이다. 청취 도중 심리적이고 음향학적인 효과로서 의도하지 않았던 선율 등이 인지된다는 측면에서 메타음악(meta music)적이기도 하다.

또한 미니멀리즘 음악은 정치적 · 미학적으로도 정의할 수 있는데, 이 경우 1960년대의 초기 미니멀리즘 음악과 1970년대 중반 이후 변화된 미니멀리즘 음악이 확연하게 다른 양상을 보인다. 초기 미니멀리즘 음악은 기존의 서양 음악 전통에 대항하는 정치적인 포지션을 취하며 미학적으로 독특한 영역을 구축한다. 반면 1970년대 중반 이후의 미니멀리즘 음악은 특정 미학이나 정치적 맥락 혹은 지역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의 ‘스타일’ 혹은 ‘테크닉’이라는 측면에서 정의된다. 초기 미니멀리즘 음악이 최소한의 수단‘으로만’ 구성된 전위 음악에 가깝다면, 변화한 미니멀리즘 음악은 좀 더 복합적인 음향 안에 미니멀리즘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초기 미니멀리즘 음악 : 극도로 단순한 음악으로 전통에 대항하다

‘클래식 미니멀리스트’ 혹은 ‘미니멀리즘 음악의 창시자’로 불리는 라 몬테 영(La Monte Young, 1935~), 테리 라일리(Terry Riley, 1935~), 스티브 라이히(Steve Reich, 1936~), 필립 글래스(Philip Glass, 1937~)는 공통점이 많다. 이들은 모두 1935~7년 사이에 태어난 미국인들이며 1960년대의 대항문화와 다운타운 맨해튼 신을 경험했고 각각 아프리카 가나의 타악기 음악, 인도네시아의 가믈란 음악, 인도 음악 등 다양한 비서구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이들 모두 전문적인 음악 교육을 받았지만 아카데미에 머무르지 않고 자유 작곡가로 활동했다는 점, 작품 활동 초기에는 생계가 어려워 스스로 앙상블을 구성하고 기존의 작곡가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작곡과 연주를 병행했다는 점도 동일하다. 이런 네 명의 미니멀리스트가 ‘단순한 음악’ 혹은 ‘반복하는 음악’을 만든 것은 이들이 처했던 음악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이들이 처음 미니멀리즘 음악을 시도했을 때 미국 음악계에는 두 가지 부류의 기성 음악이 있었다. 첫 번째는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 1874~1951)와 베베른(Anton von Webern, 1883~1945)을 거쳐 배빗(Milton Babbitt, 1916~2011)으로 이어진 ‘음렬음악’ 전통이었고, 두 번째는 존 케이지(John Cage, 1912~1992)와 그의 제자들이 확립해놓았던 불확정성 음악 전통이었다. 이들은 음렬음악과 불확정성 음악 모두에서 이미 끝났다고 선언한 ‘명확한 조성’과 ‘지속적인 펄스’를 다시 사용함으로써 그들의 기성세대에 저항한다. 라일리의 《인 씨》(In C, 1964)는 당시의 아카데미와 전후 음렬음악의 헤게모니 앞에 놓일 때 그 정치적인 맥락을 드러낼 수 있다.

초기 미니멀리즘 음악은 ‘미학’적인 측면에서도 서양 음악의 전통을 거부한다. 전통적인 서양 음악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음악적 이벤트는 통제된 끝 혹은 종합(Synthesis)으로 결론 맺으며, 작곡이란 ‘유기적인 전체’를 만드는 행위다. 하지만 미니멀리즘 음악에서는 이와 같은 서양 음악의 패러다임이 거부된다. 미니멀리즘 음악은 ‘목적론적이지 않은’ 진행을 하며 외부의 대상을 지시하거나 재현하지 않고 오직 그 자체의 현존을 위해서만 존재한다. 이는 미니멀리즘 음악이 음악 안의 논리적 인과관계를 제거함으로써 음향 그 자체를 자율적인 것(autonomous)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이 자질라(Marian Zazeela, 1940~)와 함께 작업한 《꿈의 집 78분 17초》(Dream House 78' 17", 1974)는 이런 종류의 미학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 작품은 78분의 지속음으로 ‘존재’하며 그 안에는 어떤 음악 요소도 ‘발전’되지 않는다.

대신 미니멀리즘 음악은 음악을 듣는 새로운 방법을 제안한다. 미니멀리즘 음악을 듣는 청자는 음악 속에 등장하는 매우 미세한 변화에 집중하게 되며, 이런 변화를 감지하는 것이 작품의 주요 이벤트가 된다. 이런 감상방식은 라이히의 《진자 음악》(Pendulum Music, 1973)이나 글래스의 《5도의 음악》(Music in fifth, 1969)을 듣는 데에 적용해 볼 수 있다. 청자는 이 음악들을 들으며 음향 안에서 점진적으로 벌어지는 리듬이나 음색의 변화 등을 기민하게 청취할 수 있다.

이렇게 초기 미니멀리즘 음악은 당시의 기성 작곡계 그리고 서양음악의 전통에 반대하는 포지션을 취한다. 이것은 이 음악이 부분적으로는 ‘대중음악’과 연결되어 있으며 ‘비서구 음악’에서 수많은 영감을 받아 태어난 음악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음악으로

초기 미니멀리즘 음악은 극도로 단순한 형태였지만 이제 이 음악은 점차 복잡해지고 짜임새가 다채로워졌으며 화성적인 진행을 포함하게 되었다. 이 음악은 8분음표로 이뤄진 5도 음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5도의 음악》에서 벗어나 여러 개의 부분이 등장하는 《변화하는 부분의 음악》(Music with Changing Parts, 1970)으로 변모하는가 싶더니,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글래스웍스>(Glassworks, 1982)와 같은 형태로 진화했다. 초기 미니멀리즘 음악을 가장 잘 설명했던 ‘미니멀리즘 미학’은 서양 음악에 내재한 ‘목적론적인 진행’을 배격했지만 변화한 미니멀리즘 음악 안에는 종지 진행이 노골적이다. 라일리의 1973년 작품인 《사장조의 노래》(G-song)가 그 예다. 이 음악 안에는 네 마디 단위로 반복하는 ‘예측 가능한’ 종지가 두드러진다.

미니멀리즘 음악은 미국 안에서 인기를 얻으며 번영했고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글래스의 음악으로 대표되는 무언가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 음악은 더는 전위적이거나 기성세대에 저항하기 위한 음악이 아니며, 전 세계의 콘서트홀과 오페라 하우스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미니멀리즘 음악의 작곡가 목록에도 네 명의 클래식 미니멀리스트 이외에 존 아담스(John Adams, 1947~), 메러디스 몽크(Meredith Monk, 1942~), 마이클 니먼(Michael Nyman, 1944~), 루이 안드리센(Louis Andriessen, 1939~), 아르보 페르트(Arvo Pärt, 1935~) 등이 추가되었다.

미니멀리즘 음악은 이제 일종의 ‘스타일’이나 ‘테크닉’적인 측면에서 가장 잘 설명될 수 있다. ‘미니멀리즘 스타일’을 보여주는 곡으로 라이히의 《18명의 음악가를 위한 음악》(Music for 18 Musicians, 1978)을 꼽을 수 있다. 이 음악은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리듬형의 흐름이 일관되고, 작은 단위의 리듬으로 구축된 짜임새가 점진적으로 확장되어 클라이맥스를 만들고 그 이후에는 쇠퇴하며, 작품의 섹션들은 연속적인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곡 전반에 걸쳐 중단 없이 계속되는 펄스가 존재한다는 점, 밝은 느낌을 주는 음색을 갖고 있고 화성적으로 단순하다는 점, 친숙한 3화음이나 7화음 그리고 온음계적 화성 재료를 주로 사용한다는 점, 유려한 선율이 부재하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한발 더 나아가 미니멀리즘 음악이 ‘테크닉’적인 측면으로 정의될 수 있다면 존 아담스의 《화성학》(Harmonielehre, 1985) 같은 작품이 미니멀리즘 음악의 목록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곡에서는 전형적인 미니멀리즘의 화음 반복이 등장하는가 싶더니 곧 이 화음들이 불규칙한 당김음 짜임새로 변한다. ‘미니멀리즘적인 반주’ 위에 ‘낭만주의적인 선율’이 얹혀 있는 부분도 등장한다. 미니멀리즘 음악의 테크닉을 활용해 새로운 음악적 진행이나 구성을 만들어 낸 것이다.

페르트의 음악도 비슷한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페르트의 음악 안에는 ‘음과 화성의 제한적인 사용’ 그리고 ‘반복’ 등 다양한 미니멀리즘 음악의 테크닉이 드러난다. 그리고 여기에 다양한 종교적인 텍스트들, 의식이나 예배를 암시하는 음악형식 등이 결합된다. 이를 통해 페르트의 음악은 숭배나 명상 같은 특유의 감각을 불러일으키며 종교적이고 전통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1984년 발매된 음반 <타블라 라사>(Tabula Rasa)가 좋은 예다. 이런 부류의 음악은 ‘영적 미니멀리즘’(Holy Minimalism)이라 불린다.

이제 21세기에 다다른 미니멀리즘 음악은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다. 상당수의 작곡가가 ‘미니멀리즘 음악’이라는 이름 아래 조성을 다시 사용하고, 리듬이 강조되는 대중 친화적인 음악을 작곡한다. 그래서인지 미니멀리즘 음악은 콘서트홀에서부터 영화음악과 광고를 넘나들며 끊임없이 발견된다. 이 음악이 20세기에 등장한 현대음악 사조 중 ‘유일하게 살아 있는’ 음악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객석」, 2016년 9월, (180816)

사진출처: culturalattache.co/2020/06/26/culture-best-bets-at-home-june-26th-june-28th/philip-glass-ensemble-courtesy-of-p-glass-web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