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해변의 아인슈타인> 리뷰

2015. 12. 21. 23:00

미니멀리즘에서 맥시멀리즘으로

 

<해변의 아인슈타인>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미니멀리즘’이라는 용어에 거리를 두는 것이 좋다. 애초에 오페라는 ‘미니멀리즘’이라는 단어와 상극이다. 대신 미니멀리즘적인 ‘상태’가 얼마나 다양한 요소를 포용할 수 있는지, 그래서 미니멀리즘이 어떻게 ‘맥시멀리즘’으로 진화하는지 관찰하는 편이 훨씬 더 흥미롭다. <해변의 아인슈타인>(Einstein on the Beach, 1976)은 최소의(minimal) 요소로 통제되는 최대의(maximal) 작품이다.

오페라를 여는 ‘서주’가 좋은 예다. 이 음악은 미니멀리즘을 대변하듯 음표 세 개로 시작하지만, 나레이션, 동작, 이미지와 순차적으로 결합하고 풍성한 코러스를 빨아들임으로써 점차 복합적인 시청각 혼합물로 변한다. 초반의 미니멀리즘적 요소는 음향 구조의 심층으로 밀려 내려가고 음악은 ‘최대의’ 상태로 팽창한다. 그렇게 4개의 막 안에 <기차>, <법정>, <댄스>, <우주>, <빌딩>, <침대> 등으로 구성된 장들과 막과 막을 연결하는 막간극 니플레이(Knee Play)로 이뤄진 거대한 오페라 <해변의 아인슈타인>의 막이 오른다.

이 작품은 1976년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초연됐으며 뉴욕 다운타운 기반의 예술가들인 연출가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 1941-), 작곡가 필립 글래스(Philip Glass, 1937-), 안무가 루신다 차일즈(Lucinda Childs, 1940-)의 협업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40년의 세월을 거쳐 2015년 10월 23일~25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공연됐다. 광주 공연에서 인상 깊었던 몇몇 장면이 있다. 일부는 작품 안에 근본적으로 거했던 것들로, 글래스 음악의 운동성이 윌슨의 극 안에서 시간을 장악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인상 깊었던 또 다른 장면은 2015년 광주였기에 포착할 수 있었던 새로운 풍경이었다.

 

과거 : 1976년 뉴욕의 춤과 음악, 가볍고 즐거운 것

<댄스>에 등장하는 음악들은 꽤 빠른 축에 속한다. 이 음악들은 따라 부를 수 없고, 선율 · 마디선 · 프레이즈가 없다. 오로지 몸을 움직이기 위해 고안된 듯하다. 대신 빠르고 때로는 느리게 반복되는 아르페지오 음형이 지속적인 박동을 만든다. 음악은 전자 오르간과 관악기로 연주되는데, 전자 오르간의 빠르기와 음량은 청중에게 엄청난 전율을 선사한다. 마치 록 콘서트에서처럼 청중의 몸은 특정 주파수에 따라 진동한다.

<댄스>의 첫 장면은 오페라의 모든 장면들 중 가장 탁월한 아름다움을 보여줬다. 남자 무용수는 빛이 뿜어져 나오는 무대 위에 뒤돌아 서 있었고, 갑작스레 춤을 추기 시작했다. 동시에 인터미션을 즐기느라 잠시 자리를 비웠던 청중이 춤의 시작을 감지하고 전속력으로 달려와 자리에 앉았다. 무용수들은 사선과 원형의 대열을 오가며 기하학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이는 만화경 속 시시각각 변하는 빛의 잔상 같았다. 텍스트가 배제된 표현, 변화무쌍한 도형의 조합, 이것은 추상적인 멀티미디어 형태를 구현하는 것이었으며 동시에 이 음악의 기하학적인 미를 완전하게 표상하는 방식이었다. 연출자 로버트 윌슨이 이 오페라 전체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비내러티브, 비인과관계 그리고 해석에서 독립된 이미지, 움직임, 빛, 소리 자체의 아름다움이 <댄스> 파트에서 가장 설득력 있어 보였다.

한편, 오페라에는 몇 개의 화음을 한 그룹으로 묶어 반복하는 음악이 자주 등장한다. 이런 타입의 음악에서는 규칙적으로 종지(Cadence)가 등장한다. 그리고 규칙적인 종지는 청자가 이 음악을 들으며 규칙적인 기쁨을 느끼게 해준다. 아마도 5시간에 다다르는 오페라를 견딜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매 순간 즐거움을 선사하는 글래스 음악의 화성 구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런 단순함과 가벼움이야말로 글래스 음악의 매력이며 글래스의 음악과 대중을 강렬하게 연결시키는 접착제다.

<빌딩> 장에서는 미니멀리즘 풍 반주 위에 프리 재즈 스타일의 색소폰 연주가 섞여 나왔다. 초반의 휑했던 무대는 사람이 한 둘씩 등장하며 왁자지껄한 분위기로 변했고 색소폰 솔로는 점점 더 격렬해졌다. 음악이 절정으로 치달아 가장 화려해졌을 무렵, 무대 위에는 인종 · 나이 · 성별이 다양한 군중으로 가득 찼다. 이 장면은 음악적 클라이맥스와 섬세한 연출을 통해서 특별히 강조되어 보였다. 사람들은 웃는 표정으로 자잘한 동작을 반복하며 동화에서나 볼법한 기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아름답고 매혹적인 포즈로 ‘배기팬츠’나 ‘에어컨’ 이야기를 하는 여자, 흑인들, 귀엽고 엉뚱한 몸짓을 하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글래스의 달콤한 음악에 실려 오페라의 무드를 만들었다. 핑크와 파스텔로 치장된 미국의 1970년대식 상상. 모두가 사랑하며 모두 젊고 반짝거린다. 윌슨은 이 오페라가 아무런 해석도 동반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합창단과 무용수의 표정, 그들이 입은 옷의 색깔, 동작의 우아함과 장난스러움에서는 특정 시공간에 살았던 예술가가 표상할법한 유토피아가 있었다. 무대 위의 세상은 수십 년 후에 닥쳐 올 세기말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 오페라의 맨 마지막 장면은 상징적이었다. “존, 나를 사랑해?... 너는 태양, 달, 별처럼 내 삶을 비추는 빛이야, 당신은 내 모든 것... 나는 당신 없이 존재할 수 없어...” 이 동화 같은 그리고 비현실적인, 또는 작위적이고 의미 없는 마지막 대사는 ‘사랑이야기로 마무리되는 어떤 꿈같은 장면’ 그 자체를 전달하고 있었다.

 

현재 : 광주의 윌슨과 글래스, 거인의 그림자

<해변의 아인슈타인>이 만들어진 지 꼭 40년이 흘렀다. 따라서 2015년 광주에서 공연한 프로덕션은 비록 ‘오리지널’ 버전을 가져왔다 할지라도 1976년 버전과 비교해 보았을 때 완전히 동일하다고 볼 수 없다. 무엇보다도 지난 40년은 연출자 윌슨 그리고 작곡가 글래스의 명성과 작품에 대한 찬사가 차곡차곡 쌓이기만 한 세월이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이 작품을 공연하는데 20억을 들었으며 이 작품은 ‘금세기 최고의 작품’을 소개하는 ‘아워마스터’ 섹션에서 상연됐다. <해변의 아인슈타인>의 긴 공연시간은 전통적인 내러티브와 재현적인 요소를 배제하기 위한 아방가르디스트의 시간 전략이었지만, 2015년 광주에서는 ‘대작적 면모’라는 측면이 부각되어 소비됐다. 어쩌면 긴 세월 안에서 4시간 40분 길이의 대형 오페라에 압도적인 무게감이 더해진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이에 답하기라도 하듯 많은 청중이 이 작품을 참배하는 마음으로 감상했다.

청중은 새로운 시공간에 놓인 <해변의 아인슈타인>을 바라보며 ‘감각적 체험’과 ‘박제의 대면’ 그 둘 사이에서 요동친다. 다양한 해석을 이끌어내고자 했던 자유로운 예술가의 창작품이, 도리어 경직된 해석과 수동적 관람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윌슨은 이 작품에서 감각적으로만 느낄 수 있는 ‘있는 그대로’의 극을 만들어냈지만, 엉뚱한 점은 이 작품이 ‘고전’이 된 이후에는 좀 다른 방식으로 ‘있는 그대로 보기’가 보다 손쉽게 일어난다는 점이다. 1917년 뒤샹(Marcel Duchamp)의 ‘샘’(Fountain)을 예술품으로 인지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이제는 누구나 이것을 예술로 여긴다.

하지만 더 주목해야할 지점은 이 작품이 40년 동안 축적해 온 무게감을 통해 과거의 청중이 느끼지 못했을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가능성이다.

흰 기둥이 무대 위로 서서히 상승하는 후반부의 유명한 장면이 좋은 예다. 이 장면은 글래스적이라기보다는 바그너적인 인상이 강했다. 흰 기둥은 압도적이었으며 위대해 보였고 그 자체로 세상의 절대 진리를 표상하고 있었다. 그것이 극도로 단순한 네온사인 불빛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이 빛나는 기둥이 허공으로 서서히 사라질 때는 예수의 승천이 떠올랐다. 흰 기둥과 결합한 글래스의 음악은 바그너의 복잡한 음악극이 만들어낼 법한 아우라를 뿜어냈다. 글래스의 음악에 버무린 40년 세월이 바그너식 카타르시스를 ‘인스턴트 방식’으로 만들어내고 있었다.

1960-70년대 아방가르드의 대표였던 미니멀리즘은 이제 상업주의의 정점에 올랐다. 영화 인터스텔라와 아이폰 광고에서는 미니멀리즘 음악이 쉬지 않고 나온다. 어쩌면 현시대야말로 ‘미니멀리즘’이라는 단어에 가려져 있던 이 예술의 디테일과 복잡성, 그리고 상업적인 면모와 유연한 측면이 제대로 보이는 것은 아닐까. ‘단순함’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있던 강렬한 클라이맥스들, 즐거운 음악들, 아름다운 춤과 압도적인 연출을 청중이 놓치지 않았길 바란다.

 

(2015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