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14일 화음챔버 오케스트라 38회 정기연주회 리뷰

2014. 5. 14. 00:00

기억을 소환하는 음향 쇼스타코비치

 

들어가며 : 쇼스타코비치, 음악을 통해 삶을 얻었던 작곡가  

서슬이 퍼렇던 스탈린의 통치기간, 단 한번 실연으로 청중을 사로잡아야 했던 작곡가가 있었다. 당시 유럽의 젊은 아방가르드 작곡가들은 새로운 어법을 찾아 과감한 시도를 행하고 그러는 가운데 독자적인 실험의 세계로 들어서곤 했지만, 쇼스타코비치의 경우는 달랐다. 그는 당대 프롤레타리아 ‘대중’과 그의 ‘독재자’와 소통해야 했다. 그는 동시대 작곡가들이r 포기한 조성음악어법을 바탕으로 그 안에 다양한 과거의 장르들을 녹여냈으며 민족적 요소를 도입한 음악을 시도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 부르는 사회적인 강압은 그가 남들과는 구별되는 독자적인 음악어법을 만들도록 했다. 그렇게 그는 조성 위에 서 있지만, 기존의 방식으로는 해석하기 어려운 독특한 음악의 소유자가 된다.

사회적 격변 속에서 자신의 음악어법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서 평생 수많은 곡을 남긴 한 작곡가의 음악은 어떤 의미인가? 쇼스타코비치가 죽고 난후 꼭 40년이 지난 2014년 그의 이름과 ‘음악의 사회성’이란 부제를 붙인 음악회는 어떤 감정을 불러오는가? 그날 우리는 바이올린을 켜는 연주자의 오른팔 살점의 미세한 떨림을 보면서 소비에트 시절 러시아를 떠올렸다. 현악 챔버 멤버들의 일사불란한 오스티나토 리듬을 들으며 제2차 대전의 공포스러운 군대를, 그리고 흑백 영화 속 장병의 발걸음을 되살려 냈다. 놀라운 일이다. 우리는 왜 낯선 이국 땅에서 그의 음악을 들으며 음악과 나 그리고 사회와 역사를 떠올리는가?

 

음향 속에 봉인된 사회

작곡가는 다양한 음악적 기호를 토대로 청중과 소통한다. 이를테면 트럼펫 소리는 군대의 기상나팔을 연상시키며, 오르간 소리는 교회의 예배를 상징한다. 왈츠나 아리아 등 사회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잘 알려진 음악 양식도 비슷한 상징으로 사용된다. 이런 방식의 소통은 우리가 특정한 음향을 듣고 선율이나 구조를 파악하는 대신, 꽤 구체적인 느낌을 떠올리게 한다. 이를테면 당신이 음악을 듣다가 문득 ‘시골 풍경’을 떠올렸다면, 자신도 모르게 작곡가가 작품 안에 봉인한 어떤 사회ㆍ문화적 기호들을 해독한 셈이다.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에서는 이런 식의 기호들이 즐비하다. 이날 연주회에 등장했던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챔버 오케스트라로 편곡된 쇼스타코비치의 <현악4중주 2번>(1944)은 4악장 구조의 소나타 형식으로 되어 있고, 각 악장의 속도과 형식구성도 일반적이다. 하지만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각 악장이 ‘서곡’, ‘레시타티보와 로맨스’, ‘왈츠’, ‘변주곡’ 형식으로 되어 있는 점이다.

특히 인상적인 2악장, ‘레시타티보와 로맨스’를 살펴보자. 이 악장에서는 하나의 화음이 지속되는 가운데 제 1 바이올린이 긴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우리는 이 악장을 들으며 형식이나 구조보다는 어떤 이야기를 들으려 애쓴다. 이야기는 텍스트 형태가 아니지만, 그 선율의 떨림과 머뭇거림, 쭉 뻗은 수평의 궤도 위에 위태롭게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움직임을 통해 언어 이전의 감각으로 이 이야기를 해독할 수 있다. 이 선율은 분명 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바이올린 독주는 보다 투터워진 챔버 오케스트라의 음향위에 아슬아슬하게 걸린 채 관객들이 꽉 들어차 있는 챔버홀의 허공을 떠다닌다. 그렇게 우리 중 누군가는 이 ‘레시타티보’ 안에서 쇼트타코비치의 고백을 들을 수 있다.

선율 간간히 느껴지는 이국적인 정서를 느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실 이 4중주는 이 시기 쇼스타코비치의 다른 작품들처럼 유대민속음악과의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이 곡을 쓸 당시 쇼스타코비치는 유대인 동료들과 공공연하게 어울렸다. 비록 러시아에 만연한 반유대주의 때문에 이 사실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서 쇼스타코비치의 유대인 동료들까지도 느낄 수 있는 셈이다.

그런가하면 3악장의 ‘왈츠’는 어떤가? 이토록 어둡고 비애감이 느껴지는 왈츠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약간 빠른 박자의 왈츠 리듬에 낮게 움직이는 첼로 선율이 계속해서 미끄러지듯 헤맨다. 쇼스타코비치는 이 곡을 모스크바 근교의 이바노보(Ivanovo)라는 도시에서의 휴식시간에 작곡했다. 때는 그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에 대한 과격한 공격이 자행된 이후였고, 대공포시대의 숙청이 막 휩쓸고 지나간 시대였으며, 1941년 독일군이 소련을 침공한 이후였다. 때마침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로 한껏 애국 작곡가로 명망을 떨치기 시작한 이 젊은 작곡가가 쓴 음울한 왈츠. 여유롭고 안정적인 느낌이 아닌 끝없이 질주하는 패시지와 쏟아져 내리는 듯 긴장감을 품고 있는 왈츠... 그는 기존의 ‘왈츠’라는 명확한 상징 안에 그와 대비되는 정서와 불안한 기운을 불어넣었고 이것을 통해 우리와 소통을 시도한다. 우리는 음악의 외피와 내연의 불일치 안에서 그가 직면한 시대를 느낄 수 있다.

 

우리 기억속의 쇼스타코비치

우리에게 1978년 대한민국 건국 30주년은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 해 4월에는 세종문화회관이 개관했고 세계 각계각층의 음악가들이 서울을 찾았다. 당시 뉴욕 필하모니의 지휘자였던 레너드 번스타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때서야 비로소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이 처음으로 연주되었다. 쇼스타코비치는 적성국의 음악이었기에 ‘금지곡’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었고, 이날 연주는 기습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후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1982년 대한민국 음악제를 기점으로 공식적으로 해금되지만, 우리의 기억 속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어딘가 모르게 ‘적성국’의 이미지와 암울했던 ‘국내의 억압적 분위기’가 묻어 있다.

한편으로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흑백 영화의 잔상과 함께 떠오른다. 전투 장면, 피를 흘리는 군중들과 혁명을 외치는 광장과 함께 등장하는 질주하는 듯한 음악 말이다. 잘 알려진 예로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감독의 <전함 포템킨>은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을 배경음악으로 한 버전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쇼스타코비치는 생애 전반에 걸쳐 꾸준히 영화음악작업을 계속했다. 그에게 영화음악 작업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아주 좋은 일거리였고, 정부의 입장에서는 일류 작곡가의 작품을 자신들의 선전ㆍ선동영화의 배경 음악으로 취할 수 있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가 평생 동안 작업한 35편의 영화들은 다양한 루트를 통해 우리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자료화면으로 쓰이는 전투장면들, 언뜻 언뜻 지나치는 흑백화면 속의 음악은 사실 알고 보면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인 경우가 많다.

그렇게 그의 음악이 주는 ‘직접적인 전쟁의 기시감’은 그 음향 자체에서 묻어나오기도 하지만, 영화화된 어떤 이미지 파편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빠른 호흡의 추진력 강한 박자들이 음표 그 자체가 아니라 군인의 발자국으로 들리는 것이다. 그래서 절뚝거리는 선율들, 고음으로 정교하게 쓰인 선율들은 이미 그 자체로 ‘비명’이 되어 들린다.

 

죽은 자를 바라보는 산 자들의 마음

쇼스타코비치의 정치적 지향성에 대해서 다양한 논란이 존재한다. 그의 조국은 쇼스타코비치를 선전 선동의 목적으로 이용했고, 음악원의 지붕을 기키는 충실한 애국주의자로 그려냈다. 반면, 소비에트 체제를 비판하는 무리는 그를 정부에 무언의 비판을 시도하는 인물로 보고 싶어 했다.

그러나 정치적 지향성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뒤로하고 그에게 남겨진 진실은 의외로 명쾌하다. 그에게 있어 음악을 계속 한다는 것, 작곡을 계속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이었으며 그것이 곧 ‘삶’을 뜻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그는 1975년 그의 마지막 작품인 <비올라 소나타>를 작곡하기 까지 묵묵히 그의 이야기를 써내려 간다.

개인의 힘으로는 대적할 수 없는, 감히 대적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거대한 권력 앞에 홀로 곡을 써내려간 작곡가. 그것이 우리가 쇼스타코비치를 바라보는 마음일 것이다. 유진선 작곡가의 작품 <Reformation for Strings - 쇼스타코비치를 기억하며, 화음프로젝트 Op.127>은 이런 쇼스타코비치의 삶에서 영감을 받아서 탄생했다. 곡 안에는 절대권력으로 표상되는 A음과, 권력에 저항하고 이를 변형시키면서 새로운 상태로 나아가려는 끊임없는 의지, 그리고 결국에는 ‘개혁’이라는 글귀에 걸 맞는 창대한 음향들이 등장한다. 음들은 무언의 힘에 맞서 새로운 상태로 나아가며, 이것은 작곡가 쇼스타코비치가 일생동안 행했던 것이기도 하다.

청중들은 유진선 작곡가의 곡을 들으며 무엇을 느꼈을까? 음향의 변화로 감지되는 ‘변화’들은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를 떠올리게 했다. 청중은 유진선 작곡가가 그려내는 어떤 힘의 흐름을 보며 쇼스타코비치를 소환해 내고, 자신과 쇼스타코비치 사이에 놓인 거리를 인식한다. 쇼스타코비치가 놓여있던 저 옛날 소비에트 연방 그 공간 속에는 지금 들리는 음향처럼 끊임없이 곡을 쓰려는 한 작곡가의 의지가 살아 숨 쉬었던 걸까.

 

나가면서 : 연주회에서 무언가를 떠올린 우리에게 묻다.

쇼스타코비치를 통해 우리가 느끼는 것을 무엇일까? 그날 우리가 화음 챔버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함께 경험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확실한 것은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그 음향에 묻어 있는 다양한 사회적ㆍ정치적 장치들을 통해 음악이 현실과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란 것을 경험하게 해주고, 이를 토대로 청자가 사회와 음악과 나 자신과의 연결고리를 반추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형태의 청취가 극대화되어 하나의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한 것이 이날 초연된 유진선 작곡가의 곡이다.

이런 경험은 보통의 음악회에서는 흔치 않다. 상당수의 작곡가들은 자신의 곡이 사회에서 동떨어진 채 그 자체로 고귀한 것으로 들리길 원한다. 때문에 음악회장에 앉아 있는 이들은 음악을 듣는 동안에는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해서 까맣게 잊어버리는 경험을 한다. 현실에서 동떨어져, 음악만을 영접하는 그 경험. 대다수의 연주자와 작곡가, 그리고 청중이 클래식 콘서트홀에서 느끼는 감정이다. 그러나 쇼스타코비치를 듣는 동안은 다르다. 쇼스타코비치는 우리 앞에 기억과 시간을, 그리고 때때로 역사와 나 자신을 떠올리게 한다.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통해 사회를 바라보게 만드는 작업. 이것은 대중 속으로 파고들고 사회와 교감하려 노력해 온 화음(畵音)의 또 다른 시도이다. 음악이 홀로 떨어져 소외되지 않도록, 음악을 들을 때 음정 속에 갇히지 않도록, 음악회가 화석처럼 굳어있지 않도록... 이 시도가 의미 있는 반향을 일으키고, 음악을 통해 사회와 교감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길 바란다. 그것이 화음이 쇼스타코비치를 기억하는 방식이고, 그날 우리 앞에 쇼스타코비치를 소환해 낸 이유다. 우리가 쇼스타코비치의 음향들을 들을 때 무언가 느껴진다면, 그의 속삭임에 집중하자. 그 날카롭고 병적인 바이올린의 고음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화음챔버오케스트라, (2015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