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음 챔버 오케스트라의 “음악 동화 세헤라자데” 리뷰

2015. 8. 26. 06:02

소공연장에서 열리는 음악회의 가치

클래식 음악은 소수의 사람이 향유하는 최고 수준의 음악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클래식 음악의 상당수는 왕이나 귀족을 위해 작곡된 것들이다. 또한 19세기 이후 정립된 미적 무관심성’(The Aesthetic Uninterestedness) 혹은 미적 관조’(ästhetisches Betachten) 개념은 클래식 음악을 진리내지는 열반에 이르는 통로로 격상시켰다. 작곡가를 으로 추앙하거나 위대한 음악을 이해하지 못하는 대중을 우매하다 비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편으로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것은 일종의 사회학적 고급 취향으로도 해석된다. 공연장에 가는 것은 상류층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이며 남들과 나를 구별짓기위한 것이다. 더 나아가 최고의 음악을 찾는다는 명분 아래 극소수의 악단과 지휘자 · 연주자에 집착하는 풍경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편견과 다르게 클래식 음악은 고급계층소수자에 의해 발전된 분야가 아니다. 오히려 클래식 음악은 중간 계층의 폭넓은 지지에 의해 살찌워진 분야다. 클래식 음악이 양적 질적으로 화려하게 꽃피웠던 19세기가 그 예다. 수많은 이들이 악기 연주를 즐기고 일상에서 클래식 음악을 손쉽게 향유하게 되면서부터 악보출판과 연주회 등의 음악 산업이 급성장했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작곡가들과 연주자들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었다. 물론 몇몇 고급 관객들은 그들만 출입할 수 있는 장소에서 베토벤의 심오한현악 4중주를 들었겠지만, 그 외의 관객들은 클레멘티(Muzio Clementi 1752-1832) 등의 작곡가가 작곡한 간결하고 쉬운 음악을 즐겼다. 대중이 사랑했던 클래식 음악들은 어렵지 않은 곡들이었다. 이 음악들은 보통 즉각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가벼운 작품들이었고 선율이 단순했으며 따라 부르거나 기억하기 쉬웠다.

이런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최근 서양음악사 연구자들은 오랜 동안 음악사 서술에서 제외됐던 무명 작곡가들 · 여성작곡가들 · 살롱 음악 작곡가들을 발굴하고, 다양한 소규모 음악회들과 서민들의 음악회를 조명하고 있다. 이런 연구들은 그동안 우리가 지나쳤던 다수 대중의 음악 향유 문화가 음악사의 발전에 얼마나 중요했는지 역설한다. 즉 누구나 떠올리는 소수에 의한 클래식 음악이라는 이미지는 신화에 불과하며, 대신 폭넓은 대중이 함께 즐기고 공유했던 쉽고 즐거운 음악 향유씬(scene)이 클래식 음악사의 중심에 위치했던 셈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동시대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보통 국내 주요 언론이 대서특필하는 공연은 그해 열리는 가장 화려하고 비싼 오케스트라 공연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문예연감은 최근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클래식 공연의 수를 한 해 8천회 넘게 집계하고 있다. 유명한 공연 외에도 얼마나 많은 공연들이 열리는지 보여주는 수치다. 실제로 대부분의 시민이 클래식 음악을 접하는 통로는 예술의 전당이 아니라 각 동네마다 갖춰진 소공연장이다. 평범한 이웃들은 집 근처 공연장에서 아기자기하고 대중적인 공연들을 관람하며, 이런 경험들이 모여 실질적인 클래식 음악 문화를 만든다.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이처럼 지역민과 함께 꾸려지고 청취되는 클래식 음악은 스타 오케스트라의 값비싼 공연과는 사뭇 다른 가치를 갖는다.

이를 테면 현재 인천을 본거지로 하는 인음챔버오케스트라(Ineum Chanber Orchestra)의 활동은 21세기 대한민국 도시민의 클래식 음악 향유에 관한 중요한 사례다. 이 오케스트라는 창단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100회 공연을 훌쩍 넘겼다. 이들은 서울 중심지에 위치한 큰 공연장에 접근하기 어려운 관객을 위해 직접 찾아가는 콘서트를 연다. 이들이 활약하는 무대는 인천을 중심으로 하는 크고 작은 대안적 무대로, 학교 공연장이나 복지회관, 인천 주변의 다양한 섬들, 야외 무대나 소공연장 등이 이들의 공연 장소다. 관객은 어린이에서부터 주부들, 그리고 노인들까지 다양하다. 악단의 리더인 이우찬은 기억에 남는 관객으로 섬 공연을 갔을 때 만났던 얼굴이 까맣게 탄어부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 악단은 관객에게 쉽고 재미있는 음악을 직접적으로전달한다. 이들이 이제껏 해온 음악회 상당수는 테마를 가지고 있으며 해설이 곁들여진다. 2015811일 연주됐던 세헤라자데를 비롯해 역사의 나라 이탈리아로의 여행”, “생상 동물의 사육제”, “비발디의 사계와 피아졸라의 사계”, “왈츠의 밤 비엔나의 밤등이 그 예다. ‘이해하기 힘든클래식 음악이라는 기존의 고정관념과는 정반대다. 또한 이들은 관객들이 음악회에서 느끼는 즐거움의 대부분이 익숙한 음악때문이라는 점을 정확히 알고 있다. 쉽고 재밌는 앵콜을 연주하거나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곡으로 음악회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더 나아가 이들은 즉석 무대 참여이벤트를 통해 관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핸드벨 등의 간단한 악기를 관객에게 즉석으로 가르쳐주고 이것을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들이 지역 음악가로서 지역 중심의 음악활동을 한다는 것도 주목해야한다. 문화 인력의 쏠림 현상이 심하고 수천수만의 음악 인력들이 재능을 낭비하는 시대다. 이런 때에 자신 삶의 본거지를 중심으로 지역에서 활발하게 음악활동을 펼친다는 점은 무척 고무적이다.

2015811일 인천 종합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열린 음악 동화 세헤라자데”(Scheherazade) 공연에서는 림스키코르사코프(Nicolai Rimsky-Korsakov 1844-1908) 원곡의 피아노 6중주 버전이 영상과 함께 연주됐다. 악단 입장에서는 영상 컨텐츠라는 강력한 무기를 연주에 도입한 실험이었다. 이런 시도는 음악동화라는 컨셉을 부각시키고 어린이 관객들에게 노골적으로 어필하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영상은 꽤 커다란 크기의 화면에 재생됐으며 연주회가 주는 딱딱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데 일조했다. 긴 공연에 집중하며 무대를 보던 아이들도, 무대 뒤쪽에서 웅성거리며 어수선했던 아이들도 영상과 음악이 결합된 컨텐츠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영상과 이야기는 음악 감상의 구심점 역할을 했으며 음악 해석에도 많은 도움을 줬다. 예를 들어 빠른 음형이나 감화음(diminish chord), 장조 · 단조 등의 추상적인 음악 개념들은 폭풍우의 휘몰아침이나 어두운 분위기’, ‘즐거운 분위기등으로 손쉽게 독해됐다. 어머니들은 옆에 앉은 아이들에게 소곤소곤 세헤라자데이야기를 해 주곤 했다.

수많은 어린이들의 생애 최초 음악회 관람이 어머니 손에 이끌려 입장한 작은 공연장에서 이뤄진다. 어린이들은 묘한 표정으로 공연을 바라보며 자신만의 생각에 잠긴다. 이들이 느끼는 감정을 해석하는 것은 비평가들에게 새로운 도전을 요한다. 어린이 · 주부 · 노인 · 사회적 소외계층이라는 새로운 청자의 부각. 이런 상황은 이전까지 행해졌던 음악 비평이 얼마나 이성적인 성인 남성 주체의 경험만을 해석해왔는지 깨닫게 해 준다. 우리가 작은 공연을 보고 마음껏 느끼며 공연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나눠야 하는 이유다.

이날 세헤라쟈데를 관람한 어린이 관객도 자신만의 기억을 만들었을 것이다. 이 경험은 이들이 앞으로 30살이 되었을 즈음, 더 나아가서는 80살이 되었을 즈음, 이들이 음악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방식과 감각에 영향을 줄 것이다. 음악문화는 이처럼 소소한 것들이 모여 만들어진다. 인음 챔버 오케스트라의 활동은 과도하게 부풀려진 대가연주에 대한 집착, 그리고 일종의 신화를 형성하고 있는 상류층의 고급 음악이라는 클래식 음악에 대한 고정관념, 그리고 클래식 음악계의 다양한 위계에서 자유롭다. 이들의 지속적인 공연이야말로 지역 관객의 음악 경험을 지탱하는 실질적인 활동이다. 이들의 음악과 함께 인천 음악씬이 일상 속 즐거운 음악생활을 꾸준히 영위하길 바란다.

 

「플랫폼」, 통권 53호, 2015년 9, 10월, (20150830)

사진출처: 인음챔버오케스트라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ineumchamberorchestra/photos/14583011609487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