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음악연구소 토대연구 '한국을 듣다' 세미나 보고서

2015. 6. 5. 07:49

느리지만 꾸준한 발걸음 

 

2015년 4월 25일 오후 2시 서울대학교 종합교육연구동에서 서울대 서양음악연구소 주최 토대연구 세미나가 열렸다. 세미나의 토픽은 ‘한국을 듣다’였다. 다양한 연구원들이 한국에 대한 외국인의 시각과 태도를 ‘음악 관련 자료’를 통해 조사했다. 1부에서는 신혜수, 이장직, 서의석 연구원이, 2부에서는 김호정, 원유선, 또마 바께(Thomas Bacquet), 기야메 브누아(Guillamet Benoit) 연구원이 발표했다. 1부 시작 전에는 한국연구재단 오수학 문화융복합단장의 축사가 있었으며 각 주제에 대한 토론은 1부와 2부 후반에 이뤄졌다.

 

1. 독일이 듣는 한국의 소리

첫 번째로 발표한 신혜수 연구원은 ‘독일이 듣는 한국의 소리’라는 주제로 현재 진행 중인 데이터베이스 작업을 소개했다. 토대연구는 프랑스와 독일어권의 한국과 관련된 음악 자료를 총 10가지 자료유형으로 나눠 정리한다. 이날 발표도 이와 같은 작업의 일부였다. 발표는 독일 ‘언론자료’를 중심으로 독일 내 한국의 이미지가 어떻게 묘사되고 수용되는지에 중점을 두었다.

신혜수에 따르면 독일에서 접할 수 있는 한국 관련 음악 자료는 방대하다. 독일인들은 한국의 클래식, 재즈, 힙합, 국악 등을 음악회, 음반, 라디오, 텔레비전, 인터넷 등을 통해서 접한다. 또한 이들은 기사, 방송, 유학생, 음악단체 활동자 등을 통해 한국에 대한 직 · 간접적인 정보를 얻고 있다.

예로 제시된 ‘독일 음대의 한국인 학생’에 관한 자료는 흥미로웠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는 악기 전공생의 60퍼센트에 해당하는 200명이 한국학생이며, 이런 현상에 대한 다양한 독일 내 시각이 존재한다. 일부에서는 한국 학생들이 독일인의 세금으로 공짜교육을 받는다는 점, 한국 연주자들이 테크닉만 뛰어날 뿐 비음악적이고, 독일어에 능숙하지 않아 다양한 합주 등에서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 졸업 이후 독일에서 활동함으로써 독일 음악가들의 자리를 뺏는다는 점 등 부정적인 의견을 제기한다. 동시에 한국인들이 객관적으로 더 훌륭한 음악가들이며 이들의 실력으로 인해 독일 대학이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이런 방식의 ‘양분된’ 한국 이미지는 한국 자동차에 관한 기사에서도 동일하게 확인할 수 있다.

신혜수에 따르면 독일인들은 한국에 대한 다양한 자료들에 대해 직 · 간접적인 접촉을 통해 ‘한국의 이미지’를 형성한다. 그러나 이들이 갖게 되는 ‘한국의 이미지’는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감정적인 거부반응에서도 기인한다. 여전히 독일인들 다수가 한국과 중국, 일본을 뚜렷하게 구분하지 못한다는 점도 지적된다.

토론 시간에는 이날 제시한 빅데이터를 이용한 자료 수집 활동이 어떻게 체계화 될 수 있는지, 이날 사용한 인터넷 정보들은 어떤 방식으로 채집된 것인지 질문이 있었다. 신혜수는 이에 대해 아직까지 인터넷 자료는 수집 대상이 아니며, 이 자료들에 어떤 필터를 적용해 데이터베이스화 할 수 있을지에 대해 빅데이터 전문 관리자와 그 방안을 강구해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날 신혜수는 여러 번 “토대연구는 자료를 수집하는 것이 주 목적이기 때문에 특정 논지를 갖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언론보도’를 중심으로 한 자료들은 필연적으로 강력한 ‘논조’ 아래 있다. 너무도 방대한 자료들 중 몇몇을 골라내는 작업도 연구자의 주관에서 독립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여러모로 방대한 자료의 체계적 정리의 어려움에 대해 실감하게 된 발표였다.

 

2. 문화외교의 관점에서 본 국내 교향악단의 유럽 순회공연

이장직 연구원은 ‘문화외교의 관점에서 본 국내 교향악단의 유럽 순회공연’에 대해 발표했다. 발표는 2014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중국 투어 영상으로 시작했다. 이장직은 오케스트라 교류가 갖는 특유의 장점과 상징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오케스트라 순회공연은 이동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고 쉽게 성사되기 어렵다. 하지만 오케스트라는 평화나 화합을 상징하며, 국가나 도시를 대표하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또한 단원들 입장에서는 다양한 해외 투어를 통해 새로운 청중과 무대를 만날 수 있으며 앙상블과 팀웍을 다지는 좋은 계기를 만들 수 있다. 실제로 서울시향의 순회 공연 사례들은 이들이 국가적인 행사나 기념일에 평화사절단이나 훌륭한 외교의 역할을 한 경우가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만 최근 이루어진 서울시향의 유럽투어에서는 후원 기업의 홍보도구로 전락한 것 같은 모습도 보여준다.

다양한 해외 순회공연이 국내에서 기사로 다뤄질 때 현지반응이나 제대로 된 평가가 누락된다는 점도 지적됐다. 이를 테면 서울시향의 2010-2014년 유럽 투어 프로그램은 작곡가 진은숙의 ‘생황 협주곡’과 프랑스 작곡가의 레퍼토리로만 점철되어 있다. 또한 이 공연들의 반응 중 비교적 낮은 평가들은 한국 언론에 소개되지 않았다.

이장직의 발표는 최근 논란이 있는 서울시향 사태와 연관지어 생각해 볼 때 흥미롭게 다가왔다. 오케스트라의 해외 순회 공연이 ‘외교적 차원’에서 효과적이라는 주장은 오케스트라가 지극히 ‘정치적인’ 활동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토론 시간에는 ‘국내 오케스트라의 수준’과 그 ‘개선 방안’에 대한 질문이 나왔지만 이장직 연구원은 이에 대해 확답을 피했다.

 

3. 유럽 박물관의 한국 악기

서의석 연구원은 ‘유럽 박물관의 한국 악기’라는 제목으로 한국 악기를 소장한 유럽의 음악 · 악기 박물관을 소개하고 본인이 어떤 방식으로 유럽 박물관의 한국 악기를 검색했는지 발표했다. 서의석이 중점적으로 조사한 박물관은 ‘브뤼셀 악기 박물관’, ‘파리 음악박물관’, ‘라이프찌히 대학 악기 박물관’, ‘베를린 국립 민속 박물관’, ‘국립 게르만문화 박물관’이다.

브뤼셀 악기 박물관은 1877년 설립되었으며 음악 전문 박물관으로는 가장 오래됐다. 왕립예술역사 박물관의 일부이며 유럽의 악기박물관 중 최대 규모다. ‘Carmentis’라는 통합검색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 시스템을 통해 개별 악기의 이름, 만든 사람, 만들어진 장소, 만들어진 날짜, 크기, 보관 장소, 소유인 등이 자세하게 제공된다. 현재 이 박물관은 국악기 25점을 소장하고 있다. 이 악기들의 대부분은 한-벨 수교 110주년을 기념하여 국립국악원에서 기증한 것이다.

파리 음악박물관은 파리 국립음악원이 수집한 악기를 바탕으로 1793년 개관한 박물관이다. 이 음악박물관에는 총 20점의 한국 악기가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곳에 20세기 초 파리 세계박람회에 전시되었던 한국 악기들이 소장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악기들은 민영환의 동생인 ‘민영찬’이 기증한 것이다. 한편 1929년 개관한 라이프찌히 대학 악기박물관에는 총 17점의 국악기가 있다. 파리 음악박물관과 라이프찌히 대학 박물관에서는 자체 검색엔진을 제공하지 않는다.

베를린 국립 민속 박물관은 1873년 프로이센 왕들의 소장품을 토대로 ‘비서구 문화’ 박물관으로 개관한 곳이다. 이곳에서는 ‘Smb-digital’이라는 자체 검색도구를 제공하며 총 40점의 국악기를 소장하고 있다. 한편 국립 게르만문화 박물관은 1852년 설립되었고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의 독일어권 역사, 문화 예술에 관련된 자료를 수집한다. 이곳에는 1점의 국악기가 있다.

서의석은 자료 조사에 유용한 검색 사이트를 소개했다. ‘Musical Instrument Museums Online’의 약자인 MIMO는 유럽 주요 음악박물관들이 공동으로 만든 악기 검색 데이터베이스다. 현재 이 사이트에는 24개 기관 54076개의 악기 관련 정보가 있으며 이 사이트의 목표는 전세계의 악기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 하는 것이다. 이 사이트를 통해 앞서 언급한 모든 박물관의 소장 자료를 확인할 수 있으며, 자체 검색엔진을 제공하지 않았던 박물관의 자료도 파악할 수 있다.

서의석은 유럽의 각 박물관에 한국의 대표 악기들이 비교적 골고루 소장되어 있지만 그 규모가 박물관의 전체 규모에 비해 빈약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브뤼셀 박물관을 제외하면 상시 전시되는 악기는 없으며, 파리 박물관을 제외하면 악기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악기의 근원지 오류 · 표기 실수가 잦고 연구도 전무하다고 말했다.

토론 시간에는 “정보를 구축하는 것 뿐 아니라 해외 박물관의 오류를 수정하는 작업이 진행될 수 있는지?”라는 질문이 나왔다. 서의석은 “틀린 정보를 찾았을 때 그것을 자의적으로 고쳐도 되는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또한 이어진 토론에서는 ‘국립 국악원’ 등 전문 기관의 협조를 통해 다양한 박물관 정보를 제공받고 · 제공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제기됐다.

서의석의 작업은 인터넷 상의 여러 사이트를 직접 방문해 정보를 모은 결과다. 하지만 토론에서도 이야기 된 것처럼, 서의석의 연구는 개인보다는 국가적인 프로젝트나 관련 기관의 연계를 통해 보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보다 다양한 형태로 확장하고 연계하는 토대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 발표였다.

 

4. 국제 콩쿠르의 한국 연주자들 - ‘분더컨트’에서 ‘콩쿠르쇼퍼’까지

김호정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는 현직 기자라는 장점을 살려 ‘국제 콩쿠르의 한국 연주자들 - ‘분더컨트’에서 ‘콩쿠르쇼퍼’까지’라는 제목으로 한국 음악계에 대한 외국의 시선을 ‘콩쿠르’를 중심으로 조망했다. 김호정은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인의 위상 변화’를 첫 화두로 던졌다. 1974년 정명훈이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때 그는 은관문화훈장을 받고 카퍼레이드를 했다. 하지만 2011년 한국인들이 선전했던 쇼팽 콩쿠르 이후에는 이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김호정은 최근 한국 클래식 음악계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흔해진 콩쿠르 수상자’ 현상을 벨기에 영화감독 티에리 로로(Thierry Loreau)의 견해를 바탕으로 접근한다. 로로는 이런 현상에 대해 국제 콩쿠르의 ‘한국인 산사태’라는 표현을 쓴다. 그는 “부모가 모두 해주는 교육열이 놀랍다”고 지적하며 “콩쿠르 우승 후엔 콩쿠르 주최국에 그 어떤 음악적 기여도 하지 않는 행태”에 대해 꼬집는다. 이런 풍토는 실제로 ‘국제 콩쿠르의 한국 경계령’으로까지 비하된다. 김호정은 이미 1999년 2월 2일 경향신문이 ‘콩쿠르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아시아인 참가 금지’라는 기사를 다뤘다는 점을 지적한다.

김호정은 ‘독일 음악대학의 한국인’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내용 중 일부는 앞서 발표한 신혜수 연구원의 발표와 일부 겹쳤다. 또한 김호정은 현재 한국의 이미지가 ‘혐한’(嫌韓)으로 진행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우려를 표했다. 그리고 외국에서의 한국인 이미지 재고를 위해 “콩쿠르 수상에만 집착하지 말 것” 그리고 무조건 외국에 나와 음악활동을 하기 보다는 “한국의 음악계 현실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5. 1980-90년대 음악잡지 <객석〉에 나타난 한국 음악가들의 해외 진출상

원유선 연구원은 ‘1980-90년대 음악잡지 <객석〉에 나타난 한국 음악가들의 해외 진출상’이라는 제목으로 한국 클래식 음악가들의 해외활동에 대해 연구했다. 한국의 1980-90년대는 서울올림픽 이후 문호개방과 경제호황으로 클래식 음악의 황금기였다.

원유선의 조사대상은 음악잡지 〈객석>의 1984-2015년 권호들이다. 원유선은 주로 프랑스와 독일어권으로 중심으로 하는 한국 음악가들의 해외 활동 모습을 ‘인물’ 중심으로 정리했다. 원유선이 파악한 1980-90년대 한국 클래식 음악가들의 해외 활동은 ‘정명훈의 프랑스활동’, ‘연주자들의 본격적인 콩쿠르 입상’, ‘음악 영재들의 등장’, ‘독일 · 프랑스의 유명악단 입단’ 등으로 구분된다.

정명훈이 잡지 <객석>의 표지모델을 12번이나 장식했으며 <객석>은 정명훈의 해외 상황을 누구보다 발 빠르게 전했다는 점, 부조니 국제 콩쿠르와 뮌헨 콩쿠르에서 수상한 ‘서혜경’과 리즈 콩쿠르에서 최연소 참가자로 2위에 입상한 서주희가 주목 받았던 점,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한국의 꼬마 모차르트’라고 불렸던 박제희, 그리고 장영주, 장한나의 등장, 1995년 베를린필에 입단한 홍나리 등이 <객석>에서 비중 있게 다룬 주제들이다.

원유선은 <객석> 조사가 ‘경제적’이며 한국 클래식의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고 유명 음악가들의 주요 활동이 잘 정리되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객석> 조사의 단점도 존재한다. 잡지 특유의 한정된 보도와 편향된 논조가 그것이다. 이에 대해 원유선은 다른 연구원들과의 연계&검증 과정을 통해 정보에 다각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객석>이라는 잡지를 연구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원유선의 연구는 흥미로웠다. 특히 이 잡지가 ‘정명훈’을 많이 다루고 있다는 점은 현재 한국 음악계의 ‘과열된 정명훈 논쟁’과 병치되어 보였다. 한국 클래식 음악 팬의 아이덴티티를 ‘정명훈’이라는 아이콘을 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새삼 <객석> 연구가 단순히 ‘문헌 조사’ 차원이 아닌, 한국 클래식 음악계의 ‘대중 감수성’과 ‘집단적 경향’을 살펴 볼 수 있는 통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6. 프랑스 청중에게 미친 K팝의 영향과 한국 문화의 인식

경희대의 기야메 브누아(Guillamet Benoit) 연구원은 ‘프랑스 청중에게 미친 K팝의 영향과 한국 문화의 인식’에 대해 발표했다. 브누아는 2011년 6월 파리 ‘Sm Town World Tour 공연’의 파급력과 강남스타일 효과를 언급하며 프랑스 내 한국 대중음악의 영향력에 대해 조망했다. 브누아가 연구 대상으로 삼은 것은 다양한 프랑스 뉴스와 음악 전문 뉴스들, 그리고 K팝 중심 미디어 등이다.

언급한 매체들은 한국의 밴드, 드라마, 가수, 연예인 정보, 공연일정, 인터뷰, 패션관련 정보, 음악, 영상을 제공한다. K팝에 자주 등장하는 한국 단어를 모아놓은 ‘어휘부’라는 자료도 있으며, 포럼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공유하고 인터넷 쇼핑이나 투어 관련 정보를 얻기도 한다.

최근 프랑스 언론에서 비중 있게 보도한 한국 대중음악 관련 이슈는 나치 문양을 패션처럼 달고 나왔던 여성 아이돌 그룹 ‘Pritz’, 군대의 훈련과 유사하다고 알려진 가혹한 ‘K팝스타’의 합숙 훈련, 한국 드라마와 방송에서 다뤄진 동성애, 조현아로 대표되는 한국 특유의 권위주의 문화 등이다. 하지만 브누아는 이런 보도들 대부분이 자문화 중심주의 관점을 드러내며 고정관념을 재생산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이런 방송들의 단골 주제인 ‘한국의 경쟁적 교육문화’ 보도는 ‘한국의 학교는 지옥이다’와 같은 타이틀을 사용하거나 ‘한국인 학생이 제일 불쌍하다’는 문구를 반복적으로 내보인다. ‘성형수술 문화’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는 미에 대한 숭배가 존재하며 한국에서는 취업 경쟁과 자신감을 위해 성형수술이 불가피하다는 보도들이 재생산된다.

브누아는 분명히 K팝이 외국의 K팝 팬들에게 한국문화의 긍정적인 모습을 알리고 한국문화에 대해 호기심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K팝을 통해서만 접한 한국문화는 한국의 ‘패션과 외모’에만 집중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즉 K팝만을 통해 구축된 한국 이미지는 ‘피상적인 것을 중요시 하는 것’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토론 시간에는 “자국인이 외국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기사를 쓰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이 나왔다. 이 질문은 프랑스 언론이 한국을 다룰 때 뿐 아니라 한국 언론이 프랑스를 다룰 때도 마찬가지다. 브누아는 이에 대해 ‘외국에 대한 기사를 쓰는 것은 필연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이런 ‘나라 간 연구’는 고도로 훈련받은 문화연구자 · 인류학자들의 영역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연구도 이런 문화 간 오역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했다.

 

7. ‘토끼와 거북이 - 프랑스의 K팝과 나윤선’

마지막으로 또마 바께(Thomas Bacquet) 연구원은 ‘토끼와 거북이 - 프랑스의 K팝과 나윤선’이라는 제목으로 프랑스에서의 한국 대중문화 수용양상에 대해 논했다. 또마 바께는 프랑스 내에서 한국 대중음악의 획일화된 측면만이 부각되고 있으며 음악 산업 구조를 벗어난 음악들은 수출과 전파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현상은 한국 문화의 지속적 흥행을 저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으며 한국적 ‘문화제국주의’에 대한 논란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마 바께는 획일적인 스타일의 대중문화 보다는 ‘나윤선’ 혹은 ‘잠비나이’와 같은 독특하고 개성있는 사례를 통해 외국 음악계에 어필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보통 한류의 인기는 ‘싸이’ 등의 대형가수의 성공이 아이돌을 중심으로 하는 K팝 가수의 지속적인 성공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또마 바께는 이런 방식의 전파는 일시적이며 오래 가지 못한다고 전망한다.

물론 한국의 K팝은 프랑스 언론에 가장 많이 소개된 한국의 음악 장르다. 그리고 K팝에 대한 현지 언론의 태도는 전반적으로 긍정적이다. 하지만 또마 바께는 아이돌 가수나 싸이로 대변되는 ‘획일화된’ 음악의 순간적이고 강력한 파급력에 의지하기 보다는, 길고 오래 이어지는 진정한 ‘팬만들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것을 ‘토끼와 거북이’ 우화에 비교할 수 있다. 싸이 혹은 K팝으로 대변되는 음악들은 거대한 그리고 강력한 상업적 시스템을 통해 빠르게 전파되는 ‘토끼’ 같은 존재다. 한편 나윤선을 대표로 하는 다른 한 축은 보다 장기적 안목의 공연과 개성을 내세운 느리지만 꾸준히 어필하는 ‘거북이’다. 또마 바께는 이런 패러다임을 바탕으로 국가 위주의 해외 공연 지원이나 정책도 독립 뮤지션이나 개성 있는 팀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토론시간에는 “현재 한국어 교실의 최대 고객이 K팝 팬인데 프랑스에서 한류와 한국어 교육의 연관성이 어떤지”라는 질문이 나왔다. 사실 한국에서는 한류를 유지시켜 ‘한국 팬’을 지속시켜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이에 대해 또마 바께는 한국어 학습과 K팝은 분명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말하며, 한국 대중음악의 인기가 갑자기 늘어난 즈음 대학의 ‘한국과’에 들어가려는 학생이 10배가량 폭등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수치는 앞으로 어찌 될지 불투명하다. 또마 바께는 다시 한 번 한국어를 비롯한 한국 문화가 꾸준히 인기를 얻으려면 ‘거북이’ 같은 긴 호흡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마 바께의 연구는 다양한 문화 정책 입안자들이 경청해보았으면 하는 내용이었다. 보통 해외 음악산업에 투자하는 이들은 ‘효율’을 위해 하나의 성공사례를 모방한다.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성공한 후 비슷한 스타일의 노래로 후속곡을 만든 것이 그 예다. 하지만 또마 바께의 연구와 자료들은 ‘눈에 보이는 수치’를 통해 이런 즉각적인 성공들이 길게 유지되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특히 또마 바께가 싸이, K팝, 그리고 나윤선의 ‘매체점유율’을 비교 추적한 그래프가 인상적이었다. 싸이의 인기가 급등할 때 K팝의 인기도 상승하지만, 싸이의 인기가 급격하게 수그러들 때 K팝의 인기도 같이 내려갔다. 반면 나윤선의 인기는 처음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오르고 있으며, 현재는 K팝, 싸이 보다 매체점유율이 더 높다.

7명 연구자들의 발표는 대략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우선 자료를 가능하면 ‘날 것’ 상태로 남겨 놓고 그것에 해석을 가하지 않으려는 입장이다. 신혜수, 이장직, 서의석, 원유선의 발표는 최대한 자신의 의견을 배제하려 애쓰고 있었으며 더 많은 후속연구를 위해 자료 자체의 구축에 더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반면 또마 바께, 브누아, 김호정 연구원의 발표는 몇몇 데이터를 중심으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두 가지 방식 모두 한국의 문화적 이미지 형성에 기여한 음악 관련 자료 발굴 및 DB 구축을 위한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은연 중 신혜수, 이장직, 서의석, 원유선, 김호정 등 한국 국적의 자국인 관점과 또마 바께, 브누아 등 외국인의 관점이 구분된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외국인’이기에 한국인이 무의식중에 갖고 있는 관습적인 접근방법을 사용하지 않은 채 좀 더 유연한 관점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느낌이었다. 특히 또마 바께의 ‘토끼와 거북이’ 비유가 신선했다.

‘토대연구’ 작업도 ‘토끼와 거북이’ 비유를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즉각적인 결실보다 지속적인 세미나와 자료 수집을 통해 연구자에게 도움이 되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것. 토대연구가 ‘느리지만 꾸준한 발걸음’으로 계속되길 바란다. (글 이민희Minhee Lee) 

2015년 4월 25일 서양음악연구소 토대연구 세미나 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