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대수 40주년 기념 음반 “Rebirth” 리뷰

2015. 5. 26. 06:36

과거와 현재

 

헌정 음반을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리메이크 음반은 원곡의 오리지널리티와 신곡의 새로움이 경합하는 치열한 전투현장이다. 한대수 40주년 기념음반 “Rebirth”도 마찬가지다. 음반에 수록된 13개의 곡은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는 40년이라는 시간 축 위 각기 다른 점에 머문다. 한쪽엔 과거라 부를 수 있는 한대수의 원곡이 있다. 반대편엔 현재로 대변되는 온갖 새로운 해석들이 있다. 어떤 트랙들은 그 음악을 들음으로 인해 과거의 한대수를 더욱 더 갈망하게 만든다. 또 어떤 트랙들은 과거의 한대수 보다는 새로운 해석을 만들어낸 현재의 뮤지션에 주목하게 한다. 그러는 가운데 음반에 있는 2곡의 신곡은 한대수의 2015년 현재를 보여준다.

 

과거로 인도하는 것들

이현도는 한대수의 <물 좀 주소>에 랩을 섞고 보컬 이펙터를 가미했다. 음악은 인위적인 느낌과 가벼운 분위기가 비치는 독특한 곡이 됐다. 음과 음 사이의 미끄러지는 부분들이 전자 음향으로 구현됐으며 사이버틱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드럼머신이 활용됐다. 윤도현이 해석한 <행복의 나라로>에는 신스팝적인 음향이 추가됐고 모던한 드럼 비트는 이 곡을 원곡과는 완전히 다른 시공간에 구현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리메이크 버전 속에 삽입된 한대수의 목소리다. 한대수의 목소리는 이현도의 테크노 음향이나 윤도현의 매끈한 목소리 가운데 불쑥 튀어나와 있다.

마지막 트랙 <하루아침>도 새로운 편곡을 통해 원곡과 완전히 다른 느낌을 만든다. 본래 이 작품의 가사는 독백이다. 젊은이는 할 일도 없고 갈 데도 없어서, 집 뒤에 있는 언덕을 아, 올라가면서, 소리를 한번 지르고 노래를 한번 부르니, 옆에 있는 나무가 사라지더라.”고 이야기한다. 과거의 원곡에서는 통기타 스트로크와 클라베의 동동 거리는 소리가 단출히 음향을 구성한다. 그러나 새로운 음악은 다르다. 이 음악은 음반의 맨 마지막 트랙에 할당됐고 모든 뮤지션들은 이 음악을 한 소절씩 나누어 부르고 합창으로 마무리한다. 과거의 고독한 젊은이는 사라지고 쓸쓸함과 너털웃음은 자취를 감췄다. 젊은이는 40년의 세월을 거쳐 사회적으로 안정된 다수 구성원이 됐고, “소주나 한잔 마시고, 소주나 두잔 마시고가 담았던 정서는 꽉 찬 음향과 화려한 세션에 둘러싸여 여유롭고 풍족한 완전히 다른 무언가를 표상한다. 이를테면 기성세대같은 것 말이다.

이런 방식의 리메이크들은 우리가 한대수의 원곡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 원곡을 이루는 핵심적인 요소가 과연 무엇이었는지 고민하게 만든다. 원곡의 선율과 화성만을 유지한 리메이크는 낯설다. 어쩌면 한대수 음악의 매력은 단순히 선율의 모양이나 화성그 자체가 아닐지 모른다. 단순한 음정을 가지고 너른 음 공간을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목소리, -앵 하고 쥐어짜다가도 금세 소탈하게 내뱉는 음성들, 아기자기한 가사 가운데 슬픔이 있고 그 가운데 웃음을 띤 해학이 있었다. 이런 것들이 소멸된 리메이크는 원곡으로부터 아득한 거리감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거리감은 그리움을 자아낸다. 그래서 “Rebirth” 음반 속 <물 좀 주소>, <행복의 나라로>, <하루아침>을 들은 청자는 70년대의 한대수를 한 없이 그리워하게 된다. 이 리메이크 음악 속에서 벌어진 과거와 현재의 전투 속에서, 승자는 과거다.

 

새로운 영역들

신구의 국지전은 이어진다. 음반 곳곳에 새로움이 세를 넓힌다. 강산에, 전인권, 조영남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한대수의 원곡과 뚜렷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강산에의 <옥의 슬픔>은 한대수의 곡에 비해 훨씬 더 단호한 어조로 슬픔을 노래한다. 이 버전에는 원곡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관악기 음향이 빠져있다. 이런 구성 때문에 강산에가 노래하는 슬픔의 질이나 뉘앙스가 달라진다. 반주로 나오는 피아노의 속도감도 새롭다.

호란이 리메이크한 <그대>는 한대수 8집에 수록됐던 곡이다. 한대수의 <그대>는 규칙적으로 흐르는 음향 위에 비뚤비뚤하게 툭툭 던져지는 목소리가 인상적이다. 박과 박, 음정과 음정의 사이 공간에 일탈한 소리들이 흩어져 있다. 호란의 목소리도 유사한 인상을 준다. 호란의 목소리는 정직하게 흐르는 리듬을 슬며시 무너뜨리며 미끄러지듯 등장한다. 이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문득 한대수의 원곡 후반부에 등장하는 여성 코러스가 떠오른다. 꽤 다른 보컬 스타일이며 편곡인데도 40년의 차이를 뛰어넘어 두 음악이 연결된다.

한대수의 버전에서 잘 부각되지 않았던 선율들이 새롭게 작업된 호란의 버전 안에서 클라이맥스가 되기도 한다. 한대수가 머나먼이라는 가사를 가성으로 처리하며 가볍게 넘겼다면, 호란은 이 부분을 더욱 힘있고 매끄럽게 쭉 밀어붙였다. 이 곡이 꽤 넓은 음역을 가지고 있다는 점, 앞부분과 뒷부분의 선율이 뚜렷하게 대조된다는 점도 호란의 목소리를 통해 알게 된다. 원곡보다 느린 템포는 호란 특유의 분위기를 강화한다. 한대수라는 과거 보다 호란이라는 현재가 더 부각되는 순간이다.

이상은이 리메이크한 8번 트랙 <One Day 나 혼자>는 원곡의 기타 반주를 살리며 음향을 두텁게 쌓아 묵직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상은의 목소리는 맴도는 듯 한 움직임의 초반부 선율들 그리고 뒤이어 나오는 토속적인 느낌의 선율들에게 색과 깊이를 더한다. 이상은이 영어로 된 가사를 부를 때는 독특한 이방인적 정서가 느껴지기도 한다. 새로운 감정들은 모두 이상은의 영역에서 흘러나온다.

몽니는 <멍든 마음 손에 들고>를 리메이크 했다. 이 곡은 한대수가 2000년 발매한 음반 “Eternal Sorrow”에 수록됐으며 훵키한 스타일이다. 특이한 것은 한대수의 목소리가 이 원곡 안에서 리듬적으로 독특한 그루브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한대수의 목소리는 다른 파트와 미묘한 불일치 혹은 덜그럭거림을 형성했다. 몽니는 리메이크를 통해 이 원곡의 덜그럭거리는 느낌을 없앤다. 그리고 모든 파트가 오롯이 한몸이 되어 만드는 속도감을 음악에 부여했다. 몽니의 해석은 확실히 한대수의 것보다 더 훵키하다. 글래머솔(Glamour. Sol)10번 트랙 <Widow`s Theme 과부타령>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덜그럭거림이 한대수의 매력이었던 것인지, 아니면 한대수가 훵키한 세계에서 홀로 괴리되었던 것인지는 더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이 덜그럭거림을 없앤 것은 몽니와 글래머솔의 성취일까? 아니면 이토록 매끄러운 봉합은 오독일까?

 

한대수의 과거와 현재

음반의 12번 트랙 <My Love>13번 트랙 <I Surrender>은 한대수의 2015년 신곡이다. 이 두곡이 추가됨으로써 한대수 40주년 기념 음반은 평범한 헌정음반이나 리메이크 음반에서 벗어나 작가의 40년간의 계속되는 창작을 증명하게 됐다. 흥미로운 점은 이 한대수의 신곡에서 포착되는 과거와 현재라는 테마다.

한대수는 12번 트랙 <My Love>가 자신이 어린 시절 만든 곡이라고 소개했다. 스무 살 무렵 자신의 청바지를 빨아주던 아가씨를 생각하며 만들었다고 한다. 한대수의 설명만 들으면 이 곡은 까마득한 과거에 만든 옛 노래다. 그러나 곡을 들어보면 생각이 바뀐다. 이 곡은 1970년 무렵의 한대수가 아닌 2015년 한대수의 노래다. “내 사랑은 꿈 같이 내 옷 빨아 주지요하는 가사는 스무 살 남자애가 여자애에게 품는 고마움이 아닌, 칠십이 다 된 노인이 40년 전 나를 좋아해줬던 어린 여자아이를 떠올리는 읊조림이다. 사람의 목소리란 그렇게 정직하다. 나이가 든 한대수의 성대는 과거에 비해 한층 더 떨린다. 평생을 사랑 받았던 포크 스타일로 칠십이 다 되어 녹음한 곡. 노인은 이미 상실한 과거를 가사로 담았다. 이 음악을 스무 살 한대수의 것으로 지칭할 때, 한대수 내면의 과거현재에 관한 고민이 은연중에 배어 나온다.

그러나 11번 트랙 <I Surrender>는 다르다. 결국 이 한 곡이 이 긴 이야기의 결론이라 말하고 싶다. <I Surrender>2015년의 한대수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현재를 노래하는 곡이다. 음악은 연신 나는 졌어!”를 외친다. “패배했어~ 항복했어~ 못살겠어~ 빚더미에~ 지겨워라~” 하고 삐죽거린다. “나는졌어~ 정말정말~” 하며 4음절씩 내뱉는다. “빚만지고~ 한강가네~” 같은 냉소, 그 허심탄회함이 영락없이 한대수다. 음악이 훵키니 포크니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 곡은 늘 위대한 과거와 싸우며 현재를 구축해야하는 한대수가, 여전히 자신만의 무기를 가지고 있음을 증명한다. 동시대를 노래한다는 것. 어느 한 젊은이가 70년대 유신독재에 맞서 싸웠다면, 이 노인은 2015년 이 기이한 사회에 대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한대수가 동시대 이야기를 시작할 때, 한대수는 더 이상 과거의 영광이 필요 없는 현재의 승자가 된다.

 

웹진 [문화 다], 통권 32호, 2015년 5월 (2015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