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카루스, 현대음악의 오해에 도전하다

 

2015년 3월 14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 화음 챔버오케스트의 “이카루스 - 청소년을 위한 현대음악 입문”은 우리의 편견과 달리 재미있고 즐길 수 있는 현대음악이 존재함을 알린다. 어려운 현대 음악을 애써 ‘해독’하는 대신 ‘복잡하지 않고 듣기 좋은 울림으로’ 작곡된 현대 음악을 들려주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국내에서 통용되고 있는 ‘현대음악’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확장하고 이 단어 한 구석에 ‘듣기 좋은 현대음악’이라는 카테고리를 추가하는 것이 이번 공연의 목표다. 

음악회는 2부로 나눠 진행됐다. 1부에는 미니멀리즘 성향의 작품 6곡이 연주됐고 2부에는 임지선 작곡가의 <화음 프로젝트 Op.144 이카루스>가 단독으로 연주됐다. 임지선의 작품 제목이자 이날 공연의 타이틀인 ‘이카루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오만한 젊은이다. 보통 이 이야기는 젊은이의 한계에 관한 신화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날 공연의 이카루스는 계속된 ‘도전 정신’의 상징으로 느껴졌다. 음악회 내내 현대음악의 카테고리를 확장하고 관객과 소통하려는 화음(畵音)의 시도가 감지됐기 때문이다.

 

1부 : 새로운 현대음악,  새로운 해석

1부에는 찰스 아이브스(Charles Ives, 1874-1954), 벨라 바르톡(Béla Bartók, 1881-1945), 존 케이지(John Cage, 1912-1992), 스티브 라이히(Steve Reich, b.1936), 아르보 페르트(Arvo Pärt, 1935), 필립 글래스(Philip Glass, b.1937)의 음악이 차례로 연주됐다. 이들은 난해한 현대음악에서 벗어나고자 대안을 모색하고 독특한 미학을 발전시킨 동시대 작곡가들이다. 화음 챔버 오케스트라는 이와 같은 새로운 현대음악 레퍼토리를 관객에게 소개 하는데 그치지 않고 독창적인 해석을 더해 연주했다. 

첫 곡 아이브스의 <대답없는 질문>(The Unanswered Question, 1908)이 독특한 무대 배치와 함께 공연의 막을 열었다. 무대 전면엔 현악기가, 오른쪽에는 트럼펫 주자가 그리고 무대 왼쪽에는 목관악기 주자가 배치됐다. 홀의 조명은 암전됐다. 무대 배치는 ‘현악기’, ‘금관악기’, ‘목관악기’라는 3개의 음향층으로 구성된 곡의 짜임새를 드러냈다. 이에 더해진 조명의 암전은 각각의 악기군이 ‘대화’를 주고받는 것 같은 연극적 구도를 강조했다. 그래서인지 제목 ‘대답없는 질문’을 좀 더 철학적으로 숙고할 수 있었다. 다만 악기 간 음향 분리가 너무 강조돼서인지 곡이 진행되며 서서히 쌓여가는 긴장감이나 전체 러닝타임에 걸친 크레센도 효과 등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지지 않았다. 이런 현상은 현악기의 음량이 너무 작아 전체 음향을 포용하지 못한 데서도 일부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이어서 연주된 곡은 바르톡의 <현악 4중주 4번>(String Quartet No. 4, 1928) 4악장 “알레그로 피치카토”(Allegretto pizzicato)였다. 연주자들은 선율과 반주, 커지는 부분과 작아지는 부분, 새로운 단락의 도입과 선율의 등장을 강조해 연주했다. 여러 악장 중 ‘피치카토 기법’으로 된 악장만을 발췌해 연주한 것이기에 자칫 밋밋한 단일 음향으로 느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연주자의 적극적인 표현으로 피치카토 음향 안 음악 구조가 다채롭게 다가왔다. 

케이지의 <4분 33>(1952)는 이날 공연의 백미였다. 물론 50년대의 뉴욕 같은 소동은 없었다. 하지만 객석을 메운 청소년들은 교과서에서 읽은 <4분 33초>를 직접 경험했다. 이들 중 일부는 ‘음악이란 대체 뭘까?’라고 생각했을 터였다. 주변의 바스락거리는 소리나 기침소리를 유심히 살핀 이도 존재했다. 케이지의 작곡 의도가 이런 것 아니었을까? 연주자들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으며 진지하게 3악장으로 구성된 악보를 넘겼다. 지휘봉이 미세하게 떨리는 모습, 연주자들의 긴장된 시선을 관찰할 수 있었던 독특한 시간이었다. 

라이히의 <박수음악>(Clapping music, 1972)은 연주자의 해석이 빛났던 작품이다. 이 곡은 맨 처음에 등장하는 단 한 개의 리듬패턴이 톱니가 하나씩 밀려 맞물리듯 자동으로 새로운 패턴을 형성하는 곡이다. 당연히 이 곡에는 선율이나 셈여림, 클라이맥스 등 일반적인 음악 요소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연주자들은 <박수음악>의 중후반 지점에 클라이맥스를 설정했다. ‘진행감의 부재’로 상징되는 미니멀리즘 음악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 것이다. 두 명의 연주자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 무대 좌우에서 걸어 나오며 연주를 시작했다. 무대를 걸으며 연주하는 박수 소리는 ‘스테레오 효과’로 느껴졌다. 곧 무대 중심으로 걸어 나온 연주자들은 셈여림의 최소점을 향해 박수를 지속적으로 작게 치기 시작했다. 한 단락 한 단락이 진행될 때는 서로 마주 보고 눈을 맞추며 리듬적 악센트를 줬으며 ‘작은 소리’와 ‘큰소리’의 차이를 몸짓과 함께 표현했다. 최소점을 지난 연주자들은 다시 곡의 마지막을 향해 음량을 점점 키웠다. 간혹 공연장의 울림이 너무 큰 나머지 리듬 패턴과 그 조합들이 명확하게 인지되지 않았던 지점도 있었다. 문득 이 작품이 처음으로 연주되었던 70년대의 갤러리들, 전통적 공연장과 달리 건조한 울림을 갖는 공간이 연상됐다. 이는 역설적으로 여러 장소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향유되는 ‘살아 있는’ 현대 음악의 형태에 대해 고민하게 했다. 

이어서 연주된 페르트의 <벤저민 브리튼을 추모하는 성가>(Cantus in Memory of Benjamin Britten, 1977)는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와 긴 선율의 끝없는 하강 그리고 반복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곡이다. 연주자들은 이날 <벤저민 브리튼을 추모하는 성가>의 첫 부분을 그 어느 연주보다도 투명한 짜임새로 구현했다. 뒷부분에서는 하나의 선율 위에 더 느린 선율 그리고 더 느린 선율이 여러 번 겹쳐졌으며,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는 모든 성부의 선율들이 아래로 내려오기를 멈추고 비브라토를 계속했다. 긴 시간동안 연주된 음 폭이 큰 비브라토는 소리를 넘어선 일종의 ‘행위’로 느껴졌다. 그 순간만큼은 음악회장 전체가 일상과 분리된 애도의 공간이었다. 

1부 마지막 곡이었던 글래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 미국의 사계>(Violin Concerto No. 2, The American Four Seasons, 2009) 4악장은 이날 연주된 곡 중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글래스는 그의 앨범 《글래스웍스》(Glassworks, 1982)에서부터 노골적으로 ‘보다 넓은 청중들에게 다가 가고자’하는 목표를 분명히 한 작곡가다. 그런 의도 덕분인지 글래스의 작품은 무척 매혹적이다. 이 작품에도 글래스 특유의 지속적인 박동, 저음이 고정된 채 반복되는 아르페지오 그리고 독특한 신디의 음향이 있었다. 

이날 연주의 특징은 글래스 특유의 강렬함이 유독 독주 바이올리니스트의 압도적인 비르투오소시티를 통해 표현됐다는 점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이보연은 음악이 시작되자마자 1~3악장에 이르는 긴 음악적 여정을 뛰어넘어 이 대곡의 마지막 악장에 몰입했다. 연주자가 해석한 글래스 음악은 팝아트의 인공적 색채, 번쩍거리는 네온사인 같은 미국 특유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낭만주의의 표현적 스타일까지 더한 것이었다. 바이올리니스트의 화려한 테크닉 안에 글래스 특유의 기이하고도 초월적인 느낌, 마치 마약에 취한 듯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2부 : 임지선의 <화음 프로젝트 Op.144 이카루스>

2부에서는 임지선 작곡가의 <화음 프로젝트 Op.144 이카루스>가 단독으로 연주됐다. 이 곡은 화음 챔버오케스트라와 임지선 작곡가가 ‘오작교 프로젝트’를 통해 작업한 곡이다. 오작교 프로젝트는 국내 창작음악 진흥을 위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기획한 오케스트라와 작곡가 간의 교류 활성화 지원 사업이다. 이 사업의 목표는 2년의 기간 동안 오케스트라와 작곡가의 연계활동을 지원하고 이를 통해 안정적인 창작곡 발굴 발표-향유-관리의 선순환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날 임지선 작곡가의 <화음 프로젝트 Op.144 이카루스> 공연은 화음 챔버 오케스트라가 지난 2002년부터 해오던 창작곡 위촉초연 기획인 ‘화음 프로젝트’의 144번째 작품 발표회이기도 했다. 즉 이날 공연은 화음이 꾸준히 행했던 다년간의 창작음악 위촉초연 프로젝트가 ‘오작교 프로젝트’라는 대외적 명칭과 함께 선보이는 자리였다. 

<화음 프로젝트 Op.144 이카루스>는 표제를 가진 단악장의 오케스트라 곡이다. 표제에 걸맞게 이 작품은 이카루스 신화에서 대표적인 몇몇 장면을 바탕으로 한다. 작곡가는 ‘이카루스의 탄생’, ‘이카루스가 아버지와 함께 미궁에 빠짐’, ‘새들이 날아와 밀랍으로 깃털을 엮어 날개를 만듦’, ‘미궁에서 탈출해 날개를 달고 태양을 향해 날아감’, ‘태양에 가까이 간 나머지 밀랍이 녹아 이카루스가 에게 해에 빠짐’, ‘평안한 에개해’ 등 특정 장면을 토대로 곡을 작곡했다. 

작품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아마도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그려낸다는 측면이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듯 했다. 작곡가는 신화의 각 장면들을 서로 다른 화성과 기법을 갖는 단락으로 뚜렷하게 구분했다. 또한 ‘상승’이나 ‘하강’ 같은 기하학적 움직임을 음향으로 인지하기 손쉽도록 음악을 구성했다. 

이를테면 이카루스가 태양을 향해 날아가는 장면은 3화음의 병행ㆍ반복적인 음형ㆍ강력한 동적인 제스쳐ㆍ표면으로 노출되는 펄스 등을 이용해 작곡됐다. 이 부분에서는 상승이라는 ‘움직임’ 그 자체가 음악으로 집중적으로 표현됐다. 이외에도 다양한 장면들에는 각 단락의 특정 ‘지점’(goal)을 향해 뚜렷한 방향감을 갖고 움직이는 음향이 돋보였다. 반복되는 음형, 규칙적 펄스를 지닌 리듬, 옥타브나 5도 병행을 중심으로 하는 선율과 반음스케일도 도드라졌다. 한편 몇몇 장면에서는 정적인 움직임을 만들었다. 예를 들어 이카루스가 에게해에 빠진 부분은 3화음의 순차적이고 반음계적인 성부이동이 선율적 시퀀스를 이루며 반복됐다. 이런 ‘정적인’ 장면들은 앞에 위치한 ‘동적인’ 장면과 대조를 이루며 곡 전체를 서사적으로 해석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임지선 작곡가가 ‘이야기’를 토대로 곡을 작곡하는 점은 대중과 소통을 시도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현대음악 작곡가들이 신중을 기해 사용하는 3화음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점과 아름답고 균형 잡힌 선율을 적제적소에 배치하는 점도 눈에 띄었다. 이런 면들은 연주자들에게도 연주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요인일 것이다. 실제 임지선 작곡가는 “연주자들의 역량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곡”을 쓰는 작곡가 그리고 “연주자들이 좋아하는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임지선 작곡가는 2002년 서호미술관에서 <화음프로젝트 Op.2, 피아노 · 클라리넷 · 비올라 · 첼로를 위한 기형>을 화음 챔버 오케스트라와 함께 위촉초연 했으며 이후 14년간 화음과 꾸준한 인연을 이어 온 작곡가다. 특히 임지선 작곡가는 이날 초연된 <화음 프로젝트 Op.144 이카루스>까지, 화음 챔버오케스트라와 함께 총 21곡의 창작곡 위촉초연을 달성하게 됐다. “작곡가, 연주자, 청중이 함께 호흡하며 소통하는 현대음악”을 바라며 “작곡가와 청중 사이의 가교(架橋)”를 희망하는 임지선 작곡가가 화음과의 다년간의 작업을 통해 많은 영감과 피드백을 받았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특히 이날 연주된 <화음 프로젝트 Op.144 이카루스>는 1부에 연주된 6곡 보다 더 많은 박수 갈채를 받으며 성공적으로 초연됐다. 국내에서 현대음악 초연이 이토록 열광적인 반응으로 관객을 만난 적은 없었다. 화음의 지속적인 프로젝트와 작곡가 임지선의 음악적 이상향이 관객의 고무된 반응으로 그 의미를 형성하는 순간이었다.  

 

음악회를 나서며

음악회의 이름이 ‘이카루스’이기에 이카루스의 추락에 대해서도 언급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날 공연의 주 관객은 청소년이었다. 공연의 홍보도 “현대음악을 잘 이해하고 들을 때 비로소 역지사지와 지피지기의 마음으로 ‘현목달’(현대음악목표달성) 할 수 있다! 우리 함께 ‘현특’(현대음악 특강)에 참여하자!”는 문구와 함께 했다. 공연은 말할 나위 없이 성공적이었다. 훌륭한 홍보와 확실한 컨셉 덕분인지 LG아트센터 대강당은 현대음악 공연으로는 유례없이 3층까지 가득 찼다. 하지만 매 곡 사이사이에는 길게는 10분 짧게는 5분의 ‘해설’이 존재했다. 공연의 상당 시간을 차지한 해설의 비중은 몇몇 측면에서 이 공연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청소년들이 ‘특강’이라는 익숙한 표식에 이끌려 음악회에 왔고, 이들이 홀에서 ‘해설 음악회’를 들었다는 점. 이들이 공연에서 느낀 무언가가 ‘음악회에서 하는 수업’이라는 맥락에 함몰되었을 가능성은 없을까? 어렵게 한 음악회 나들이가 학교 수업 같은 ‘익숙함’만을 줬고, 음악회 특유의 ‘비일상성’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 건 아닐까? 오늘 음악회는 기존의 현대음악과 달리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격이 없는 음악’을 소개하기 위한 자리다. 그러나 ‘해설’이라는 형식은 이 격 없는 음악을 ‘교조적’으로 주입시키는 ‘격이 있는’ 태도를 견지한 것이 아닐까?

몇몇 아쉬운 점을 거론하긴 했어도 이번 화음의 “이카루스 - 청소년을 위한 현대음악 입문”은 일회성으로 막을 내리기보다는 시리즈로 2회, 3회, 4회 계속됐으면 하는 기획이다. 관객들은 여느 고전음악 연주회나 영화 관람에서만큼 몰입하고 즐기며 2시간을 함께 했다. 현대음악에 익숙한 전공자들과 현대음악을 난생 처음 듣는 청소년들 모두 화음의 완성도 있고 다채로운 연주에 만족을 느꼈다. 어떤 측면으로는 각종 작곡 동인들로 점철된 한국 현대음악 창작계가, ‘연주자’ 중심의 단체들에 의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 어떤 교차점을 목격한 기분이 든다. 동시대 음악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해온 화음의 행보가 어떤 방식으로든 꾸준한 열매를 맺길 바란다. 

 

화음챔버오케스트라, (2015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