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이건용 [비평과 해석사이] 시리즈 중

2023. 12. 3. 23:50

작곡가 이건용(1947-)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 학사 및 석사, 프랑크푸르트 음대 작곡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1년 작곡동인 ‘제3세대’를 결성했으며, 민족음악연구회 회장 및 ‘낭만음악’ 편집고문으로 활동했다. 대표작으로는 오페라 <솔로몬과 술람미>(1988), <봄봄>(2001), <동승>(2004), <왕자와 크리스마스>(2010), 합창곡 <상주모심기 노래>(1999), 25현금 독주 <잎, 물, 빛>(1998), 발레 <바리>(1998) 등이 있다. 특히 이건용은 국악 및 성악음악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를 다루는 국내의 손꼽히는 중견 작곡가로서, 특히 텍스트와 결합된 음악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민족음악의 지평』(1985), 『한국음악의 논리와 윤리』(1986) 등 다양한 저서를 남겼으며 효성여대 및 서울대 음대 작곡과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작곡과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을 역임했다.

 

음악의 존재론에 대한 치열한 고민 그 너머

 

이건용은 1980년대에 한국음악론과 민족음악론을 주창하고 제3세대 음악동인으로 활동했다. 이런 시간을 통해 이 땅의 음악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고, 작곡가들이 가져야 할 정체성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민족음악의 지평』(1985), 『한국음악의 논리와 윤리』(1986) 등 다수의 저서, 그리고 평론은 이런 맥락에서 탄생했다. 동시에 자신이 주장한 음악이 실질적으로 어떤 형태로 쓰여져야 하는지를 실제 음악을 통해 들려주곤 했다. 따라서 이건용의 음악은 전통적인 요소를 기반으로 하며, 아방가르드 작품처럼 너무 어렵지 않고 충분히 귀로 들어서 이해가 가능한 것이 많다. 한편 그의 음악세계에서 강조해야 하는 중요한 음악적 카테고리는 성악음악으로서, 수많은 저작을 통해 가사와 음악의 관계를 감각적으로 다루고 있다.

민족음악에 대한 추구

이건용은 서양음악을 무분별하게 흡수하고 그것을 닮아가려던 이전 세대 작곡가들과 달리, 민족 스스로의 음악을 만들고 서양과는 다르지만 우리의 정체성이 살아 있는 동등한 문화적 자원을 설립하고자 하였다. 특히 이건용은 1980년대 당시 한국의 음악이 대중음악, 서양음악, 전통음악으로 양분되어 있으며 대중음악은 천편일률적인 양상을 띄고, 당시 ‘음악’이라는 명사가 암묵적으로 '서양음악'을 의미하고 있음을 비판했다. 다만 이런 상황 안에서 ‘전통음악’으로의 회귀를 주장한 것은 아니며, 음악적 모국어를 구사하되 음악 안에 전통적인 요소가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것을 추구했다. 따라서 이건용의 거의 전 작품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녹아들어간 한국적인 요소를 분석해낼 수 있다.

이를테면 <잎·물·빛>(1998), <여름 정원에서>(2011) 등은 25현 가야금을 위한 작품이며 그 안에는 굿거리나 중모리, 자진모리 등의 전통적 리듬에서부터 음계, 선율적인 요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한국적 요소가 드러난다. 이외에도 해금, 대금, 국악앙상블, 남창 등 다양한 매체를 중심으로 한 국악창작곡을 남기면서 기존의 전통음악과는 구분되되, 새로운 방식으로 전통을 재창조한 곡들을 다수 남겼다. 한편 국악관현악과 합창을 위한 <만수산 드렁칡>(1987)은 격변의 사회상황에서 쓰인 작품으로, 일종의 음악의 사회참여적인 성격을 띤다. 이외에도 국악기를 사용하지 않은 수많은 합창곡과 오페라, 실내악곡 등에도 전통음악적인 요소가 녹아 있다. 이 경우 이건용의 작품들은 서양의 작곡기법을 능숙하게 구사하되 그 음악의 뿌리는 한국적인 것에 두는 것이 특징이다. 이를테면 수난곡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2007) 안에 등장하는 푸가적 작법은 표면적으로는 ‘메기고 받는’ 성부의 움직임으로 인지되며, 그 안에서 서양적인인 무드 보다는 토속적인 느낌을 만들어낸다.

이건용이 보여준 독특한 음악작업 중 하나는 대중음악와 민중가요 등과의 경계를 넘나드는 ‘노래’ 작업들이다. <하종오 시에 의한 노래 네 편>(1988)이나 <최영미 시에 의한 노래 네 편>(1995) 등이 이에 속하는데, 이런 맥락에서 작곡된 <그렇지요>는 안치환의 음반에 수록되어 대중적으로도 큰 사랑을 받았다.

성악음악 작곡가로서의 독보적 존재감

이건용은 어린 시절 슈베르트(F. Schubert, 1797-1828)의 가곡을 들으며 작곡가의 꿈을 키웠고, 문학에도 조예가 깊어 다양한 글을 써 왔다. 이런 배경은 그가 합창곡에서부터 오페라, 그리고 노래나 가곡 등의 수많은 성악곡을 남기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이건용은 다양한 사회참여 작품을 쓴 것은 물론, 기독교적인 뿌리에 의해 다양한 종교음악을 남겼는데 이런 카테고리 역시 대부분 성악곡으로 작곡되었다. 이처럼 거의 모든 장르의 성악곡을 다뤄 온 이건용은 성악 음악 작곡가로서 “작곡가가 스스로 음악의 텍스트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잘 매만져진 텍스트를 토대로 하는 가사의 음악적 표현에 뛰어난 감각을 보여준다. 따라서 그의 모든 성악음악은 비록 그것이 노골적인 형태의 레치타티보는 아니지만, 듣고 있노라면 마치 ‘가사를 잘 살려서, 거의 말하듯이’ 처리된 한글의 고저와 장단을 들을 수 있다. 이런 테크닉은 오페라나 성악곡 등 화자의 ‘캐릭터’가 있는 경우에는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 이를테면 오페라 <봄봄> 속 장인의 성격과 행동이, 그리고 <왕자와 크리스마스>에 등장하는 덕구와 왕자의 성격이 특정 어미를 약간 길게 말하고 또 악센트를 주는 방식으로 묘사된다.

 

<기억하소서>(Lord, Remember me, 2007)

가장 순수한 음표의 조합으로 만들어내는, 가장 강렬한 호소

무반주합창곡 <기억하소서>가 포함된 “예수그리스도의 수난”은 2007년 9월 20일 대한성공회주교좌성당에서 위촉·초연된 수난곡으로,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아 수차례 재연된 작품이다. 작품은 총 25곡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네 명의 독창자와 혼성합창으로 연주한다. 다양한 음색을 다루는 타악기 주자 한 명과 팀파니스트, 피아노와 오르간이 만들어내는 음향도 특징적이다. 25곡이 수난곡의 줄거리를 다루기에, 곡마다 독창이나 합창 등의 성악성부 편성, 반주 악기의 앙상블 조합 유형 등이 달라지는 것은 물론, 각 음악이 특정한 사건을 묘사하는지, 아니면 독백을 하는지, 해당 사건에 대한 관념적인 감상을 담는지 등에 따라서도 음악의 스타일이 다채롭게 변모한다. 다수의 곡 안에서 국악풍 장단을 활용하고 있으며, 상여소리를 연상시키는 리듬 및 선율을 들려주는 등 ‘한국적으로’ 수난곡을 해석하고자 한 측면도 눈에 띈다.

<기억하소서>는 19번째 등장하는 곡으로, 수난곡 전체에 등장하는 몇 개의 순수 합창곡 중에서도 무반주로 불린다. 무엇보다도 이 음악은 작품 전체에 반복해서 나타나는 특징들, 이를테면 한국적인 요소의 활용, 독특한 형태로 독립적으로 감지되는 리듬형, 더 나아가 성부의 선율적 독립이 도드라져 보이는 푸가적인 도입 등이 ‘부재’하다. 즉 이 곡은 작곡가가 어떤 사상이나 테크닉을 보여주고자 한 곡은 아니다. 대신 성부의 흐름과 화성의 조합, 가사가 자연스럽게 청취됨으로써, 수난곡 가운데에서 지극히 순수하고 음악적인 층위로 분리되어 있다. 특히 수난곡 전체를 통해 사건과 감정이 펼쳐진 채 드라마틱하게 흘러왔다면, 이 곡에 이르러서는 압축된 ‘음악’의 형태로, 특히 극히 절대음악적인 지점에서 ‘기도함’이라는 정지된 시간적 감각을 표현한다.

앞선 18번 곡 <네가 정녕 나와 함께>에 등장하는 선율을 모티브로 활용하고 있으며, “기도하는 마음으로”라는 나타냄 말이 붙어 있다. 안단테의 느린 박자로 진행되는 내림가장조(Ab)의 4분의 4박자 곡이다. 총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기본적인 조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화음도 몇몇 수식적 사용을 제외하고는 온음계적인 편이다. 가사는 작곡가가 직접 쓴 것으로, 첫 부분의 가사는 “예수님, 예수님께서 왕이 되어 오실 때 우리를 기억해 주소서”이며, 두 번째 부분의 가사는 “당신을 저버린 우리들, 세상 영화를 섬기던 죄인들,” “불쌍히 여기사, 기억해 주소서”다. 마지막 부분은 다시 첫 부분의 가사가 반복된다. 곡의 최종부에는 “예수님, 예수님”이라는 가사를 갖는 코다가 붙어 있으며, 두 번째 부분과 세 번째 부분 사이에는 “주여”라는 연결구가 존재한다.

<기억하소서>는 수직적으로 부닥치는 음들과 수평적으로 흐르는 리듬의 일치 혹은 불일치를 넘나들며 한글 가사를 노래하고, 읊조리고, 더 나아가 말하는 것 그리고 외치는 것 등을 섬세하게 표현해낸다. 이를테면 곡의 초입을 여는 “예- 수님”이라는 가사는 소프라노에서, 그리고 알토‧테너‧베이스에서 동시에 등장하지만, 3마디에서부터 본격적인 엇갈림이 시작된다. 이런 엇갈림은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작곡테크닉이자 모티브인 동시에, 작품 전체를 통해 ‘노래하기’와 ‘말하기’의 경계를 만들어낸다.

“예- 수님” 모티브가 첫 음을 길게 끌고 4도 도약하는 것도 눈여겨 볼만하다. 이 선율은 곡 첫 시작에 등장해 이후에도 여러 번 나타난다. 간절하고 단호하며, 신을 부르짖는 인간의 형태를 선율의 윤곽과 그 제스처로 전달하며, 첫 음과 두 번째 음 사이의 4도 도약, 그리고 두 번째 음과 세 번째 음의 동음 반복으로 구성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토록 간결한 형태의 선율이 ‘음악으로 말하기’가 가질 수 있는 강렬한 설득력을 증명한다. 4도의 도약이 그 이후의 계속해서 흘러내리는 듯한 순차진행을 동반하며, 이런 자연스러운 흐름 역시 지극히 음악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는 것도 흥미롭다. 이외에도 곡 전반에 걸쳐 외성이 계속해서 음을 바꾸어 진행할 때와 멈추어져 있을 때 텍스트의 표현 및 표현의 강렬함이 차이가 난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이처럼 <기억하소서>는 다양한 음정의 움직임이나 성부의 진행 등을 투명하게 청취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만들어지는 음악심리적 효과나 텍스트 및 제스처로의 의미 변환이 지극히 섬세하게 이뤄진다. 이런 방식으로 ‘가장 순수한 음표의 조합’이 ‘가장 강렬한 호소와 말씀’으로 거듭난다.

 

작곡가 이건용과의 대화 2021년 8월 16일 오후 8시 전화인터뷰

이민희: 오페라와 가곡, 그리고 수난곡 등 텍스트를 포함한 몇몇 성악장르 간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다수의 성악곡을 발표해오셨기에, 이런 작업들에 대한 개인적인 경계 설정이나 분류방법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건용: 가곡하고 오페라는 많이 다르죠. 오페라는 좀 더 ‘사건’을 다루지요. 오페라 <박하사탕>의 경우 주역 등장인물이 진압군으로서 만났던 광주항쟁의 모습, 그 모습에서 경험한 어떤 일, 거기에서 생긴 트라우마, 그 트라우마 때문에 저지르게 된 더 큰 잘못, 그리고 그 잘못 때문에 생긴 정신적 파멸 등. 이런 것이 소재이지요. 이에 비해 가곡은 하나의 사건을 얘기하는 건 아닌 것 같고, ‘한 순간에 포착되는 시적 정서’를 많이 다루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어느 여름 밤의 느낌, 또는 이유 없이 찾아오는 슬픔, 이런 것을 노래하는 것이 가곡이지요. 오페라에는 사건이 있고 인생이 있고 드라마가 들어가죠.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음악도 달라지겠죠. 한쪽은 드라마를 다루게 되니까 심리도 다뤄야 하고, 장면과 감정의 굴곡도 다루게 되죠. 이에 비해 가곡은 훨씬 더 음악적인 구성 원리에 따라 곡을 쓸 수 있지 않을까요.

수난곡이나 오라토리오는 굳이 따지면 그 중간쯤 위치한다고 보는데요. 예전에는 오페라를 할 수 없는 기간에 오라토리오를 했다고 그러지요. 그러니까 오페라에 가깝다는 얘기가 되는데, 여기에도 스토리가 있고 인물이 있고 갈등이 있지요. 다만 오페라보다는 좀 더 정서를 다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민희: 일반적인 작곡가에게 ‘성악곡’은 마이너한 장르인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어려운 기법으로 절대음악을 작곡하다가, 잠시 ‘외도’를 하는 느낌으로 비교적 가벼운 가곡 등을 쓰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건용 선생님에게 있어 ‘성악곡’은 다른 장르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의 음악 세계 안에서 ‘성악곡’ 혹은 ‘노래가 있는 음악’의 위치나 의의 등이 따로 있는지요?

이건용: 글쎄요. 제일 쉬운 대답은 성악 단체(예를 들면 합창단)에서 위촉을 많이 해왔기 때문일 것이고요. (오케스트라에서 위촉을 많이 해왔으면 달랐을 수도 있겠지요.) 또 다른 이유는, 내가 슈베르트 같은 가곡을 쓰고 싶어서 음악을 시작했어요. 원래 성악곡에 관심이 많았던 것이겠지요.

무엇보다도 저는 말에 관심이 많아요. 언어가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고, 또 언어를 좋아합니다. 사람이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이 저는 참 재미있어요. 나는 절대음악이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역시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이라고 봐요. 또 음악은 언어가 확장되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음악의 리듬은 사실 언어와 밀접한 관계가 있지 않습니까? 이런 종류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음악과 저런 종류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음악이, 물론 성악곡도 다르지만 기악곡도 다르게 나오잖아요?

사실 절대음악이 메이저하다고 여긴 것은 서양에서 아주 짧은 기간 뿐 이었지요. 전 세계의 음악사를 통틀어 보면 성악곡이 오히려 메이저하죠. 기본적으로는 성악곡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민희: 민족음악론, 한국음악론, 제3세대 작곡동인 등. 음악의 현실반영이나 사회 안에서 음악가의 역할 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오셨습니다. 그렇다면 2021년 현재에 음악 안의 ‘민족’ 담론이나 ‘정체성’ 문제가 어떤 방식으로 발현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최근의 상황 안에서 ‘한국음악’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을 런지요?

이건용: “다시 민족음악을 생각하며”(『음악과 민족』, 1997), “민족음악을 의심한다”(『낭만음악』, 2005) 이렇게 비슷한 글을 두 번 썼어요. 한때는 민족음악이 하나의 방향을 제시하는 구호가 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그것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다른 나라에 억눌려 핍박받고 있거나 사분오열하는 나라가 있다면 민족주의가 필요하겠죠. 한 나라의 주체적인 역량과, 구심점. 특히 그 문화의 구심점이 약해지고 정체성이 위협을 받을 때에는 당연히 그 안에서 민족담론이나 정체성 문제가 나오리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그렇게 나왔고요. 그런데 이제 그것을 계속해야 되는가 하는 것은, 글쎄요. 이제 대한민국이 세계 10위 안에 든다면서요? 그런데 그렇게 힘 있는 나라가 자신의 정체성과 집단적 이기심을 주장한다면 그건 과한 것이겠지요. 이제는 우리나라에 많은 외국인들도 들어와 살고 있는데, 이 사람들이 살기 편안하도록 보편적인 가치가 실현 되어야겠지요.

그럼 음악은 어떻게 되느냐? 이제는 민족주의나 정체성 이런 것 보다는,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가장 좋은 음악문화는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이미 상당히 많은 문화적 토양을 가꾸었어요. 깊숙하게는 아직도 이천 년 전의 문화적 토양이 남아있고, 제일 위 껍질에는 그야말로 4차 산업 혁명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최근의 문화도 있고요. 그 안에 층층이 다양한 문화가 깔려 있지 않습니까? 이런 맥락에서 BTS도 하나의 예가 될 수 있겠지요.

이민희: 선생님의 음악 안에서는, 마치 한국말을 ‘잘 읽듯’, 단어의 장단과 섬세한 고저를 살려 낭송하듯이 처리된 리듬과 음정을 많이 봅니다. <기억하소서>에도 이런 측면이 나타나는 것 같고, 오페라 <왕자와 크리스마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섬세한 층위에서 이루어지는 ‘한국어’에 대한 음악적 처리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이건용: 제가 언어를 매우 중요시한다고 했잖아요? 사실 작곡가가 언어를 반영해서 작곡을 하는 것은 성악곡을 쓸 때 당연히 해야 하는 아주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말이 전달되죠. 그런데 그렇게 언어에 천착하다보면 그 안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와요. 말은 리듬이고 형식이고요 또 그 자체가 노래이고요, 그 안에 우리 삶의 모습을 담고 있는 그림이기도 합니다. 그런 식으로 말을 음악으로 만들다보니 각 문화에서 각각 다른 언어를 토대로 한 여러 음악이 만들어진 것이겠지요. 부파(Opera Buffa)는 부파스타일이 된 거고, 바그너(R. Wagner)는 바그너 스타일이 된 거죠. 뮤지컬도 영어 가사에 적응하다보니 뮤지컬적인 선율과 스타일을 가직[ 된 것이고요.

작곡가가 오페라를 잘 쓰려면 대본을 손질할 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가사 자체가 형식(form)인데 남의 손으로 한 것을 그냥 하면, 작업이 많이 어려워지겠지요. 나는 대본을 내가 씁니다. 그게 아마 다른 작곡가 보다 유리한 점일 것 같아요.

이민희: 음악 퍼포먼스의 ‘현장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최근 들어 늘어나는 ‘인터넷 중계’와 ‘비대면 공연’의 효과나 역할을 어떻게 평가 하시는지요?

이건용: 요즘 이런저런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해 새로운 방식이 많이 개발되고 있잖아요? 온라인 퍼포먼스나 줌(Zoom)으로 연습하는 것, 공연을 유튜브로 생중계 하는 것 등. 그런 매체를 활용해서 옛날에는 넘어가지 못했을 문화의 벽이 무너지는 것 같아요. 여기 서울에서 하는 공연이 전 세계에 동시에 나갈 수 있고요. 말하자면 음악이 비대면으로 확산될 수 있는 환경인거죠. 이것을 유리하게 잘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른 한편으로는, 고생하는 후배음악인이 생각납니다. 정말 많은 연주가들, 성악가들이 무대를 잃어버려서 고생을 하고 있는데, 우선 그게 해결된 다음에 다른 생각을 해야겠지요. 우리가 이것을 모른다고는 할 수 없어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대를 만들어야지요. 무대를 대면의 방식으로요. 아직까지는 그런 무대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의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민희: 곡이 완성됨을 느끼는 순간이 언제이신지요?

이건용: 곡이 완성된다는 건, 내가 객석에서 들을 때, 옆에 청중이 있을 때, 그들 안에서 들을 때 제일 정확하게 판단되는 것 같아요. 좀 행복할 때도 있고요. 쥐구멍이 있으면 그 구멍 안으로 들어가고 싶을 때도 있고요. 연습도 하고 많이 들어보고 리허설도 있고 그렇지만, 최종판단은 그게 아닌 것 같습니다.

 

글 이민희 음악평론가, “이건용,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中 〈기억하소서〉” 『성악곡: 음유와 서정의 화』, 서울: 모노폴리, 2021.10.21. 

 

작곡가 이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