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김혜자 [비평과 해석사이] 시리즈 중

2023. 12. 3. 01:31

 작곡가 김혜자(1943- )는 서울대학교 작곡과를 졸업하고 일본 엘리자베스 대학에서 성음악학사(B.S.M.)를 받았으며 오사카 프로무지카 인스티튜트에서 중세와 르네상스 음악을 연구했다. 가곡, 실내악, 합창음악, 국악기를 포함한 음악, 연극음악 등을 작곡했고 대표작으로는 국악관현악을 위한 <영산지심>(2017), 6인의 주자에 의한 <꼴라쥬>(2004), 오르간을 위한 <두 개의 부속가에 따른 영상>(1999), 소프라노와 타악기를 위한 <스타바트 마테르 (통고의 어머니)>(1993), 혼성합창과 현악앙상블을 위한 <미사>(1970/1977) 등이 있다. 1973년에는 연극 <초분>(오태석 작, 1973) 음악으로 한국연극대상 음악상을 수상했다. 사단법인 작곡가협회 부이사장, 한국여성작곡가회 회장, 아시아작곡가연맹 한국위원회 이사, 추계예술대학교 작곡과 교수를 역임했다.

 

음악의 총체적인 형상을 그리는 작곡가

 

작곡가 김혜자의 음악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음악의 총체적 존재론이다. 그의 음악에서는 소리가 진공의 공간에 홀로 유배되어 있지 않으며, 항상 의전(儀典) 안에 그리고 텍스트와 함께 존재한다. 예컨대 그의 음악은 직접적으로 또는 암시적으로 그 안에 일종의 퍼포먼스적인 측면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의 소리들은 텍스트·퍼포먼스·특정 맥락과 결합해 하나의 세계를 구성한다.

총체적인 음악세계를 형성하게 된 여정

김혜자가 총체적인 음악론을 고민하게 된 것은 그가 어린 시절에 받았던 음악교육과 몇몇 경험이 축적된 결과다. 이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추적해 볼 수 있다.

첫째, 김혜자의 음악적 경험은 ‘성악음악’에서 시작되었고, 유년시절 수많은 텍스트를 접함으로써 인문학적 감수성을 키웠다. 특히 김혜자의 첫 스승은 성악가였던 아버지 고 김순용 선생이었기에, 성악곡 초견 및 감상을 비롯하여 음악이론과 작곡에 대한 학습이 가정에서 이뤄졌다. 이를 텍스트와 함께 존재하는 음악에 대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노출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김혜자는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며 소설, 시집, 잡지, 신문 등 다양한 종류의 글에 탐닉했다. 이런 경험은 후에 김혜자의 텍스트 그 자체에 대한 수준 높은 이해도와 구사력으로 나타난다.

둘째, 김혜자는 종교 음악에 대한 학습을 통해 가톨릭을 중심으로 하는 ‘의전 음악’의 작곡 실제와 그 의미에 대한 깊은 이해에 도달한다. 김혜자가 서울대 작곡과 졸업 후 유학한 일본 엘리자베스 음악대학에는 바티칸교황청 음악학교의 성음악학사 과정이 설치되어 있었고, 김혜자는 이 과정에 수학하면서 원숙한 대위적 작법은 물론 그의 음악에서 큰 줄기를 형성하는 카톨릭 의전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특히 일본에서의 공부는 그레고리오 성가에 대한 집중적인 분석을 통해 음악의 가장 기본이 되는 선율선의 자연스런 흐름을 찾는 방법에서부터, 르네상스 음악의 근간이 되는 다성음악, 바로크 음악사, 대위법 등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를 통해 가톨릭 의전음악의 음악적 테크닉과 정신, 그리고 그 맥락을 완전하게 습득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때의 경험은 ‘총체적 음악’의 가장 직접적인 카테고리인 ‘의전음악’의 실제와 의의를 포괄적으로 익힌 것이기에 특히 더 중요하다.

셋째, 김혜자는 연극음악 작곡을 통해 음악이 퍼포먼스 및 특정한 맥락과 함께하는 양상을 구체적으로 체험한다. 특히 그는 대학 시절부터 연극과 영화에 관심이 많아 음대 연극반에서 공연기획과 음악을 맡아 참여하곤 했으며, 1973년에는 동랑레파토리극단에서 올린 <초분>의 소리(청각, 음악) 연출을 맡게 된다. 특히 김혜자는 <초분>의 작업을 통해 특정한 맥락과 공간에 배치된 소리, 즉 ‘소리가 포함된 세계’를 만드는 것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된다.

결국 텍스트에 대한 뛰어난 독해력과 감수성,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익숙하게 배우고 썼던 성악음악, 일본 유학시절에 경험한 가톨릭 음악 및 그 뿌리를 이루는 의전으로서의 음악, 그리고 연극음악 활동 등이 모두 결합해 김혜자 특유의 총체적 음악세계를 만들게 된다.

다양한 장르에 걸쳐 나타나는 총체성

‘총체적인 음악관’ 아래에서 작곡된 가장 대표적인 장르는 ‘종교음악’이다. 특히 김혜자는 직접적으로 의전에서 활용할 수 있는 종교음악을 다수 작곡했는데, 오르간을 위한 <두 개의 부속가에 따른 영상>, 혼성합창과 현악앙상블을 위한 <미사>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카테고리 안에서 음악은 의전 안에 존재하고, 동시에 의전적인 악상을 포함하고 있다. 유사한 맥락에서 김혜자의 실내악들이 대부분 ‘표제’를 갖고 있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이를테면 타악기 독주를 위한 <깊고 투명한 블루> 등은 소리를 텍스트와 함께 제시함으로써 보다 구체적이고 포괄적인 맥락 안에서 감상하게 한다. 그의 가곡 역시 확장된 형태의 총체적 음악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실제로 <강 I, II>(1994), <비어있는 혹은 가득 찬>(김일태 시) 등에서는 시가 가진 정취와 풍미를 음악과 함께 엮어 소리가 담겨 있는 새로운 시공간을 창출한다.

가야금과 장고를 위한 <어느 날 밤 악사에게> 등이 들려주는 국악곡 속 자연스러운 호흡과 여백도 마찬가지다. 여백은 소리를 홀로 전시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소리는 여백 안에서 자유로이 움직이고, 이 안에서 자신의 호흡과 서사를 들려 준다.

 

<깊고 투명한 블루>(Deep, transparent blue for solo percussion, 2006)

자연, 혹은 신성(神聖)의 음악적 구현 

<깊고 투명한 블루>는 빙하가 보여주는 다채로운 빛을 타악기로 표현한다. 특히 작곡가는 영겁의 시간을 간직한, 깎아지를 듯한 빙하의 틈 속으로 보이는 푸르른 빛을 ‘절대적인 블루’로 명명했다. 즉 작곡가가 곡의 제목으로 설정한 ‘깊고 투명한 블루’는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으로서, 이를 자연 그 자체이자 ‘신성’(神聖)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타악기 독주자를 위해 작곡된 이 곡은 비브라폰, 서스펜디드 심벌(16인치, 18인치), 템플블록(5세트)을 필요로 한다. 특히 비브라폰은 작곡가가 ‘빙하’나 ‘푸르름’을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악기다. 한편 심벌들은 금속성 소리를 냄으로써 비브라폰과 유사한 톤의 음향을 발생시킨다. 반면 템플블록은 이와는 대조되는 단단하고 딱딱한 소리를 갖는다.

악기 구성에서 주목할 점은 작곡가가 비브라폰의 음색을 변화시키는 ‘프리페어드’를 시도했다는 점이다. 작곡가는 알루미늄 강판으로 된 ‘금속 조각’을 비브라폰의 건반 사이에 끼웠으며, 이런 장치를 통해 ‘아무도 들어 보지 못한’ 소리를 만들어 내고자 했다. 즉 프리페어드로 만들어지는 소리는 ‘절대적인 블루’를 소리로 형상화한 것으로서, ‘자연’ 그 자체를 구현하고자 하는 시도로 볼 수 있다.

특히 작곡가는 이 작품의 2006년 초연 및 2008년, 2012년의 연주를 거치면서 알루미늄 금속판을 뺐다가 끼우는 등의 다양한 탐색을 행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세상에 없는 소리를 내기 위한’ 프리페어드 방식과 이것이 도출해 낼 수 있는 음색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다.

이 곡은 도입부 및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짧은 도입부는 활로 심벌을 긁으며 천천히 시작된다. 이어 체로 된 말렛을 이용해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비브라폰의 페달을 누른 상태에서 리듬이 없는 다양한 음을 느리게 연주한다. 이 음향 안에서는 D음이 중심이 되지만, 특정한 음계나 화음을 형성하지는 않는다.

첫 번째 부분은 박자표나 마디가 존재하지 않는 가운데 8분음표와 16분음표 두세 개로 조합된 리듬형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이런 촘촘한 음향을 넘나드는 긴 음표가 등장한다. 이 음향은 비교적 빠른 패시지로 구성되며, 페달을 누른 비브라폰을 통해 화려하고 풍부한 느낌을 만들어 낸다. 이어지는 섹션에서는 템플블록이 더 짧고 빠른 리듬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비브라폰의 음색과 대비를 이룬다. 이어 심벌과 비브라폰에서 길게 지속하는 음을 들려주는가 하면, 다시 비브라폰이 빠른 패시지를 연주한다. 이런 과정 안에서 비브라폰의 소리는 페달과 함께, 혹은 페달이 ‘오프’된 상태로 심벌 및 템플블록과 연결되거나 혹은 대조되는 형태로 청취된다.

두 번째 부분은 비브라폰의 리듬형이 반복되어 마치 오스티나토와 같은 형태를 띤다. 이 경우 8분음표 혹은 점4분음표의 리듬형이 규칙적으로 흐르며, 이와 결합된 수직적 음정 또한 ‘완전4도’와 ‘완전5도’ 등으로 제한된다. ‘Rubato’ 섹션으로 표시된 부분에서는 ‘f-c-d-g#’로 구성된 화음이 수직적으로 등장하고, 이후 g#음만이 반음씩 상행하고 다시 하행한다. 이런 흐름은 김혜자가 이 작품 안에서 협화음정 및 조성적이고 방향성이 있는 진행 등을 자연스럽게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모든 섹션 안에서 다양한 음들이 반복되고 있으며, 느린 ‘화성리듬’(harmonic rhythm)을 사용한다는 점도 추가로 지적될 수 있다. 이런 화성리듬은 출현하는 음의 밀도와는 별개로, 음악 청취 시에 ‘여백이 있는’ 느낌을 만들어 낸다. 이어지는 세 번째 부분은 자유로운 빠르기로 작곡됐으며, 비브라폰이 중심이 되어 도입부와 첫 번째 부분의 일부를 재현한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비브라폰의 음색을 통해 빙하의 푸르른 빛을, 그리고 이와 대조되는 빠른 패시지 및 템플블록의 음색을 통해 빙하의 표면에서 볼 수 있는 다채로운 빛을 그린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프리페어드 된 알루미늄 조각으로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빙하의 깊은 틈 속에서 마주한 ‘자연의 경이’를 소리로 소환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요소들이 연주자의 제스처, 타악기의 신비로운 음색, 작품의 제목, 그리고 차분한 화음 등과 결합해 김혜자 곡 특유의 의전적이고도 총체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며, 결국 ‘신성’이라는 형태로 청자에게 전달된다는 점이다.

 

작곡가 김혜자와의 대화 2020년 2월 22일 오후 2시 30분 김혜자 작곡가 자택

이민희: 타악기에 남다른 애정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타악기’ 혹은 ‘타악기 음악’에서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표현법이나 요소가 있으신지요? 그리고 이런 생각이 <깊고 투명한 블루>에 반영되었는지요?

김혜자: 박동욱 작곡가를 도와 다양한 타악기 연주회의 작품을 분석하고, 타악기 연주회의 레퍼토리를 짜고, 또 작품해설 등을 쓰고 그랬습니다. 그렇게 20년 가까이 타악기 음악을 가까이 한 것이 ‘타악기’에 익숙해지는 데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특히 타악기 독주곡은 딸 박윤 연주자가 타악기를 하기에 기회가 있었을 때 한번 써보고 싶었던 것이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깊고 투명한 블루>의 2006년, 2008년, 2012년 연주는 모두 박윤 연주자가 맡아 주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타악기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겠지만, 저는 언제나 건반타악기의 빠른 기교로는 그 악기가 가지고 있는 음색을 제대로 살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림바를 예로 들자면, 이 악기는 본래 나무토막이 울려서 소리를 내는 겁니다. 그런데 이걸 “다다다” 하고 연주해 버리면 악기로 기교를 부리는 것에만 머물지요. 그래서 저는 <깊고 투명한 블루>에서도 곡의 진행상 힘을 밀어 올려 진행시켜야 한다거나 하는 것처럼 꼭 필요한 부분이 아니라면 빠른 패시지를 사용하지 않았어요.

타악기라고 해서 무조건 빠르게 연주해서 사람을 흥분시키고, 이런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또한 타악기 곡이라고 리듬을 부수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타악기 음악이 정적인 느낌으로 다뤄질 때에야 그 악기 내부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특유의 표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 예전에 백병동 선생님께서 본인의 작품 <파사칼리아>에 대해서 하셨던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이 곡 안에서 ‘땡’하고 조그마한 소리로 종을 치는 부분이 있는데, 백 선생님은 이 소리가 마치 이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느낌을 준다고 말씀을 하셨지요.

타악기에 소리를 주고, 나중에 그 소리들이 하나로 합해지고, 또는 안 합해지더라도 소리를 주고, 또 소리를 주고, 그게 받아지고. 이런 방식으로 소리가 만들어지지요.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타악기를 다루는 방식입니다.

물론 리드미컬하고 프렉티컬한 곡도 좋아합니다. 그런 것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지만,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소리를 ‘아끼는’ 방식으로 곡을 쓴다고 생각합니다.

이민희: 보통 ‘타악기’라고 하면 수많은 악기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이 중에서 ‘비브라폰’이라는 악기를 중심에 두고 ‘타악기 독주곡’인 <깊고 투명한 블루>를 작곡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또한 <깊고 투명한 블루>를 구상하고 착수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김혜자: 곡을 쓰기 1년 전에 알라스카의 빙하를 보러 갔습니다. 그런데 그 빙하 밑에 파란색이 우리가 프리즘을 통해서 보는 색깔과는 다른 거예요. 정말 몇 수억 만 년 전의 푸른색이었던 거죠. ‘deep’이라는, 깊이라는 단어로는 끝나지 않는, 투명하고도 또 투명한 무언가였어요. 프리즘을 통해서 나오는 푸른색이 아니라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색깔이나 페인트로 표현할 수 없는 푸른색. 이것을 어떤 악기로 표현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을 때 비브라폰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비브라폰은 모터를 켜면 바이브레이션을 하는 음색을 만들 수 있고, 모터를 끄면 바이브레이션이 없는 단순한 음색이 됩니다. 활로 긁거나 쇠로 긋는 음색을 만들 수도 있고, 스틱에 따라서 부드러운 소리와 강한 소리를 다 낼 수 있습니다. 또 비브라폰이라는 악기는 서스테인 심벌 등 다른 금속 타악기와도 굉장히 잘 어울립니다. 반면 템플블록하고는 완전히 대조를 이루는 소리가 나죠.

여기에서 더 나아가, 저는 비브라폰에다가 알루미늄 조각을 댄 겁니다. 그야말로 세상에서 말할 수 없는 것들, 이미 있는 소리가 아닌 다른 소리를 만들어 보겠다는 아이디어에서요. 완전히 다른 소리를 만들어서, 그것으로 ‘블루’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민희: 이전에 인터뷰하신 글을 보면 음악세계 안에서 의전적인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음악 안에서 이 요소가 어떤 방식으로 등장하는지 조금 자세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김혜자: 제 음악의 기본은 의전적(儀典的)인 것을 바탕으로 합니다. 따라서 저는 음악만이 아니라 의식(儀式) 또는 동작과 함께 진행되는 소리(음악)를 완전한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일차적으로는 미사곡이나 제례악, 총체예술로서의 연극음악 등에서 진정한 음악의 역할을 규정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맥락에서 저는 작품을 구상할 때 특정한 의전적 이미지를 갖고 음악적 구조의 틀을 짭니다. 그리고 소리의 여백과 소리의 짙고 옅은 농담(濃淡)을 얻으려 합니다.

세레모니(ceremony)적인 것, 즉 의전적인 것은 음악과 동시에 나올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의전이 음악과 동시에 나온다는 것을 제가 작곡한 <스타바트 마테르>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볼 수 있습니다. 이 곡의 구상에서부터 이야기를 해 보죠. 성당에 가면 예수님의 14개의 수난이 있고, 이것을 하나하나 노래를 부르면서 또 기도를 하면서 따라갑니다. 이걸 십자가의 길이라고 해요. 그 십자가의 길 12번째에 이르면 마리아가 자신의 죽은 아들, 그리스도의 시신을 끌어안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직전에, 마리아가 십자가 밑에 서 있습니다. 즉 ‘서 있는 마리아’(스타바트 마테르)인 거죠.

이런 요소를 실제 곡으로 구상할 때에는 14처를 다는 다루지 않고, 4개나 5개 정도만 타악기로 처리하고, 마지막은 소프라노가 노래하도록 했습니다. 이런 구성 안에서 종교적 의식과 음악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 곡은 실제 의전 안에서도 쓸 수 있습니다. 곡 자체가 십자가 밑에 있는 마리아를 상상하게끔 하는, 의전적인 음악이 되는 겁니다.

또 다른 방법으로 의전적인 것을 음악에 반영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음악 자제가 좀 영적인 느낌을 갖고 있는, 이것을 연주자가 연주함으로써 영적인 상태를 유도하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스타바트 마테르>의 경우는 두 가지 다 적용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음악 자체가 의전적인 것임과 동시에 음악 안에 영적인 것을 포함합니다. 저는 특히 연주자가 이 작품을 연주할 때에, 시작하는 부분에서 끝날 때까지, 어떤 영적인 상태, 즉 의전 안에 있는 것처럼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이민희: 말씀하신 영적이고 의전적인 요소가 타악기를 위한 <깊고 투명한 블루>에도 나타나는지요?

김혜자: 물론 이 작품에서도 음악 자체에 이런 요소가 있습니다. 특히 ‘Senza misura’라고 표시한 부분은 의전으로, 리추얼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등장하는 비브라폰의 음형들은 이에 대한 ‘발전’을 나타냅니다. 리추얼한 상태가 점점 동적으로 변모하는 것이죠. 이 경우 리추얼은 정적인 것이 아니라 ‘동적인’ 어떤 상태로 전환됩니다. 그리고 이 음향이 다시 정적인 리추얼의 상태로 돌아가는 진행을 합니다. 연주자도 이런 느낌을 갖고 연주를 하고 이를 표현했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즉 음악 자체가 리추얼한 상태에서 그것을 동적인 상태로 가져갔다가, 다시 정적인 부분으로 변하는 것이지요.

이런 가운데 도입부의 ‘Senza misura’ 부분에서는 뭔가 원초적인 색깔, 프리즘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근원적이 무언가를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동적인 부분에서는 프리즘을 통해 생성되는 빛 같은 것을 표현해 보고자 한 것이죠.

 

글 이민희 음악평론가, “김혜자, <깊고 투명한 블루>”, 『독주곡: 사고와 신념의 상』, 서울: 모노폴리, 2020.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