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김신 [비평과 해석사이] 시리즈 중

2023. 12. 3. 01:05

작곡가 김신(1994- )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작곡과에서 김성기·황성호를 사사하고 교환학생으로 간 오스트리아 비엔나 국립음대에서 에쓸(K. Essl) 교수로부터 작곡을, 볼프슨(J. Wolfson) 교수로부터 지휘를 배웠다. 제45회 중앙음악콩쿠르 작곡부문 1위, 제2회 아가페 교회음악 창작음악제 전체부문 대상, 제10회 세일가곡콩쿠르 작곡부문 1위를 비롯한 다양한 콩쿠르에서 수상했으며, 2019 파안 생명나무 작곡가로 선정되었고, 국립합창단 정기연주회, 2017 화음 프로젝트 페스티벌, ISCM Korea 범음악제, 운지회 체임버 오케스트라 시리즈, 터키 Bilgi New Music Festival 등 국내외 다수의 연주회와 음악제에서 작품을 연주했다. 현재 현대음악앙상블 SONOR XXI의 음악감독이자 상주작곡가이며, 일신감리교회 호산나 찬양대 지휘자이다.

  

변화의 찰나, 잠시의 기록

수많은 곡을 쏟아 내는, 긴 여정의 출발점에 선 젊은 작곡가의 음악을 논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그의 이제까지의 작업 안에 드러나는 몇몇 양상을 살펴보고 이를 잠시의 기록으로 남겨 두는 것은 의미가 있다. 이런 접근을 통해 김신 작곡가의 최근 작업을 조망하고 이후의 작업을 조심스럽게 상상하며, 더 나아가 동시대 젊은 작곡가들의 작품 경향 일부를 짐작해 보고자 한다.

상상의 서사에 기반하는 시간의 흐름

김신이 그간 발표한 몇몇 작품 안에는 ‘상상의 서사’에 바탕을 두고 이를 음악적 구조로 전환하는 시도가 자주 눈에 띈다. 이런 방식은 작곡가가 2016년 작업한 첼로 독주를 위한 <…혼잣말 1>에서, 그리고 2019년 작업한 현악합주를 위한 <명상 중의 고행자>(Ascète en méditation 3) 등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글이나 서사를 음악의 구조로 삼는 경우, 이 음악이 단순한 표제음악에 머물며, 실질적으로는 A-B-A 형식이라는 지극히 진부한 서사의 원형을 답습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김신의 작업은 이런 일반성을 넘어 ‘소리구조물’의 측면에서 지극히 설득력 있는, 예컨대 투명한 짜임새를 가진 오롯이 청취되는 음향을 만든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그리고 이런 측면은 역설적이게도 텍스트를 초월한, 소리 그 자체의 표현력을 부각시킨다.

이를테면 <명상 중의 고행자>는 작곡가가 전개시킨 독특한 이야기 구조를 시간축의 근간으로 삼고 있으며, 이를 통해 서양음악의 형식 및 고전적인 서사의 정형성에서 탈피한다. 이처럼 독특한 서사를 기반으로 음악을 꾸려 나가는 것은, 넓은 층위에서 보았을 때 병렬적인 구성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신의 음악에서는 각 부분의 음향이 거시적인 이야기 및 굉장히 독특한 ‘전체 형상’을 뚜렷하게 그려 냄으로써 신선한 인상을 준다. 그리고 이런 감상 안에서 섹션의 병렬이라는 느낌은 음악의 심층으로 사라져 버린다.

감각과 이성의 두 축

감각적인/직관적인/즉흥적인. 이 세 단어가 지칭하는 것은 작업의 음향적 결과를 먼저 설정한 상태에서, 그 음향에 이르는 세부적인 단계를 이후에 결정하는 작곡 절차와 관계가 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이성적인/형식에 맞춘/계획적인’ 절차와 대조를 이룬다. 특히 후자의 개념들은 작곡가들이 학교에서 학습했다고 여기는 것들로, 곡을 쓰는 과정에서 구조 및 세부사항의 선택을 수학적 아이디어에 의지하거나, 이미 존재하는 형식을 활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김신의 곡 안에서 ‘감각적인 것’과 ‘이성적인 것’의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 명확히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다만, 김신 작곡가가 절차에 관한 두 가지의 축을 설계하고, 자신이 현재 어떠한 축에 더 가까이 다가와 있는지 ‘스스로’ 자문자답하는 광경은 흥미롭다. 그는 직관적인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것이 계획적인 것과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감각과 즉흥’ 대신 ‘이성과 형식’을 작곡의 근간으로 삼았을 때 그 결과물이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지 꼼꼼히 탐색한다.

이처럼 감각과 이성의 두 축을 끊임없이 횡단하고 또 고민하는 작곡가의 작업 안에는, 어느새 이성적인 요소가 무의식의 영역 안에서 감각적인 것과 통합되어 나타난다. 그리고 이 지점에 이르면 ‘체화된 이성적 틀’과 또 다른 ‘감각적인 것’이 결합됨으로써 한 단계 더 나아간 흥미로운 작업을 창출할 수 있다.

표제와 이미지의 활용

김신 작곡가의 작품 대부분은 ‘제목’을 갖고 있다. 이런 경향은 김신 작곡가가 화음챔버오케스트라처럼 ‘표제’를 중심으로 창작곡을 의뢰하는 특정 앙상블과 작업하면서 생기는 경향 중 하나다. 동시에 동시대의 청중에게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고자 하는 21세기 국내 작곡계 전반의 움직임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김신은 미분음과 불협화가 가득한 현대음악에 <동천찬가>(冬天讚歌, 2017)라는 제목을 붙임으로써, 이런 소리를 ‘겨울의 풍경’으로 해독하게 한 바 있다. 한편, 김신의 몇몇 작업에서는 표제가 ‘이미지’나 ‘미술 작품’ 등의 또 다른 매체를 지시하기도 한다. 이때 제목으로 부여된 텍스트는 일종의 ‘표지’에 불과하며, 이런 표지가 가리키는 그림이나 그 너머의 관념이 음악요소와 직접적인 연관성을 만들어 낸다.

 

<…혼잣말 1>(…Selbstgespräche 1 Für Cello Solo, 2016/2017)

지극히 자전적이고 징후적인

<…혼잣말 1>은 김신 작곡가가 2016년 오스트리아에 있을 때 작곡한 첼로 독주곡이다. 총 10부작으로 기획된 시리즈의 첫 번째 곡으로서, 첼로가 마치 혼잣말을 하듯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특히 이 작품은 작곡가가 직접 녹음한 ‘혼잣말’을 각 섹션의 기초로 삼았다. 이는 이 작품이 기존의 형식이나 구성을 따르기보다는 작곡가의 즉흥적인 행위에 기반하는 자유형식을 사용함을 보여준다.

곡은 인트로로 시작된다. 이 부분에서는 앞으로 등장할 각 섹션의 모티브가 짧게 제시된다. 이어지는 A부분에서는 ‘C#-B-G-F#-D-C#-A’로 구성된 단선율의 모티브가 비교적 느리게, 그리고 첼로의 가장 낮은 음역에서부터 가장 높은 음역을 아우르며 등장한다. B부분에서는 중음주법이 등장하는 패시지가 많아진다. 특히 중음주법 안에서 ‘완전 5도’가 중요하게 사용되며, 4분의 1음을 단위로 하는 미분음계가 등장한다.

C부분은 ‘매우 강하고 성난 채로’(Sehr stark und wütend)라는 지시어가 적혀 있으며 지금까지의 흐름 중 가장 커다란 음량으로 연주된다. 무엇보다도 강하게 연타하는 최저음 C와 번갈아 나오는 고음의 중음들이 그 자체로 강렬한 제스처를 만들어 낸다. D부분에서는 ‘고요하게’(Ruhig)라는 지시어와 함께 지극히 정적인 짜임새로 전환된다. G음이 지속음으로 계속되는 가운데, G음 위로 겹쳐져 등장하는 느린 글리산도 패시지가 세밀한 미분음정을 조합해 낸다. 이어서 기존의 요소들이 변형을 동반한 채 재현되는 A', B', C', D'섹션이 이어진다. 

주목할 점은 작곡가가 첼로를 다루는 방식이다. 작곡가는 첼로가 가장 자연스럽게, 그리고 비르투오소적으로 소리를 내는 방법을 알고 있으며, 다양한 현대주법과 미분음 및 중음주법을 수없이 사용함에도, 연주자의 제스처나 전체적인 음향이 경직되지 않도록 능숙하게 조절하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B부분의 주요 아이디어인 ‘중음’은 첼로 현의 음정간격과 동일한 5도를 중심으로 하며, D부분에서는 G개방현과 C현의 글리산도를 결합시킨다. 응축된 에너지를 보여주는 C부분에서는 연주자가 충분히 표현 가능한 범위 안에서 ‘격렬함’을 이끌어 내기에, 언뜻 코다이의 첼로 독주곡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동시에 이 작품은 거시적인 흐름을 통해 “뭔가 스스로 정리되어 나가는, 조율되어 나가는” 혼잣말이 가진 일종의 수행(遂行)적 효용을 표현하고 있다. 이를테면 이 곡의 인트로에는 앞으로 등장할 A~D섹션의 모티브를 조금씩 등장시키고 있으며, 각 섹션의 후반부에는 ‘아직은 그 형태를 분명히 알기 힘든’ 이후 섹션의 모티브가 여럿 ‘선행하여’ 등장한다. 이와 같은 구성은 당장은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혼잣말들이 뒤섞여 나오다가, 어느새 그것들이 분명한 형태로 인지되는 흐름을 닮았다. 유사한 맥락에서, 개방현을 튕기며 조율을 하는 듯한 모티브가 곡의 최종부에서 등장하는 것도 흥미롭다.

한편 ‘혼잣말’ 시리즈의 두 번째 곡에서는 혼잣말에 대한 피드백이 라이브 일렉트로닉으로 등장하여 두 사람의 대화를 비유하고, 세 번째 곡 <혼잣말 3>(2019)에서는 세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며 벌어지는 충돌과 조율과정을 첼로 세 대로 그리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네 번째 곡은 소규모 앙상블, 다섯 번째, 여섯 번째에서는 오케스트라, 그리고 이후의 곡에서는 첼로 독주와 오케스트라로 편성이 점차 확대된다. 각각의 곡 안에서 첼로는 주인공으로 연행(演行)하며, 시리즈 전체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통합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종교적 경지로까지 확장시키는 서사를 갖는다.

결과적으로 작곡가는 자신이 가장 잘 다루는 악기를 페르소나로, 그리고 자신이 고안한 고유의 구성과 형식을 토대로, 지극히 많은 이들 앞에서 목소리를 내고 누군가를 설득하고자 하는 욕망을 10곡의 흐름 안에 투영하고 있다. 혼잣말이 위력을 발휘하는 시점이 금방 도래하지 않으며, ‘긴 시리즈’로 추상화되어 ‘얼마간의 시간과 노력’을 거친 후 도달된다는 점도 흥미롭다.

따라서 <…혼잣말 1>을 지극히 자전적이고 징후적인 작품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맥락 안에서, 직접 경험해 보지 않아 알 수 없는 그의 성격이나 작은 버릇, 행동양상까지도, 첼로의 미세한 제스처 안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 기시감이 드는 것이다.

 

작곡가 김신과의 대화 2020년 2월 1일 오후 2시 커피빈 동대입구역점

이민희: 제목이나 테마가 있는 표제음악이 상당수를 차지합니다. 최근까지의 작업 안에서 이런 표제음악에 착수해서 작업을 이어 나가는 과정이 궁금합니다.

김신: 곡을 쓸 때 곡의 컨셉을 가장 먼저 잡습니다. 특히 최근에 작업하는 곡은 표제음악이 90프로입니다. 이런 표제음악을 쓰려면 스토리가 있어야 하죠. 그래서 크게 보았을 때에는 주제를 잡고 스토리를 짠 다음에, 그 스토리를 음악의 구조로 잡습니다. 이 상태에서 음악 구조를 더 세분화시키기 위해서는 그 ‘스토리’를 구체화하게 됩니다.

따라서 제 작업의 시작은 마치 소설가와 같아요. 이야기 안에서 중요한 포인트를 잡아 나가는 것부터 시작하죠.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면 등장인물을 설정하고, 철학적인 이야기라면 철학적인 주제에서 중요한 개념을 선택하죠. 이런 개념이나 설정을 음악으로 변환시키는데, 이것들이 리듬패턴이 될 수도, 어떤 화성이 될 수도 있어요.

이렇게 음악외적인 주제를 음악적으로 변화시킬 때 포인트가 될 수 있는 지점, 즉 인물이라든가 주요개념이라든가 하는 것은 곡마다 다릅니다. 그리고 이런 요소를 중심에 두고 음악적인 연결을 시도합니다. 만약 이런 요소를 대비시켜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효과적인 대비가 될지 고민하고, 그래프를 그려 보든가 이걸 다시 글로 써 본다든가 하는 거죠. 이렇게 특정 요소를 음악적으로 변환시키고 나면 곡 쓰는 것 자체는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이민희: 말씀하신 방법대로라면 작업에서 책이 중요한 영감의 근원이 되는 것인가요?

김신: 물론 책을 참고로 합니다. 하지만 책을 참고로 하면 그 책의 내용 그대로 가게 되는 측면이 있어서, 책을 그대로 보는 것은 사실 많이 하는 방법은 아닙니다. 대신 저는 어떤 대상을 바라보며, 그것에 대한 스토리를 제가 직접 만들어 봅니다. 특히 어떠한 상황을 마주하고 ‘왜’라는 질문을 많이 던지는 것 같아요. 왜 저것이어야만 하는 거지? 왜 이래야만 하지? 이런 식으로 계속 생각하다 보면 특정한 주제에 대해 저만의 상상이 떠오릅니다.

예를 들어서, 아이의 웃음소리가 있으면, 저 아이는 왜 웃는 것이며, 저 웃음은 어떻게 끝날까? 그리고 여기에서 좀 더 넘어가면, 저 아이는 과연 웃고 싶어서 웃는 것일까? 만약 저 아이가 웃고 싶어서 웃는 것이 아니라면 아이의 속마음은 무엇일까? 이런 방식으로 스토리의 기승전결을 직접 구상합니다.

그래서 저는 미술작품을 가지고 작업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미술작품은 서사적이지는 않잖아요? 주로 한 장면만을 보여주니까. 그러면 저는 미술작품을 보며 그 장면의 전후사정을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미술작품을 포함한 전후의 모든 흐름을 제 음악의 소재와 줄거리로 삼습니다.

이민희: <…혼잣말 1>(2016/2017)을 처음 쓰게 된 계기와 착수과정이 궁금합니다.

김신: 혼잣말이 갖는 영향력에 대해서 생각을 했어요. 어떤 사상이나 어떤 종교. 이런 것은 다 무엇으로부터 기반하는 걸까? 라는 생각을 한 거죠. 사상이나 종교가 처음부터 대단한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다 혼잣말로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민주주의나 사회주의 같은 것들도요. 즉, 마르크스 같은 사람들이 처음부터 몇 백 명의 동료들을 데리고, 어깨동무 하듯 끌고 나갔을까? 이 사람도 처음에는 혼자 생각을 했고, 정말 별 게 없지 않았을까? 걸어 다니면서 혼자 생각하고, 잠자기 전에 혼자 생각했던 것들을 실현시켰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의 사상이 된 것이 아닐까?

어떤 사람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혼자’ 고민을 하고, 중얼거리면서 정리를 하고.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면서 그렇게 한 사람의 의견이 두 사람의 의견이 되고, 두 사람의 의견이 단체가 되고 세계적인 의견이 되지 않았을까? 이런 방식으로 혼잣말이 ‘성장’해 가는 과정을 연작을 통해서 그리고 싶었어요.

실제로 혼잣말을 종종 하는 편입니다. 제 스스로 감정의 정리가 필요할 때가 있거든요. 이 곡의 경우에도 혼잣말에 대해 써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제 혼잣말을 녹음해봤어요. 혼잣말을 하다 감정이 격해지는 것까지 전부 녹음했죠. 나중에 이걸 들어보니 재밌기도 하고 말도 안 되는 것도, 과격한 것도, 차분한 것도 있더군요. 그리고 저는 이것을 바탕으로 작품을 기획했습니다. 즉 제가 실제로 한 혼잣말의 흐름을 곡의 구조 및 순서로 잡은 것 같아요. 작품 안에서 각각의 요소인 A, B, C, D의 등장순서는 혼잣말 녹음에서 따온 거예요.

이민희: 이전 시대의 작곡가들 안에는 ‘제3세대 작곡동인’ 같은 것들이 있었죠. 21세기의 작곡가로서, 작곡가의 세대구분이나, 그에 대한 의식이 있으신지요?

김신: 저는 그 기준으로 따지면 ‘제5세대’정도일 것 같네요. 3세대는 한국적인 것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면, 4세대 같은 경우는 독일 등지의 아방가르드 음악에서 영향을 받았고, 3세대보다는 한국적인 것이 빠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 같은 80~90년대 생 작곡가의 경우는 아방가르드 음악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을 보여주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아방가르드 음악을 쓰는 사람이 있지만, 이전까지는 아방가르드가 아닌 음악을 쓰는 것을 꺼려했죠. 무조건 특수주법이 들어가야 하는 것처럼요. 반면 제 또래의 젊은 작곡가들의 음악에는 듣기 좋은 소리들이 들어가 있어요. 그리고 아방가르드한 음악 그 자체를 쓰려고 한다기보다는, 그런 음향을 일종의 효과로서 차용하는 음악이 등장하는 것 같아요. 특히 제 생각에, 외국에서 최근 한참 떠오르고 있거나 활발히 활동하는 작곡가 중에서는 듣기 불편한 음악을 쓰는 분은 드물어요.

사실 주변의 다른 작곡가와 이야기를 해 봐도, 독일의 표현주의를 계승했다고 할 수 있는 기괴한 음악이 지금까지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대부분 의문을 표합니다. 다만, 저는 요즘 세대 작곡가들의 음악이 듣기는 좋으면서도 음악 안의 체계 등은 고수를 하는 경향을 갖는다고도 생각합니다. 굳이 말하자면 베베른과 베르크의 차이랄까요? 둘 다 쇤베르크의 제자였기에 쇤베르크의 영향을 받았지만, 베베른은 논리적인 부분을 강조한 반면, 베르크는 12음 기법을 사용하면서도 듣기 아름다운 바이올린 콘체르토를 써냈잖아요. 그런 느낌입니다.

스펙트럴리즘도 언급할 수 있겠네요. 많은 작곡가들이 스펙트럴리즘 이후에는 배음을 자유롭게 쓰잖아요? 그런데 배음을 사용해서 곡을 쓰면 곡이 소리가 좋을 수밖에 없어요. 저 역시도 배음에서 많이 아이디어를 얻어요. 앙상블이고 두 대 이상의 악기가 들어가면, 최소한 한 부분 정도는 배음을 사용합니다. 이런 저의 태도를 굳이 이야기하자면, 협화적인 것을 사용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겠네요.

이민희: 젊은 작곡가로서, 자신의 곡을 듣는 청중에 대해, 그리고 그들과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김신: 음악적인 지식이 많지 않은 청중들에게 제가 의도하는 것을 백 프로 이해해 달라고 하는 것은 욕심이죠. 하지만 제 곡을 들으며 청중이 어떤 느낌을 받고 그것에 대한 상상력을 개인적으로 펼쳐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예를 들어, 제가 이 첼로 솔로곡을 “혼잣말”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청중 누군가는 혼잣말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당신에게는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냐고 물어보고 싶어요. 언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청중으로부터 오는 창의적인 생각 자체가 값지다고 생각하기에, 저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굳이 이해시키려고 하기보다는.

따라서 제가 염두에 두고 있는 이상적인 청중은 딱히 없어요. 자발적으로 공연에 오고, 제 음악을 듣는 모든 이가 제 작품의 청중입니다. 다만, <…혼잣말 1> 같은 작품은 사실상 현대음악이라는 카테고리로 쓰인 것이고, 세밀한 분석이 필요하죠. 솔직히 말해서 이 첼로 독주곡이 내림나장조 곡이었다면 애초에 특정 음악회에서 공연되지 않았겠지요. 세일가곡 콩쿠르나 아가페 교회음악 콩쿠르에서 썼던 곡처럼, 딱 들었을 때 좋은 곡과는 다른 유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제 곡의 ‘특정 카테고리’에 대한 청중은 음악적 식견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그러나 결과물 자체는 누구든지 들어주면 좋겠습니다.

 

글 이민희 음악평론가, “김신 <…혼잣말 1>”, 『독주곡: 사고와 신념의 상』, 서울: 모노폴리, 2020.10.24.  

 

작곡가 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