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임승혁 [비평과 해석사이] 시리즈 중

2023. 12. 3. 00:46

임승혁(1978-)은 추계예술대학교와 독일 자브뤼켄 음악대학에서 작곡을, 독일 쾰른 음악대학에서 전자음악 작곡을 공부했으며, 박인호, 테오 브란트뮐러, 미하엘 바일을 사사하였다. 현재 ISCM, ACL-Korea, 창악회, 전자음악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늘 변화하는 작곡가를 추구하며, 오디오비주얼, 라이브일렉트로닉스를 비롯하여 어쿠스틱 음악을 넘나드는 다양한음악적 작업물을 선보인다. 최근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동시대 작곡가 중 한 사람이다.

 

아이디어에 대한 집요한 추적과 이를 통한 음악적 성찰

 

임승혁은 어쿠스틱 음악에서부터 전자음악까지, 전자음악 분야에서는 실시간 라이브 오디오비주얼에서부터 테이프음악까지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작곡가다. 음악적 아이디어나 파라미터에 대한 엄격한 제한을 바탕으로 참신한 결과물을 도출하는 작업이 특징이며, 간결한 제목을 바탕으로 해당 개념의 속성을 집중적으로 탐구한다. 이를테면 유학시절부터 시작되어 2021년 다섯 번째 작품을 선보인 ‘짧아짐’ 시리즈, 2019년도에 진행했던 ‘대면’ 시리즈 등은 하나의 아이디어를 다양한 편성을 통해 여러 편의 음악으로 탐구하는 작업으로, 이외에도 ‘테’(Te), ‘틀’(Framing), ‘간섭’(Einmischung) 등 추상적인 제목을 갖는 수많은 작업이 존재한다. 특히 2012년도부터 2021년까지 작곡된 모든 곡들은 각기 다른 앙상블의 조합으로 되어 있으며, 특정 개념을 중심으로 전자음악의 원리, 기술, 미학 등을 파고들어 그것을 심도 높게 고민하는 것들이다. 이런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엄격하고도 자유로운 방식으로 집요하게 추적하고, 이를 통해 음악적 성찰을 이끌어내는 과정이 흥미롭다.

아이디어에 대한 집요한 추적

간결한 제목을 가진 임승혁의 작업들은 해당 아이디어를 끝까지 추적한다. 이를테면 ‘짧아짐’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되는 작업은 ‘딜레이(delay)가 짧아짐’이라는 단일한 아이디어를 계속해서 고민한다. 전체 곡의 세팅과 형식, 진행 방향에 있어서 지배적인 통제요인은 ‘딜레이’라는 기술 안에서 이뤄지며, 이는 곡의 편성에 따라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하지만 이러한 ‘제한’이 전체 음악을 단조롭게 만들지는 않는데, 사실상 ‘딜레이가 짧아짐’이라는 아이디어만 제시되어 있을 뿐 그 이외의 음악적 요소들, 이를테면 첫 번째 프레이즈에서 라이브 악기의 연주가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야 하는지, 그리고 해당 악기의 연주 안에 스포르잔도가 포함될 것인지 등은 자유롭게 구성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면성은 결과적으로 임승혁의 작업을 고전적인 형식들, 이를테면 ‘푸가’ 등과 같은 작법과 연결시키며, 애초에 음악이 만들어내는 구성적 속성이란 것이 특정한 음악적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집요하게 구축됐던 것이었음을 다시금 상기케 한다. 예컨대 푸가의 경우 복잡한 외형을 갖고 있으며, 형식상으로 완전한 구조를 띄고 있지만 ‘주제가 반복해서 등장하며, 후반부로 갈수록 주제의 등장 빈도가 조밀해진다’는 대전제만을 유지한 채, 모든 선율과 음악적 요소를 비교적 자유롭게 구성하는 방식인 것과 마찬가지다. 때문에 임승혁의 작업 중 <테>(Te, 2017)는 푸가를 재해석한 것으로, <메모리>(Memory, 2019)는 일종의 ‘변주곡’이라는 형태를 현대적으로 변용한 것으로 다가온다.

청귀가능한 구조의 성취

이렇게 만들어진 임승혁의 작업들은 결과적으로 뚜렷한 형식감을 가지게 되는데, 주목할 것은 이것들의 청취 상의 특이성이다. 이를테면 ‘기억’ 혹은 ‘반복’이라는 아이디어로 구성된 작업을 듣는 청중들은, 곡 안에서 해당 아이이어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그리고 해당 사항을 중심으로 어떠한 음악적 요소가 전개되는지를 귀로 듣고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전체 곡의 흐름에 있어 ‘주요 아이디어’가 분명하며, 청자는 그것을 기준으로 다른 음악적 요소의 조합과 축적을 스스로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상 수많은 현대음악들이 그 안에 너무도 많은 정보를 담고 있기에 청자들이 이를 수월하게 청취할 수 없는 것은 물론, 그 의미파악에 실패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더 나아가 임승혁의 작업은 무대 위에 올라가 연주하는 연주자의 비르투오시티, 실시간으로 구현될 이미지의 형태, 잔향의 정도를 포함한 모든 요소들을 ‘사전에’ 모두 통제하고, 최대한 우연적으로 등장하는 요소를 배제한다. 실제로 많은 전자음악 작곡가들이 소프트웨어를 자유롭게 조작하다가, 혹은 의도치 않게 툴을 건드려보다가 그럴듯한 결과물을 얻는 것과 달리, 임승혁은 작업을 하는데 사용되는 소프트웨어와 툴에 대한 비교적 완전한 이해와 해당 도구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결과에 대한 철저한 조작을 기본으로 한다. 이는 임승혁의 작품이 모호하거나 산재된 형태의 정보로 다가오지 않으며, 특정한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확인가능한 음악적 요소들만을 청중에게 명확하게 전달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임승혁의 곡들은, 음악회 현장에서 청취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을 갖게 된다.

 

<바이올린과 라이브 오디오비주얼 미디어를 위한 ‘짧아짐 V’>

복제‧재생의 순환과 라이브니스

<바이올린과 라이브 오디오비주얼 미디어를 위한 ‘짧아짐 V’>는 ‘딜레이가 짧아짐’이라는 아이디어로 작곡된 일련의 시리즈 작품 중 하나로, 독주 바이올린과 라이브 오디오비주얼 미디어를 위한 곡이다. I~V에 이르는 각각의 작품은 라이브 오디오비주얼 미디어를 활용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타악기’(짧아짐 III) 혹은 ‘생황 및 첼로’(짧아짐 II) 등 각각 등장하는 어쿠스틱 악기의 종류가 상이하다.

시리즈에서 핵심적인 아이디어인 ‘지연’(delay) 기술은 전통적인 음악에서부터 전자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는 시간의 흐름에 관한 조작 방법 중 하나다. 특히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기반하여 음악의 시간 축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게 된 현재, ‘지연’ 테크닉은 독특한 유형의 음악적 결과물을 만들어내게 되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짧아짐 V>의 무대 위에는 독주 바이올리니스트가 한편에 서 있으며, 뒤로는 두 개의 프레임으로 분리된 스크린이 설치된다. 독주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를 하면 그 소리가 프로그램을 거쳐 변형된 채 실연과 동시에 재생되며, 스크린에는 연주자를 녹화한 영상이 실시간으로 상연된다. 음향적 조작은 ‘딜레이’를 중심으로 하되, 뒤따르는 소리의 출현 간격, 음향의 변조 여부, 연이어 등장하는 성부의 개수 등이 변형되어 풍부한 음향과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다만 각각의 음악적 요소 및 파라미터에 대한 구체적인 조작은 엄격하게 통제된 상태에서 진행되는데, 이를테면 성부의 확장과 겹쳐짐이 산술적으로 늘어나며, 해당 성부의 개수만큼 이미지가 생성되어 스크린에 투사되는 식이다.

따라서 관객은 바이올린 실연과 그 뒤를 따르는 음향의 관계를 주선율과 그 성부의 모방으로 청취하거나, 대조적인 모티브의 겹침으로, 더 나아가 돌림노래와 같은 폴리포니 사운드로 인지할 수 있다. 또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무대 왼편에 서 있지만, 딜레이를 거친 소리는 오른편에서 들려오거나 객석의 구석에서부터 소리 나는 것과 같은 공간적 효과를 느낄 수 있는데, 이 모든 것이 통합되어 풍부한 시청각적 경험을 만들어낸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관객이 작품 속 선율의 변형이나 반복, 성부의 구성, 짜임새의 레이어 등을 투명하게 청취할 수 있는데, 이와 같은 ‘청취 가능한 구조’(audible structure)는 연주자의 신체, 무대 뒤에 투사되는 이미지, 실연되는 소리, 전자적으로 조작된 소리 등 무대를 이루는 네 가지 요소를 명확하게 인식함으로써 가능해진다. 이를테면 연주자는 스피카토, 강한 비브라토, 콜 레그뇨 바투토(col legno battuto), 브릿지 위에서 소리내기 등 음향적‧시각적으로 뚜렷하게 구분되는 연주 방식을 여럿 번갈아가며 들려준다. 그리고 이러한 기법은 시차와 그 잔향을 다채롭게 설정한 딜레이 효과와 결합된다.

즉 무대 위의 바이올리니스트는 현을 두드리고 있지만 실제 관객의 귀에는 현을 강하게 긋는 소리가 겹쳐 들린다. 이는 ‘현재 연주되는 소리’와 ‘직전에 연주됐던 소리’를 명확히 구분하게 한다. 또한 고음역대에 미세한 노이즈를 삽입하거나 잔향을 덧입히는 등 그 음정이나 기법을 분간할 수 있는 수준에서 음향을 변조했기에, 앞서 나왔던 바이올린의 모티브를 기억하고 그것의 변형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주목할 점은 이 작품이 주로 사용하고 있는 ‘딜레이’라는 기술에 관한 것이다. 사실상 딜레이는 소리를 순간적으로 ‘저장’하고 이것을 다시 ‘재생’하는 기술로, “공연의 유일한 생명은 현재”에 있으며, “공연은 저장되고, 녹화되고, 기록될 수 없으며, 반복적인 재현의 순환 체계에 참여할 수 없다”(Peggy Phelan, 1993)고 정의되는 공연예술의 현전성(liveness)에 완전히 배치된다. 이런 상황에서 소리의 순간적인 저장과 복제에 둘러싸인 바이올리니스트의 ‘라이브 무대’는, 그 자체로 ‘라이브니스’를 만들어내는 것인지 아니면 복제와 재생의 순환 안에서 라이브니스를 ‘퍼포먼스’하는 것인지, 라이브니스를 ‘전복’시키는 것인지에 대한 애매모호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어디까지가 ‘실연’이고 어디부터가 ‘녹화된 것’인가라는 질문을 넘어, 어디까지가 ‘실재’이고 어디부터 ‘가상’인지, 그리고 우리에게 쏟아져 들어오는 수많은 시청각 정보의 홍수 중 ‘실시간’이라는 속성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짧아짐 V>는 ‘실시간 라이브’라는 퍼포먼스 방식을 비틀고, 테크놀로지 그 자체에 대한 깊은 성찰로 청중을 이끄는 매혹적인 작품이 된다.

 

작곡가 임승혁과의 대화  2022년 8월 2일 오후 1시 줌 인터뷰

이민희: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수없이 등장하는 전자음악의 영역에서는, 의외로 ‘우연적인 요소’가 많이 활용되는 것 같습니다. 나도 알지 못했던 조작 프로세스를 소프트웨어가 행함으로써 ‘우연히’ 신기한 음향을 얻는 식으로요. 전자음악이라는 영역 안에서 ‘우연성’과 ‘통제’라는 두 가지 극단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임승혁: 말씀하신 내용이 ‘전자음악’ 분야에서 더 고민해 봐야하는 지점인 것은 맞습니다. 우리가 어쿠스틱 악기를 이용한 곡을 쓸 때를 생각해보면 그 차이가 명확해 져요. 내가 과연 어디까지 바이올린에 대해서 공부하고 바이올린 곡을 써야 하느냐의 문제거든요? 일단 바이올린이 어떤 음정으로 구성이 되어 있고, 어떤 특수주법이 사용되고 있으며, 그 소리가 어떤지 테스트를 하잖아요? 그런데 과연 전자음악에서는 이와 유사하게, 바이올린의 테크닉을 이해하는 정도의 사전작업이 어디까지인지가 애매모호한 경우가 많습니다.

바이올린 곡을 쓰기 위해서 바이올린을 직접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바이올린이 소리를 내는 방식에 대한 물리적인 이해가 필요할 뿐, 나무를 직접 깎아 보지는 않죠. 하지만 전자음악으로 가게 되면, 컴퓨터를 활용하는 이 영역 안에서 과연 어디까지 파고들어 그 테크놀로지를 이해하는 것이 적절한지 아리송하죠. 나무를 깎는 영역이 과연 컴퓨터를 활용한 음악 안에서는 어떤 단계일까요? 피치카토의 원리를 이해하고 그 소리 내는 방식을 아는 것이, 컴퓨터를 활용한 작업 안에서 어느 정도의 프로세스를 이해하는 것일까요?

사실 전자음악, 혹은 컴퓨터음악이라고 부르는 지점에서 ‘우연성’을 어느 정도로 활용하느냐의 문제는 순수하게 ‘작곡가의 선택’ 같습니다. 너무나 많은 소프트웨어들이 발명되었고, 그 안에서는 너무도 쉽게 소리를 만들어 내거나 그럴듯한 효과를 자동으로 생성해 주는 것들이 많습니다. 전자음악 작곡가의 경우, ‘과연 어디까지 어떻게 작업을 해야 그것이 내 작품인가’라는 고민을 매 순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기술의 발달 초기에는 컴퓨터나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우연성’이 일종의 음악적 실험으로 비춰질 수도 있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러한 기술들은 이미 등장한지 오래되었고, 우연성의 시대는 이제 완전히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프로그램에 소리를 넣고, 나도 잘 알지 못하는 툴이나 프로세싱을 여러 번 돌려 ‘어 이 소리 신기하네?’와 같은 수준으로 만들어내는 작업들은, 이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이미지를 활용한 작업의 경우에도 비디오 작업을 남에게 수주했을 때, 결과적으로 얻게 된 오디오비주얼 작품이 과연 ‘나의 작품’이냐는 것도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민희: 말씀하신 방식대로라면, 선생님께서는 전자음악을 작곡하실 때 기본적으로 모든 요소에 대한 ‘통제’를 기본으로 하며, 결과물에서 발생할 수 있는 우연적인 요소를 최대한 배제한다고 생각해도 될까요? 그리고 영상을 활용하는 작업에 있어서도 모든 이미지를 스스로 만든다고 이해하면 될까요?

임승혁: 네 그렇습니다. 저는 가능한 모든 지시사항과 연주자가 행해야 할 내용을 악보에 정확히 적어두며, 그러한 결과로 나타나게 될 소리나 영상의 형태까지도 모두 통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제 의도와 맞는 연주가 구현된다면 그 과정 안에서 ‘우연히’ 나타난 요소는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의 비르투오시티 또한 미리 예상 가능한 범주에서 작곡 과정 안에 계획되어 있습니다.

이민희: 그렇다면 전자음악을 라이브로 구현하는데 있어, 어쿠스틱 앙상블의 음악회 준비에 비해 더 고단하거나 기술적으로 구현이 어려운 부분이 있을까요? 언뜻 생각해보면 다양한 기기와 스피커를 설치하는 것 등이 보통 일은 아닐 것 같아서요.

임승혁: 저는 그 두 가지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피아노 삼중주를 실연으로 준비할 때에는 바이올린을 왼쪽에 놓는지, 오른쪽에 놓는지 이런 정보는 정해져 있다고 해도 각각의 악기를 어느 정도의 간격으로 벌려서 배치할 것인지는 작곡가가 판단해야 하죠. 현악사중주의 경우에도 제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을 양쪽 끝으로 배치할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해야 합니다.

사실 어쿠스틱 악기로 이뤄진 공연이나 전자음악으로 진행되는 공연이나, 둘 다 홀에 의존해서 그때의 상황에 맞추어 실연을 준비하는 것은 동일합니다. 다만 전자음악의 경우에는 홀에서 스피커를 몇 개 사용할 수 있는지, 위치는 어떤지 등을 사전에 체크를 해야 하는 것이고요. 이 과정에서 홀의 음향 같은 것은 물론 당일에 가서 달라질 수는 있어요. 그렇지만 이것은 어쿠스틱 앙상블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피아노 등의 잔향이 생각했던 것과 다른 경우가 있을 수 있는 것이죠.

즉 전자음악으로 라이브 공연을 준비할 때나 어쿠스틱 공연을 준비할 때나 홀의 상태나 잔향, 여러 가지 조건을 충분히 고려하여 작곡단계부터 반영하는 것은 당연하며, 이를 통해 실제 음향의 구현에 있어서의 어려움을 최소화해나갑니다. 요즘에는 헤드폰을 착용하면 마치 가상의 공간에 있는 것처럼 구현해주는 소프트웨어도 있습니다. 방 안에 20채널의 스피커를 놓을 순 없지만, 그런 헤드폰을 끼고 가상의 공간에 설치될 20채널의 스피커 소리를 미리 체크할 수 있습니다. 어찌됐든, 작곡가는 공연이 벌어질 그 환경에 맞추어 최선을 다해 곡을 쓸 뿐입니다.

이민희: 현대음악 안에서 전자음악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임승혁: 전자음악의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을 것 같아요. 다만, 현대음악을 다시 ‘전자음악’으로 구분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전자음악은 그냥 작곡가가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작곡 도구나 편성, 즉 작곡의 수단일 뿐입니다. 따라서 ‘전자음악’이라는 것은 따로 배워야 하는 세부전공이라기 보다는, 모든 작곡가들이 당연히 다룰 수 있어야 하는 영역이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작곡을 하는 사람으로서 화성학을 모른다는 것, 현대음악을 한다는 사람이 쇤베르크의 음렬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잖아요? 어떤 작곡가가 총음렬을 갖고 곡을 쓰지 않는 것과는 별개로, ‘총음렬’이라는 테크닉에 대해서 모르지는 않죠. 전자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작곡가 개인의 취향이나 방향성과는 상관없이, 꼭 익혀야 하는 테크닉이고 알아야 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민희: 예술과 기술의 관계, 혹은 21세기 현대음악의 흐름에 대해서 말씀해주실 부분이 있으신가요?

임승혁: 분명한 것은 예술가들은 기술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을 때, 이것을 가지고 가장 먼저 작품을 만드는 것도 예술가들이죠. 그런데 1990년대 이후가 되면서 수없이 많은 기술이 상업적인 요소와 결부되어 등장하다 보니, 조금 상황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즉 최근의 기술과 미디어의 발달은 너무나 자본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작곡가들이 발버둥 쳐도 대형 아이돌 기획사가 만들어내는 뮤직비디오를 따라 가기 힘듭니다. 자본력 때문이죠. 몇 십 년 전 슈톡하우젠(K. Stockhausen)은 헬리콥터를 여러 대 띄워서 하는 작품을 선보였죠? 이제는 이런 것이 불가능합니다. 이를테면 최신 테크놀로지의 하나인 여러 대의 드론을 활용해 작업을 하거나, 그 이상의 기술을 사용하는 음악을 하려고 해도, 전자음악 작곡가에게 그런 새로운 미디어를 활용해서 실험을 해보라고 지원해주지 않죠.

별개로, 저는 지금 시대가, 일종의 현대음악의 낭만주의라는 생각을 해요. 말하자면 마치 그 이전 시대에 화성학이 정립되어서 이제는 작곡가의 자율성이 확보된 시기 같달까요? 예컨대, 3화음 체계 등이 익숙해지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 기간이 지나면 그걸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시대가 옵니다. 마찬가지로 현재 21세기는 소위 현대음악이 주는 긴장감이나 화성감 이런 것들이 익숙해져서, 그런 요소를 토대로 자유롭게 곡을 쓰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글 이민희 음악평론가, "임승혁, 바이올린과 라이브 오디오비주얼 미디어를 위한 〈짧아짐 V〉", 『전자음악: 인식과 소통의 감』, 서울: 모노폴리, 2022.10.22.

 

작곡가 임승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