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과 양영광 [비평과 해석사이] 시리즈 중
양영광(1982-)은 다양한 기법과 고유의 아이디어 그리고 전통적인 요소를 기반으로 치열하게 고민하는 젊은 작곡가다. 경원대학교 음악대학에서 작곡전공 학사, 오스트리아 모차르테움 국립음악대학에서 석사, 비엔나 국립음악대학에서 전자음악 및 작곡 최고과정을 졸업했다. 2019년 독일 바이마르 국제 작곡 콩쿠르 실내악 부문 1위를 비롯하여 다수의 콩쿠르에서 입상하였고, ISCM국제현대음악제, 범음악제, 대구현대음악제 등 국내외 음악제에서 작품을 발표하였다. 2019년에는 오스트리아 그라페네크 음악제의 위촉 작곡가로 선정된 동시에 지휘자로 데뷔하였다. 2021년 TIMF아카데미 작곡부문 위촉 작곡가로 작품을 발표했으며, 2022년 개인작곡발표회를 열었다. 현재 용인예술과학대학교에서 실용음악보컬과 조교수로 재직중이다.
수평의 시간과 여백을 다루는 작곡가
작곡가 양영광의 작품은 다양한 편성과 아이디어로 구성되어 있기에, 이것 전부를 특정한 카테고리나 단일한 특성으로 묶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사실상 그는 다채로운 음악을 통해 그때그때의 관심사를 성실히 반영하고 있는 터, 그럼에도 양영광의 최근 몇몇 작품에서 드러나는 공통적인 인상이 분명 존재한다. 첫째, 작품 속 시간의 흐름이나 진행이 수평적이고도 선적이라는 점, 둘째, 작품 전체가 비교적 긴 호흡으로 구성되며 그 안에 여백과 잔향이 주요하게 사용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징은 실제 곡 안에서 고유의 속성을 파생시키고, 작곡가 개인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게 한다.
수평적인 시간의 흐름
양영광의 작품 중 <움직임 속의 움직임>(Bewegtheit in der Bewegtheit, 2019)에서는 현악4중주가 헤테로포니적인 음향을 구성하며, 이런 흐름 가운데 불현듯 농현을 연상시키는 수평적이고도 두터운 소리의 흐름이 눈에 띈다. 이외에도 생황, 타악기 그리고 무(舞)를 위한 <공간 속 울림>(2022)에서는 서양음악에서 일반적인 규칙적인 펄스나 분할리듬 방식의 박자 진행을 사용하지 않으며, 계속되는 변박 혹은 자유로운 박을 등장시킨 가운데 동양적이고도 선적인 시간의 흐름을 보여준다. 특히 이런 흐름은 ‘장구’ 등의 전통 타악기가 등장해 시간축을 보강해줌으로써 완성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와 같은 수평의 시간적 흐름이 양영광 특유의 ‘긴 호흡’으로 구현되는 점이다. 이는 무용수의 춤과 함께 공연되는 <공간 속 울림>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작품 전체는 여러 개의 페르마타로 이따금씩 분절지점을 만들지만 본질적으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호흡으로 계속해서 흐르는 느낌을 만들어낸다. 더 나아가 2022년 8월 12일 열렸던 ‘양영광 작곡발표회’에서는 음악회 전체가 일관된 호흡으로 이어져, 한 시간 정도의 전체 음악회 러닝타임이 단일한 하나의 곡으로 인지될 정도였다. 이 경우 각 작품 안에서 등장하는 음의 밀도가 높지는 않지만, 긴 세션을 하나로 묶는 거대한 호흡의 존재로 인해 오히려 각 작품 청취 시 집중도가 높아진다.
여백을 만들고 또 채우는 방식들
양영광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여백이나 잔향을 작품 안에 포함시키고, 이를 적극적으로 음악적 요소로 부각시킨다는 점이다. 단순하게는 시간이 기재된 페르마타를 등장시키기도, 보다 적극적으로는 앙상블의 타격 이후 남게 되는 ‘잔향’을 다각도로 증폭하고 재조합함으로써 이를 행한다.
이렇게 여백이나 잔향에 집중하면서 자연스럽게 ‘음 밖의 음’을 많이 다루게 되고, 이는 결국 현대적 기법으로 섬세하게 구현되는 음향층을 만드는 것으로도 이어진다. 이를테면 현악기 앙상블에서는 술 폰티첼로를 비롯한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현대주법을 다수 사용하며, 이것이 앙상블 전체와 녹아들 때에는 또 다른 악기의 섬세한 다이내믹 및 악기법과 결합한다. 이런 방식으로 잠시 스쳐지나가는 바람소리나, 무언가 지나가고 난 뒤의 으슬으슬한 분위기의 여백 같은 것들이 음악적으로 표현된다. 더 나아가 작품 속 ‘여백’은 ‘무용’과 같은 음악외적인 요소가 작품과 결합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기도 한다.
한편 양영광의 작품 중 상당수는 국악기를 사용한 편성이며, 그 짜임새 등에 있어서도 전통적인 느낌이 배어나는 곡이 많다. 특히 박(拍)이나 장구, 양금 등의 국악기는 음향 그 자체로 서양악기와는 구분되는 ‘특수한 소리’를 들려주는데, 이를테면 대금, 생황, 양금, 장구, 타악기를 위한 <Sonus>(소리; 音, 2021)에서 그렇다. 이 작품에서는 악기들의 섬세한 프레이즈가 서로 결합하여 다양한 유형의 소리 다발을 만들어내는데, 사실상 난해한 느낌을 주는 전체 음향을 장구가 끊고 또 이어주며 특유의 시간진행을 만든다.
결과적으로 양영광의 최근 몇몇 작품은 하나의 긴 호흡을 갖는 선적인 시간을 보여준다. 음향의 경우 국악기를 포함한 다채로운 오케스트레이션을 통해 극히 미세한 소리까지 직조되고, 그 잔향을 충분히 듣게 하는 방식으로 제시된다. 수평의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동양적인 무언가 혹은 현대적인 오케스트레이션이 공존하되, 이것이 작품 속 여백과 잔향 안에 머무르는 식이다.
생황, 타악기 그리고 무(舞)를 위한 <공간 속 울림>(2022)
잔향 안에 결합한 소리와 신체
생황, 타악기 그리고 무(舞)를 위한 <공간 속 울림>은 2022년 11월 20일 강동아트센터 소극장 드림에서 초연된 양영광의 작품이다. 해당 콘서트는 젊은 작곡가들의 음악동인인 ‘음악오늘’의 열일곱 번째 음악회로서, 무용을 담당하는 창작그룹 괘념치와 무대 및 조명감독, 그리고 영상감독이 합세해 독특한 현장을 만들었다. <공간 속 울림>의 경우 무대 중앙에 생황과 타악기 주자가 위치하고 이들을 둘러싸고 핀 조명이 둥글게 켜진 가운데 이 조명이 만들어 낸 원 형태의 동선을 밟으며 두 명의 무용수가 즉흥에 기반한 춤을 추었다. <공간 속 울림>은 공연 당일 상당한 호응을 얻은 작품으로,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역동성과 이에 독특하게 맞물리는 음악이 매력적이다.
작품은 짐짓 ‘무’에서 시작한다. 여기에 최초의 소리로서, 전통 타악기 정주가 잔향을 남기며 힘차게 울리기 시작하고 이 쇳소리의 단 두 번의 타격과 함께 두 명의 무용수가 원을 그리며 돈다. 무용수의 움직임은 일단 이들이 내달리기 시작한 순간, 그것이 마치 쉽게 사라지지 않는 음악의 잔향처럼 계속 진행되고자 하는 에너지를 뿜는다. 그들의 움직임이 원심력을 만들어내듯, 동작이 활성화된 순간부터 무대 위 움직임과 그들을 둘러싼 소리의 잔향은 ‘살아있는 상태’로 인지된다.
정주의 소리에 이어 콩카의 타격이 등장한다. 정주와는 차이가 있는 짧은 음가의 새로운 소리가 또 다른 음향의 레이어를 만드는 것이다. 콩가는 ff에서 ppp를 거쳐 다시 fff로 바뀌는 과정, 그리고 느려졌다가 다시 빨라지는 등의 다양한 다이내믹 변이를 동반한다. 베이스 드럼의 경우 콩가와 리듬의 속성 및 흐름이 유사하되 보다 저음역을 담당한다. 관객은 타악기의 이와 같은 섬세한 연주를 무용수의 움직임과 함께 받아들이게 되는데, 이 지점에서 원을 그리며 돌고 있는 무용수가 자신의 움직임을 잠시 느리게 가다듬거나 이따금 멈추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면 이런 것들이 음향의 변화를 반영한 것처럼 느끼게 된다.
생황은 풍성하면서도 날카로운 음군을 들려준다. 이따금 불협의 화음덩어리가 클러스터처럼 여러 차례 소리를 낼 때에는 리듬적인 긴박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fppp에서 ppp, 그리고 p를 거쳐 ff 등 다채로운 다이내믹으로 전이되는 이 악기 특유의 ‘찰나’가 ‘호흡’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 무용수의 움직임과 결합해 도드라진다. 호흡에 기반한 음향들이 무대 위에 살아 있는, 숨을 헐떡이는 신체에 반응하는 것이다.
작품에는 마디 구분이 없으며, 중간중간 등장하는 초 단위의 페르마타가 이따금 음악의 흐름을 구분해준다. 새로운 섹션이 시작될 때에는 정주가 등장하는 경우가 많으며, ‘lunga’라고 이름 붙은 특수한 페르마타의 경우 소리의 잔향이 거의 사라질 때까지 멈춘 상태가 된다. 그럼에도 이런 멈춤은 ‘분절’처럼 느껴지지 않으며, 거대한 시간의 흐름 안에 존재하는 긴 호흡의 순간으로 다가온다. 여러 단위의 ‘쉼’ 이후에 등장하는 섹션들 중, 작품 중후반부에 등장하는 한 부분이 특히 인상적인데, 여기에서는 손바닥으로 베이스드럼을 치고 생황은 운지구멍에 바람을 불어 넣으며 전체 음향을 ‘바람소리’와 유사한 형태로 환기시킨다.
결국 이 작품은 정주, 콩가, 생황, 베이스드럼이라는 다채로운 악기의 프레이즈를 무용수의 ‘춤’이라는 렌즈로 확대하며, 관객은 무대 위 상들과 함께 소리의 모든 사그라짐과 생성, 여백과 계속됨을 입체적인 형태로 청취하게 된다. 물론 이런 청취가 가능한 것은 이 작품의 음향적 흐름이 오롯이 호흡과 여백에 기반하며, 소리얼개가 그 자체로 ‘공간’을 그리고 있기에, 그리고 작품 속 음조직이나 리듬, 소리의 배열이 쉼을 동반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예컨대 음들은 쏟아지는 듯한 소리오브제로 시간 안에 부유하며, 무용수들은 그들의 움직임으로 이를 건드리고 증폭시킨다.
긴 호흡으로 진행되던 음악은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 다시 정주 소리로 마무리된다. 무대 위의 무용수들은 이 소리의 잔향이 다 사그라지는 꽤 긴 시간 동안 몸을 움직이다가 아주 뒤늦게야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공간 속 움직임, 여백의 숨쉬기, 소리와 신체의 살아있음이 드디어 자연스러운 형태로 숨을 멈추는 것이다.
작곡가 양영광과의 대화 2023년 2월 21일 오후 4시 광화문 토즈
이민희: 처음 작품을 구상하고 작곡을 시작할 때의 절차나 과정이 궁금합니다.
양영광: 두서없이 주제를 여러 가지 정해 놓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을 서로 연관시켜보기도 하고, 이 과정에서 이야깃거리가 생기면 거기에서 대략 글을 써 봅니다. 글은 한 장이 될 수도 있고 여러 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소리에 대한 글이라면 ‘소리란 무엇인가?’, ‘어떤 소리가 있는가?’ 이런 주제를 써 보기도 하고, 어떠한 소리가 있을 때 그 울림이 서로 부딪혀서 나는 소리인지, 아니면 가만히 있을 때 나는 소리인지, 소리를 대상으로 어떤 상상을 할 수 있는지, 상상한다면 그 소리는 무슨 소리일지 등. 이렇게 여러 가지 질문을 여기저기에서 조금씩 떼어내면 이야기가 됩니다. 욕심이 나면 무언가를 덧붙이기도 하죠. 그렇게 구성과 형식에 다다르기까지의 이야기 구상을 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친 후에야 악기편성으로 넘어갑니다.
이민희: 통영에서 발표했던 대금, 생황, 양금, 장구, 타악기를 위한 <Sonus>의 경우, 음향적으로 굉장히 섬세하다는 느낌입니다. 해당 작업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 부탁드립니다.
양영광: <Sonus>는 기본적으로는 소리에 대한 연구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소리라는 존재 자체가 그 곡 안에 완전히 녹아들었다기보다는, 연구대상인 것임을 보여줍니다. 소리에 대한 무언가가 아직 완벽하게 제 것이 된 것 같지는 않아서입니다. 어느 순간 제가 원하는 지점이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을 하지만, 아직까지는 소리의 무언가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인 것 같아요. 보통 콘서트홀에 가면 14-17번열이 가장 소리가 듣기 좋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소리를 연구하시는 분들의 의견이고, 연주회를 자주 찾는 분들은 그 위치가 보다 앞에 위치할 수도 있고, 혹은 작품마다도 다를 수 있습니다. 제 음악에 대한 연구도, 그리고 통영에서 발표한 <Sonus>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정확한, 즉 제가 선호하는 소리에 대한 자리를 찾지 못한 상태에서, 마치 어둠속에서 소리를 찾고 소리의 잔향이나 공간성 이런 것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쓴 곡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민희: 특정 결과물을 고정해둔다기보다는, 심지어 이미 결과물로 무대에 올라온 작품이 있다 하더라도 본인이 상상하는 소리를 계속해서 찾아가고, 상상하는 과정 안에 작곡이라는 행위가 배어 있는 느낌입니다. ‘소리’를 탐색하는 과정을 조금 더 설명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양영광: 소리 실험을 해보죠. 그렇지만 집에 모든 악기들이 전부 다 있어서 소리를 모두 울려보고 그렇지는 않잖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소리를 어쨌든 만들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계속해서 상상을 합니다. 이런 느낌일까? 저런 느낌일까? 하고요. 아무 음이나 대충 쓰는 것이 아니라, 대략 이 음을 쓰면 이런 소리겠지 하면서요. 만약 오음음계를 사용한다면 그 다섯 개의 음이 밀집되어 있을 때랑 펼쳐져 있을 때 서로 어떻게 다른 소리를 내는지 계속해서 고민합니다. 여기에 더해 각각의 음마다 주법이나 다이내믹이 적용될 수 있겠죠. 이런 과정을 거쳐서 과연 ‘어떤 소리’가 마지막으로 남을까? 어떤 소리가 화학적인 반응을 일으킬까? 이런 것들을 계속해서 상상하고 탐구합니다.
이민희: 선생님 음악의 시간적 흐름을 가만히 들어보면 기승전결이라든지 일반적인 클라이맥스 보다는 특정 섹션이 차례로 등장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 동의하시는지요?
양영광: 무언가에 대한 경험을 하나를 섹션으로 만들고, 또 다른 것에 대한 경험을 섹션으로 만들고, 어떨 때는 그 경험의 순서대로 그것들을 나열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에 이 나열이란 I도 이후의 V도의 연결 이런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몇몇 사람들은 ‘네 음악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경우가 있었고, 간혹 ‘음악의 최고점이 어디인지 애매모호하다’는 느낌을 만들어내곤 합니다. 물론 이 또한 제 곡 스타일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는 [클라이맥스로] 올라가는 부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단지 저는 그것을 굳이 활용하지 않고, 나열을 통해서도 음악을 쓸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입장입니다.
이민희: 최근 다양한 작품을 발표해 오셨고, 양도 굉장히 많습니다. 다른 작곡가라면 재연을 하거나 개작을 할 법도 한데 개인발표회에서까지 모든 곡을 완전히 새롭게 쓰셨습니다.
양영광: 저는 작품을 재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음악은 기본적으로 수익창출을 위한 것이 아니잖아요? 저는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는데, 최근까지의 모든 곡들이 단 한곡을 빼고는 전부 신곡입니다. 특히 2021년 말까지는 거의 한 달에 한곡씩을 썼어요. 2022년에 열었던 개인작품발표회의 경우, 한국에 와서 여는 첫 발표회였기 때문에 제가 앞으로 어떤 음악을 하고 싶은지를 보여주기 위해 욕심을 부렸습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어떤 음악을 추구하는지 물으신다면, 저는 그때그때 쓰고 싶은 것이 달라진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이것도 써보고 저것도 써보고 하는 것 같습니다.
이민희: 음조직을 수직으로 구성하는 방식, 즉 화성에 대한 어떤 개인적인 선호나 취향이 있으신지요?
양영광: 제가 특별히 추구하는 화성은 없습니다. 굳이 언급하자면 제가 좋아하는 화성은 표현적인 부분에 있어서 작곡가 메시앙이 만들었던 ‘교회창문기법’입니다. 교회의 알록달록한 창문, 그게 햇빛에 비춰진 모습을 본 메시앙은 사람이 어느 한 지점에 있을 때 그리고 이동할 때 빛의 반사율이나 색이 달라짐을 알게 됩니다. 이에 아이디어를 얻어 음조직에 관한 틀을 만들어 놓았죠. 제 음악 역시, 기본적인 틀이 존재하는 가운데 어떤 소리는 거기에서 삐져나오기도 하고 그 안에서 협화나 불협화를 만들어내기도 하는 방식으로 구성됩니다. 만약 여기에 오음음계의 색채를 살짝 넣는다면 소리에 뚜렷한 존재성을 부여할 수도 있습니다. 오음음계의 ‘틀’을 유지하면서요. 사실 오음음계는 특정한 방식으로 소리가 날 수밖에 없으므로, 이 소리에서 나왔다 떨어지는 어택을 주기도 하고 그리고 여기에서 파생되는 잔향이 어떤지 탐색하기도 합니다.
이민희: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잔잔한 밤>(Nox Serena, 2018/2019)의 경우 최근 작업과는 또 별개의 스타일로 보이는데, 해당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양영광: 제가 당시 기숙사에 살고 있었는데 밤에는 진짜 시끄러워요. 밤새 술을 마시고 노래 부르는 소리가 들리죠. 이렇게 가장 시끄러울 8월에, 유독 어느 날인가 조용하더라고요. 그래서 새벽에 창문을 열어서 녹음기를 틀어 녹음을 했습니다. 그 한 시간 정도 녹음한 것을 계속 듣다가 그 소리를 옮겨봐야겠다 해서 쓴 작품입니다.
이민희: 일상을, 그리고 소리 그 자체나 여백을 자연스럽게 음악으로 담아내려 한 점이 인상적입니다. 이렇게 생활 안에서 꾸준히 곡을 쓰는 활동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요? 일흔이나 여든이 되면 본인이 어떤 모습일 것 같으신지요?
양영광: 제 대답이 재미없다고 생각하실 것 같은데, 저는 이대로 여전히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고집이 있는 편이예요. 전 그때그때 경험한 것 위주로 곡을 쓰죠. 그렇게 계속 제 음악을 하면서 살고 있지 않을까요? 지금으로서는 그때까지 제가 음악을 계속한다면 다양한 하고 싶었던 음악들을 차례로 할 것 같습니다. 올해는 전통적인 것이나 동양적인 것, 아니면 어느 날은 클래식적인 것을 하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고, 또는 음색적인 것을 하고 싶을 수도 있겠죠. 여전히 작곡은 음악적 정체성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악이라는 것 자체가 음악을 쓰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넘어서, 음악 안에서 나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글 이민희 음악평론가, "양영광, 양영광, 생황, 타악기 그리고 무(舞)를 위한 〈공간 속 울림〉", 『문화융합: 소통과 공명의 합』, 서울: 모노폴리, 2023.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