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오페라 <레테> 리뷰

2021. 10. 26. 06:02

왈츠에 실린 새로운 이야기들

20211014() ~ 20211016() 대전예술의전당 앙상블홀

 

레테는 본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망각(忘却)의 강을 의미하지만, 김주원(작곡)과 황정은(대본)의 창작오페라 안에서 인간을 돕는 재난 로봇으로 다시 태어났다. 오페라의 배경은 척박하게 변해버린 먼 미래. 그 안에서 로봇 레테는 재난과 위기에서 인간을 구해내며 그들과 함께 살아간다.

오페라를 관통하는 로봇이라는 소재는 최근 각광받는 AI기술 등과 관련이 있으며, 해당 오페라를 제작한 대전 지역의 산업적 정체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여러 대학이 연합해 꾸린 오페라 프로덕션의 참신한 성격을 대변한다. 하지만 오페라 레테는 단지 소재로서의 로봇을 전시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레테는 로봇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촉발시킬 수 있는 몇몇 낯선 이슈를 제시하며, 이를 통해 신화나 영웅 이야기, 고전 소설 등에 기반하는 한국 창작오페라의 전형적인 서사에서 벗어난다. 로봇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이야기들이 왈츠 중심의 음악에 결합되어 있으며, 이 때문에 극 전체가 일관적인 무드로 흐른다는 점도 흥미롭다.

 

새로운 이야기들

막이 오르면 로봇을 폐기하는 공장이 보이고 그곳에서 일하는 인간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맨 처음 관객의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인간 혜정이 자신의 일에 회의감을 느끼고 술주정을 하는 장면이다. 극 중 공장의 인간 노동자들은 인간을 위해 활용된 후 고장나버린 로봇을 폐기처분하는 일을 하게 되는데, 그 대상이 그저 로봇일 뿐임에도 특정 개체를 직접 말소시킨다는 점에서 괴로움을 느낀다. 이런 상황은 도살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정신적 트라우마와 같은 최근의 사회적 이슈를 연상시킨다. “나는 인권 때문에 고기를 먹지 않기 시작했다와 같은 리포트가 증명하듯, 도살장에서 하루 수백 마리의 가축을 죽이는 노동자의 상당수가 정신병적 증세에 시달린다. 인간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오직 인간만의 이익을 위해 생명을 살육하는 이들이 겪는 스트레스는 극 중 레테를 폐기하는 공장 노동자가 갖고 있는 죄책감과 유사하다.

극 안에는 전쟁과 자연재해로 인해 황폐하게 변해버린 바닷가가 또 다른 배경으로 등장한다. 특히 주협의 경우 부모를 재난 현장에서 잃었기에, 공장에서 도망친 로봇을 찾으러 해안에 도착했을 때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괴로워한다. 이런 이야기 안에서 자연이란 인간을 보듬기는커녕 해를 끼치는 공포의 대상이다. 더 나아가 바닷가 마을이라는 극 중 설정은 이 작품을 추상적인 아포칼립스가 아닌, 동일본대지진이라는 꽤 또렷한 사건에 연결시킨다. 동일본대지진은 인간의 이기가 자연 재해와 충돌해 불러일으켰던 인류 역사상 가장 파멸적인 재난 중 하나로, 한국의 음악극 안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는 소재이다.

 

여성과 남성, 인간과 로봇의 경계

오페라 레테에는 여성과 남성을 상징하는 서사적 장치가 부재하다. 공장 노동자와 관리자로 등장하는 연주재필혜정주협은 각기 다른 직급의 사람들일 뿐 여자로서어떠한 행동을 하거나 남자로서특별한 의무감을 갖지 않는다. 이들은 모두 동일한 디자인의 작업복을 입고 있으며, 그가 사수든 신입이든 간에 성별화 된 직급체계와 무관하다. 이는 로봇도 마찬가지다. 담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을 뿐 남자로봇혹은 여자로봇으로서의 재현적 요소가 미비하다.

다만 시각적으로는 구분이 되지 않는 인간과 로봇의 성별은 성악성부를 통해 분명히 나뉜다. 소프라노와 메조소프라노는 여성, 베이스와 바리톤은 남성을 상상케 하며 실제로 무대 위에 올라와 있는 여성과 남성 성악가의 육체를 통해 실제가 된다. 이 지점에서 오페라라는 매체가 전통적으로 성악가의 음역을 통해 관습화된 성별구분을 필연적으로 표현해왔음을 깨닫게 된다. 물론 몇몇 오페라들은 성악가의 몸에서 기인하는 음역과 그에 따른 성부를 전복시킴으로써 성별의 경계가 애매모호한 바지역할(Trouser role)이나 여성이 낮은 목소리를 내는 콘트랄토 배역, 또는 카스트라토 등의 영역을 만들어 왔다. 그럼에도 오페라 레테에서는 서사에서 부각되지 않았던 성별 정체성이 성악가의 목소리를 통해 분명해짐으로써 오페라라는 매체가 가진 지극히 보수적인 성격을 드러낸다.

무대 위의 로봇인간의 구별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 작품의 경우 로봇과 인간은 동일한 목소리와 어조로 소리를 내되, 몸짓과 행동거지가 다르게 연출됐다. 인간은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이는 데 비해, 로봇은 관절을 부자연스럽게 꺾고 느릿느릿 걷는다. 하지만 이는 사실상 미세한 차이로 인지되며, 로봇과 인간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왈츠, 또 왈츠

오페라 레테는 낮은 계층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인권, 인간의 이기로 인한 파멸적 재난, 무섭고 위협적인 자연과 그 안에서 인간을 돌보는 로봇의 따뜻함 등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 로봇을 어떤 존재로 이해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키고, 결국에는 그렇다면 로봇과 구분되는 인간성,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다다른다.

이제 음악은 다채로운 결을 가진 이런 철학적 고민을 이어갈 수 있도록 여유를 주고, 이런 사유가 엉키지 않도록 이를 펼치고 나르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과거 무성영화의 음악이 그렇듯, 규칙적인 리듬을 갖는 음악이 극 전체를 지배하게 된다. 이를테면 지진현장을 긴박하게 묘사하는 반복적인 리듬의 저음 타악기 모티브가, 하바네라 박자를 중심에 둔 음악이, 그리고 탱고와 왈츠 등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아리아나 이중창의 경우 하나의 음악 안에서는 리듬의 형태가 바뀌지 않고 지속되는 것이 보통이다. 예컨대 이 오페라는 다양한 리듬을 가진 음악이 번갈아 등장하는 거대한 춤 모음곡을 닮았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음악 유형은 왈츠. 특히 장단조를 혼용한 화성에 관악기의 대선율을 곁들임으로써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이나 영화 <올드 보이> O.S.T. 등을 떠올리게 하는 풍자적이고도 관조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이런 무드는 관객이 극 중 서사의 무게감에 압도되지 않도록 적당한 거리를 만들어준다. 동시에 오페라 레테는 오케스트라 편성으로 연주되는 왈츠의 매혹적인 선율과 음향을 통해, 순수한 듣는 즐거움을 제공한다. 아마도 재연이 되면 오케스트레이션이나 악기 구성이 어느 정도는 변해야겠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의 미덕 중 하나가 계속해서 흐르는 아름답고 경쾌한 왈츠 그 자체라는 점은 분명하다.

오페라는 로봇이 스스로 죽음의 용광로로 걸어 들어가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이미 극 내내 로봇과 인간의 경계를 고민해왔기에, 이 장면은 극의 첫 장면과 꼭 닮았을지라도 그 깊이가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음악은 압도적인 합창과 함께 어두운 분위기의 풀 오케스트레이션을 들려주고, 무대 위에는 붉은 기운으로 가득 찬 제의적인 느낌이 가득하다. 미래인지 과거인지, 용광로가 자연인지 인간의 이기인지조차 불분명한 가운데, 음악이 화려하게 을 선포한다. 그렇게 시간이 일순간 정지한다. 로봇과 인간의 모호한 경계들, 자연과 과학의 양면성 등이 역설적으로 결합한 가운데, 이제 관객은 귓가에 맴도는 왈츠 안에서 이 소재들이 불러일으킨 고민들을 다시 처음부터 사유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글 이민희/음악평론가)

「월간리뷰」, 2021년 12월 (2021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