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박하사탕> 리뷰

2021. 9. 25. 12:22

광주를 모르는 먼 미래의 관객에게, 오페라로 다가가길 바라며 

2021년 8월 27일(금) ~ 2021년 8월 28일(토)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오페라 ‘박하사탕’에서 주목할 점은, 오페라라는 매체가 5‧18 광주의 시간을 영화와는 달리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고 해석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 원작과 독특한 관계를 형성하며 다소 난해하게 펼쳐졌던 ‘서사’는 그 전개 방식이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음악’의 경우에는 현장의 관객을 충분히 설득시켰다는 데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는 큰 비중을 차지했던 합창, 반복되는 모티브, 미묘한 성부 진행, 아리아, 이중창 등의 음악적 장치가 조화롭게 작동해 만들어낸 결과다.

 

특수한 이야기와 보편적 이야기 사이

오페라는 야유회에 나온 수많은 남녀와 함께 막을 연다. 왁자지껄한 분위기에서 노래를 부르는 이들, 왠지 병에 걸린 것 같은 순임,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 영호, 그리고 미애까지. 관객은 인물과 배경 그리고 가사를 토대로 극의 서사를 가늠해보지만, 극 초반의 흐름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혼란은 1장에서 김영호가 “나 돌아갈래”라고 외치며 비장한 아리아를 부르거나, 2장에서 현기와 홍자 등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고, 3장에 이르러 경찰서에서 취조를 받는 또 다른 인물 명숙이 등장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 지점까지 이야기 전체는 수수께끼에 싸여있다.

관객이 무대 위의 모든 인물과 줄거리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시점은 과거의 홍자가 등장해 술집여자로 일했던 상황을 재현하면서부터다. 홍자는 무대 위의 ‘타자’로서 영호가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형사들에게 물어보며, 그를 찾아 온 순임이 누구인지 관찰한다. 그리고 영호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이렇게 홍자가 영호를 이해해나가는 과정은 관객이 영호를 이해하게 되는 흐름을 꼭 닮았는데, 그제서야 영호와 순임이 연인사이였음을, 그리고 공수부대원으로서의 영호의 과오가 80년 광주의 비극과 맞물려 있음을 알게 된다.

이런 서사적 불친절함은 이 오페라를 보는 관객이 ‘영화’ 박하사탕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다고 가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오페라가 새로운 프로덕션으로 수십 년, 수백 년 후에도 관객을 만날 것을 생각한다면, 오롯이 극 내부의 대사와 텍스트만으로 캐릭터와 서사를 쌓는 방식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한편 이 오페라는 5‧18의 세세한 타임라인과 역사적인 배경을 빠짐없이 묘사하지는 않는데, 이 때문에 전쟁이나 쿠데타 등으로 고통 받는 세상 어딘가의 젊은이를 다루는 지극히 보편적인 이야기로 독해되기도 한다. 이는 이 오페라가 특정한 이야기를 노골적으로 주장하기보다는, 다양한 시대와 세대를 아우르는 비극을 제시하고, 관객을 이야기 안으로 깊이 인도한 후에야 구체적인 진실을 마주하도록 하는 방식으로도 보인다. 이런 측면에서 오페라 ‘박하사탕’이 광주를 모르는 먼 미래의 관객에게, 오페라로 다가가 광주의 이야기를 건네는 작품이 될 것을 상상해 본다.

 

죽은 이를 되살려내는 음악적 추도

2장의 첫 곡인 ‘망월동의 노래’는 극단적으로 미니멀한 음악적 짜임새로 시작한다. 묘비에 적힌 희생자의 이름을 무대 위 모든 이들이 천천히 “강~ 대~~ 일~~~~”과 같이 한 글자씩 또박 또박, 한 없이 길어지는 음가로 부르는 것이다. 그렇게 합창단이 수 명의 이름을 호명하는 가운데, 관객은 지금까지의 호흡과는 다른 긴 길이의 시간감각에 맞닥뜨린다. 이는 웬만한 아방가르드 음악에서 느껴지는 생경한 시간의 견딤 그 이상이다. 그리고 이런 정지된 음향은 곧 일반적인 화성 흐름을 동반하는 여성이나 어린아이, 남성의 독창과 차례로 교체되는데, 이 과정은 묘비에 쓰인 이름을 덤덤하게 읊고 그 이후에 해당 인물에 대한 기억을 파노라마처럼 떠올리는 절차와 유사하다. 이를 사람에 대한 ‘호명’과 그에 대한 ‘기억’으로 구성된 거대한 음악적 콜라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호명이 계속되는 가운데 한정된 음으로만 구성됐던 화음은 점점 새로운 음을 추가하고, 또 얼마 지나 “방비호, 방인호, 배성진, 백대길”을 부를 때에는 보다 많은 음들을 더함으로써 음향 안에 무언가 ‘움직이고 있다’는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이어 “윤정구, 윤정표, 윤한봉”에 다다르면 “여보 당신은 천사였죠”라는 여성의 노래와 함께 음악의 성부 진행이 ‘순전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이런 음악적 뉘앙스는 죽은 이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으로 읽히는데, 음악의 진행이 만들어내는 움직임의 느낌과 청취의 쾌감이 서사적 정보로 전환되어 마음을 울리는 것이다.

예컨대 2장은 대규모 합창단이 미동도 하지 않은 채 희생자를 차례로 호명하는 지극히 제의적인 제스처로 시작한다. 하지만 음악은 이를 관통해 들어가 그 안에 ‘음의 움직임’을 표현해냄으로써 죽은 자를 ‘움직이는 환영’으로 변모시키고, 그들에게 따뜻한 애도의 시선을 보낸다. 이는 ‘박하사탕’이 오페라이기에 만들어낼 수 있는 5‧18 희생자에 대한 독특한 추도의 방식이며, 이 작품이 한글로 불리는 창작오페라이기에 더 나아가 대규모 합창단을 운용하는 대극장오페라이기에 가능한 성취다.

 

노래 ‘그렇지요’의 힘, 그리고 오페라를 절정에 이르게 하는 ‘순임 동기’

‘망월동의 노래’ 이외에도 오페라 안에는 강한 인상을 남기는 몇몇 음악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2막을 여는 ‘아침이슬’은 기교를 배제한 선율을 통해 당당하고 소박한 민중의 모습을 그리며, 이어 등장하는 ‘주먹밥’은 꽹과리 소리를 비롯한 한국음악적 요소를 사용함으로써 민중의 존재와 생명력을 부각시킨다.

1막 1장과 2막 6장에 등장하는 ‘그렇지요’는 작곡가가 80년대 말 발표해 대중에게 30년 넘게 사랑을 받아 온 민중가요다. 따라서 ‘그렇지요’가 오페라 안에서 불릴 때에는 마치 30여년의 세월을 그 안에 머금은 채 소환된 것 같은 느낌을 주는데, 이렇게 노래 안에 봉인된 ‘세월의 감각’이 시간을 넘어 지속되는 주인공의 트라우마와 병치되며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삽입된 민중가요의 작곡가가 오페라 작곡가 본인이라는 점, 그리고 손에서 떠나보냈던 노래를 수십 년 후 더 커다란 작품 안에 불러들이고, 음악이 주는 쓸쓸함과 덧없음의 감정을 섬세하게 조율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한편, 어두운 분위기가 지배적이며 합창 혹은 난해한 선율 일색인 오페라 안에서, 낭만주의 화성과 달콤한 선율로 둘러싸인 ‘순임 동기’는 관객이 극장을 나서도 쉽게 흥얼거릴 수 있을 정도로 매혹적이다. 특히 6/8박자의 순차진행으로 구성된 이 동기는 오페라의 초반에는 그 선율의 형태를 관객에게 분명히 각인시키고, 극의 최종부에 이르러서는 화려하고도 아득한 느낌의 긴 이중창으로 발전된다. 그리고 두 성악가의 열창과 함께 ‘영원성’이나 ‘초월성’을 상기시키며 오페라를 절정으로 이끈다. 이 지점에 이르러 오페라는 사실상 5‧18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5‧18 이후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살아가고 있으며,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마지막 이중창은 80년 5월을 감내했던 이들의 ‘찬란했던 젊음’을 음악을 통해 다시금 반추(反芻)하게 한다는 점에서 긴 여운을 남긴다. (글 이민희/ 음악평론가)

「월간리뷰」, 2021년 10월 (2021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