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리뷰

2021. 3. 26. 17:04

이국적인 음악으로 빚어낸 열 명의 여성

2021년 1월 22일(금) ~ 2021년 3월 14일(일) 정동극장

 

1930년대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방. 남편이 죽어 집안의 최고 권력자가 된 안주인 베르나르다 알바는 다섯 딸을 앞에 두고 자신의 말에 복종하라고 강요한다. 하지만 딸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으며, 하녀들 그리고 정신이 온전치 않은 할머니는 이 체제의 불완전성을 계속해서 상기시킨다. 이런 구도 안에서 어머니 알바의 강압은 신()의 섭리로, 이에 저항하는 딸들의 행동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은유한다고 해석되며(윤용욱, 2010), 여성이 풀어내는 여성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최근의 페미니즘적인 관점에서 독해되기도 한다. 다만 이런 접근들은 뮤지컬이 기반하는 로르카(F. Lorca)의 원작을 중심으로 하기에, 이 작품이 ‘뮤지컬로서’ 음악과 춤의 형태로 관객을 만난다는 사실을 늘 간과하게 한다.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는 빠른 스트로크로 연주되는 기타, 양금을 연상시키는 이국적인 악기 소리, 금속과 나무로 만들어진 다양한 타악기가 어우러져 앙상블을 만든다. 여기에 검은 옷을 입은 여자들이 발을 구르고 춤을 추며 등장함으로써, 이 작품이 ‘이국적인 무드’로 진행할 것임을 선포한다. 예컨대 이 작품을 음악적인 측면에서 가장 단순히 설명한다면, 오리엔탈리즘적인 음악적 기호를 극대화해 재현하는 뮤지컬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 작품은 이국풍 음악을 다루는 데 있어 첫째, 지극히 유형화된 방식으로 이것을 활용하되, 둘째, 음악의 결을 세분화시켜 다채로운 재현을 가능케 하는 전략을 취한다.

 

익명의 여성들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는 독특한 악기, 변형된 음계, 단순한 화성 등 기존의 뮤지컬이나 클래식 음악에서는 듣기 힘든 ‘다른 소리’를 계속해서 제시함으로써 극 전체를 낯선 풍경으로 수월하게 묘사해낸다. 이를테면 어린 하녀가 바닥을 닦으며 부르는 기묘한 분위기의 <내가 결혼하는 날 (파트1)>은 장조 음계의 두 번째 음을 반음 내린 선율과 거의 정지된 화음, 그리고 풍부한 울림을 갖는 현악기 반주를 사용한다.

극 초반에 등장하는 <장례식>도 따로 언급할 만하다. 어머니가 부르는 이 노래는 음계의 두 번째 음을 반음 내리고, 장3도 혹은 단3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세 번째 음을 더한다. 선창자가 노래를 부르면 다른 이들이 합창으로 화답함으로써 동양적인 뉘앙스의 ‘메기고 받는’ 짜임새를 만든다는 점, 수평적인 흐름 안에 장식을 섞은 구불구불한 모양의 선율을 등장시키고, 수직적인 화음을 쌓는 대신 5도 병행의 음을 덧대어 놓았다는 점도 언급할 수 있다. 노랫가락 뒤로 깔리는 태평소와 유사한 관악기도 흥미롭다. 이 소리는 근대적인 조율법이나 악기 제작이 이뤄지지 않았던 옛 유럽의 사운드스케이프를 떠올리게 한다.

다만 이런 방식의 재현이 늘 그렇듯 해당 음계와 화성이 1930년대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정말로 사용됐었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다. 동시에 이런 음악들은 ‘서양적이지 않은 것들’의 느슨한 총합인 탓에, 2021년 서울의 프로덕션 안에서 ‘국악적인 무언가’와 혼동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하녀들의 대화는 조선 시대 사대부의 부엌에서 들려올 법한 말의 리듬을 보여주며, 맏딸 앙구스티아스의 노래는 특유의 창법으로 멋들어지게 뽑아낸 창작 국악곡처럼 들린다. 한발 더 나아가 정확한 조율, 깔끔한 오케스트레이션, 세련되고 미니멀한 무대, 녹색과 붉은색으로 강렬하게 대비시킨 무대미술은, 스페인 시골의 어둡고 칙칙한 농가가 아닌, 아름답고도 매혹적인 가상의 시공간을 만들어낸다.

진짜 아이러니, 혹은 뮤지컬의 독특함은 바로 이 지점에서 생성된다. 무대 위에는 유형화된 음악이 연주되고, 이를 반주삼아 플라멩코를 추는 여성이 가득 차 있다. 관객은 머릿속으로는 텍스트 속 대립과 저항을 읽어내고자 하지만, 실제 그들의 눈앞에 있는 것은 훈련된 몸짓으로 그 기원을 알 수 없는 동양풍 음악을 노래하는 여성들이다. 따라서 극 안의 ‘절대자’와 ‘자유의지’의 대립 구도는 사라지고, 무대 위를 바라보는 관객의 ‘응시’와 무대 위의 ‘상’()이라는 새로운 구도가 형성된다. 이때 이국풍 음악은 무대를 바라보는 응시의 권력을 강화한다.

 

다시, 각기 다른 이름으로 무대에 선 열 명의 여성

다만 이 작품은 중반 그리고 후반으로 갈수록 이국적인 무드를 그저 전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를 다양한 음악적 아이디어와 결합하고 조율한다. 즉 극의 초반에는 <장례식>, <내가 결혼하는 날 (파트1)>, <베르나르다의 기도> 등 작품의 배경과 분위기를 암시하는 음악이 계속됐다면, 2막에 해당하는 중반부터는 <막달레나>, <앙구스티아스>, <아멜리아>, <마르띠리오>, <아델라> 등 다섯 딸의 성격을 각기 다르게 묘사하는 음악이 이어진다.

음계의 네 번째 음을 변형한 채 무반주로 노래하는 둘째 막달레나의 음악은 어머니의 것을 똑 닮았다. 이는 막달레나의 극 중 성격이 자세하게 묘사되지 않는 것과 별개로, 그녀가 집안의 규율 및 어머니의 권력을 자연스럽게 체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셋째 아멜리아의 음악은 극에 등장하는 모든 넘버 중 가장 서양음악적인 앙상블을 들려주며, 3도 병행의 선율로 시작해 7도 도약을 포함하는 장음계의 상행진행으로 전개된다. 한편 막내 아델라의 음악은 튀어 오르는 듯한 오보에의 5도 진행이 특징적이며, 극에 등장하는 모든 음악 가운데 선율의 도약 폭이 가장 넓다. <아델라>는 화려한 느낌의 전형적인 뮤지컬 넘버와 흡사하며, 그 안에 포함하고 있는 춤곡 섹션은 그녀가 자유를 갈망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하나의 선율이 다양한 서사와 결합되는 상황도 여럿 발견된다. 어린 하녀가 “널 위한 노래”를 흥얼거릴 때에는 아직 여자라는 사회적 카테고리에 들어오지 않은 화자의 순진무구한 감정이 드러나지만, 넷째 마르띠리오가 부르는 동일한 선율은 남자의 본질을 꿰뚫고 그들을 욕망하는 맥락에서 등장한다. 이외에도 <작은 냇물>은 어머니 알바가 자신의 운명을 감내하고 꿋꿋하게 버텨왔음을 보여주며, <바다로 갈 거야>는 자유를 꿈꾸다 이제는 정령이 되어버린 할머니의 삶을 ‘볼레로 리듬’으로 표현한다.

이처럼 <베르나르다 알바>는 이국적인 음악을 세밀한 필치로 다채롭게 운용함으로써 순진한 성격의, 남편이 죽은 지 하루가 채 안 된, 못생겨서 남자에게 인기가 없는, 자신의 욕구에 충실하되 어린, 포악한 주인을 삼십 년간 돌본 ‘여성들’을 재현하는 데 성공한다. 따라서 관객들은 작품 중후반 즈음에서부터 무대 위에서 춤추는 ‘익명의’ 여성들이 아닌, ‘각기 다른 성격과 욕망을 지닌’ 열 명의 여성이 서 있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광기어린 딸들

극의 최종부에 위치한 <종마>, <문을 열어> 등의 넘버는 이제까지 쌓아 올린 음악적 상징을 활용하여 격렬하고 드라마틱한 방식으로 ‘사건’을 그려낸다. <종마>는 암말과 수말의 성애적 움직임을 4도 도약으로 표현하며, <문을 열어>는 이런 폭발하는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려 막내 아델라가 파멸에 이르는 과정을 암시한다. 이제 넷째는 자신의 본능과 욕망에 충실한 나머지 언니의 약혼남 뻬뻬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막내는 이 소식을 듣고 자살한다.

일련의 사건은 눈 깜짝할 새 진행되며, 이 과정에서 넷째와 막내를 연기하는 배우들의 광기어린 ‘에너지’는 무대 위를 바라보는 관객의 ‘보는 힘’을 압도한다. 어머니의 가부장적 통치로 은유됐던 신과 인간의 대립, 그리고 무대극이라는 구조가 만들어냈던 ‘응시’와 ‘대상화’는, 이제 광인의 힘에 휩쓸려 무대의 후면으로 밀려난다. 예컨대 클라이맥스를 거친 <베르나르다 알바>는 광인의 현전을 시청각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단지 이 작품이 서사적 측면에서 여성들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거나, 가부장제를 체화한 여성이 스스로를 억압한다는 텍스트적 서술보다 훨씬 더 강렬한 방식으로 페미니즘적인 외형을 드러낸다. 억압의 서사, 관습적인 음악, 그리고 시선의 권력 모두를 무대 위의 ‘여성’이 춤과 연기로 ‘잠재우며’, 절규하고 또 노래하는 모습을 통해 그들의 여성성을 가장 본질적인 힘으로 부각시키기 때문이다. (글 이민희/음악평론가)

 

「월간리뷰」, 2021년 4월 (2021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