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판이오의 음악극 <이오쌀롱: 경성 쟈-스밴드> 리뷰

2020. 12. 24. 08:25

경성의 살롱으로 관객을 초대하는 이머시브 뮤지컬의 가능성

2020년 12월 4일(금) 문화역서울284 RTO

 

‘문화역서울284’의 역사성과 결합한 공연

1900년에 생긴 ‘남대문 정차장’이 1925년 ‘경성역’으로, 그리고 다시 2004년 ‘서울역’으로, 무려 백여 년간 많은 이들이 북적대던 장소는 이제 ‘문화역서울284’라는 복합문화예술공간이 되었다. 따라서 경성을 배경으로 삼아 1930년대 유행했던 음악을 들려주는 음악극 <이오쌀롱: 경성 쟈-스밴드>이 ‘문화역서을284’에서 공연됐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이는 “2020 창작유통지원 기획공모: 플랫폼 284 RTO”의 일환으로 작업된 타 공연과 이 음악극을 근본적으로 구분 짓는다.

이날 문화역서울284의 회색빛 벽면에는 알록달록한 조명이 설치되었고, 몇 개의 소품과 테이블이 놓였다. 이런 세팅은 옛 경성의 풍경을 직접적으로 재현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배우들의 어깨 너머로 보이던 독특한 양식의 커다란 문, 높은 천장, 그리고 공간 전체를 감싸는 옛 건물의 질감이 이 장소의 역사적인 아우라를 드러내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공간 한편에는 예닐곱 명의 연주자가 자리를 잡고, 중앙에는 식탁보가 둘러진 원형 테이블이 여럿 놓여 제법 근사한 느낌을 만들어냈다. 즉 이날 공연에서는 극 중 배경이기도 한 ‘이오쌀롱’이 ‘문화역서울284’라는 공간 안에 최소한의 장치로 구현됐다. 이는 이 작품이 대학로의 소극장에서 공연되었더라면 분명 느끼기 어려웠을 무드다.

 

근대음악으로 만드는 주크박스 뮤지컬

극 안에는 <오빠는 풍각쟁이>를 비롯해 <사의 찬미>, <청춘빌딩>, <경성랩소디>, <청춘계급>, <다방의 푸른 꿈>, <희망가> 등이 차례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런 노래들이 극 중 ‘이오쌀롱’에 방문한 이 선생과 박 선생, 강 기자와 모던보이 등에 의해 불린다. 또한 한 쪽 테이블에는 스윙댄서들이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가끔씩 춤을 추고, 극 전체의 사회자이자 지배인 역할을 하는 배우는 노래와 탭댄스를 번갈아 선보인다.

다만 작품 안에는 굵직한 사건과 갈등구조, 그리고 서사적인 클라이맥스가 부재하다. 이따금 배우들이 내뱉는 독백과 몇몇 대사를 통해 시대적 상황과 인물 설정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대신 관객은 <오빠는 풍각쟁이>나 <외로운 가로등>을 들으며, 그리고 배우들이 다함께 부르는 <이풍진 세상>을 마주하며 감정적 동요를 느낀다. 즉 이 작품은 주크박스 뮤지컬에 쇼뮤지컬의 장치를 녹여내고 있으며, 음악이 가진 ‘그 자체의 에너지’로 극을 이끌어 나간다.

극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1930년대의 재즈살롱에서는 유성기 음반의 히트곡, 가벼운 클래식, 스윙 등이 모두 함께 향유되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런 음악들은 현재의 관점으로는 작곡된 연도, 스타일, 장르 등이 모두 다른 것들로서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이기 힘들다. 하지만 이런 음악의 ‘집합’은 관객 앞에 꽤 구체적인 ‘근대의 풍경’을 소환해낸다. ‘한글로 부르는 재즈’가 일제에 저항하는 구도를 만들어내며, 이를 통해 근대의 양면이기도 한 ‘일제시대’를 드러내는 설정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극에 등장하는 노래 대부분이 저작권에서 자유롭다는 점도 지적할 만하다. 저작권 문제는 주크박스 뮤지컬을 만들 때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대신 이런 음악을 즐기는 이들이 현재로서는 ‘노년층’이라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어르신의 추억 속 노래’를 엮어 극을 만들었을 때, 2~30대 여성이 대부분인 연극·뮤지컬 관객의 호응을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을까? ‘경성 시대의 재즈’라는 독특한 카테고리로 묶인 이 음악들은 최근 향유층을 넓히고 있는 ‘트로트’와는 결이 다르며, 뮤지컬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넘버, 더 나아가 록음악 등과도 거리가 있다.

 

경성의 살롱으로 관객을 초대하는 이머시브 뮤지컬의 가능성

음악극 <이오쌀롱: 경성 쟈-스밴드>은 관객과 배우 모두 ‘쌀롱’이라는 공간의 구성원이 된다는 점에서 ‘이머시브(immersive) 뮤지컬'의 몇몇 속성을 내포한다. 이는 이 작품이 일반적인 연극·뮤지컬의 집중된 관람방식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관극체험을 이끌어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아마도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관객은 환호하거나 박수를 치며 살롱의 방문자로서 춤과 노래에 참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는 손에 들린 물을 마시고, 간단한 음료와 다과를 먹으며 공간 안을 돌아다닐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춤과 음악에 관한 예기치 못한 돌발 상항을 마주하고 이를 즐기며 극의 흐름을 따라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살롱 안에 ‘악단’이 자리하고 있으며, 솔로 주자들이 멋들어진 연주를 펼친다는 점은 ‘극중극’으로서의 공연이나 ‘서브텍스트’로 발전시킬 수 있는 요소로 보인다. 애초에 연주자의 개별 퍼포먼스가 극의 흐름과는 어느 정도 분리된 채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날 공연에서는 반주의 일부에 엠알이 활용됐으며, 트럼펫과 플루트 등 최소한의 관악기를 부각시킨 편곡이 극 전체를 지배했다. 이는 ‘현대의 라이브 재즈밴드’를 썼을 때 발생하는 음향의 화려함이나 연주자의 개성을 ‘일관적인 톤’ 아래에 통제하는 형태로 보였다. 하지만 이러한 편곡이 극 전체에 통일성을 만드는 것과 별개로, 일종의 ‘액터뮤지션’으로서의 본격적인 라이브 밴드를 도입해 보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적어도 관객의 입장에서는, 시선을 둘만한 지점이 많으면 많을수록 작품에 능동적으로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작품은 근대음악으로 구성된 주크박스 뮤지컬이자 스윙댄서가 활약하는 쇼뮤지컬이며, 동시에 독특한 장소에서 행해지는 이머시브 뮤지컬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렇다면 공연을 보며 차를 마시는 ‘진짜 살롱’과 이를 체험적인 형태의 극으로 만든 ‘음악극으로서의 살롱’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촘촘한 서사와 공간에 대한 치밀한 설정,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강렬한 음악이 둘 사이에 뚜렷한 경계를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따라서 아직은 초기 프로덕션 형태인 이 음악극이, 극의 다양한 구성요소를 좀 더 부각시키고 그 아이디어를 강화해, 경성의 살롱으로 관객을 초대하는 이머시브 뮤지컬로 완연하게 확장되는 순간을 고대하게 되는 것이다. (글 이민희/음악평론가)

 

「월간리뷰」, 2021년 1월 (2020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