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COVID-19)를 감각하는 사유들

2020. 9. 24. 19:34

포스트코로나 시대, 극음악의 변화들

 

음악은 미디어의 발달과 함께 그 형태와 실연방식을 지속적으로 바꾸어 왔다. 따라서 ‘포스트코로나’라는 딱지가 붙은 채 통용되는 온갖 예측들은 사실 음악환경의 디지털화 및 네트워크화가 초래하는 결과와 동일한 영역을 공유한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포스트코로나 시대는 이런 미디어 환경의 변화가 과격한 흐름으로 조금 더 빨리 도래하게 된 상황으로 볼 수 있다. 주목할 점은 극음악이 기반하는 ‘공연예술’이라는 성격과 ‘현장성’이라는 키워드다.

코로나가 대두되기 이전에도 기술의 발달에 따른 공연예술의 플랫폼 변화가 지속적으로 관찰됐고, 가상현실 안에서 실현이 가능한 라이브니스(liveness) 논의가 활발했다. 즉 공연이란 무대 위에 존재하는 배우의 육체 그 자체이며, 어떤 식으로든 복제나 저장이 불가능하다는 패런(P. Phelan)의 이론에 대항하여, 오스렌더(P. Auslander)는 인터넷 공간에서도 라이브니스 창출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대립적인 구도 안에서 ‘공연 현장’은 항상 경험의 중심으로, 그리고 디지털로 매개된 경험은 여기에서 파생된 부차적인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다만 코로나 이후에 달라진 점이라면, 많은 이들이 이런 양분된 구도 자체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즉 코로나를 겪은 이들은 공연장이 실제로 문을 닫는 광경을 목격하면서 ‘중심으로서의 현장’이 소멸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공연 현장’은 여전히 음악극 관람의 중심으로 건재할 것이다.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특히 강력한 팬덤과 젊은 관객을 가진 21세기 대한민국은 이런 ‘중심’을 굳건하게 유지하되, 이것으로부터 파생된 다양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가장 예민한 리트머스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변화는 공연의 기획과 제작에서부터 공연 관람태도, 그리고 음악극 속 음향의 기호화 방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공연의 자금 조달방식 및 제작 방식의 양극화

코로나 이후에 공연예술은 위험성이 높은 사업으로 인식되어 기존의 투자자가 대거 철수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 공백을 상당한 규모의 공적자금이 투입되어 메우게 될 것이다. 마치 1930년대 미국에서 시행됐던 공공미술프로젝트(PWAP)가 경제난을 겪던 예술가에게 직접적인 수혈을 했던 것처럼, 유사한 방식의 지원제도가 활발해질 것이다. 다만 이런 흐름 안에서 ‘어떤 예술’이 지원을 받아야만 하는지에 대해 많은 이들이 보다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할 것이다. <라 트라비아타>를 공연하기 위해 10억을 쏟아 붓는 행위의 타당성에 대해 새삼스럽게 다시 토론을 시작하는 것이다.

공적자금에 기대게 될 극음악들은 다시 몇 가지의 유형으로 구분될 수 있다. 첫 번째 유형은 지원금의 수혜를 받기 위해 특정한 주제로 온건하게 제작되는 것들이다. 오페라의 경우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장보고’나 ‘윤동주’ 등 지역을 대표하는 위인이나 역사적인 소재로 작품이 기획될 것이다. 또한 대규모의 지원금이 필요한 작품은 국가적인 슬로건과 그 주제가 맞아떨어지는 경우에 제작지원을 받기 수월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경력이 풍부한 기성작가에게 더 많은 기회와 지원금이 배정될 수 있다. 둘째 유형은 지원금에 100% 의지하는 극도로 실험적인 작품들이다. 수없이 많은 작품들이 ‘새로움’과 ‘다양성’의 탈을 쓰고 만들어질 것이며, 이들 중 상당수는 그저 ‘지원금 헌터’로서 작품 발표와 동시에 사장(死藏)될 것이다.

상업적인 뮤지컬 프로덕션의 경우 대형제작사와 소규모제작사가 상반된 행보를 보일 것이다. 소규모제작사는 기존의 팬층이 확고한, 소위 ‘잘 팔린’ 극을 계속해서 올릴 가능성이 높다. 이를테면 프로덕션 네오의 <사의 찬미> 같은 것들. 이 경우 마니아적인 관극을 이끄는 팬덤의 입김이 더욱 세질 것이며, 이들의 소비를 최대한 촉진시키는 방향으로 작품의 제작 및 기획이 이뤄질 것이다.

EMK 등의 대형 뮤지컬 제작사들은 ‘아이돌 산업’과 더욱 밀접하게 연계될 것이다. 특히 아이돌 엔터테인먼트로부터 인적자원을 얻는 것은 물론 그들의 최첨단 마케팅 방식을 참고할 것이다. 실제로 몇몇 뮤지컬 제작사는 해외 아이돌 팬을 대상으로 시행했던 ‘유료 스트리밍’ 방식을 뮤지컬에 이미 도입했으며, 뮤지컬 굿즈를 판매하는 전용 온라인샾을 열었다. 흥미로운 것은 긴 주기의 스토리텔링 안에서 음반 및 관련 마케팅을 통합시키고 있는 아이돌의 활동이 거시적인 맥락에서 ‘뮤지컬’과 맞닿아 있는 지점이다. 이 경우 아이돌 업계와 뮤지컬 제작사는 ‘서사를 다루는 공연예술’이라는 측면에서 한 점을 중심으로 모이게 된다.  

한편, 2020년 공연계가 보여준 전염병의 전파 양상은, ‘객석’이 아니라 이 공연을 준비하는 ‘무대 뒤’가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확진자가 다녀간 객석에서는 2차 감염이 전무했던 반면, 극단을 중심으로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배우와 스텝사이에 연쇄감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코로나와 유사한 전염병이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비용 및 위생과 관련된 안전상의 문제로 무대 뒤 협업의 규모가 축소될 수 있다. 이런 분위기 안에서 2인극, 3인극 등 최소의 인원만 무대에 오르는 극이 많아질 것이며, 실연 연주가 엠알로 대체된 음악극이 증가할 것이다. 동시에 멀티미디어와 결합한 무대연출 등이 활성화되면서 대규모 인원을 동원하지 않고도 무대 위 스펙타클을 창출하는 사례가 일반화될 것이다.

 

생중계 및 녹화중계의 부상

코로나 이후 많은 이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공연예술계의 변화는 생중계 및 녹화중계의 활성화다. 다만 생중계와 녹화중계는 기존의 라이브공연을 대체할 수 없으며, 그것으로부터 파생된 ‘완전히 다른’ 문화예술 향유형태로 존재할 것이다.

넷플릭스나 유튜브 등의 폭발적인 발전과 함께 이런 콘텐츠들의 최적화되고 유형화된 형태가 틀에 박힌 느낌을 주고 있다. 이에 비해 생중계와 녹화중계는 그 자신의 ‘영상 문법’을 갖고 있지 않으며, 기존의 영화 편집 등을 거칠게 흉내 내는 화면 구성을 보여준다. 즉 빠른 편집과 완벽한 시각적 상을 제공하는 넷플릭스 혹은 짧고 자극적인 유튜브 콘텐츠에 비해, 생중계는 ‘조금은 다른’ 형태의 영상으로 보인다. 생중계와 녹화중계에 ‘가사 자막’이 붙게 될 것이라는 점도 이런 콘텐츠를 독특하면서도 ‘올드한 것’으로 인식시킨다. 이런 맥락 안에서 오페라나 뮤지컬의 생중계는 ‘라이브 퍼포먼스’보다는 ‘뉴트로적 형태의 동영상’에 더 가까워 보인다.

오히려 생중계와 녹화중계는 이와 병행하여 작동하는 서브 플랫폼을 발전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를테면 중계화면과 함께 오픈되는 실시간 채팅창 혹은 ‘불판’이라고 부르는 게시글의 댓글문화 등. 실제로 이런 도구가 없다면 2시간 동안 모니터 앞에 앉아서 공연을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유튜브 동영상이 10분 내외인 것, 그리고 ‘긴 스트리밍 시간’을 기반으로 하는 아프리카TV 등이 영상에 동반되는 채팅창을 갖고 있는 것을 떠올려보자.

생중계와 녹화중계 안에서 뮤지컬과 오페라의 구분이 없어진다는 것도 꼭 지적해야할 문제다. 사실 오페라가 영상화되면서 가장 노골적으로 감지되는 변화는 성악가의 ‘외모’가 방송매체를 기반으로 하는 가수나 연예인만큼 중요해진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악가의 ‘목소리’를 ‘디지털 기기’를 통해 듣게 된다는 사실이다. 오페라는 예로부터 마이크의 사용유무로 뮤지컬과 장르적 차이를 만들어왔다. 성악가의 몸을 진동체로 삼아 소리가 뻗어 나오고, 이 소리가 홀을 울려 객석의 청중에게 전달되는 것. 이것이 오페라의 장르적 정체성이었다. 그러나 성악가의 목소리가 생중계로 디지털화될 때, 이 장르가 간직하고 있었던 최후의 보루마저도 잃어버리게 된다.

 

현전성의 강화와 시체관람의 일반화

생중계와 대비되는 라이브 음악극 공연은 훨씬 더 노골적으로 현장성과 현전성, 그리고 매체 고유의 특성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뮤지컬과 오페라를 보는 행위 그 자체에 집중하는 극들, 객석에 앉아야만 보이는 소름끼치는 장면들, 마치 위태로운 서커스나 고통의 현시를 만드는 것 같은, ‘현재’와 ‘육체’를 극단적으로 전시하는 극들. 이를테면 제 키만한 수조에 가수가 직접 들어간다거나, 무려 10분에 걸친 클라이맥스를 초고음으로 오열하며 부르는 음악극이 많아지고, 또 일반화될 것이다.

동시에 ‘시체관람’이라 불리는 마니아적인 공연관람 방식이 폭넓게 수용될 것이다. 코로나가 쉬이 없어지지도 않을뿐더러 코로나가 없어지더라도 새로운 전염병이 다시 생겨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코로나에 대한 기억을 간직한 사람들에게 많은 이들이 모이는 장소에 가는 것은 이전과는 다른 경험이 된다. 즉 극장에 가는 행위는 극단적인 위생의식과 개인주의를 동반하는 활동으로 변모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대화가 금지되고 움직일 수 없으며 음료를 마시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오로지 ‘개인으로서’ 무대를 고요히 바라볼 뿐인 ‘시체관람’은 익명의 많은 관객을 한자리에 모이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전략이 될 것이다.

시체관람이 가져올 공연 향유방식의 근원적인 변화는 다시 두 가지 측면에서 예측가능하다. 첫째, 공연장은 더 이상 자신의 아비투스(habitus)를 드러내는 공간이 될 수 없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특정한 유형의 공연장에서 음악을 들으며 자신의 취향과 계급을 드러내고 공동체의식을 느꼈다. 하지만 ‘시체관람’ 안에서 이들은 그저 ‘익명’으로 존재할 뿐이다.

둘째, 디지털 커뮤니티에서 행해지는 공연에 대한 글쓰기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며, 이것이 매일 밤의 시체관람과 맞물릴 것이다. 공연장에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던 이들이 온라인의 디지털 커뮤니티에 모여 그날 본 공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이제까지는 열성적인 일부 공연 마니아에만 한정된 것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에는 오페라와 뮤지컬을 포함한 모든 음악 공연이 이와 같은 관습을 따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오프라인 관극과 온라인 글쓰기의 순환구조가 활성화된 공연일수록 상업적인 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음악적 상징과 장르의 소멸

어린아이가 유선전화기를 형상화한 ‘전화기 아이콘’을 이해하지 못하듯, 머지않아 극음악 안에서 기호화됐던 수많은 음악적 상징이 폐기될 것이다. 이런 변화는 지속적인 미디어환경의 진화로 인한 것이며, 동시에 ‘코로나’라는 토픽과 관련하여 실외활동 및 집단 활동이 줄어들기 때문에 발생한다. 무엇보다도 이런 변화는 오페라나 뮤지컬처럼 ‘서사’를 다루는 극음악 작곡에 있어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모차르트가 음악 안에 그려냈던 ‘전원(田園)의 풍경’이 20세기 청중에게는 직관적으로 독해되지 못하고 음악학자의 분석을 통해서만 추측이 가능하듯, 뮤지컬과 음악극 안에 등장하는 수많은 음악적 상징들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거리의 부랑자와 함께 힙합 음악을, 절규하는 젊은이와 함께 록음악을, 반항하는 청년과 함께 펑크 음악을 작곡해 넣어도 대중은 이런 음악적 스타일에 봉인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할 것이다.

이를테면 ‘가스펠’이라는 음악이 갖고 있던 의미들. 여럿이 한꺼번에 몸을 흔들고 흥을 돋우며, 한사람의 선창과 다수의 제창이 뒤따르는, 이 음악이 은유하는 집단적인 행위와 치유의 정서를 더 이상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가스펠이라는 음악 안에 숨겨져 있는 ‘커뮤니티 활동’을 해본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경험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뮤지컬은 마치 오페라처럼 ‘옛 장르’가 될 것이다. 이런 흐름은 음악시장의 디지털화와 비대면화 안에서 21세기 대중음악의 메인스트림이 ‘보는 음악’으로 완전히 개편되고, 그리고 그 안의 음악들이 단어를 파편화시킴으로써 벌어질 현상이다. 즉 록음악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처럼, 선율이 길게 흐르고 가사가 청취되는 ‘서사를 담은 음악’은 이제 대중음악의 지극히 마이너한 위치에 머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종국에는 가사가 흘러넘치는 노래를 이어 붙인, 뮤지컬이란 장르 역시 과거의 산물이 될 것이다. (글 이민희/음악평론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 극음악의 변화들", 『코로나 19를 감각하는 사유들』(인천: 인천문화재단, 2020), 210-215. (2020.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