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이해하는 즐거움, 미니멀 음악

2020년 5월 24일(일) 오후 5시 LG아트센터

 

오리지널 미니멀리스트라 불리는 글래스와 라이히, 그리고 바로크 시대의 파헬벨과 19세기의 사티. 활동했던 시대가 다르며 지역적으로도 먼 이들의 음악을 ‘미니멀리즘’이라는 이름으로 묶을 수 있을까? 이 음악들을 한꺼번에 관통하는 ‘미니멀적 속성’이란 도대체 무엇이며, 파헬벨과 사티를 ‘미니멀 음악’이라는 관점에서 청취했을 때 청중이 얻을 수 있는 통찰은 무엇인가? 그리고 라이히와 존 아담스가 ‘미국’의 미니멀리스트로서 다른 음악과 구분되는 지점이 있는가? ‘렉처콘서트’로 기획된 이날 음악회는 이와 같은 다양한 질문을 제기하고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이에 대한 답이 객석에 앉은 청중의 수만큼 다채로웠을 수는 있을지언정, 분명히 말할 수 있었던 사실은 이날 음악회의 모든 음악이 ‘귀로 듣고 이해하는 즐거움’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런 특성은 음악회 내내 청중의 집중력을 이끌어낸 원동력이었다.

 

파헬벨과 사티의 곡 안에 등장하는 미니멀적 요소들

음악회의 첫 순서로는 파헬벨(J. Pachelbel, 1653~1706)의 <카논>(Canon in D)과 사티(E. Satie, 1866~1925)의 현악합주를 위한 <짐노페디 1번>(Gymnopédies, No. 1, 1888)이 관객을 만났다. <카논>은 바로크 시대의 음악이며, <짐노페디 1번>은 작곡계의 이단아 사티가 남긴 히트곡으로서, 음악사의 계보 밖에서 독립적으로 소비된다. 하지만 이 음악을 미니멀 음악회에서 연주함으로써 비로소 명확해지는 지점이 있다. 첫째, 미니멀리즘 사조가 1960년대 미국에서 도래하기 이전에도 ‘귀로 청취 가능한 구조’(audible structure)를 특징으로 하는 음악이 즐비했다는 점. 둘째, 클래식 음악 안에서 ‘반복’이라는 요소는 조성음악의 형식 및 구조를 형성하기 위한 고도화된 용법 이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됐다는 점. 비록 그 반복이 논리적인 음악적 구문론을 만들어내는 수단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이를테면 파헬벨의 <카논>에서는 최초에 등장한 주제선율이 곡 내내 반복되는 가운데 성부들이 추가되고 사라지는 과정이 투명하게 청취된다. 모든 과정이 점진적으로 일어나며, 새롭게 등장하는 성부는 최소한의 정보량만을 갖고, 이미 도입된 성부가 변함없이 반복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성부의 도입이 완료된 이후에는 많은 이들이 익히 알고 있는 그 유명한 ‘카논 선율’이 경쾌한 무드로 등장한다. 한편, <짐노페디 1번>에서는 반복이 좀 더 노골적으로 제시되며, 이를 통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선율과 화음을 단 한 번의 청취만으로도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예컨대 미니멀 음악의 속성으로 거론되어 온 다양한 특징들은 긴 시간에 걸쳐 대중의 인기를 얻어 온 수많은 옛 음악들도 보유하고 있던 것으로서, 음악 청취의 ‘즐거움’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으로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샤콘느에 담긴 미니멀 음악

글래스(P. Glass, 1937~)의 <교향곡 3번>(Symphony No. 3, 1995) 안에서 ‘미니멀리즘’이란 반복하는 음형, 지속적인 비트, 종지의 반복이라는 외형적 특성으로 즉각 인지된다. 여기에 더해 성부마다 각기 다른 리듬이 결합해 만드는 복합박자, 아르페지오로 얽힌 그물망 같은 짜임새 등은 작곡가 글래스의 트레이드마크이기도 하다. 다만 이런 특성은 이 작품을 지극히 단편적으로 청취했을 때에도, 즉 이 음악을 영화음악과 같은 형태로 들었을 때에도 동일하게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 음악은 ‘교향곡’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으며 3악장에는 샤콘느(chaconne) 형식을 도입했다. 이는 <교향곡 3번>이 그 음향의 이면에 보다 복합적인 아이디어와 구조를 내포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특히 이 음악 안에서 ‘샤콘느’와 미니멀 음악의 속성이 호환되는 지점은 흥미롭다. 이를테면 3악장에서는 곡의 초반에 현악기군이 점진적으로 도입되며, 이 과정에서 샤콘느를 연상시키는 화성진행의 반복이 등장한다. 또한 성부의 구축과정 후반부에는 음악적 클라이맥스가 설정되어 있으며, 클라이맥스에 다다른 음악은 지극히 아름답고 절제된 바이올린 선율을 들려준다. 이후 이 선율은 변형되고 또 반복되며, 동일한 화성진행 위에 얹힌 채 계속해서 흘러간다. 예컨대 3악장에서는 반음계가 아닌 온음계에 기반하는 음정과 화음, 반복되는 한 벌의 화성진행, 그리고 투명한 짜임새 등, 글래스 음악의 전형적인 특징이 ‘샤콘느’라는 형태로 등장한다. 이는 1600년 이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가장 오래된 형식이 ‘반복’에 기반하고 있다는 지극히 단순한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 주는 동시에 글래스의 음악과 바로크 음악의 연관성이라는 의외의 테마를 제안한다.

 

지극히 미국적인 현상으로서의 미니멀 음악

20세기 말 미국의 작곡가들은 유럽음악의 헤게모니에 저항하기 위해 재즈, 비서구 음악 등 기존의 음악사에서 자주 다루지 않았던 요소를 작품에 도입했고, 이를 통해 지극히 미국적인 음악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에 관한 가장 좋은 예로 작곡가 라이히(S. Reich, 1936~)의 작품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날 연주된 <이중주>(Duet for two violins and string ensemble, 1993) 안에도 재즈를 비롯해 가나(Ghana)의 타악기 음악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라이히 특유의 리듬 어법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었다. 특히 이 곡에서는 고르게 진행하는 펄스가 음향의 후면에 지속되는 가운데 두 대의 바이올린이 주도하는 선율이 시차를 두고 마치 쏟아져 내리듯 진행됐다. 이때 바이올린의 리듬은 불규칙한 강세를 동반하고 있었으며, 여러 성부가 겹쳐져 복합리듬의 짜임새를 만들어냈다. 또한 독특한 형태의 각진 선율이 음향 내부에서 활발히 움직였고, 이런 모든 진행이 지극히 느린 화성리듬(harmonic rhythm) 안에서 펼쳐졌다. 다만 이날 공연에서는 이런 리듬적 복잡성과 두 바이올린의 선율적 얽힘이 또렷하게 인지되지는 않았으며, 음향적 배경에 어느 정도는 결합된 상태로 청취됐다.

아담스(J. Adams, 1947~)의 <진동 고리>(Shaker Loops, 1983) 1악장에서는 떨리는 듯한 현악기의 트레몰로가 곡의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이어진다. 이 소리가 일종의 펄스로 존재하는 가운데, 그 위에 새로운 악기가 겹쳐져 들어오고 또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이어지는 2악장은 이와는 대조적으로 지속음이 주요하게 등장한다. 특히 1악장과 2악장 모두 느린 화성리듬을 갖고 있으며, 성부마다 잘게 쪼개진 리듬이 한데 뭉쳐 음향적 얼개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라이히의 음악과 유사한 느낌을 준다. 다만 앞서 연주된 <이중주>에서처럼 <진동 고리> 역시 트레몰로의 섬세한 윤곽이 명확하게 청취되지는 않았다. 이는 비교적 대편성의 현악오케스트라 음향이 홀의 잔향과 결합되어 생긴 현상일 수 있다. 대신 저음의 현악기나 특정 파트가 도입될 때에는 압도적인 에너지의 폭발을 들려주었고, 성부가 사라지거나 화음이 바뀔 때에도 드라마틱한 분위기의 전환을 이끌어낸 점이 인상적이었다.

 

21세기의 경우, 장석진의 <카프카: 볼륨 I>(2020, 화음프로젝트 Op. 208)

장석진의 <카프카: 볼륨 I>을 마주했을 때 가장 인상적으로 느껴지는 요소는 농현(弄絃)을 하듯 구불거리는 첼로와 바이올린의 선율이다. 또한 성부마다 4분음표, 8분음표, 16분음표 등의 규칙적인 리듬으로 구성된 일종의 ‘반주로서의’ 짜임새도 기억에 남는다. 이렇게 선율과 반주로 분리되는 음향은, 성부마다 각기 다른 음형을 반복하며 이것을 수직적으로 겹쳐 그 자체로 음악 전체를 만드는 글래스나 라이히의 작품과 차이를 만든다. 즉, 장석진의 <카프카: 볼륨 I>에서는 소위 미니멀 음악의 전형적인 짜임새를 음악의 배경에 둔 채, 그 위에 독특한 선율을 결합시켰다. 한편 곡이 후반부에 이르면 두 성부에서 시차를 두고 등장하는 선율의 얽힘이, 마치 헤테로포니와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를 포함하여 작품 안에 등장하는 주요 선율이 모두 ‘동양적’이라는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무엇보다도 장석진의 곡은 이날 연주된 다른 모든 곡과 다르게 ‘중단’(pause)을 자유자재로 사용했다. 지속적으로 흐르는 비트 그리고 짜임새의 연속을 동반하는 미국식 미니멀리즘, 혹은 이런 특징을 잠재적으로 보유하고 있었던 파헬벨이나 사티의 음악에서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요소다. 대신 이런 ‘중단’은 고전주의 음악에서 능숙하게 다뤘던 종지의 회피 혹은 악구의 연장 등을 연상시켰다. 한편 작품 후반부에는 휘몰아치는 듯한 격정적인 진행이 이어졌으며, 섬세한 아티큘레이션을 동반한 부분이 많았다. 이런 요소는 19세기의 음악 관습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카프카: 볼륨 I>은 각기 다른 리듬으로 구성된 음형을 여러 성부에서 동시에 등장시키고 화성리듬이 느리며, 조성 안에서 음형이나 화성진행의 반복을 노골적으로 사용한다는 점 등을 통해 어렵지 않게 ‘미니멀 음악’의 범주에서 청취된다. 특히 최초에 등장하는 ‘C-D-E-A, B-D-E-A’ 음으로 구성된 8분음표의 반복이 다양한 형태로 재등장하며, 때로는 모티브처럼 때로는 반주 음형처럼 쓰이는 점 등은 <카프카: 볼륨 I>과 글래스 음악의 공통점을 만들어낸다.

청중이 이 음악 안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음악 진행을 청취할 수 있었다는 점은 특히 더 지적될 필요가 있다. 이런 측면은 이 작품이 청취의 즐거움을 제공했으며, 이날 연주됐던 다양한 음악과 동일한 속성을 공유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장석진의 곡은 20세기 후반에 등장했던 미니멀 음악의 유산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으며, 이를 21세기의 청중 앞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펼쳐놓았다. 따라서 누군가는 이 음악을 들으며 미니멀의 기원과 과거, 그리고 현재를 동시에 조망할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