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리뷰

2020. 7. 21. 03:12

반복되는 노래 안의 변화하는 화음들

2020년 6월 30일(화) ~ 2020년 9월 13일(일) 예스24스테이지 1관

 

로봇의 음악적 재현

주인에게 버림받은 낡은 로봇이 모여 사는 아파트. 이곳에서 혼자 생활하는 올리버가 <나의 방안에>를 부르며 등장한다. “아침뉴스!”라는 외침과 함께 8분 음표로 구성된 모티브가 종종거리듯 움직이면, 올리버가 소리에 맞춰 기지개를 켠다. D♭음을 중심에 두고 맴도는 이 소리는 반복되는 일상에서 평온함을 느끼는 올리버의 성향을 적절히 묘사한다. 또한 이 음악은 서로 다른 호흡을 갖는 악구를 반복시키고 또 불규칙하게 이어 붙임으로써 올리버가 미래의 어느 시점에 서 있는지, 올리버가 이 아파트에 들어오고 나서 대체 얼마나 많은 계절이 흘렀는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만든다. 영원히 반복되는 시간의 루프 한 가운데로 관객과 주인공을 데려가는 것이다.

올리버의 옆집에 사는 클레어는 버전이 조금 다른 로봇이다. 클레어의 테마곡 <끝까지 끝은 아니야>는 A♭-C음정의 연타로 시작하며, 이를 통해 클레어의 바지런한 성격을 드러낸다. 클레어는 하행하는 베이스 라인에 맞춰 “차창 너머 지는 노을, 작별은 나쁜 게 아냐”라고 말하며, 화음의 연타와 함께 “끝까지 끝은 아니야”라며 씩씩하게 소리친다. 비록 오래된 로봇이지만 영민하며, 무슨 일이 닥쳐도 가볍게 흘려보낸다.

<행운을 빌어줘>, <첫 입맞춤> 등 이어지는 다양한 곡 안에서는 올리버와 클레어를 묘사할 때 사용했던 연타화음, 반복음형과 같은 요소가 자주 등장한다. 이는 음악의 세포에 해당하는 모티브를 서로 다른 음악 안에서 유사한 형태로 등장시킴으로써 작품 전체의 일관성을 이끌어내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맥락 안에서 올리버와 클레어는 고장난 로봇이자 기계로, 더 나아가 인간과 대조되는 독특한 캐릭터로 형상화된다. 그리고 이들로부터 파생된 ‘기계를 은유하는 음형들’은 다양한 음악 안에서 ‘다그닥거리는 움직임’ 그 자체로 존재하게 된다.

 

변화하는 것들, 로봇이 아닌 인간적인 무언가

올리버의 회상 안에서 잠시 등장하는 옛 주인 제임스. 그가 재즈 마니아이며 피아노 연주자이기에, 그를 그리워하는 올리버는 종종 재즈 이야기를 읊조린다. 이를테면 “듀크 앨링턴의 즉흥연주는 같은 멜로디를 반복하면서도 그 아래의 하모니는 끊임없이 변주한다”와 같은 것들 말이다. 이 글귀는 이 극이 반복을 기반으로 하는 포스트 미니멀리즘 계열의 음악을 주로 사용하면서도 그 양식적 뿌리는 재즈에 기반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듀크 엘링턴의 이런 ‘음악에 대한’ 서술 안에 <어쩌면 해피엔딩> 전체의 서사 구조가 축약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반복’이라는 요소는 극의 초반에 등장하는 로봇의 일상으로, 그리고 ‘변주’라는 요소는 극의 후반에 이르러 감정을 느끼게 된 로봇의 인간적 면모로 병치할 수 있다.

실제로 극이 중반을 넘어가면서 영원히 반복될 것 같았던 로봇의 일상에도 변화가 찾아온다. 서로의 삶에 우연히 침범한 로봇들이 함께 여행을 떠나면서 사랑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제 음악은 ‘기계적 반복’보다는 ‘서정적인 조성 어휘’를 통해 로봇의 사랑과 후회를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으로 그려낸다. 이를테면 <사랑이란>에서는 반음계적인 화음 진행이 복잡 미묘한 사랑의 면면을 고찰하며, <사람들로부터 배운 것>에서는 격정적인 감정의 폭발을 들려준다. 이런 인간성에 대한 음악적 표현은, 극 초반에 설정해두었던 ‘로봇 모티브’가 점차 자취를 감추고, 그 자리에 서정적인 음악이 빼곡히 들어섬으로써 상대적으로 구현되는 것이기도 하다.

 

섬세한 오케스트레이션과 유기성의 창출

<어쩌면 해피엔딩>의 작곡가는 작품의 오케스트레이션을 겸함으로써 음향의 미세한 부분까지 통제한 음악을 만들어냈다. 즉 이 작품에서는 중요한 음악적 모티브가 선율 뿐 아니라 현악기의 화음 내부에도 등장하며, 음향 윤곽의 테두리를 또렷하게 인지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음역의 변화나 베이스의 움직임에 따른 음악적 효과를 가감 없이 청취할 수 있다. 또한 각각의 곡마다 악기편성과 주법이 바뀌는 것은 물론, 서사의 흐름에 따라 성근 짜임새에서 빽빽한 짜임새로, 또 두텁고 수직적인 선율 등으로 음향의 형태가 자유자재로 변모한다.

이를테면 <반딧불 쫒기>의 시작부분에서는 짧게 트레몰로하는 현악기의 화음이 C♯음을 중심으로 맴돌듯 소리를 내고, 가느다란 피아노의 선율이 음 공간의 최상층을 향해 아치형을 그리며 오르내린다. 곧 두터운 짜임새를 갖춘 B장조 음계의 선율이 하강하고, 동시에 저음에서부터 힘차게 도약하는 첼로 선율이 등장한다. 이런 짜임새는 숲 속에 등장한 아주 작은 날벌레를 따라가던 이들이, 반딧불이로 가득 찬 경이로운 광경을 마주하고 압도되는 모습을 표현한다. 로봇들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 등장하는 <첫 입맞춤>도 인상적이다. 오작동을 일으키는 배우의 몸동작 위로 투명한 화음이 잔잔하게 반복되며 고음의 현악기가 짐짓 머뭇거리듯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곧이어 넓은 음역을 급격하게 도약하는 현악기의 강렬한 트레몰로가 지나가고, 잔향처럼 남겨진 하모닉스에 휩싸인 채 황홀하고도 생경한 ‘로봇의 첫 입맞춤’이 탄생한다. 오케스트레이션으로 총천연색의 음화(音畫)를 그리는 것이다.

이제 결말에 이른 로봇들은 다시 극의 첫 장면으로 되돌아가고, 이야기는 순환구조로 막을 내린다. 하지만 사랑을 경험한 로봇이 이전과 동일한 하루를 맞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들은 서로 사랑했던 기억을 지운 채, 혹은 지우지 않은 채로, 일상에 동반되는 변화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비로소 이 지점에 이르러서야 하루의 반복, 모티브의 반복, 극의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순환구조 등, 이런 모든 것들이 최초의 ‘연타하는 화음’에서부터 시작했으며, ‘반복’과 ‘변주’라는 거대한 축 아래에서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있었음을 알게 된다. 같은 멜로디를 반복하면서도 그 아래의 하모니는 끊임없이 변주하는 듀크 엘링턴의 음악처럼, 그리고 동일한 선율을 노래하지만 그 화음의 색채감은 사뭇 달라진 올리버와 클레어의 마지막 노래처럼 말이다. (글 이민희/음악평론가)

 

「월간리뷰」, 2020년 9월 (2020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