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리지> 리뷰

2020. 7. 8. 00:48

여성의 목소리로 수행되는 광란의 제의와 유토피아

2020년 4월 2일(목) ~ 2020년 6월 21일(일) 드림아트센터 1관 에스비타운

 

광란의 제의  

특정 장르의 락 안에서 여성의 목소리란 보통 무대 아래에서 ‘돌고래 비명’을 지르는 맹목적인 팬의 함성으로 상상되어 왔다. 따라서 뮤지컬 리지가 그간 남성의 목소리가 대부분이었던 펑크와 하드코어를 전면에 내세우고 네 명의 여성 보컬리스트를 주인공으로 삼아 감정의 격랑을 담아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주목할 만하다. 흥미로운 점은 여성의 목소리가 이런 장르를 관통할 때, 그 특유의 발화(發話) 방식이 지극히 생경하고도 강렬하게 가시화된다는 점이다. 예컨대 리지가 “난 여길 떠나야 해!”라는 외침과 함께 <여기서 벗어나야 해>를 부를 때에야 비로소, 하드코어 메탈이란 장르가 화자의 끓어오르는 울분을, 미처 선율로 가다듬을 겨를도 없이 비트와 결합시킨 것이었음이 새삼스럽게 인지된다.

1막의 마지막 넘버 <누군가가 뭔 짓을 할 거야>에서도 모두가 잊고 있었던 펑크 특유의 날 것 그대로의 감각이 되살아난다.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휘청거리며 도끼를 휘두르는 리지. 그 순간, 리지의 긴 치마에 얼룩덜룩 흩뿌려진 검붉은 피로부터, 이제는 관념이 되어버린 먼 과거의 ‘진정성 있는’ 펑크 공연이 현실로 소환된다. 엠프에 불을 붙이고 기타를 부수며, 닭의 목을 비틀어 피를 뿌려대던, 굉음으로 가득 찼던 펑크 락 공연장 말이다.

하지만 뮤지컬 리지는 이런 노스텔지어적인 장면을 뒤로 한 채, 그 이상의 체험적이고 폭발적인 세계로 내달린다. 무엇보다도 이 넘버는 리지가 아버지의 성적 학대 그리고 새어머니와의 유산상속 갈등을 견디지 못하고 이들을 살해하는 장면에 등장한다. 불길한 분위기. 리지를 중심에 두고 대열을 맞춰 선 세 명의 여성, 1막 내내 응축시킨 분노를 드디어 살인으로 자행하는 리지의 서사, 여기에 펑크 특유의 파괴와 절규의 감각이 봉인 해제된 채 결합한다. 그리고 수백의 관객이 이 장면을 고요히 지켜본다. 아이러니하게도 21세기의 서울 프로덕션에서 이 퍼포먼스의 마지막 단계는 지하의 공연장에서 미동도 않고 시체처럼 존재하는 관객으로서,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완전하고도 소름끼치는 광란의 제의(祭儀)를 만든다.

 

앨리스, 그리고 여성들의 연대

주인공 리지가 주로 펑크와 하드코어에 둘러싸여 있으며, 이런 장르를 통해 분노의 정서로 1막을 이끈다면, 리지의 애인 앨리스는 이런 흐름 안에서 다소 환기적이고 감정적인 음악으로 극의 정서적 균형을 맞춰준다. 이를테면 앨리스는 피아노와 첼로, 어쿠스틱 기타 등으로 연주되는 <네가 안다면>, <언젠가는> 등을 통해 거칠고 어둡게 흘러가는 극 한가운데에서 리지를 위로하며, 모든 고난을 이겨내면 밝은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 속삭인다.

무엇보다도 앨리스는 여성의 음성으로 긴 시간 노래되어 온 어쿠스틱한 락발라드를 부르며, 다른 인물과 달리 극의 최후반에 이를 때까지 몸에 꽉 끼는 드레스를 벗지 않는다. 이는 앨리스라는 캐릭터가 리지의 동성 애인이라는 다소 파격적인 설정을 하고 있음에도, 음악과 의상을 통해 지극히 여성적이고 보수적으로 형상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맥락에서 앨리스가 <있어 줄래?>라는 넘버 안에서 흡사 오열하듯이 리지를 유혹하는 장면은 캐릭터의 성격과 그 행동 사이에 균열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2막에는 네 명의 여성이 함께 부르는 경쾌한 무드의 음악이 많아진다. 또한 리지와 앨리스의 사랑 확인, “연약한 여성은 살인을 할 수 없다”는 편견이 오히려 무죄를 이끌어내는 기묘한 상황, 리지의 재판으로 은유되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사회·제도적 억압과 이를 모든 여성이 함께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뒤섞여 있다. 말하자면 1막이 살인에 이르는 서사라면, 2막은 여성의 연대가 승리를 쟁취하는 서사다. 이 지점에 이르면 앨리스와 리지의 동성애 역시 어렴풋하게나마 사회적 규범에 저항하는 추상적 구호의 일종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유토피아 노래부르기

긴 스탠드 마이크에 기대 절규하는 배우의 모습은, 이 작품이 락뮤지컬의 계보 안에서 ‘노래하기’ 그 자체를 가장 중요한 시각적 상()으로 다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이 작품은 엔틱 풍의 침대와 의자, 티트레이 등을 등장시키고, 리지가 거하는 2층 헛간과 앨리스가 지켜보는 옆집 발코니를 만들었다. 이런 장치는 무대 위에 1892년의 특정 시공간을 묘사해 낸다. 즉 이 작품에는 콘서트에서처럼 빈 무대에 가만히 서서 노래하는 장면과, 배경이미지 및 소품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진지한 연기를 곁들이는 장면이 번갈아 등장한다.

다만, 뮤지컬 리지에서 반복적으로 그리고 가장 인상적으로 각인되는 상은 락의 관습과 1892년의 보든가, 이 두 가지가 뒤섞인 것들이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19세기 풍 드레스를 입고 마이크를 질질 끄는 여성들, 특히 이들이 음악에 맞추어 특이하게 발을 구르는 광경 등.

2막에서 모든 주인공이 드레스를 벗어던지고 펑크룩으로 갈아입는 장면도 흥미롭다. 이런 행위는 부모를 죽인 리지가 가장 먼저, 그리고 동생의 살인을 알아챈 엠마와 이에 동조한 브리짓이 그 다음에, 그리고 앨리스 순으로 이어진다. 각자가 사회의 속박과 굴레를 벗어던지는 순서다. 동시에 이런 갈아입기는 락뮤지컬이라는 장르적 속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서, 서사의 최종부에 ‘음악 퍼포먼스 그 자체’를 공고히 놓아두기 위한 준비단계로 볼 수 있다.

이제 리지는 극의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펑크룩 조차 벗어던지고 눈처럼 빛나는 글램록 스타일의 의상을 입은 채 <가장 대담한 꿈 속으로>를 부른다. 리지가 극을 통해 자유와 해방의 상태로 이행했음을 텍스트가 아니라 특정 음악과 이에 동반되는 복식으로 은유하는 것이다. 이렇게 1892년 일어난 보든가의 살인사건은 뮤지컬의 환상세계 안으로 매끄럽게 봉합되고, 리지의 고통과 고뇌, 여성에게 가해졌던 사회·제도적 억압은 여성 보컬리스트가 감동적으로 부르는 최후의 넘버 안에서 극복된다. 이 안에서, 슬픔은 어느새 사라지고 해방의 ‘상태’만이 남아 음악으로 수행된다. 가상의 그리고 지극히 추상적인 음악의 유토피아로 네 명의 여성이 함께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월간리뷰」, 2020년 7월 (2020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