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가장자리'의 음악과 정치

2013. 10. 14. 00:00

2010년은 홍대의 인디씬과 정치를 말할 때 특별한 해다. 그 해 홍대의 가장자리에서 ‘두리반 운동’이 있었다. 두리반 운동을 경험한 음악가들은 자신들이 음악하기에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시작했으며, 그들 중 일부는 독특한 음악을 만들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이 일련의 과정을 홍대의 ‘가장자리’에서 벌어진 음악과 정치라는 시각으로 바라본다.

90년대 중반. 홍대와 인디밴드, 그 둘의 결합이 그 자체로 힘을 가지던 시절이 있었다. 청년들은 홍대입구역에 내려 한참을 휑한 거리를 걸어 구석에 자리 잡은 ‘드럭’을 찾아가곤 했다. 화실들 사이로 클럽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그때,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면 제법 신선한 음악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당시 홍대는 날것과 새것으로서의 잠재력을 가진 에너지 넘치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예술가들이 홍대에 모여들수록 대기업과 상업 자본도 세를 넓혀 갔다. 홍대의 관광상품화 전략과 재개발은 홍대에 자생하는 영세음악클럽들을 조금씩 퇴출시켰다. 어찌 보면 땅값이 비싼 곳에서 살아남는 음악이란 모두에게 호응을 받을 수 있는 ‘보편적’인 스타일이었다. 그렇게 ‘홍대+인디밴드’라는 상징은 홍대를 다른 상업거점과 구분하고 치장시키는 셀링포인트의 하나로 전락한다.

그러던 2010년 어느 날, 작은 용산사태라 불리던 두리반 사건이 일어난다. 이는 동교동 로터리에 위치한 칼국수집 두리반의 철거를 지역의 예술가들이 연대해 막아낸 사건이다. 음악가들은 두리반에서 지속적으로 공연을 하며, 이 장소에서 있었던 문화 예술인들의 연대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한받 그리고 단편선, 박다함, 정동민 등이 주축이 되었던 ‘사막의 우물 두리반’이라는 단발성 공연이 시작이었다. 이 음악회는 곧 상당한 수의 인디밴드가 참여하게 된 ‘뉴타운 컬쳐파티 51+’ 음악회로 이어진다.

두리반은 사실상 홍대에서 인디 뮤지션이 행사나 집회에서 사회적 이슈에 대해 발언하고 주체로 선 사실상의 첫 사건이었다. 그리고 이 경험은 음악가들이 본인들의 ‘음악하기’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들이 두리반에서 경험한 ‘홍대의 영세업자 밀어내기’는 음악가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두리반처럼 갈 곳 없는 자신들을 발견하고, 두리반처럼 그저 그 자리에서 소박하게 칼국수 장사?음악을 하고 싶은 자신들의 모습을 대면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이들은 ‘자립음악생산조합’을 결성하고, 십시일반 돈을 모아 앨범을 내고, 어떻게 음악가가 이 땅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홍대의 인디밴드 중 일부였던 이들은, 그렇게 텀블벅 프로젝트를 통해 모금하고, 앨범을 만들고, 새로운 공간들을 찾아다니며 공연을 하고, 자신들의 음악을 직접 판매하며 독자적인 그룹을 형성하게 된다. 즉 이들은 기존의 음악소비망에서 벗어난 새로운 유통, 제작, 소비 방식을 논의한다. 이 활동은 직접적인 정치적 구호가 배제된 일종의 음악인의 ‘음악하기’에 관한 정치적인 액션이다.

그리고, 두리반으로부터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다. 그렇다면 우리는 궁금할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만든 음악은 다른가?”, “그래서, 그렇게 만든 음악은 새로운가?”, “그래서, 그렇게 쓰러져가는 카페에서 공연되는 음악들은 다른 공간의 음악들에 비해 매력적인가?” 어쨌든 이 모든 것은 ‘음악하기’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이들이 ‘그런 식으로’ 만든 음악이 어떠한가는 꽤 중요하다.

답을 얻기 위해 홍대의 가장자리에 들러보자. 댄스클럽들이 메우고 있는 화려한 중심부가 아닌, 홍대의 경계를 훑어보자. 그곳에는 작은 클럽들, 대안적인 공간들과 카페들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 가서 음악을 들어보자. 2013년 10월 9일 ‘카페 한잔의룰루랄라’에서는 대낮부터 공연이 한창이었다. 창 너머로 음악이 쏟아져 내려왔다. 아래층 정비소, 옆 지구대와 놀이터에 음악이 새어나갔다. 공연은 밤늦도록 계속되었다. 김태춘, 지니어스, CR태규, 하헌진, 씨 없는 수박 김대중, 회기동 단편선, 김사월, 아를, 신승은, 아나킨 프로젝트, 존스트롱앤 밴드, 기타트윈스, 사이, 코스모스 슈퍼스타, .59, 삼군y 이날 공연한 음악가들이다.

그 중 ‘회기동 단편선’은 자립음악생산조합의 대표적 멤버로, 두리반 이후 누구보다도 많은 고민을 해왔다. 음악 알갱이 자체를 만들기에 앞서, 그 알갱이가 도출될 수 있는 토대에 대해 숙고한 탓일까? 새로운 음악망과 음악하기를 고민한 그가 내놓은 음악은 지금까지의 모든 음악 외적인 활동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구심점으로 작용한다. 조합의 ‘활동’으로만 끝나지 않고, 그것을 통해 남과 다른 ‘음악 그 자체’를 만들어내는 것, 이 지점에서 자립음악생산조합의 활동 일부가 ‘유의미’해지는 지점이 생긴다. 단편선의 음악은 하나의 ‘활동’과 그에 뒤따르는 그 ‘결과(Music)’의 좋은 예로 보인다.

단편선의 음악은 음향적으로 포크, 사이키델릭, 웅얼거림, 포효, 국악적인 느낌과 극적인 요소까지 포함한다. 그리고 이 요소들은 모두 모여 아방가르드한 성격으로 결합한다. 실제 공연이 충격적임은 말할 나위 없다. 좁은 공간에서 행해지는 공연은, 단편선의 눈매나 체구, 기묘한 옷과 화장이 가진 위화감을 증폭시켜 그의 음악을 감싼다.

그의 거대한 몸에서 뿜어 나오는 포크 사운드는 우리가 이제껏 듣던 기존의 음악들을 낯설게 만든다. 부드러운 화음으로 아름답게 울리는 다른 밴드들의 음악은 단편선의 포효에 가려 거짓말처럼 여겨진다. 맑고 화려하게 부르는 훈련된 실용음악 보컬의 노래 또한 프로파간다일지 모른다는 의심이 든다. 대신 단편선의 웅얼거리는 목소리에서 ‘현실’을 발견하고, 그의 포효를 통해 ‘사회적 진실’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의 너절한 바지와 맨발이 서 있는 그 땅, 그곳에서 그와 내가 통하는 지점을 목격한다. 누군가는 단편선의 음악을 보고 들으며, 그 음악 내면에 접촉하고 있는 ‘사회’를 마주한다. 그 순간 단편선의 음악은 그 자체로 ‘정치성’을 띠게 된다.

다시 홍대 거리로 돌아가자. 어린 예술가들이 가꾸었던 홍대 중심부는 빠르게 자본에 그 영토를 내어주고, 가장자리로 밀려나고 있다. 두리반도 그 가장자리에 위치한 가게 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홍대의 가장자리는 여전히 많은 힘을 가지고 있다. 두리반이 홍대의 경계에 닿아 있었다는 점은 분명히 이 사건을 성공으로 이끄는 데 도움을 주었다. 많은 음악가가 홍대의 상업성을 경멸하는 것과는 별개로, 홍대는 그 가장자리 부분에서 여전히 진화 중이다.

처음 자립음악생산조합에 모인 음악가 중 상당수는 레이블 없이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이들 중 일부는 씬에 막 발을 들여 놓은 젊은 음악가들이었고 상대적으로 마이너한 취향의 음악을 만드는 이들도 많았다. 이 지지기반이 약한 음악가들이 홍대 가장자리의 농성장 두리반이 없었다면 어디에서 관객을 동료를 만날 수 있었을까. 홍대 밖 공간을 모색하는 시도로 주목받았던 석관동의 ‘대공분실’은 이제는 이름을 ‘대공공간’으로 바꾸었으며 클럽으로서의 활동을 거의 정지했다. 문래동 또한 머지않아 재개발이 예고되어 있다. 이태원의 ‘꽃땅’은 그 사이에 문을 닫았다.

홍대의 음악은 거시적 맥락에서 ‘중심부의 자본화된 홍대’와 그와는 다른 음악을 모색하는 ‘가장자리’의 구도를 띤다. 일부는 홍대를 벗어나면서, 그리고 일부는 홍대의 경계에 모여 새로운 활동을 하고 있다. 음악가들은 홍대라는 장소에서 자신들에 대해 고민하고 몇 년에 걸쳐 터를 잡으며 성장한다. 이 공간에서, 음악가들은 더 새로운 음악을 통해, 기존의 자본이 만들어놓은 매뉴얼과 망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그들 음악의 정치성을 보여준다.

물론, 모든 가장자리의 새로운 시도들이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홍대의 끝자락에 있던 독립창작자들의 공간 ‘스몰톡’은 이제 문을 닫았다. 가장자리라 할지라도 홍대의 월세는 너무 버겁고, 가난한 예술인들은 작은 공간을 운영할 만한 최소한의 운영비를 마련하지 못한다. 자립음악생산조합 혹은 수많은 영세한 클럽들, 그리고 곳곳에 산재한 음악노동자의 삶은 녹록치 않다.

혹자는 이들을 단순히 하위문화로 규정하고, ‘소수’가 찾는 음악을 하는 대중에 관심 없는 집단으로 볼지도 모른다. 그러나 홍대의 가장자리에서 행해지는 일련의 움직임은, 단순히 소수가 누리는 하위문화보다는 아무도 밟지 않은 땅을 먼저 개척하고 겁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아방가르드’와 더 어울린다. 멜론 스트리밍을 통해서는 들을 수 없는 음악, 텔레비전에서는 볼 수 없는 퍼포먼스, 하루에 8시간씩 연속으로 진행되는 공연들, ‘지금’ 들을 수 있는 가장 최신의 음악이 홍대의 가장자리에서 성행 중이다. 몇몇 활동들은 말이다. 어쨌든, 지금은 그 찰나이다. 

 

「플랫폼」, 통권42호, 2013년 11·12월, 커버스토리, 30-34 (20131017)

사진출처: www.n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535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