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교향악단 제734회 정기연주회 리뷰

2020. 1. 3. 02:28

요엘 레비의 역량을 가감 없이 보여준 시벨리우스 해석

2018년 9월 29일

 

핀란드와 노르웨이의 작곡가는 종종 ‘북유럽 음악’이라는 라벨로 묶여 설명되곤 한다. 9월 28일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던 요엘 레비(Yoel Levi) 지휘의 KBS교향악단 제734회 정기연주회도 ‘북유럽의 신비 속으로’라는 부제로 시벨리우스와 그리그의 곡을 선곡했다. 흥미로웠던 점은 이날 공연을 들었던 많은 관객들이 시벨리우스와 그리그의 음악이 얼마나 다르고 개성적인지 그 차이를 명확히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이날 음악회의 타이틀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북유럽’이라는 큰 틀로 만족스러운 음악회를 구성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첫 곡으로 연주된 시벨리우스(Jean Sibelius, 1865-1957)의 <투오넬라의 백조>(1895)는 잉글리시 호른이 주도하는 곡으로, KBS의 수석 오보에 주자 조성호가 독주자로 활약했다. 시벨리우스의 많은 곡 안에는 목관악기의 쓰임이 두드러지며 수평적으로 뻗어나가는 호모포니 짜임새가 인상적이다. 이 곡도 마찬가지다. 잉글리시 호른의 선율은 작품의 제목에 등장하는 백조를 연상시키며, 이와 짝을 이루듯 이 선율을 보완하고 대조하는 현악기의 흐름은 마치 물에 비친 백조를 표현하는 듯하다. 특히 이 곡 안에서 현악기 파트는 최소한의 화성과 긴 선율을 연주하는데, 이런 선율이 잉글리시 호른과 얽혀 작품의 독특한 짜임새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이날 연주에서는 잉글리시 호른과 현악기가 만들어내는 긴 선율들이 너무 평면적으로 묘사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짜임새와 구성이 비교적 단순한 곡이기에 작품에 등장하는 선율들을 최대한 입체적으로 표현했을 때에만 작품이 효과적이었을 것이나, 이에는 미치지 못했던 다소 밋밋한 느낌의 연주였다.

그리그(Edvard Grieg, 1843-1907)의 <피아노 협주곡 가단조>(Op.16, 1868)는 쇼팽을 연상시키는 화성과 선율진행을 상당수 포함하는 낭만주의 성향의 곡이다. 반주 위에는 아름다운 선율이 등장하고 이것이 다시 변주되어 나오길 반복하며, 각각의 주제들은 그리그가 떠올릴 수 있었던 가장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표현을 모아 놓은 듯하다. 흥미로웠던 점은 피아니스트 데니스 코츠킨(Denis Kozhukhin)의 연주였다. 코츠킨은 투박해보이는 터치를 들려주되, 파워풀하다기보다는 다소 여린 제스처로 다채로운 음색을 운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마도 코츠킨의 피아노 연주와 가장 대조되는 방식의 연주를 떠올린다면, 모든 음표를 꾹꾹 눌러 빽빽한 짜임새를 구현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코츠킨은 이와는 정 반대로, 어떤 음은 옅게, 또 어떤 음은 프레이즈의 태를 살려서, 그리고 때로는 프레이즈에서 특정 음 만을 강조함으로써 다채로운 음색을 구사하려는 듯 했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소리 안에서 전경, 중경, 후경을 디자인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코츠킨은 빠른 음형들이나 스케일들을 매끄럽게 연주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고, 일부 관객들은 이를 지켜보면서 코츠킨의 연주에 민첩성이 떨어지는 듯한 인상을 받았을 수도 있다. 이런 모습은 코츠킨과 오케스트라와 합이 어긋난 몇몇 부분에서 더 도드라지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츠킨이 해석한 <피아노 협주곡 가단조>가 낭만주의 피아노 음악의 정수로 다가왔다는 사실에는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앵콜로는 그리그의 <서정 소곡집> 中 “봄에 붙여”가 연주되었다. 이 곡은 <피아노 협주곡 가단조>의 분위기를 이어간 곡으로서, 연주 자체로는 그리 큰 인상을 남기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연주된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2번>(Op.43, 1902)은 “시벨리우스의 음악을 시벨리우스 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되뇌게 만드는 곡이었다. 무엇보다도 지휘자 레비는 이런 질문들에 명쾌한 답을 안겨주는 듯 했다. 1부의 <투오넬라의 백조> 그리고 <피아노 협주곡 가단조>가 관객마다 호불호가 있을 수 있었다면, 2부의 <교향곡 2번>, 특히 음악회의 대미를 장식했던 4악장은 홀 안의 모든 관객을 설득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을 만큼 호소력 깊은 연주였다.

시벨리우스의 음악을 그답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로 관악기의 비중 및 관악기 앙상블이 만드는 독특한 음향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날 공연에서는 목관 및 금관악기의 호연으로 시벨리우스 특유의 음색적 조화를 느낄 수 있었으며, 특히 마지막 악장의 클라이맥스 부분에서는 금관악기 앙상블이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전체 음향의 중심을 잡아주었다.

시벨리우스 음악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성부의 진행이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투명하고, 이런 짜임새를 곡 전반에 걸쳐 운용한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짜임새는 화성적으로 빽빽하게 쌓인 음향층이나 대위적으로 복잡하게 얽힌 소리와는 대조적이다. 대신 시벨리우스 특유의 음향은 수평적으로 흐르는 몇 개의 긴 선율과 이를 보좌하는 일정한 리듬의 반주부에 의해 만들어진다. 특히 <교향곡 2번>에서는 모노포닉하게 진행하는 현악기의 굵직한 선율이 수시로 등장하는데, 지휘자 레비는 이런 선율을 독특한 질감을 가진 매끄럽고 입체적인 움직임으로 표현해냈다.

한편 <교향곡 2번>은 유독 동일한 패시지의 반복을 많이 사용한다. 이에 레비는 속도 및 음량을 능숙하게 조절함으로써, 반복되는 패시지들을 사실상 ‘반복이 없는’ 미세하게 다른 짜임새로 표현해냈다. 그리고 이런 음악적 디자인을 통해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었을 패시지의 반복을 자극적인 제스처로 변모시켜 청중을 설득하는데 활용했다. 무엇보다도 레비는 반복을 점층적으로 누적시켜 효과적인 클라이맥스를 여러 군데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런 해석에 관객은 열광했다.

이처럼 이날 연주에서는 시벨리우스 고유의 관악기 운용과 선율 진행, 그리고 특유의 짜임새를 능숙하게 조율하는 지휘자의 역량을 느낄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관객들은 시벨리우스 음악을 그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런 해석 안에서 시벨리우스의 음악은 1부에서 연주되었던 그리그의 음악과는 거리가 먼, 특히 ‘북유럽’이라는 지역적 라벨로는 묶을 수 없는, 지극히 거대하고 추상적인 고도의 아름다움을 지닌 무언가로 표상되고 있었다.

 

「음악춘추」, 2018년 11월 (20181023)

사진출처: KBS교향악단 kbssymphony.org/ko/archive/photo.php?board_code=view&number=26187&pag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