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먼 래틀의 런던심포니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리뷰

2020. 1. 3. 02:27

토속적이며 때로는 현대적인, 새로운 시벨리우스와의 만남

 

10월 2일 롯데콘서트홀에서는 ‘풍산’의 창립 50주년 기념으로 지휘자 사이먼 래틀(Simon Rattle)과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LSO), 그리고 바이올리니스트 재닌 얀센(Janine Jansen)의 내한 공연이 열렸다. 이날 연주회는 하루 전 있었던 일반인 대상 유료공연과 동일한 레퍼토리로 진행됐으며, 시작 전부터 거의 모든 좌석에 관객이 빼곡히 들어차 연주회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런 분위기와 명성에 부응하듯 이날 공연은 많은 이들을 만족시킨 호연이었다.

연주회의 백미는 바이올리니스트 얀센이 협연한 시벨리우스(Jean Sibelius, 1865-1957)의 <바이올린 협주곡>(Op. 47, 1904) 이었다. 많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이 곡을 연주해왔고 다양한 연주 해석이 매체에 넘쳐나지만, 이날 얀센은 특유의 흡입력을 통해 <바이올린 협주곡>에 대한 새로운 인상을 관객에게 심어주었다.

시벨리우스의 많은 작품은 ‘차가운 서정’으로 대표되는 서늘하고 섬세한 음악적 표현을 특징으로 한다. 하지만 이날 얀센은 시벨리우스 작품의 또 다른 면모인 토속성을 강하게 상기시켰다. 이런 인상은 일차적으로는, 바이올리니스트가 사용했던 진폭이 넓고 깊은 강렬한 비브라토를 통해 다가왔다. 작품의 처음에서부터 끝까지 연주자의 장신을 이용한 듯한 무게감 있는 보잉을 들려준 것도 기억할 만하다. 특히 1악장 후반부에서는 유독 낮은 현을 사용하는 패시지들이 많았는데 이를 표현할 때에도 얀센 특유의 음색이 돋보였다. 어둡고 미스터리한, 때로는 비올라와 유사한 음색을 들려준 것도 인상적이었다.

얀센은 개별 음정과 프레이즈를 한음씩 명확하게 짚는 것과는 별개로, 한 음에서 그 다음 음으로 움직일 때마다 꼬리를 남기듯 짧은 슬라이딩을 섞어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프레이즈를 시작할 때에도 악보의 음과 미세하게 차이가 나는 지판에서부터 소리를 내기 시작해, 마치 미끄러지듯 그 다음 음으로 진입해 나갔다. 이런 방식을 통해 얀센이 표현하는 선율은 악보에 미쳐 다 표기되어 있지 않은 음과 음 사이의 공간을 입체적으로 표현해 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음정 사이사이에 어렴풋하게 추가로 청취되는 음들은, 서독일의 전통에 기반한 정갈한 장단음계가 아닌, 보다 더 토속적인 음계를 노골적으로 들려주고 있었다. 이에 관객들은 차분히 전개되는 오케스트라 반주 위에 입체적으로 흐르는 긴 선율을 청취하며, 평소 들어오던 매끄러운 시벨리우스가 아닌, 강렬하고 독특한 음계를 가진 힘 있고 화려한 시벨리우스를 만날 수 있었다.

이날 공연 전반부에 연주되었던 드보르작(Antonín Dvořák, 1841-1904)의 <슬라브춤곡>(Op.72) 中 1, 2, 7번 그리고 2부의 첫곡으로 연주된 <슬라브춤곡> 4번 역시 흠잡을 데 없는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의 앙상블을 보여준 곡이었다. 다만 1부와 2부의 초반에 모두 동일한 곡이 배치된 탓에 메인 레퍼토리인 <바이올린 협주곡>과 <교향곡 5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일종의 후경과 같이 느껴지는 측면을 배제할 수 없었다. 얀센이 앵콜로 연주했던 바흐 역시 고른 짜임새와 수평적으로 흐르는 리듬으로 시벨리우스라는 음악회 전체의 테마와 잘 어우러지는 선곡이었다.

연주회의 마지막을 장식한 곡은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5번> 이었다. 특히 이날 연주에서는 3악장에 이르러 그 유명한 금관악기 모티브를 중심으로 모든 음형이 정교하게 반복되는 독특한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래틀은 3악장의 초반부 템포를 비교적 빠르게 설정함으로써 선율 및 프레이즈에 낭만주의적인 해석을 삽입할 여지를 애초에 차단한 것처럼 보였다. 일반적으로는 금관악기의 프레이즈와 모티브들은 후반부의 더 큰 지점을 향해 ‘진행하는’ 여정을 하고 있지만, 래틀의 3악장은 좀 다른 양상을 보여줬다. 래틀의 해석 안에는 금관악기가 주도하는 음향들, 그 이후 현악기와 함께 시작되는 프레이즈들, 최후반부의 클라이맥스 선율들이 이미 하나하나 그 자체로 완전한 균형을 가진 조각, 혹은 손 댈 수 없이 완벽한 자연의 풍경처럼 존재했다. 콘트라베이스가 연주하는 프레이즈 머리 부분의 연타음이 유독 강하게 청취된 것도 흥미로웠다. 악기를 두드리는 듯한 거친 음향을 강조함으로써 수직적으로 울리는 소리의 질감을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입체적으로 만들고 있었다.

작품의 최종부에 등장하는 전체 악단의 화음 튜티와 그에 뒤따르는 정적도 독특한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시벨리우스가 이 최종부의 화음 튜티를 어떤 음악적 맥락에서 삽입했는지의 여부와는 별개로, 래틀은 이 화음을 연주함으로써 홀 안에 있는 관객의 현재성과 관객이 자리한 콘서트홀의 공간성을 강하게 상기시켰다.

래틀이 그려낸 <교향곡 5번>을 듣는 경험은 음향 조각 그 자체를 음미하는 것과 유사했다. 래틀은 흐르는 소리를 음악적 프로세스의 일부가 아니라, 정지된 시간 안에 맴돌도록 디자인했다. 이런 맥락에서 래틀의 3악장은 목관악기 앙상블로 조형적인 인상을 자아냈던 미니멀리스트 필립 글래스(Philip Glass)의 초기 음악을 연상시켰다. 시벨리우스의 음악이 어째서 19세기 낭만주의 음악과 다른지, 그리고 이날 이 음악이 어째서 지극히 현대적인 작품으로 청취되었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던 순간이었다. 래틀은 이 음악이 19세기의 유수한 작품들 사이에 주류음악의 안티테제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20세기의 시작을 열고 미래의 음악을 예견하는 작품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음악춘추」, 2018년 11월 (2018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