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라보프로젝트 1.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리뷰

2020. 1. 2. 00:31

음악을 통한 봉합

2019년 9월 6일(금) ~ 2019년 11월 10일(일)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

 

독립적인 구성요소

콜라보프로젝트 1.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은 무용·연극·음악 등의 다양한 창작진이 함께 만든 작품으로, 오스카 와일드의 원작과는 전혀 다른 줄거리를 갖는다. 유능한 미술기획자 오스카, 그리고 예술가 유진과 제이드가 주인공으로서, 오스카는 제이드를 ‘도리안’으로 명명하며 천재 예술가로 마케팅한다. 하지만 제이드는 이런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정신병으로 파멸한다. 특히 이 작품은 ‘콜라보프로젝트’라는 부제를 붙이고 있는 만큼, 일반적인 뮤지컬이나 연극 혹은 오페라와는 전혀 다른 외형을 하고 있다.

작품 안에는 무용·사진·인터뷰·음악 등이 독특한 방식으로 혼재하며, 각각의 구성요소가 독립적이다. 이를테면 도리안으로 변해가는 제이드의 고통 그리고 작품창작 모습은 행위예술에 가까운 무용으로 표현되며, 주인공의 자기고백은 인터뷰 형식의 영상 작업으로 제시된다. 극 내내 유진과 제이드의 사랑이야기가 진지한 연극적 분위기로 등장하는가 하면, 조연의 경우 완전히 결이 다른 연기를 마치 내레이터처럼 행한다. 조명도 따로 거론할 만하다. 모든 이야기가 텅 빈 무대에서 진행되지만 섬세하게 조정되는 다수의 조명이 공간의 무드 및 주인공의 시각적 아우라를 만들어낸다. 음악의 경우에는 등장인물에 의해 온전히 가창되는 네 곡의 노래를 포함하고 있다.

 

오브제로서의 도리안

연극·뮤지컬·오페라는 작품을 이루는 구성요소를 하나의 주제와 이야기로 통합해낸다. 이 안에서 무대 위의 조명이나 연기는 주제를 표현하기 ‘위한’ 요소로 활용되며 실제 작품을 감상할 때에는 이 요소를 인지할 수 없다. 관객이 붉은 조명에 의해 강화되는 주인공의 캐릭터를 느낄 뿐, 붉은 조명을 직접 마주하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정반대다. 텅 빈 무대와 최소한의 소품, 연극과 번갈아 나오는 독특한 무용신 등 작품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요소는 통합된 서사와 몰입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주목할 것은 관객이 이와 같은 요소의 나열 혹은 콜라주 앞에서, 무대를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을 대면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관객은 이 작품을 감상하며 장면의 연속적인 흐름에 몰입하기보다는, 각각의 요소를 분절적으로 응시할 수 있게 된다. 비슷한 맥락에서, 관객은 무대 위 미술·무용 등으로 구성되는 개별적 장면을 관찰하며, 도리안 역의 배우가 그곳에 머물고 움직이는 광경 그 자체를 노골적으로 바라볼 기회를 얻는다.

짐작컨대 이 작품은 극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를 파편적으로 다룸으로써, 결국 도리안이라는 인물 역시 하나의 오브제로 무대 위에 세우는 것에 성공한다. 이때 도리안을 연기하는 배우는 아름다움 그 자체에 관한 무언가로서, 그 어떤 서사보다도 직관적으로 ‘도리안 아이콘’을 구현한다. 그리고 관객은 살아있는 도리안으로 현전(現前)하는 배우를 직접 마주함으로써 비교적 손쉽게 원작의 도리안에까지 파고들 수 있게 된다.

 

두 개의 축, 그리고 음악을 통한 봉합

그런데 이 지점에서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극 내내 비교적 빠르게 진행되는 직접적인 서사는 아름다움에 관한 도리안 신화와는 거리가 있다. 이 새로운 이야기 안에서 ‘도리안’이란 미술기획자의 눈에 비친 뮤즈이며 그의 예명일 뿐이다. 서사는 도리안이 언제부터 아름다웠는지, 그리고 왜 아름다움에 대해 계속해서 질문하는지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유진과 사랑을 나누는 청년미술가를 둘러싸고 ‘아름다워’라는 감탄사를 반복할 뿐이다.

이제 작품 안에는 두 개의 축이 끊임없이 충돌하며 균열을 만든다. 작품의 메타서사는 무대에 현전하는 아름다움이지만, 직접적인 서사는 젊은 예술가의 통속적인 사랑이야기와 도리안이라는 캐릭터에 집중된 예술가의 광기다. 따라서 한 무리의 관객은 직접적인 서사를 쫒으며 어째서 도리안이라는 예명을 가진 청년이 저렇게까지 ‘홀로’ 매력적으로 표현되는지 의문을 갖는다. 동시에 또 다른 무리의 관객은 미술계의 사랑이야기와 광기가 ‘도리안의 현전’과는 별개인, 꽤 익숙한 클리셰라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고무적인 것은 음악이 이런 균열을 봉합해 낸다는 점이다. 미니멀한 짜임새의 합창 및 오케스트라 음악, 놋그릇을 문질러 만드는 고요한 공명음과 끝없이 상승하는 한 덩어리의 파열음. 서정적인 기타솔로와 글리치 음악, 강한 비트를 가진 본격적인 일렉트로니카, 그리고 극 중 조연에게 할당된 네 곡의 노래와 언급하지 않은 수많은 배경 음악까지. 예컨대 음악이 가진 스타일적 다양성은 그 자체로 미술·조명·무용 등의 요소가 혼재하는 작품의 외형을 은유한다. 무엇보다도 음악은 극의 거의 모든 순간에 동반됨으로써 대조적인 장면의 나열을 힘있게 추동(推動)한다.

맨 마지막에 등장하는 노래 <편지>는 이런 음악의 역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노래의 화자는 도리안의 연인인 유진에 가깝지만, 실제로는 미술기획자 오스카에 의해 불린다. 이는 이 노래가 극 전체의 에필로그 임을 암시한다. 그리고 노래를 통해 극에서 자살한 ‘캐릭터로서의 도리안’과, 두 시간동안 현전했던, 무대 위에 ‘살아있던 도리안’, 둘 모두의 죽음에 대해 애도를 표한다. 이 역시 음악을 통해, 극의 모든 감정이 ‘총체극’이라는 우산 안에 통합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월간리뷰」, 2019년 11월 (2019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