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아트플랫폼 서울기타콰르텟 플랫폼 초이스 리뷰
클래식 기타 선율 속 ‘익숙함’과 ‘새로움’의 조화
들어가면서: 공연의 시작, 그 순간!
더운 여름 밤 어둡고 불편한 장소에 앉아 있노라면 이상한 기분이 든다. 나는 어떤 연유로 이 공간에 앉아 있는지, 내 옆에 앉은 아이와는 무슨 인연이 닿아 있는 건지... 단 없는 무대 위에서 주섬주섬 연주를 준비하는 연주자와 온통 검은 색으로 채워진 낯선 무대.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웃들의 모습과 색색의 면 티셔츠를 입고 온 어린아이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는 공연장. 이런 저런 소개말을 하는 연주자의 머리 모양이 눈에 들어오려는 찰나, 흡사 소나기를 퍼붓는 것 같이 강렬한 스트로크(Stroke)가 쏟아져 내린다. 비제(Georges Bizet)의 카르멘 모음곡(Carmen Suite)의 첫 화음이다. 순식간에 드문드문 흩어져있던 어린아이, 아주머니, 학생들, 아저씨의 마음이 소리 없이 달려와 이 새로운 음향 안에 자리를 잡는다. 이제 일상 속 평범한 이웃들은 어엿한 ‘청중’이 되어 하바네라 리듬을 귀로 듣고 호흡으로 내뱉기 시작한다. 2014년 7월 19일 토요일 인천아트플랫폼 C공연장, 인터미션 없이 무려 90분간 진행되었던 서울기타콰르텟의 ‘해피콘서트’(Happy Concert)가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익숙함 : 기타 앙상블로 연주된 비제(George Bizet)와 보케리니(Boccherini)의 고전 음악
오늘 공연의 가장 큰 키워드는 ‘대중과의 소통’이다. 공연에서는 누구나 친숙하게 여길만한 대중적인 레퍼토리가 연주되었으며, 각각의 곡은 짧은 연곡으로 구성된 모음곡 형식이 많았다. 연주 사이사이에는 작품과 연주 주법에 대한 설명을 곁들여서 청중의 이해를 도왔다. 긴 곡을 집중해서 들어야하는 피로감을 덜어주기 위해 악장 사이 박수도 자유롭게 허용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첫 곡이었던 비제의 ‘카르멘 모음곡’은 오늘 공연 레퍼토리의 표준이었다. 텔레비전 광고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짧고 친숙한 선율들이 활달한 리듬과 조화를 이루며 청중을 사로잡았다.
두 번째로 연주된 보케리니의 곡 ‘판당고’(Introduction & Fandanango G.448) 역시 흥겨운 리듬과 밝은 에너지가 넘치는 곡이었다. 본래 이 작품은 현악기 앙상블과 기타 한대를 위해 작곡되었지만, 오늘 연주에서는 기타 4대의 연주로 들을 수 있었다. 캐스터네츠 소리를 연상시키는 흥겨운 판당고 리듬과 원곡에서 첼로로 연주되는 다양한 기교들이 기타로 구현되었다. 기타 앙상블 편곡을 통해 작곡가 보케리니가 사랑했던 ‘스페인 정취’가 보다 강화된 느낌이었다. 청중들은 판당고 리듬을 흥얼거리며 음악에 빠져들었다. 가히 남녀노소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기타 앙상블이었다.
새로움 : 작곡가 한형일의 창작곡들
한편 이날 공연의 또 다른 키워드는 ‘새로움’이었다. 공연의 큰 특징 중 하나는 공연 레퍼토리의 상당수가 콰르텟 멤버 중 한명인 한형일 작곡가의 창작곡이라는 점이었다. 이날 공연에서 연주된 한형일 작곡가의 곡은 ‘오르골’(Orgel), ‘피아졸라에 대한 찬가’(Homenaje a Piazzolla), ‘돼지의 꿈’(Pig’s dream), ‘귀신의 집’(Haunted house), ‘플라잉’(Flying) 등 총 5곡 이었다.
음악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곡은 ‘플라잉’이었다. 이 곡은 하늘을 나는 느낌을 묘사한 기타 4중주이다. 실제 연주를 접하니 ‘하늘’ 보다는 작은 물방울들로 가득 찬 ‘파도’ 속을 헤엄치는 느낌이었다. 파도가 미세하게 형태를 바꾸고 부드럽게 움직였다가 어느 새 다시 거칠어지는 것처럼 곡의 흐름도 비슷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곡의 서두인 첫 부분에는 격정적인 느낌을 갖는 단조 조성의 빠른 음형이 돋보였다. 이 음형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두텁고 격정적인 짜임새로 발전해갔고, 긴장감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 중단되었다. 격정적인 첫 부분 이후 등장한 둘째 부분에는 서정적인 선율이 중심이 되었다. 최소한의 반주와 함께 최초의 선율이 나오고, 이 선율이 여러 번 반복하며 대선율과 음정들을 추가해 나갔다. 여러 선율이 겹쳐서 등장할 때에는 하나의 선율과 또 다른 선율이 서로의 환영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중심이 되는 주선율의 위치가 순간적으로 다른 성부로 옮겨가는 효과를 느낄 수도 있었다. 어느새 가녀린 선율만 들리던 음악은 선율들로 가득 차있는 빽빽한 음향으로 발전되었다.
전체적으로 이 음악은 단일한 음향을 가진 기타 앙상블의 장점을 살려 작곡된 것으로 보였다. 아마 이 곡이 다양한 구성의 악기로 연주되었다면 짜임새의 축적이나 선율이 얽히는 모습을 이리도 매력적으로 그려내지 못했을 것이다. 기본 화성진행을 여러 번 변형 반복하며 음향을 점진적으로 두텁게 만드는 과정, 그리고 하나의 선율을 자유자재로 변형하는 것은 ‘단일한 음향’이라는 토대 위에서 부드럽게 진행되었다.
청중, ‘새로운 소리’과 만나다
그렇다면, 익숙함과 새로움이라는 두 가지 테마로 나뉠 수 있었던 이날 공연에서 청중들이 가장 흥미로워 했던 작품은 무엇이었을까? 이날 청중들이 가장 즐겁게 듣던 음악은 부드러운 조성음악이 아니었다. 청중들은 작곡가 한형일의 또 다른 창작곡 ‘귀신의 집’과 쳇 앳킨스(Chet Atkins)의 ‘블루 오션 에코’(Blue Ocean Echo)를 들으며 환호했다. 한형일의 곡은 일반적인 클래식 기타 곡과는 좀 다른 분위기로 되어 있다. 반복적인 화성진행 위에 보틀넥 주법, 글릿산도 등의 특수주법이 조합되어 있으며 어둡고 우울한 느낌의 화성을 중심으로 진행한다. 특별히 선율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음향 단편은 등장하지 않는다. 앳킨스의 곡도 마찬가지이다.
아마 청중들은 다양한 특수주법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음향을 신선함으로 인지했던 것 같다. 이런 현상은 여태까지 짤막하고 대중적인 선율을 가지는 곡을 위주로 레퍼토리를 꾸려온 연주자들에게 작은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청중들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좀 더 복잡하고 다양한 레퍼토리를 들고 와도 유연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 모른다.
나가면서: 더 많은 소통을 기대하며
클래식 기타 앙상블의 음악은 다른 편성의 음악에 비해 좀 더 조성적이고 대중적인 음악을 선보인다. 다양한 영화음악들은 클래식 기타를 편성으로 작곡되며, 클래식기타는 누구나 쉽게 소리 낼 수 있고 아름다운 선율과 화음을 연주하기 수월하다. 따라서 클래식기타 앙상블이 갖는 매력 포인트는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부드럽고 대중적인 음색에 있을 것이다. 이날 연주된 비제와 보케리니 그리고 다양한 영화음악 곡은 그 전형이었다.
하지만 공연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이토록 대중친화적인’ 악기가 만들어내는 ‘새로움’이었다. 사실 클래식 기타 앙상블은 독특한 특수주법이나 새로운 실험이 자유자재로 일어날 수 있는 장이기도 하다. 기타라는 악기는 본래 자유자재로 다양한 주법을 손쉽게 시도할 수 있는 악기이기 때문이다. 연주에서 접한 새로운 창작곡들에 대한 대중들의 호응은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또 다른 창작곡인 김명표의 ‘사당의 노래’도 클래식 기타 앙상블이 가진 독특함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곡이었다.
마을에서 열린 작은 음악회였지만, 그 음악회가 품고 있는 새로움은 여느 거대한 음악회에 못지않았다. 개성있는 연주단체가 점점 줄어들고 있고, 현대음악은 많이 연주되지 않으며, 작곡가가 자신의 곡을 발표할 기회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시기에 익숙한 것과 새로운 것을 적절히 배합하여 대중의 눈높이로 다가간 서울기타콰르텟의 ‘해피콘서트’는 많은 가능성을 시사한다.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한 서울기타콰르텟의과 끝까지 자리를 지킨 청중들이 있기에 가능한 경험이었다. 청중들은 인터미션 없이 진행된 90분이라는 긴 공연시간 동안 좋은 공연태도를 유지하며 열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루 저녁의 음악회가 청중의 삶에 값진 시간이 되었길 바란다. 그리고 이날 공연이 연주자에게도, 그리고 더 나아가 음악계에도 좋은 값진 경험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플랫폼, (2014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