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신 첼로독주회 리뷰

2018. 9. 9. 22:50

바로크에서 근대음악을 아우르는 뛰어난 작품 소화력

 

2018819일 오후 730분 서울 영산아트홀에서 박유신의 첼로독주회가 열렸다. 연주회의 시작과 끝을 장식했던 곡은 프랑쾨르(F. Francoeur, 1698-1787)<마장조 소나타>(Sonata in E Major, 1726)와 로시니(G. A. Rossini, 1792-1868)<세빌리아의 이발사>(Barber of Seville: Largo al factotum, 1816)였다. 이 곡들은 연주회 중심에 배치된 센티멘털한 곡들과 대조를 이루는 다소 뚜렷하고 명쾌한 선율선을 가지고 있다. 이에 박유신은 첫 곡 <마장조 소나타>를 낭만주의적으로 해석함으로써 독특하고 두터운 음향을 만들어냈다. 연주회 전반을 지배했던 서정적인 무드를 첫 곡에서부터 들려주기 시작한 것이다.

인터미션을 중심에 두고는 슈트라우스(R. Strauss, 1864-1949), 슈만(R. Schumann, 1810-1856) 그리고 야나첵(L. Janacek, 1854-1928)의 곡이 연주되었다. 이 음악들은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반에 걸쳐 작곡된 것들로서 낭만주의 화성의 미묘한 색채감이 원숙한 음악기법으로 발현되어 있다. 특히 슈트라우스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바장조 소나타>(Sonata for Cello and Piano in F Major, Op.6, 1883)는 박유신의 장점을 잘 드러낼 수 있었던 곡이었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강하고 풍부한 서정성과 함께, 박유신은 인상적인 제스처를 갖는 첫 프레이즈로 객석을 몰입시켰다. 이어진 1주제, 그 이후에 등장하는 2주제 및 경과구를 비롯해, 작품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들이 서로 다른 형태의 비교적 완결된 선율로 차례차례 등장했다. 다소 평이하게 흘러갈 수 있는 이런 선율의 연속이 각기 다른 색깔을 가진 프레이즈로 표현되었고, 섹션의 구분 및 형식이 비교적 뚜렷하게 감지되었다.

슈만의 곡은 <환상소품>(Fantasiestücke, 1849)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처음 등장한 선율이 전조를 거듭하며 긴장감을 이어나간다. 박유신은 이를 흐트러지지 않는 긴 호흡으로 들려줌으로써 악장 전체를 하나의 심상으로 표현했다. 이어진 야나첵의 <동화>(Pohadka, 1910)는 피아노를 맡았던 임현진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곡이었다. 이 곡은 아르페지오 반주와 차분한 선율을 중심으로 진행하되, 첼로와 피아노가 유독 유기적으로 대화를 주고받는다. 이 곡 역시 단편에 해당하는 하나의 음악적 아이디어가 그 자체로 완결된 악장을 이룬다.

박유신과 피아니스트 임현진은 각 악장마다 다르게 펼쳐지는 각기 다른 장면들을 개별적인 캐릭터 및 무드로 표현하며, 악장 후반부의 급작스러운 끝마무리 패시지, 피치카토 주제, 그리고 여러 악장에 걸쳐 전개되는 파트 간의 대위법적 선율 등을 균형 잡힌 음향과 호흡으로 완성해냈다. 악보 상의 아름다운 선율선과 이에 대한 매끄러운 해석이 이날 공연 전체를 지배했던 풍부한 낭만주의적 무드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연주회의 마지막 곡은 화려한 기교가 돋보이는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였다. 미스터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박유신은 다양한 현대주법 및 변화무쌍한 속도 변화를 능숙하게 조율하며 비르투오소적인 면모를 보여줬다.

이날 연주회에서는 시대와 양식이 다른 곡을 적절히 배치하되, 이 모든 것을 낭만주의적인 호흡 안에 그려내어 일련의 흐름을 만들어냈다. 관객들은 다소 손쉽게 첫 곡으로 빠져들고 이어 진지한 두 번째 곡에 몰입했으며, 세 번째 곡과 네 번째 곡의 다채로운 기교 및 센티멘털리티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리고 명쾌하고 화려한 마지막 곡을 통해 현실로 돌아왔다. 앵콜로 준비한 생상스(C. Saint-Saënss, 1835-1921)<백조>(Le cygne, 1886) 역시 연주회 초반에서부터 이어진 흐름을 완성하는 곡이었다. 객석을 가득 매운 관객들은 이 곡을 통해 비교적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었던 메인 레퍼토리 속 긴장감을 해소하고 연주회장을 나설 수 있었다.

박유신은 이번 연주회에서 첼로 특유의 깊이 있는 선율 표현 뿐 아니라 근대 및 현대음악에 자주 등장하는 다양한 테크닉을 무리없이 소화해냈다. 다만 연주회에서 들려준 곡들이 짧은 악장을 갖는 곡들과 소품위주로 구성되었기에, 연주자가 앞으로 도전하게 될 더 긴 흐름의 복합적인 곡에 대한 해석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전문연주자로서 첫발을 내딛은 박유신이 폭넓은 레퍼토리로 더 많은 관객과 만나길 바란다. 

 

「음악춘추」, 277호, 2018년 9월 (20180823)